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82
▣ 82화. 네 마리의 드래곤 (3)
– 그러고 보니 회주님.
– 또 뭐냐, 총관.
– 회주님은 흑사련에 있던 시절에 왜 검마(劍魔)라 불리게 된 겁니까? 딱히 악행을 저지르고 다닌 것도 아니고, 마공을 쓰던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 정파 쪽 인물들을 많이 쓰러뜨리긴 했으니까, 그쪽 기준으로 보면 악행을 저지른 건 맞지.
– 그런다고 검마라 불립니까?
–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어.
– 그럼 뭡니까?
– 전혀 성격이 다른 온갖 검법을 섞어서 사용하는 모습이 영 사이(邪異)하다더라.
– 아니, 그런다고 마(魔) 자가 들어간 별호가 붙습니까? 음양지체라서 극양의 무공과 극음의 무공을 동시에 사용하는 고수도 있지 않습니까.
– 검에서 불꽃도 뿜었다가 냉기도 뿜었다가 번개도 뿜었다가 하니까 영 이상하게 보였나 보지.
– 어이가 없군요. 만약 회주님이 정파 출신이었다면 검의 이치를 터득해 변화무쌍한 검을 쓰신다고 칭송받았을 겁니다.
– 원래 그런 거다. 아군이면 신비한 힘을 쓴다고 칭찬하고 적군이면 더러운 사술(邪術)을 쓴다고 욕하는 법이지.
* * *
황토색의 드래곤, 바빌라인투두.
그는 왠지 모르게 학구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드래곤이었다.
“에인헤랴르의 장남, 너는 특별한 힘을 쓰는구나…….”
바빌라인투두가 천천히 걸어오며 말했다.
“오러도 아니고, 마법도 아니군. 마법처럼 자연 현상을 닮은 힘이지만, 오러처럼 내면의 에너지를 끌어내서 사용하고 있다…….”
“용케 알아차렸군.”
“불사의 영약을 먹어서 불꽃의 기운을 받아들인 것도 아니군. 대체 어떻게 한 거지……?”
“궁금한가?”
“그래, 궁금하다…….”
바빌라인투두는 순순히 인정했다.
“싸우기 전에… 가르쳐 줄 수 있겠나?”
“내 질문에도 대답해 주면 알려 주지.”
“무엇이 궁금한가……?”
“불사의 영약이란 대체 뭐지?”
“…….”
불사의 영약이란 신기한 액체였다.
강렬한 양기가 담겨 있는데 무림에서 통용되던 어떤 영약하고도 비슷하지 않았다.
계속 복용하면 수명을 증진시켜 준다고 하는데, 어떤 원리인지 알 수 없었다.
“너희 드래곤들이 오래 살 수 있는 것도 다 불사의 영약 덕분이라고 하던데 말이야.”
“흠…….”
“대체 불사의 영약은 뭐로 만드는 거지?”
“미안하군, 에인헤랴르의 장남…….”
바빌라인투두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건 인간한테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말이다…….”
“그럼 어쩔 수 없지.”
“그래, 네 힘의 비밀은… 싸우면서 생각해 보도록 하마.”
그 직후.
바빌라인투두의 전신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온몸으로 마력을 방출한 뒤 화염 마법을 사용한 것이다.
“네가 아무리 번개 같은 검을 쓴다고 해도… 이걸 뚫을 수는 없을 것이다.”
화르르!
불꽃이 사방팔방으로 퍼져 나갔다.
브레스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화력이 상당했다.
‘그래도, 수화불침으로 버틸 수 있지.’
나는 별다른 방어 기술을 펼치지 않았다.
그 대신 왼손의 발뭉을 치켜들면서 냉기를 누적시켰다.
“음……?”
바빌라인투두가 한쪽 눈을 찡그렸다.
“에인헤랴르의 장남이여, 왼손의 신화병장에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냐……?”
“글쎄, 무엇일까.”
“어째서, 냉기가……?”
그 직후.
나는 칼라드볼그로 검풍을 날려 불꽃 사이에 길을 만들었다.
그와 동시에 빙검(氷劍)이 된 발뭉을 앞세워 달려 나갔다.
“……!”
다시금 나를 집어삼키려 하는 불꽃들.
하지만 발뭉에서 뿜어져 나온 냉기가 불꽃의 접근을 차단했다.
“빙결 마법 같은 힘을……!”
경악하는 바빌라인투두.
그는 불꽃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지만, 그것도 통하지 않자 다급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너는 대체 무엇이냐……!”
브레스를 사용하기 위해 마력을 끌어올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입을 크게 벌리는 것을 확인하면서, 나는 경공을 사용해 도약했다.
‘수라백상검, 은화(銀華)’
파앗.
브레스가 전개되기 직전, 일직선의 횡(橫) 베기가 드래곤의 목을 스쳐 지나갔다.
상처 자체는 깊지 않았지만, 상처를 통해 주입된 빙검의 냉기가 목 전체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크오오오……!”
파팟, 파팟!
목이 얼어붙는 걸 느끼고 바빌라인투두가 비명을 질렀다.
브레스도 제대로 발동하지 못했고, 그대로 바닥에 추락했다.
