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78
▣ 78화. 서쪽으로 (3)
“샤아아악……!”
드래곤에 앞서, 와이번들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와이번은 드레이크나 너커에 비해 몸집이 작은 편이었다. 하긴 하늘을 날아다니려면 몸이 가벼워야 할 것이다.
‘드래곤은 날아다닐 때 마력을 활용하고 있다고 했었지.’
나는 일단 칼라드볼그를 먼저 뽑았다.
그리고 후방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슈데르츠, 루살카, 너희는 이바르의 마차를 지켜.”
“알겠습니다!”
“카이트 님이 후방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게 하겠습니다!”
내 의도를 이해한 슈데르츠와 루살카가 군말 없이 대답해 줬다.
“그리고, 아나스타샤…….”
“저까지 뒤로 물러서게 하지 마십시오, 카이트 님.”
아나스타샤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서클의 숫자는 블라디미르 오라버니보다 적지만, 기술적인 면에서는 오라버니보다 낫다는 평을 받아 왔습니다.”
“그건 몰랐군.”
아나스타샤는 아직 8서클이지만, 충분히 전력이 될 것 같았다.
“지원 사격을 하겠습니다. 카이트 님의 실력… 직접 확인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알겠어.”
그렇게 지시를 내린 뒤, 나는 바이콘을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머리 위에서 비룡들이 덤벼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바이콘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이렇게 기특한데, 왜 다들 너를 싫어하는지 모르겠다.”
“푸르릉!”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는 바이콘의 갈기를 한번 쓰다듬어 준 뒤, 나는 칼라드볼그에 내공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번쩍이는 뇌기(雷氣)를 펼쳤다.
‘수라창뢰검… 폭뢰.’
쿠르릉, 쾅쾅!
하늘을 향해 터져 나간 뇌전.
무자비하게 공중을 훑고 지나가는 번개에 와이번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간혹 그사이를 뚫고 파고드는 놈들도 있었지만, 후방에서 날아온 얼음의 창에 꼬챙이 신세가 되었다.
‘신속하군.’
파직!
나도 뇌검을 휘두르면서 남아 있는 와이번들을 해치웠다.
숫자가 많은 편이었지만, 뒤에서 아나스타샤가 보조해 주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드미트리에게서 들었던 대로, 정말 엄청난 오러를 사용하시는군요.”
“너도 확실히 기술이 뛰어난 것 같군.”
나는 큰 기술을 펼치면서 한꺼번에 다수의 와이번을 섬멸했고, 운 좋게 살아남은 놈이 나올 때마다 아나스타샤가 착실히 저격해 줬다.
날아다니는 와이번이라고 해도 저런 잔챙이들은 숨 쉬듯이 쉽게 해치울 수 있었다.
“하지만, 카이트 님…….”
“그래, 알고 있어.”
냉정하던 아나스타샤의 목소리가 살짝 긴장된 순간.
먹구름을 뚫고 거대한 드래곤이 모습을 드러냈다.
구름색과 비슷한 회색의 드래곤이었다.
“용살검가와 귀살마가의 자식들이여…….”
하늘 전체에 울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날갯짓도 하지 않고 공중에 떠서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너희들이 갖고 있는 고대 병기… 칼라드볼그와 발뭉을 내놓도록 해라.”
“평화적인 성격인 것 같군. 대화로 해결하려고 하는 걸 보니 말이야.”
짤막하게 대꾸하자,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이군요, 샤가르디오스.”
“이바르 에인헤랴르인가…….”
이바르가 고개를 내밀자, 샤가르디오스라 불린 드래곤이 인상을 찡그렸다.
서로 구면인 것 같았다.
“기사단도 없이 이렇게 적은 숫자로 황야를 돌아다니다니, 목숨이 아깝지 않은가 보구나…….”
“든든한 형님이 있어 주셔서 말입니다.”
“형님이라…….”
샤가르디오스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아카샤니그두와 테트라샤크두를 쓰러뜨린 용살검가의 장남… 그게 너구나.”
“너도 악룡 파프니르의 파벌인가?”
“그렇지. 아카샤니그두도, 테트라샤크두도, 다 나의 형제라고 할 수 있다…….”
샤가르디오스가 한번 날개를 펄럭였다.
“물론… 너희 인간들하고는 다르기 때문에 형제의 원수를 갚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말이다.”
“…….”
“용살검가의 장남, 나는 그렇게 호전적인 성격은 아니다. 다만… 임무 수행은 중요하게 생각한다.”
샤가르디오스의 커다란 눈동자가 나를 주시했다.
아니, 정확히는 오른손에 든 칼라드볼그와 허리에 찬 발뭉을 주시했다.
“칼라드볼그와 발뭉을 내놓아라. 그러면 목숨은 살려 주마…….”
“인간도 아닌 너희들한테 왜 이런 게 필요한 거지? 너희들의 몸집을 생각하면 이쑤시개로 써먹기도 곤란할 텐데.”
“그건 너희가 알 바 아니다…….”
