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76
▣ 76화. 서쪽으로 (1)
이바르 에인헤랴르.
프레데군다의 첫 번째 아들인 그는, 차기 북부대공 자리에 가장 가까운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무능한 장남이었던 카이트 에인헤랴르와는 달리 어렸을 때부터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 지금의 프리드레이프와 같은 스무 살 나이에 청룡기사단의 지휘권을 획득했다.
지휘, 교섭, 심문, 교역 등등… 어떤 일을 맡겨도 최고의 성과를 보여 주는 완벽한 남자, 그것이 이바르였다,
하지만 그에게는 결점이 하나 있다.
태어났을 때부터 두 다리에 장애가 있어, 지팡이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걸어 다닐 수 없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용살검가 에인헤랴르의 일원으로서 검을 휘두르지는 못한다. 이바르가 ‘모든 것이 완벽하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용만큼은 헤스테인이 더 뛰어나다.’라는 말이 항상 따라붙는 이유가 이것이었다.
그러나 직접 마주한 이바르에게서는 장애로 인한 어둠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지팡이를 활용하며 걸어오는 모습도 자연스러웠고, 부드러운 미소로 나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카이트 형님, 오랜만에 보니 느낌이 많이 달라지셨군요. 옛말에 ‘기사는 사흘만 못 봐도 몰라보게 변한다.’라는 말이 있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자주 듣는 얘기지.”
“이렇게 여기서 얘기하는 것도 뭣하니, 쿠드라크 성으로 들어갑시다.”
이바르가 절반쯤 무너진 상태인 쿠드라크 성에 시선을 향했다.
“진지한 얘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니까요.”
* * *
그동안 이바르는 예카테리나, 아나스타샤를 상대로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것에 힘써 왔다고 한다.
시구르드는 이바르가 청룡기사단을 이끌고 크레스니크 가문을 압박하는 걸 기대했지만, 이바르가 독자적인 판단으로 방침을 전환했다는 것 같았다.
크레스니크 측에서는 계속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려 했지만, 함께 몬스터나 산적을 토벌하기도 하면서 조금씩 친분이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쿠드라크에서 아버지와 오빠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이 들어왔을 때… 일단 이바르에게 확인을 했던 거지.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예카테리나가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현재 쿠드라크 성의 회의실에는 크레스니크의 장녀 예카테리나, 차녀 아나스타샤, 차남 세르게이, 삼남 드미트리가 모여서 나와 이바르를 상대하는 중이었다.
“이바르는 침착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며, 일단 병사들을 관문에 계속 배치해 둔 채 우리만 쿠드라크로 향하라고 조언해 줬다. 그렇게 하면 우리가 부재중일 때 에인헤랴르에서 공격해 와도 버틸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누님, 에인헤랴르와 대치 중인데 에인헤랴르의 차남에게 조언을 받은 겁니까?”
“어, 어쩔 수 없잖아. 합리적인 조언이었던 건 사실이니까.”
세르게이의 질문에 예카테리나가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이바르는 이번 사건이 에인헤랴르 측이 크레스니크를 집어삼키기 위해 벌인 일이 아닐 거라고 우리를 설득했다. 그리고 자기를 데려가라고 했지. 인질 취급해도 좋다고 말하면서 말이야.”
“사실 처음에 우리는 모든 병사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달려올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우리가 지키고 있던 관문이 텅텅 비게 되었겠죠.”
아나스타샤가 옆에서 부연 설명을 했다.
“이바르의 조언을 받아들여 우리만 온 덕분에… 좀 더 냉정하게 상황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아나스타샤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성에서 아버지와 블라디미르 오라버니 사이의 골육상쟁이 벌어졌다는 것, 그리고 드래곤까지 개입했다는 것… 아무래도 사실이었던 것 같군요.”
이미 예카테리나와 아나스타샤는 성에 남아 있는 증거들을 살펴보고 다른 사람들의 증언도 확인한 상태였다.
“아버지가 실제로 배룡주의에 빠졌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드래곤과 손을 잡았던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합당한 결말을 맞이했다고 할 수 있겠죠.”
“아나스타샤!”
예카테리나가 목소리를 높였다.
“너는 아버지가 죽어 마땅했다고 말하는 거냐!”
“드래곤과 손을 잡은 이상, 아버지는 결국 에인헤랴르의 칼날에 목숨을 잃을 운명이었습니다. 크레스니크가 드래곤의 협력자가 되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에인헤랴르의 북부대공이 직접 나서서 전쟁을 시작했을 테니까요.”
“무슨……!”
“그럴 가능성이 높겠죠.”
그때 드미트리가 입을 열었다.
“북부대공은 인간들끼리의 싸움에 직접 나서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크레스니크가 드래곤과 손을 잡았다면… 몸소 흑룡기사단을 이끌고 토벌에 나서겠죠.”