“한 가지 확인하지.”
“크으으…….”
“드래곤의 브레스라는 것은 마력을 입 안에서 응집시킨 뒤… 그 고밀도 마력을 활용해 극도로 응축된 화염 마법을 발사하는 힘이다. 맞나?”
“카이트, 에인헤랴르…….”
“맞는 것 같군.”
제대로 대답하지 않는 바빌라인투두를 보면서, 나는 내 추측이 맞았다는 걸 확인했다.
브레스도 여러 번 봤기 때문에 슬슬 어떤 원리인지 이해가 되었다.
“그럼 작별이다, 바빌라인투두.”
콰직!
얼어붙은 목을 향해 칼라드볼그를 휘둘렀다.
바빌라인투두의 목이 산산조각 났고, 그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더 이상 그에게 시선을 향하지 않았다.
“다음 차례, 나와라.”
“…….”
두 마리밖에 남지 않은 드래곤들 사이에서 침묵이 흘렀다.
* * *
맥크라페리온은 경악했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카이트 에인헤랴르가 트리케트라스와 바빌라인투두를 연달아 격파했다.
아직 전투가 시작된 지 1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두 마리의 드래곤을 쓰러뜨린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심하지 않은가!’
이미 저놈은 아카샤니그두와 테트라샤크두, 샤가르디오스를 격파한 실적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두 마리 정도는 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순식간에 일방적으로 죽어 나갈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평범한 소드 마스터들은 이런 짓을 하지 못한다! 소드 마스터 중에서도 상위권에 해당되는 자들만이 가능한 건데, 어떻게 저런 애송이가……!’
가장 믿어지지 않는 것은, 카이트가 여러 가지 속성의 힘을 번갈아 가며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칼에서 번개를 뿜거나 냉기를 뿜는 것 자체는 이해가 된다. 그런 기운을 몸에 지니고 있다면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이트는 번개를 뿜었다가 냉기를 뿜었다가 자유자재로 힘을 바꾸고 있다.
이건 마법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검사의 속도로 마법사처럼 다채로운 공격을 펼친단 말인가?’
그런 인간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에인헤랴르의 베테랑 소드 마스터들도 그런 건 하지 못한다.
대체 카이트 에인헤랴르는 어떻게 된 놈일까.
“…….”
맥크라페리온은 세인트갈리아를 쳐다봤다.
말수는 적지만 통찰력이 뛰어난 세인트갈리아라면 뭔가 눈치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으음…….”
하지만, 세인트갈리아라고 해서 별다를 게 없는 것 같았다.
인상을 찡그린 채, 땅을 뒹굴고 있는 동족들의 사체를 쳐다볼 뿐이었다.
“모르겠군…….”
세인트갈리아조차 카이트의 비밀을 꿰뚫어 보지 못했다.
이건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었다.
“세인트갈리아.”
맥크라피리온은 세인트갈리아에게 속삭였다.
“협공한다. 그 방법밖에 없다.”
“…….”
세인트갈리아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짧은 한숨 소리와 함께 말했다.
“못 들은 것으로 하겠다, 맥크라페리온…….”
“세인트갈리아!”
“이미 트리케트라스가 한 마리씩 싸운다고 약속했다. 너는 트리케트라스의 명예를 더럽힐 셈이냐……?”
“……!”
“트리케트라스와 바빌라인투두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숨을 삼키는 맥크라페리온 앞에서, 세인트갈리아가 앞으로 나섰다.
“내 싸움을 똑똑히 지켜보고… 네가 카이트 에인헤랴르를 꺾어라.”
평소 말수가 적은 세인트갈리아가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 날은 처음이었다.
* * *
막내와 실랑이를 벌인 뒤, 자주색 드래곤이 앞으로 나섰다.
이미 두 마리가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대일 대결을 고수하려는 듯했다.
‘세인트갈리아라고 했었지.’
세 번째 상대의 이름을 떠올리며, 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강력한 공격을 연달아 펼쳤기 때문에 나도 여유가 있는 편은 아니었다.
‘트리케트라스가 가장 강하다고 했지만, 그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 같지는 않아.’
적어도 트리케트라스와 바빌라인투두의 전투력은 거의 비슷해 보였다.
그러니 세인트갈리아가 더 쉬운 상대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
‘오히려 내 싸움을 지켜봤으니… 상대하기 더 까다로워지겠지.’
트리케트라스와 바빌라인투두가 개죽음을 당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내가 어떤 식으로 싸우는지 후속에게 알려 주는 역할을 했다.
비록… 내 모든 것을 끌어내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시작하지…….”
전투의 시작을 알린 순간.
세인트갈리아가 갑자기 입을 벌렸다.
그리고 지금까지 상대했던 어떤 드래곤보다 빠른 브레스가 뿜어져 나왔다.
“……!”
쿠쿵!
칼라드볼그로 검막을 펼쳐 브레스를 막아 냈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 세인트갈리아는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
아무 말 없이 수많은 화염 마법을 전개했다.
머리 위에서 화염의 폭우가 떨어져 내렸지만, 별로 위력은 강하지 않았다.