“신화병장에 저장되어 있는 고대의 에테르가 필요한 건가?”
“…….”
샤가르디오스가 입을 다물었다.
“대답을 못 하는군, 샤가르디오스.”
“…….”
그 태도만 봐도, 이쪽 추리가 맞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에테르를 입수해서 무엇을 하려는 거지?”
“너희가 알 바 아니라고 하였다…….”
“방금 임무 수행이라고 했지. 그러면 너희가 섬기는 에인션트 드래곤인 악룡 파프니르의 명령인 것 같은데.”
“…….”
“에테르가 충만한 시기에 태어난 에인션트 드래곤이라면, 에테르를 모아서 뭔가 특별한 일을 할 수 있겠지. 아닌가?”
아까 아나스타샤가 얘기해 준 걸 그대로 읊으면서, 샤가르디오스의 반응을 살폈다.
“그런 얘기까지 한다면… 너를 살려 주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용살검가의 장남.”
“아나스타샤, 저 반응 좀 봐라.”
나는 뒤에 있는 아나스타샤를 쳐다봤다.
“아무래도 네 추측이 다 맞은 모양이야.”
“저기요, 카이트 님…….”
그러자 샤가르디오스가 이번에는 아나스타샤를 노려봤다.
“귀살마가의 차녀인가. 너도 살려 두면 안 되겠군…….”
“…….”
아나스타샤가 차가운 눈으로 나를 째려봤다.
왜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자기까지 표적으로 만드느냐는 눈빛이었다.
“샤가르디오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뭐라고……?”
“어째서 너한테 우리를 죽이고 살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
그 순간.
샤가르디오스가 작게 웃으면서 날개를 또다시 퍼덕였다.
“상당히 오만한 놈이구나. 아버지를 닮은 건가……?”
“우리 아버지와 구면인가?”
“물론이지. 그 남자는 세상에서 가장 오만한 존재일 것이다…….”
“그 정도일지는 몰랐는데.”
“우리 드래곤들을… 모조리 죽일 수 있다고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
“다만 그 남자는 그래도 인간종 중에서는 최고 수준의 힘을 지니고 있다. 아직 애송이에 불과한 네가… 그 남자처럼 오만한 소리를 입에 담으면 안 되지.”
샤가르디오스가 입을 벌리며 웃었다.
“너무나도… 우습단 말이다.”
그 순간.
샤가르디오스의 몸 주위에서 수많은 화염구가 형성되었다.
“카이트 님, 강력한 화염 마법입니다!”
“아나스타샤, 뒤에 있는 사람들을 지켜줘.”
아나스타샤의 빙결 마법이 이바르 등을 지켜주기를 바라며, 나는 칼라드볼그를 치켜들었다.
“무력함을 느끼면서 타죽어라, 용살검가의 장남…….”
콰콰콰쾅!
하늘에서 화염 구가 떨어졌다.
마치 불꽃의 폭우가 쏟아지는 듯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검막을 펼쳤다. 사실 나는 수화불침이기 때문에 불꽃에 휩싸여도 견딜 수 있었지만, 입고 있는 옷은 그렇지 않으니까.
나는 검막으로 화염 구를 완벽히 막아 냈지만… 후방의 아나스타샤는 조금 힘겨운 것 같았다.
“윽……!”
역시 8서클로는 마법의 출력에 한계가 있는 것일까.
얼음의 장벽을 여러 겹 만들어 불꽃을 잘 막아 내긴 했지만, 더 이상은 어려울 것 같았다.
“아나스타샤.”
쏟아지던 불꽃의 폭우가 잠시 잦아들었을 때, 나는 바이콘 엉덩이에 걸어 둔 짐꾸러미에서 물건을 하나 꺼냈다.
“이걸 활용하면 막아 낼 수 있겠나?”
“드래곤 하트……!”
그건 내가 테트라샤크두를 쓰러뜨리고 입수한 드래곤 하트였다.
아직 활용법을 정하지 못해 그냥 들고 다니고 있었다.
“빨리 대답해. 이걸 활용하면 막아 낼 수 있겠냐고.”
“가, 가능할 겁니다. 저희뿐만 아니라, 카이트 님까지 보호하는 것도…….”
“그럼 다행이군. 잠깐만이라도 좋으니 나까지 보호해 줘.”
나는 아나스타샤에게 드래곤 하트를 던져 줬고, 아나스타샤는 허둥지둥 받아 들어 가슴에 꼭 안았다.
“그건… 테트라샤크두의 드래곤 하트인가.”
공중에서 샤가르디오스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말했다.
“내 눈앞에서 동족의 드래곤 하트를 주고받다니, 이건 좀 모욕적이군…….”
“그런가?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일종의 고인모독처럼 느껴지는 걸까.
“미안하군. 사과하지.”
“장난을 치는 건가, 용살검가의 장남이여…….”
“아니, 이건 진지하게 사과하는 건데.”
샤가르디오스의 주위에서 아까보다 더 많은 화염구가 생성되었다.