“드미트리……!”
“크레스니크가 북부대공의 분노를 견뎌 낼 수 있었을까요? 솔직히 저는 어렵다고 봅니다.”
드미트리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큰형님이 아버지와 잘 협력해서 맞서 싸운다면 그나마 승산이 있겠지만… 아시다시피 큰형님은 다른 마음을 먹고 있었으니까요.”
“어차피 다들 에인헤랴르에게 죽었을 테니까, 아버지와 블라디미르 오빠가 카이트 에인헤랴르에게 살해당한 것도 어쩔 수 없다는 거냐?”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만… 아니, 그 말이 맞군요.”
“뭐라고!”
“현실적으로 생각합시다, 큰누님.”
눈을 치켜뜨는 큰누나 앞에서 드미트리가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와 큰형님이 그런 음모를 꾸미고 있었던 이상, 크레스니크 가문은 언젠가 멸망할 운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카이트 에인헤랴르의 개입으로 아버지와 큰형님만 목숨을 잃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이건 우리한테 좋은 기회입니다.”
“조, 좋은 기회라고?”
“지금 이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앞으로 드래곤과 더 이상 손을 잡지 않을 것이라 맹세하면서 에인헤랴르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오랜 폐쇄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크레스니크로 거듭나는 겁니다.”
“아버지와 오빠를 죽인 원수하고 손을 잡으라고? 이 패륜아 자식……!”
“그 아버지와 큰형님이 먼저 패륜을 저지르려고 했던 걸 잊으셨습니까?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려 했습니다!”
“이 녀석이……!”
큰누나와 막내의 설전이 벌어지자, 세르게이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부터 다혈질적인 성격인 것 같은 예카테리나는 그렇다 쳐도, 평소 가문에서 무시당하던 드미트리가 저렇게 강경하게 나오는 모습이 당혹스러운 것 같았다.
“다들 진정하시죠.”
그런 상태에서 끼어든 것이, 침묵을 지키고 있던 이바르였다.
“크레스니크 가문 여러분, 여러분은 이번 일을 두 가지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두 가지 관점?”
“이바르, 그게 무슨 소리죠?”
“여러분은 소중한 가족을 살해당했습니다. 그들이 무슨 짓을 했든, 가족을 살해당했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겠죠.”
이바르가 예카테리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여러분은 북부 3가문의 일원이기도 합니다. 드래곤과 맞서 싸우며 오랫동안 북부를 지켜온 명가의 자식으로서, 비록 혈육이라고 해도 불의(不義)를 용납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
숨을 삼키는 크레스니크의 자식들을 한번 쓱 훑어본 뒤, 이바르가 나에게 시선을 향했다.
“형님, 저는 형님의 행동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도 소식을 들으면 같은 반응을 보이시겠죠.”
“…….”
“하지만 이분들은 소중한 가족을 잃었습니다. 그 마음을 달래 주는 방법이 없을까요?”
아마 이바르는 이미 머릿속으로 생각해 둔 게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건 내가 생각하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예카테리나 크레스니크, 아나스타샤 크레스니크, 세르게이 크레스니크, 드미트리 크레스니크.”
나는 크레스니크의 자식들을 한 명씩 불렀다.
“너희들의 혈육을 죽인 것, 나는 사과할 생각이 없다. 나는 용살검가 에인헤랴르의 일원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고, 애초에 그들이 먼저 나를 해치려 했으니까.”
“네놈……!”
“하지만.”
예카테리나의 말을 끊으면서, 나는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이 북부 3가문의 일원으로서 명예를 지키고 싶다면… 아버지와 장남의 명예를 지키고 싶다면, 이렇게 처리하는 것을 건의하고 싶다.”
“처, 처리?”
“크레스니크 공작이 드래곤과 손을 잡았다는 것도,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죽이려고 했다는 것도, 전부 덮어 주마.”
“……!”
내 말을 듣고 예카테리나뿐만 아니라 다른 동생들도 숨을 삼켰다.
“크레스니크 공작과 블라디미르가 사망한 건, 갑자기 드래곤이 쳐들어와서 그들과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 처리하도록 하지. 에인헤랴르 측에서도 그렇게 공식 발표하도록 하겠다. 나와 이바르가 책임지지.”
“자, 잠깐, 그러면…….”
“잘 생각해라, 에카테리나. 다른 동생들도 말이다.”
나는 그들의 얼굴을 한 번씩 쳐다보며 말했다.
“크레스니크를 배룡주의와 골육상쟁으로 얼룩진 막장 가문으로 만드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동시에 너희 혈육들의 명예도 지켜 줄 수 있지.”
“……!”
