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81
▣ 81화. 네 마리의 드래곤 (2)
갑자기 나타난 네 마리의 드래곤을 감지하고, 잠들어 있던 사람들도 다 깨어났다.
슈데르츠와 루살카가 즉각 달려왔고, 아나스타샤와 수행원들도 다급히 이쪽으로 왔다.
“드, 드래곤이 네 마리?”
“말도 안 돼……!”
다들 경악하고 있었다.
드래곤이 한 마리만 나타나도 큰일인데, 네 마리나 한꺼번에 나타났으니 말이다.
“다들 조용히 해라.”
나는 사람들을 진정시키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우리 앞에 나타난 네 마리의 드래곤.
각각 적갈색, 황토색, 자주색, 흑록색의 비늘을 지닌 그들이… 나에게 이름을 밝혔다.
“나는 트리케트라스라고 한다…….”
“이 몸은… 바빌라인투두다.”
“세인트갈리아…….”
“내가 맥크라페리온이다.”
트리케트라스.
바빌라인투두.
세인트갈리아.
맥크라페리온.
안 그래도 드래곤들의 이름은 기억하기 어려운데, 네 마리가 동시에 이름을 대니 헷갈릴 것 같았다.
“카이트 형님.”
그때 내 옆에서 이바르가 속삭였다.
“일단 제가 한번 대화를 나누며 교섭해 보겠습니다. 드래곤이 네 마리나 나타난 이상 맞서 싸우는 건 자살 행위입니다.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서…….”
“됐어.”
나는 이바르의 말을 끊으며 앞으로 나섰다.
“내가 얘기할 테니까.”
“형님……!”
이바르의 말을 무시하고, 나는 드래곤들을 쳐다봤다.
“대표가 누구냐.”
그렇게 묻자, 적갈색의 드래곤이 고개를 앞으로 내밀었다.
“나 트리케트라스가 가장 연장자이니… 대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트리케트라스에게 말하겠다.”
트리케트라스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너희들의 목표는 나, 그리고 두 자루의 신화병장일 거다. 아닌가?”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에인헤랴르의 차남과 크레스니크의 차녀도 표적이긴 하다만… 주된 표적은 아니다.”
“그러면 내가 두 자루의 신화병장을 갖고 이곳에 남겠다.”
“뭐라고……?”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서쪽으로 향하겠다는 뜻이다.”
그렇게 말하자, 내 옆에 있던 이바르가 숨을 삼켰다.
“공자님!”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이바르가 입을 열기도 전에, 뒤쪽에 있던 슈데르츠와 루살카가 목소리를 높였다.
“혼자 남으시다니, 말도 안 됩니다!”
“그렇습니다!”
두 사람뿐만 아니라, 아나스타샤도 다급히 나한테 다가와 팔을 붙잡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세요, 카이트 님. 본인이 무슨 영웅이라도 되는 줄 아시나요?”
“딱히 영웅 흉내를 하려는 건 아니야, 아나스타샤.”
나는 아나스타샤의 팔을 뿌리치며 말했다.
“그래야 내가 움직이기 편하니까.”
“네?”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안 되나?”
뒤돌아보면서 다른 사람들을 쭉 훑어봤다.
“너희들이 있으면 방해가 된단 말이다. 교섭을 하든, 전투를 하든.”
“……!”
“이바르.”
숨을 삼키는 아나스타샤를 내버려 둔 채, 나는 이바르에게 시선을 향했다.
“아나스타샤 공녀와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오비르 요새로 가라. 그쪽에 있는 수비대 및 청룡기사단과 합류해.”
“형님…….”
“드래곤들은 너희를 건드리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나는 다시 트리케트라스를 쳐다봤다.
“내 말이 틀린가, 트리케트라스?”
“…….”
“너희는 자존심이 강한 생물이지. 겁먹고 도망치는 잔챙이들을 굳이 추적하지는 않을 거야.”