‘이건 견제, 내지는 눈속임용.’
빠르게 파악하고, 세인트갈리아의 위치를 확인하려 했다.
공중에서 선회한 세인트갈리아는 내 좌측면을 덮치려 하고 있었다.
“……!”
왼손에 든 발뭉을 휘둘러 세인트갈리아를 막아 내려 했다.
하지만, 세인트갈리아가 휘두른 앞발이 발뭉과 부딪히면서 불꽃이 튀었다.
‘흠집 하나 없다고?’
세인트갈리아의 앞발이 오러로 보호되고 있었다.
상당히 두터운 오러였다. 이거면 수라창뢰검의 뇌전도 수라백상검의 냉기도 뚫을 수 없다.
“…….”
세인트갈리아가 회심의 미소를 짓는 것 같았다.
반대편 앞발이 나를 찍어 누르려 했다. 칼라드볼그를 치켜들어 받아치려 했지만, 세인트갈리아의 근력이 더 강했다.
‘역시 결코 약하지 않군.’
나를 위에서 아래로 짓누르면서, 세인트갈리아가 입을 벌렸다.
브레스는 하루에 한 번뿐이라고 하니 더 이상 쓰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나를 씹어 삼키려는 의도일까.
‘그렇게는 안 되지.’
쿵!
순간적으로 몸을 틀어 이탈했다. 세인트갈리아의 앞발이 땅을 찍어 굉음이 울려 퍼졌다.
세인트갈리아는 계속해서 앞발을 오러로 보호하면서 나에게 달려들었다.
‘신화병장에 검강까지 전개해도, 드래곤이 방어에 전념하면 쉽게 뚫을 수 없군.’
새삼스레 드래곤이 최강의 생물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내공이 더 늘어나서 현경의 경지에 오른다면 몰라도, 지금 시점에서 평범한 기술로는 세인트갈리아에게 상처를 입힐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양(陽)의 기운을 끌어 올렸다.
불타오르는 열기가 느껴지면서, 칼라드볼그와 발뭉이 동시에 불꽃에 휩싸였다.
“……!”
세인트갈리아가 흠칫했다.
이대로 계속 공격할 것인지, 아니면 잠시 물러날 것인지 갈등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 갈등이 빈틈이 되었다.
‘수라홍련검… 거염(鋸炎)!’
콰앙!
격렬한 불길이 치솟는 쌍검을 세인트갈리아에게 휘둘렀다.
불꽃은 세인트갈리아의 표면을 보호하고 있는 오러를 불태워 버렸고, 그 속으로 파고들었다.
“크윽……!”
세인트갈리아가 처음으로 고통스러운 신음을 토해 냈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톱니처럼 파고드는 염검(炎劍)을 두 자루 들고, 춤추듯이 종횡무진 움직였다.
세인트갈리아의 전신에 불의 꽃이 피었다.
“세인트갈리아!”
지켜보고 있던 막내 맥크라페리온이 달려들려 했다.
하지만 세인트갈리아가 고개를 치켜들며 소리쳤다.
“나를 불명예스럽게 만들지 마라, 맥크라페리온……!”
“……!”
거친 절규로 막내를 멈춘 뒤, 세인트갈리아가 몸을 치켜들었다.
날아오르려는 것은 아니었다. 거대한 질량 자체로 나를 깔아뭉개려는 의도 같았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아무리 내가 칼을 잘 놀려도, 드래곤의 거체 밑에 깔리면 살아남기 힘들다.
그러니, 그런 걸 허용해 줄 이유가 없다.
‘수라창뢰검 절초, 뇌광(雷光).’
쿠쿠쿵!
막강한 뇌기가 담긴 칼라드볼그가 초고속으로 솟구쳐, 무방비한 세인트갈리아의 목을 관통했다.
나는 세인트갈리아가 비틀거리는 틈을 이용해 몸을 날렸다.
“끄으…….”
쿠쿵!
세인트갈리아의 거체가 땅에 완전히 처박혔을 때, 나는 안전한 위치에서 숨을 가다듬고 있었다.
“…….”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것을 느끼며, 나는 주위를 살폈다.
동시에 나타났던 네 마리 중에서 트리케트라스, 바빌라인투두, 세인트갈리아가 쓰러졌다.
이제 남은 건 막내로 추정되는 맥크라페리온 뿐이다.
“잘 지켜봤나?”
“……!”
혼자 남은 흑록색 드래곤에게 시선을 향했다.
“이 녀석들은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패배가 다음에 싸울 자에게 보탬이 될 거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지.”
트리케트라스, 바빌라인투두, 세인트갈리아는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다른 드래곤들처럼 죽기 직전에 나를 상대로 주절주절 떠들지는 않았다.
마지막 남은 생명력을 최대한 아끼면서, 맥크라페리온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지막 순서로 나설 막내가 나를 꺾어 주는 것을 기대하면서.
“네가 선배들을 부끄럽게 만들 생각이 아니라면…….”
나는 왼손의 발뭉을 치켜들면서 말했다.
“마지막 싸움이다. 후회 없는 싸움을 하도록 해라.”
신화병장의 칼날에서 강기가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