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84
▣ 84화. 귀환과 결의 (1)
오비르 고개까지 가는 동안, 발길이 무거웠다.
이바르도 그렇고, 아나스타샤도 그렇고… 다들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카이트 혼자 내버려 두고 왔기 때문이다.
카이트가 드래곤을 쓰러뜨릴 수 있는 힘을 지녔다는 건 다들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드래곤이 무려 네 마리나 동시에 나타난 상황이었다.
아무리 카이트라고 해도 이번에는 당해 낼 수 없을 것이다.
다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바르 님.”
“뭡니까, 아나스타샤 님…….”
“이게 옳은 걸까요.”
아나스타샤의 말을 듣고, 이바르가 입술을 깨물었다.
“저희도 슈데르츠 씨와 루살카 씨처럼 돌아가야 했던 게 아닐까요.”
“…….”
도망치는 도중, 슈데르츠가 도저히 안 되겠다면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 모습을 보고 루살카도 뒤를 따랐다.
“카이트 님은 방해되니까 그냥 우리 먼저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워낙 카이트 님이 강경하셔서 우리끼리 먼저 가게 되었지만… 그러지 말았어야 했던 걸지도 모릅니다.”
“…….”
냉정하게 생각하자면, 거기서 최대한 희생자를 줄이는 편이 낫다.
다 같이 드래곤들과 싸웠다가 전멸하게 되면 에인헤랴르와 크레스니크에게 큰 타격이 된다.
카이트 한 명만 죽고 이바르와 아나스타샤가 살아남는 편이 훨씬 나은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합리화해도 마음이 편해지지는 않았다.
* * *
이윽고 일행은 에인헤랴르와의 서쪽 경계가 되는 산맥에 도달했다.
유일한 통로인 오비르 고개를 올라가자, 크레스니크 측에서 세워 놓은 요새가 눈에 들어왔다.
“아나스타샤 님, 돌아오셨군요!”
예카테리나와 아나스타샤가 없는 동안 요새를 지키고 있던 수비대장이 다급히 달려 나왔다.
“빨리 와 주십시오!”
“수비대장, 무슨 일이죠?”
“직접 보시는 게 빠를 겁니다! 이바르 님도, 어서!”
이바르하고도 구면인 수비대장이 두 사람을 재촉했다.
영문을 모른 채 관문 너머를 들여다보고, 이바르도 아나스타샤도 숨을 삼켰다.
“……!”
관문 너머 산길에 기사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바르의 청룡기사단뿐만이 아니었다.
“이바르 님, 저 검은색 망토를 걸친 기사들은…….”
“네, 맞습니다.”
이바르는 주먹을 꽉 쥐었다.
“아버지… 북부대공의 흑룡기사단입니다.”
흑룡기사단.
북부 최강의 기사들이, 오비르 고개에 진을 치고 있었다.
* * *
시구르드 에인헤랴르.
절대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아버지 앞에 나서며, 이바르는 긴장감을 느꼈다.
“오랜만이군, 이바르.”
“네, 아버지.”
직접 얼굴을 마주하는 건 거의 반년 만이었다.
이바르가 청룡기사단을 이끌고 계속 이곳저곳을 바쁘게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크레스니크 공작과 그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네가 카이트와 함께 뒤처리를 했다고 하더군.”
“맞습니다.”
“내가 이쪽으로 흑룡기사단을 움직인 건, 북동쪽에서 드래곤들이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는 걸 감지했기 때문이다. 크레스니크 측과 협의하여 움직일 생각이었지.”
“아…….”
시구르드의 흑룡기사단이 관문 밖에 진을 치고 있던 건, 딱히 크레스니크를 침략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지원을 나와 준 것이었다.
내분으로 인해 크레스니크 내부에 전력 공백이 생겼고, 이바르도 청룡기사단을 지휘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런데, 이바르.”
“네, 아버지.”
“카이트는 어디에 있는 거냐.”
“……!”
이바르는 몸을 움찔했다.
“너와 함께 이쪽으로 오고 있는 중이라 알고 있었는데.”
“그것이…….”
이바르가 말을 잇지 못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아나스타샤가 침통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에인헤랴르 대공 전하, 카이트 님은 중간에 저희와 헤어졌습니다.”
“어째서지?”