“크레스니크 가문은 가주와 장남을 드래곤과의 싸움에서 잃었다. 그러니 앞으로 너희들은 드래곤과의 싸움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겠지. 방금 드미트리가 말한 대로… 새로운 크레스니크로 거듭나야 한다.”
내가 눈짓을 하자, 드미트리가 움찔했다.
가문에서는 무시당하고 있었지만, 정세를 읽어 내는 능력은 저 막내가 가장 우수했다.
앞으로 저 녀석이 크레스니크 가문의 중심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용살검가 에인헤랴르는, 새로 태어난 귀살마가 크레스니크를 환영할 것이다.”
* * *
“잘 처리하셨습니다, 카이트 형님.”
크레스니크 측과의 면담이 끝난 뒤.
인적이 드문 곳에서 이바르가 말을 걸어왔다.
“형님이 제시해 준 해결책 덕분에, 더 이상 피를 흘리는 일 없이 크레스니크와의 화해를 성립시킬 수 있었습니다.”
“내가 얘기하지 않았다면 네가 얘기했겠지. 안 그런가?”
“눈치채고 계셨군요.”
이바르가 쓴웃음을 지었다.
“어느새 이렇게 날카로워지셨습니까?”
“네가 바깥에 나가 있는 사이겠지.”
“그렇군요.”
지팡이를 짚은 채, 이바르가 나와 함께 걸었다.
“어쨌든 이걸로 크레스니크도 에인헤랴르와 협력하게 되었군요. 좀 더 시간이 걸릴 줄 알았는데, 카이트 형님 덕분에 일이 수월하게 진행되었습니다.”
“네가 크레스니크와의 딸들과 신뢰 관계를 구축하려 했던 건 그것 때문이었나?”
“물론입니다. 아버지가 의도하셨던 것하고는 다릅니다만.”
시구르드가 원했던 것은 크레스니크를 압박하여 본심을 드러내게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바르는 크레스니크의 딸들과 친분을 쌓는 것으로 크레스니크의 향후 방침에 관여하려고 했던 모양이다.
“카이트 형님, 제 목표는 에인헤랴르를 중심으로 북부를 하나로 만드는 것입니다.”
“북부일통인가.”
“네, 맞습니다.”
니얼하고 비슷하지만, 이 녀석은 반드시 에인헤랴르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점이 다르다.
“크레스니크 공작이 건재한 상황에서는, 친분을 쌓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했을 텐데.”
“정 안되면 크레스니크 가문 내부에 침투해서 뒤집어엎을 생각도 했었습니다.”
“뒤집어엎다니?”
“그래서 크레스니크와의 딸들과 신뢰 관계를 구축하려 했던 거지요.”
문득 이바르가 한쪽 손을 머리 위로 치켜들어 흔들었다.
그러자 멀리서 지나가던 예카테리나가 흠칫하면서 얼굴을 붉히는 모습이 보였다.
“너 설마…….”
“협력자가 있으면 일을 진행하기 쉬워지지요.”
이건 전혀 예상 못했다.
설마 이바르가 크레스니크의 딸을 꼬드기고 있었을 줄이야.
얼굴 자체는 시구르드보다는 프레데군다를 닮아서 상당히 곱상하게 생긴 미청년이긴 한데… 대체 어떤 수법으로 에카테리나의 마음을 얻었을까.
‘이 녀석, 겉보기와는 다르군.’
아마 이바르는 예카테리나와 결혼해 크레스니크 가문을 실질적으로 장악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었을 것이다.
예카테리나의 태도를 보니 이미 상당 부분 결실을 맺은 상태로 보였다.
‘야심이 있는 놈이야.’
이바르는 검을 휘두르지 못하는 몸이다.
그런 몸인데도 불구하고 이바르는 모든 것이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자신의 야심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실적을 쌓아 왔기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재미있군.’
배다른 동생에게 흥미를 느끼고 있었을 때.
이바르가 목소리를 낮추며 속삭였다.
“카이트 형님, 이번 일이 끝나면 고틀란드로 가시겠지요?”
“아버지에게 보고를 드려야 하니까.”
“그러면 저와 함께 가시면 되겠군요. 그동안 얘기 좀 할 수 있겠습니까?”
“무슨 얘기?”
“이미 피어너 가문은 우리에게 우호적이고, 남쪽의 중소 영주들도 제압되었습니다. 앞으로는 크레스니크의 협력도 기대할 수 있죠.”
이바르의 표정은 진지했다.
“북부의 힘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상황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다 알면서 왜 그러십니까.”
내 얼굴을 보면서, 이바르가 말했다.
“드래곤을 상대로 적극적인 공세를 시도해 볼 때가 되었습니다. 함께 아버지에게 건의를 해 보면 어떻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