아나스타샤가 버텨 낼 수 있을까.
“이번에는 정말로… 불태워 죽여주마.”
콰콰콰콰쾅!
아까보다 격렬한 폭우가 쏟아졌다.
하지만 후방에서 뻗어 나온 냉기가 우리의 머리 위에 거대한 얼음의 장벽을 형성했다.
단순한 얼음이면 화염구와 충돌하면서 깨져 버리거나 녹아내리겠지만, 아나스타샤가 실시간으로 보강하면서 화염구를 막아 낼 수 있는 강도를 유지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드래곤 하트의 마력을 잘 활용하고 있는 것 같군.’
블라디미르 이상의 기술을 지녔다는 게 허언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칼라드볼그에 내공을 집중시켰다.
아나스타샤에게 방어를 전담시킨 이상, 나도 빨리 내 역할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까부터 샤가르디오스는 공중에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부유하고 있어. 화염 마법을 쏟아부을 때는 저렇게 정지해 있어야 하는 건지, 그냥 버릇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렇게 가만히 정지해 있는 상태라면.
경공으로도 닿기 어려운 높이에 있다고 해도, 대항할 수단이 있다.
“…….”
나는 칼라드볼그를 꽉 잡은 채 몸을 틀었다.
찌르기 공격을 위한 자세처럼 오른팔을 뒤로 당기는 한편, 왼팔은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칼라드볼그의 칼끝을 왼손 위에 걸쳐, 활을 겨누는 것처럼 샤가르디오스를 조준했다.
‘이 거리에서 내가 번개나 불꽃을 뿜어 놈을 격추하는 건 불가능.’
억지로 용을 써서 공격을 명중시키는 건 가능하나, 치명상을 입히는 건 불가능하다.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이다.
‘검강을 길게 늘여서 공격하는 것도 마찬가지. 경공으로 뛰어오르며 공격하는 것도 한계가 있지.’
내가 능공허도(凌空虛道)의 경지에 오르면 자유자재로 하늘을 뛰어다니며 싸울 수 있겠지만, 무림에 있던 시절에도 그 정도 경공을 펼치지는 못했다.
‘이기어검(以氣馭劍)이 가능해지면 수월하게 싸울 수 있겠지만… 그건 현경 이상이어야 가능한 거고.’
아직 화경에 머물고 있는 나로서는 이기어검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저렇게 날아다니고 있는 드래곤에게는 대항할 수단이 없는 걸까?
‘방법은 있지.’
아나스타샤가 방어를 전담해 주는 틈을 이용해, 내공을 계속해서 끌어올렸다.
그러자 칼라드볼그에서 파직파직 번개가 튀기 시작했다.
막강한 뇌기가 칼라드볼그 전체에 깃들기 시작한 것이다.
“…….”
저 너머에서 샤가르디오스가 아무것도 모른 채 부유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화염 구를 너무 많이 쏟아붓고 있어서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보이지 않는 상태일 것이다.
그 오만한 빈틈이 샤가르디오스의 심장을 찌르게 된다.
‘수라창뢰검 절초(絶招)… 뇌광(雷光)!’
내가 온몸을 비틀며 칼라드볼그를 앞으로 찌른 순간.
막강한 뇌기가 집중된 칼라드볼그가, 내 손에서 벗어나서 공중으로 사출되었다.
한 줄기 직선의 번개가 된 칼라드볼그는 아나스타샤의 얼음 방벽의 빈틈을 뚫고 하늘로 뻗어갔다.
하늘 높이 부유하고 있는 샤가르디오스의 가슴을 향해.
“……!”
쿠쿠쿠쿵!
화염구를 뚫고 솟구치는 뇌검(雷劍).
그 접근을 확인한 샤가르디오스의 두 눈이 커졌다.
날개를 펄럭이며 대응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강렬한 뇌기를 담은 채 초고속으로 상승한 견뢰검(堅雷劍) 칼라드볼그가… 샤가르디오스의 가슴에 정확히 꽂혔다.
“크아아아악……!”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샤가르디오스가 추락을 시작했다.
그렇다고 꼴사납게 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비행 상태를 유지하던 마법이 효과가 약해졌을 뿐인지, 조금씩 아래로 내려오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걸로도 충분했다.
“…….”
나는 도약했다.
경공을 사용해 솟구치면서, 방금 칼라드볼그를 날려 맨손이 된 오른손을 허리로 향했다.
그리고 아까 이바르에게서 빌린 검에 손을 댔다.
‘에인헤랴르의 신화병장, 발뭉.’
지금까지 수많은 용을 죽여 왔을, 용살검가를 상징하는 검.
상흔검(傷痕劍) 발뭉을 들고, 나는 가슴에 칼라드볼그가 꽂힌 채 추락하는 샤가르디오스를 향해 솟구쳤다.
“카이트 에인헤랴르, 네놈……!”
오늘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부른 드래곤을 향해.
나는 자비 없는 일격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