“드래곤들의 습격을… 카이트 님 혼자서 막기로 했습니다.”
“…….”
시구르드가 입을 다물고 이바르의 얼굴을 쳐다봤다.
결국 이바르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네 마리나 되는 드래곤이 동시에 나타나서 우리를 덮쳤습니다. 도무지 당해 낼 수 없는 전력이었습니다. 그런데 카이트 형님이 자기 혼자서 맡을 테니 우리 보고 먼저 가라고 하더군요. 우리가 있으면 방해된다고 말입니다.”
“…….”
“그래서, 카이트 형님이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형님을 내버려 두고 우리끼리 도망쳤습니다. 발뭉도 형님에게 넘겨 주고 말이죠.”
그렇게 말한 뒤.
이바르는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벌을 주십시오, 아버지.”
“…….”
“형님에게 모든 것을 맡긴 뒤 혼자서 도망쳤습니다. 에인헤랴르의 차남으로서, 부끄러운 짓을 했습니다.”
시구르드는 아무 말 없이 이바르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이바르는 그 차가운 눈빛이 칼날이 되어 심장을 찌르는 것 같았다.
“저에게는… 에인헤랴르 대공의 자리를 노릴 자격이 없습니다.”
“왜 그런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이바르.”
시구르드의 냉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의 너는 좀 더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남자였다. 어떨 때는 지나치게 이기적으로 느껴질 정도였지.”
“네,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그건 차기 에인헤랴르 대공이 되기 위한 너의 전략이고 선택이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잘해 왔으면서, 왜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한 거냐.”
“그건…….”
이바르의 머릿속에 카이트와 나눴던 대화가 스쳐 지나갔다.
“모르겠습니다, 아버지.”
“…….”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바르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제 방식으로 에인헤랴르 대공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시구르드의 이름을 계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자신감이 있었고, 확신이 있었습니다.”
“…….”
“카이트 형님은 그런 길을 선택했으면 흔들리지 말고 계속 나아가라고 말씀해 주시더군요. 제가 생각하기에도 그게 옳습니다. 하지만…….”
그날 밤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면서, 이바르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어째서일까요. 혼자서 드래곤들과 맞서려 하는 카이트 형님의 뒷모습을 보니, 에인헤랴르 대공이 되려고 했던 게 다 하찮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
“카이트 형님처럼 할 수 있는 남자가 되고 싶어졌습니다. 강대한 적이 나타났을 때, 여기는 내가 맡을 테니 너희들은 먼저 가라고 말할 수 있는 남자가 되고 싶어진 겁니다.”
그 순간.
이바르는 비로소 깨달았다.
“이제야 알겠습니다. 저는 에인헤랴르 대공이 되고 싶었지만, 제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에인헤랴르 대공의 지위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
“제가 정말로 동경했던 건, 전장에서 누구보다 앞장서서 적과 맞서는 아버지였던 겁니다.”
아버지처럼 되고 싶었다.
그게 어려우니, 아버지의 이름과 직위라도 계승하고 싶었다.
카이트의 모습을 보면서,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면 활이라도 배우지 그랬나.”
바로 그때.
시구르드의 냉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활이라면 다리가 불편해도 그럭저럭 전력이 될 수 있었을 텐데. 남쪽에 궁술을 수련하여 9서클에 도달한 보우 마스터가 있다고 들었다.”
“아, 아버지?”
마법이라도 배우지 그랬냐던 카이트의 말이 떠올랐다.
설마 아버지도 똑같은 수준의 소리를 할 줄이야.
“너는 아예 무술에 관심이 없는 줄 알았다. 내가 착각했군.”
“아, 아버지…….”
“네가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고 전사로서 전장에 나가고 싶어 했다면, 나도 편의를 봐줬을 텐데 말이다.”
“무슨, 그런…….”
“물론, 그럴 경우 지금처럼 다른 형제들보다 앞서가는 위치에 오르지는 못했겠지. 남들보다 불리한 조건에서 어려운 수련을 해야 했을 테니, 에인헤랴르 대공이 되기 위한 실적을 쌓는 건 어려웠을 거다.”
“……!”
“에인헤랴르 대공이 되기 위해서 너는 적절한 길을 걸어왔다. 하지만 진정으로 원했던 게 다른 거라면… 조금 복잡한 고민이 필요하겠군.”