내 말을 듣고, 트리케트라스가 피식 웃는 듯한 소리를 냈다.
“그 말이 맞다, 에인헤랴르의 장남이여…….”
“역시 그렇군.”
“만약 그들이 여기에 남아 우리에게 덤벼든다면 자비를 베푸는 일 없이 몰살시켰겠으나… 멀리 도망친다면 굳이 쫓아가서 죽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만약 몬스터나 용귀족 등을 대동한 상태라면 그들에게 추격 명령을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드래곤들은 부하 없이 자기들끼리만 왔다.
이런 상황에서 드래곤들이 굳이 다른 사람들을 쫓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얘기 들었지, 이바르?”
“…….”
나를 보는 이바르의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
아까 내가 드래곤과도 싸울 수 있게 만들어 주겠다고 했을 때보다 더 동요한 모습이었다.
“형님은, 대체 뭡니까.”
이바르가 힘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대체 형님은 무엇이기에… 이럴 수 있는 겁니까.”
“나는 카이트 에인헤랴르다.”
나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검마(劍魔)의 길을 걷고 있는… 용살검가의 장남이지.”
* * *
이바르가 수긍한 이후에도, 내 부하들이나 아나스타샤 상대로 한동안 실랑이가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들 모두 내가 시키는 대로 이 마을을 떠나게 되었다.
“결국 너 하나만 남았구나, 에인헤랴르의 장남이여…….”
“그렇지 않아, 트리케트라스.”
“뭐라고?”
“저 녀석도 있으니까.”
나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러자 바이콘 한 마리가 어둠 속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
트리케트라스가 침묵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황토색의 드래곤 바빌라인투두가 입을 열었다.
“바이콘을 길들이다니, 보통 녀석이 아니구나…….”
“다른 사람이 길들여 놓은 걸 데리고 다니는 거야. 처음부터 나를 잘 따랐어.”
“바이콘은 그런 생물이 아니다. 수십 년을 걸쳐 길들여 놔도, 약간만 환경이 바뀌면 기분이 상해 도망쳐 버리는 놈이지…….”
“그런가?”
“그렇지. 아무래도 너하고 파장이 잘 맞은 것 같구나…….”
바빌라인투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그 옆의 자주색 드래곤 세인트갈리아도 입을 열었다.
“카이트 에인헤랴르…….”
“뭐지?”
“너는 대체 정체가 무엇이냐……?”
세인트갈리아의 붉은 눈동자가 내 얼굴을 들여다봤다.
“참으로 신기하구나…….”
“…….”
다른 드래곤들보다 말수가 적었지만, 나를 지켜보는 눈동자만큼은 흥미로 가득 차 있었다.
“다들 왜 굳이 이런 놈하고 대화를 나누려 하는지 모르겠군.”
그때 가장 몸집이 작은 흑녹색 드래곤인 맥크라페리온이 입을 열었다.
다른 동족들과는 달리 말이 느릿느릿하지 않은 드래곤이었다.
“베리타스투스 님의 명령대로, 빨리 해치워 버리는 게 낫지 않겠나?”
“서두르지 마라, 맥크라페리온…….”
방금 새로운 드래곤의 이름이 언급되었다.
굳이 경칭을 붙이는 걸 보면, 이 녀석들의 상관 같은 걸까.
악룡 파프니르 같은 에인션트 드래곤의 이름은 아닌 것 같고…….
“베리타스투스 님도 말하지 않았나.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말라고 말이다.”
“무엇이 감정적이란 말인가!”
트리케트라스의 말을 듣고 맥크라페리온이 화를 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며, 나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마치 인간들 같군.’
그동안 드래곤 한 마리만 상대했을 때하고는 느낌이 달랐다.
여러 마리의 드래곤들이 제각각 나한테 말을 걸고, 자기들끼리도 얘기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치 나와 같은 인간들을 대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저 녀석들도 각자 개성이 있고 특징이 있는 인격체라는 거군.’
만약 저놈들이 커다란 도마뱀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만 한 크기였다면… 그냥 나하고 조금 문화가 다른 인간을 대하는 것과 똑같지 않았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에인헤랴르의 장남이여…….”
트리케트라스가 다시 나한테 말을 걸었다.
“순순히 신화병장을 내놓는다면 목숨을 살려 주겠다든가, 그런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네 죽음을 원한다.”
“그렇겠지. 그런 게 아니라면 네 마리나 동시에 나타나지 않았을 테니까.”
“원로(元老)인 베리타스투스 님의 지시가 있었기에 네 마리가 동시에 온 것이지만… 솔직히 우리 입장에서는 별로 내키는 일이 아니다.”
트리케트라스가 그렇게 말하자, 옆에서 바빌라인투두와 세인트갈리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인간 상대로 네 마리의 드래곤이 동시에 나선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
그러자 맥크라페리온 또한 꼬리를 위아래로 파닥이며 대답했다.
“그렇지.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나 혼자 출진해서 네놈을 쓰러뜨리고 싶었다.”
“그건 좀 섣부른 생각이다, 맥크라페리온…….”
“이미 세 마리의 중진 드래곤들을 쓰러뜨렸는데, 너 같은 애송이가 당해 낼 수 있겠느냐…….”
“만용(蠻勇)을 부리지 마라…….”
연장자 드래곤 세 마리가 한마디씩 하자, 막내인 맥크라페리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런 모습을 보면 확실히 인간과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하는 얘기인데…….”
트리케트라스가 앞으로 얼굴을 내밀며 말했다.
“넷이서 동시에 덤벼드는 건 우리 입장에서는 별로 내키는 일이 아니다. 그러니… 우리는 한 마리씩 나서겠다.”
“한 마리씩?”
“그렇다. 네 입장에서는 더 유리한 것 아니냐……?”
내가 드래곤 한 마리와 일대일 대결을 하고, 거기서 승리를 거두면 다음 드래곤과 또 일대일 대결을 하고… 이런 식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놀랍군.”
“무엇이 놀랍지……?”
“아니, 드래곤들도 이런 발상을 한다는 게 말이야.”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무림에 있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명문세가의 후기지수 여러 명이 나를 포위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그들이 거들먹거리면서 이런 제안을 했다.
‘아직도 자만심이 가득하군.’
네 마리가 동시에 나타나는 걸 보고, 슬슬 드래곤들도 위기감을 갖고 진지하게 나를 죽이려 하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던 모양이다.
이 녀석들은 아직도… 나를 얕보고 있다.
‘사실 이런 식으로 방심해 주는 걸 기대하긴 했지만 말이야.’
드래곤들은 자존심이 강하다.
내가 동료들을 먼저 보내고 혼자 남는 모습을 보면, 어떤 식으로든 ‘양보’를 할 거라 예상했었다.
이 녀석들이 일대일 형식을 제안해 준 건 나한테는 최상의 결과였다.
‘그 오만함, 오늘 박살 내주마.’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받아들이지.”
“고맙군…….”
“그러면, 누가 먼저 나서는 거지?”
나는 막내인 것 같은 맥크라페리온에게 시선을 향했다.
“저쪽 맥크라페리온인가?”
“이봐, 에인헤랴르의 장남…….”
트리케트라스가 웃음소리를 냈다.
“우리를 뭐로 보는 거지? 가장 약한 막내를 선봉으로 내세우다니… 그런 부끄러운 짓은 하지 않는다.”
“…….”
“당연히 가장 연장자이고 가장 힘이 강한 내가 첫 번째로 나서야겠지.”
트리케트라스가 앞으로 나섰다.
바빌라인투두도, 세인트갈리아도, 맥크라페리온도…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건 좀 놀라운데?’
솔직히 의외였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강한 놈이 먼저 나서는 경우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가장 강한 놈은 뒤에서 팔짱을 끼거나 뒷짐을 지고 있을 뿐이다. 적당히 약한 놈이나 적당히 강한 놈들이 여러 명 쓰러지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가 나선다.