이바르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버지에게서도 형과 비슷한 얘기를 들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확실하게 정하도록 해라, 이바르.”
“네……?”
“지금처럼 지휘나 교섭 등을 통해 실적을 쌓아 에인헤랴르 대공이 되는 걸 노릴지, 아니면 모든 걸 내던진 채 미숙한 신병(新兵)으로서 수련을 시작할지 말이다.”
“……!”
“나는 네 선택을 존중하겠다. 최대한 편의를 봐주지.”
이것도 카이트가 했던 말과 비슷했다.
카이트도 자기 밑에 들어와서 힘을 기르려면 모든 걸 내던지고 오라고 했었다.
“하, 하지만 아버지…….”
이바르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카이트 형님이 이렇게 되었는데, 제가 그렇게 할 수는…….”
“그 얘기 말이다만.”
시구르드가 냉정한 표정으로 이바르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착각하지 마라, 이바르.”
“네?”
“카이트는 다른 사람들이 도망칠 시간을 벌기 위해 혼자 남아 희생할 놈이 아니다.”
“……?”
이바르는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어 아버지의 얼굴을 쳐다봤다.
“아직 네 형의 성격을 파악하지 못한 것 같구나. 나도 요새 들어서야 겨우 파악한 거지만.”
시구르드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석이 너한테 ‘방해되니까 먼저 도망쳐라.’라고 말했다면, 정말로 네가 방해되니까 빨리 꺼져달라는 뜻이다.”
“……?”
이해하지 못하고 이바르가 눈을 깜박이고만 있었을 때.
갑자기 뒤쪽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이트 공자님이 오셨다……!”
그 말을 듣고.
이바르는 눈을 크게 떴다.
* * *
오비르 고개에 세워진 크레스니크 가문의 요새에는 생각지도 못한 얼굴이 기다리고 있었다.
북부대공 시구르드가 와 있었던 것이다.
‘크레스니크 측의 상황을 파악하고 움직였나 보군.’
시구르드 곁에는 이바르와 아나스타샤가 있었다.
두 사람은 멀쩡한 내 모습을 보면서 경악하고 있었다.
“혀, 형님, 어떻게…….”
“카이트 님, 무사하셨던 건가요?”
둘 다 이곳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다.
하긴 이바르의 마차 때문에 행군 속도 자체는 별로 빠르지 않았을 것이다.
나 혼자 바이콘을 타고 달렸다면 중간에서 추월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카이트.”
“네, 대공 전하.”
에인헤랴르 측의 기사들, 그리고 크레스니크의 수비병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기에 최대한 정중하게 대답했다.
“이미 이바르에게서 간략한 얘기는 들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봐라.”
“네, 알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눈짓을 했다.
그러자 중간에 합류했던 슈데르츠와 루살카가 커다란 가죽 주머니를 양손에 들고 앞으로 나섰다.
“그게 뭐냐.”
“직접 보시면 아실 겁니다.”
슈데르츠와 루살카가 가죽 주머니를 땅에 내려놓고, 입구를 묶고 있던 줄을 풀러 내용물을 보여 주었다.
그 내용물은…….
“저것은……!”
“드래곤 하트……!”
“그것도 네 개나 있다고?”
사람 머리통만 한 보석.
트리케트라스, 바빌라인투두, 세인트갈리아, 그리고 맥크라페리온의 사체에서 얻어 낸 드래곤 하트였다.
사실 테트라샤크두와 샤가르디오스의 드래곤 하트도 얻었기 때문에 두 개가 더 있지만… 그건 이바르의 마차 안에 있을 것이다.
“그, 그렇다면…….”
이바르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카이트 형님이, 정말로……?”
“세상에…….”
아나스타샤도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대공 전하.”
“…….”
말없이 드래곤 하트를 응시하고 있는 시구르드를 향해, 당당한 목소리로 밝혔다.
“악룡 파프니르 파벌에 속한 트리케트라스, 바빌라인투두, 세인트갈리아, 그리고 맥크라페리온… 총 네 마리의 드래곤을 토벌하고 왔습니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증거가 있었다.
오비르 고개에 모여 있던 기사들과 병사들 모두가 충격에 빠졌다.
카이트 에인헤랴르가 달성한 위업(偉業)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