우두머리끼리 싸워서 결판을 내자고 얘기가 진행된 상황이라면 몰라도, 한 명씩 나서서 싸우는 상황에서 최고 실력자가 선봉으로 나선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게 드래곤의 미학인가.’
이런 부분만큼은 인간들보다 나은 것 같았다.
몬스터나 용귀족들한테도 이러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알겠다, 트리케트라스.”
묘한 기분이 느껴졌다.
지금 나는 드래곤을 상대로 싸우려 하는 중이다.
하지만 지금 느끼고 있는 기분은… 존중할 가치가 있는 고수와 일대일 비무를 할 때 느꼈던 것과 비슷했다.
‘드래곤과 싸우면 싸울수록… 놈들을 더 깊게 이해하게 되는군.’
때로는 오만하고.
때로는 고결하고.
참 흥미로운 종족이다.
종종 인간미가 느껴진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그러니…….’
나는 천천히 칼라드볼그를 뽑아 들었다.
이미 바빌라인투두과 세인트갈리아, 맥크라페리온는 뒤로 물러난 상태다.
나와 트리케트라스의 싸움에 방해가 안 되도록 거리를 벌려 준 것이다.
‘나도 제대로 상대해 줘야겠군.’
차가운 밤바람에 북쪽에서 불어온 순간.
트리케트라스가 폭발적인 기세로 움직였다.
나를 향해 돌진, 거대한 앞발로 후려치려 했다.
‘오른쪽 앞발에는 발톱이 세 개밖에 없군.’
나는 트리케트라스가 역전(歷戰)의 용사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른쪽 앞발의 부상은 강적과의 싸움 끝에 남은 명예로운 부상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한쪽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수라창뢰검… 굉뢰(轟雷).’
꽈아앙!
굉음이 울려 퍼진 직후, 트리케트라스의 오른쪽 앞발이 통째로 날아갔다.
뇌기(雷氣)를 칼날에 한순간 집중시켜 파괴력을 극대화시키는 초식이 작렬했기 때문이다.
“크윽……!”
트리케트라스가 신음 소리를 내며 다음 공격을 펼치려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이미 초고속으로 이동하여 트리케트라스의 목덜미로 파고든 상태였으니까.
“……!”
트리케트라스에게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근처에서 지켜보고 있는 바빌라인투두과 세인트갈리아, 맥크라페리온도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걸 알 수 있었다.
“미안하군.”
꽈아아앙!
두 번째 굉뢰가 작렬.
트리케트라스의 목에 깊숙한 상처가 새겨졌고, 트리케트라스는 결국 굉음과 함께 땅바닥에 쓰러졌다.
“…….”
폐허에 침묵이 흘렀다.
드래곤들은 이렇게 순식간에 승부가 결정되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듯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번에 나는 상대편이 공격을 펼치는 걸 기다려 주지 않았다.
어떤 공격을 펼치는지 지켜보면서 호기심을 충족시키려 하지 않고,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쓰러뜨렸다.
이건 내 나름대로 트리케트라스에게 경의를 표한 것이기도 했다.
가장 먼저 나서던 그의 모습에서, 무림에서도 보기 힘들었던 협(俠)의 마음가짐을 보았으니까.
내가 펼칠 수 있는 최고의 무(武)로 상대해 주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도 드래곤 네 마리를 연달아 상대하려면 여유가 없을 것 같으니 말이야.’
속전속결로 가야 한다.
그렇게 마음먹으면서, 나는 드래곤들에게 시선을 향했다.
“다음 차례가 누구냐. 나와라.”
쿵!
바빌라인투두가 앞으로 나섰다.
투지가 불타는 눈동자로 나를 노려보고 있는 황토색 드래곤 앞에서, 나는 검을 한 자루 더 뽑아 들었다.
이바르가 남기고 간 상흔검 발뭉이 내 왼손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