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88
▣ 88화. 출진 준비 (3)
“지금 대련을 하자고 하셨습니까?”
내 제안을 듣고, 황룡기사단 단장 아그나르는 인상을 찌푸렸다.
“네, 이번 원정을 앞두고 고명한 소드 마스터이신 아그나르 경에게 한 수 배우고 싶습니다.”
“…….”
에인헤랴르에는 세 명의 소드 마스터가 있었다.
북부대공 시구르드, 백룡기사단 단장 에리크, 그리고 황룡기사단 단장 아그나르다.
평소 아그나르는 에리크와 함께 최북단의 요새에서 드래곤들을 경계하고 있기 때문에 만날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시구르드가 아그나르를 불러들여 공격대에 참가시켰다.
‘본격적인 원정이 시작되기 전에, 아그나르가 어느 정도 실력인지 알고 싶단 말이지.’
이미 나는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한 차르노보그를 쓰러뜨린 적이 있다.
하지만 소드 마스터도 사람마다 천차만별의 힘을 지니고 있다고 하고, 아그나르가 동급의 실력을 갖고 있을 거란 보장은 없었다.
“사양하겠습니다, 카이트 님.”
하지만, 아그나르는 인상을 찌푸린 채 대답했다.
“원정을 앞두고 한 수 배우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만, 원정을 앞둔 시기이기 때문에 안 됩니다.”
“그렇습니까?”
“만약 카이트 님이 다치기라도 하면 일이 꼬이니 말입니다.”
“그것도 그렇군요.”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아그나르 경이 다칠 수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
아그나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카이트 님.”
“네, 아그나르 경.”
“카이트 님이 최근 대단한 무훈을 세웠다는 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분명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하신 거겠죠.”
“…….”
“하지만 카이트 님은 어디까지나 소드 마스터의 초입(初入)에 들어섰을 뿐입니다.”
아그나르는 훈계하듯이 말했다.
“카이트 님,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하면 마력을 보다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전신의 근육과 골격에 마력을 흐르게 할 수도 있고, 오러를 방출하는 오러 블래스트 등의 기술도 사용할 수 있게 되죠.”
그렇게 말하며 아그나르는 왼손을 치켜들었다.
그는 손에 철갑(鐵甲)을 끼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표면에 오러가 전개되었다.
“이렇게 방어구에도 자유자재로 오러를 부여할 수 있게 됩니다.”
“그건 저도 시험해 본 적이 없군요.”
호신강기로 육체와 의복을 보호한 적은 있지만, 갑옷에 강기를 둘러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런 게 전부가 아닙니다.”
“그렇습니까?”
“깨달음을 얻어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한다고 해도, 그게 끝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수련하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으며 한 단계씩 더 올라가야 합니다.”
“소드 마스터보다 윗 단계가 있는 겁니까?”
“그런 건 아닙니다. 먼 옛날 그랜드 소드 마스터라 불리는 존재가 있었다고 합니다만, 비현실적인 얘기죠.”
그랜드 소드 마스터…….
왠지 가슴에 울리는 이름이었다.
“자잘한 깨달음이 있을 때도 있고, 큰 깨달음이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 걸 축적시켜 나가면서 한 사람의 소드 마스터로서 더 높은 경지에 오르려 하게 됩니다.”
“…….”
“물론, 도중에 정체되는 소드 마스터도 수없이 많습니다. 그런 소드 마스터 중에는 뭔가 새로운 길을 개척해 보려고 애쓰는 사람도 있죠. 10서클에 도달해 보려고 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차르노보그가 10서클에 도달하려 하는 소드 마스터였다.
그러면 차르노보그는 9서클 안에서 정체되어 10서클을 추구하게 된 걸까.
“얘기가 다른 곳으로 샜군요.”
아그나르가 헛기침을 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소드 마스터는 도달점이 아니라 출발점이라는 겁니다. 카이트 님은 아직 출발점에 섰을 뿐이니, 자만하지 말고 정진하십시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도달점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이건 꽤 명언이라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이 말만 들어도 아그나르가 무인(武人)으로서 제대로 된 마음가짐을 지닌 인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아마 아그나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은 ‘내가 더 강하니 함부로 기어오르지 마라.’라는 말일 것이다.
그걸 알고 있기에, 나는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아그나르 경, 그렇기에 더더욱 한 수 배우고 싶다는 겁니다.”
“카이트 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그나르 경.”
좀처럼 물러서지 않는 나를 보면서, 아그나르가 인상을 찌푸렸다.
“알겠습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요?”
“5분입니다. 5분만, 상대해 드리겠습니다.”
결국 아그나르가 조건부로 승낙해 줬다.
“서로 과열되는 일 없이, 정해진 시간 동안만 선을 지키면서 합시다. 어떻습니까.”
“나쁘지 않군요.”
나도 딱히 아그나르하고 작정하고 싸울 생각은 없었다.
이번 원정에서 아그나르는 가장 중요한 전력 중 하나니까.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내가 원하는 건 두 가지다.
하나는 아그나르가 어느 정도 힘을 지녔는지 확인하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아그나르에게 내 무력(武力)을 보여 주는 것.
‘나는 네 실력을, 너는 내 실력을 확인하는 자리가 될 거다.’
속마음을 숨긴 채, 나는 훈련장으로 향했다.
* * *
카이트와 아그나르가 함께 훈련장으로 향하는 걸 봤다.
어떤 기사가 전해 준 얘기에, 사람들이 우르르 훈련장으로 몰려갔다.
“카이트 공자와 아그나르 단장이 붙는다고?”
“이건 못 참지! 구경하러 가자고!”
새롭게 소드 마스터로 인정받은 카이트.
에인헤랴르를 대표하는 소드 마스터 중 한 명인 아그나르.
두 사람이 격돌한다는 건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요소였다.
소문이 퍼질 시간만 충분했다면 고틀란드 시민 전원이 구경하러 왔을지도 모른다.
“예전에 카이트 님과 헤스테인 님이 대련을 하셨을 때가 생각나는군.”
“그러게 말입니다. 그 일을 계기로 카이트 님과 헤스테인 님 사이가 가까워지셨죠.”
훈련장으로 들어서면서 어윈과 모르트가 대화를 나눴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군요.”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아그나르 단장도 대단한 실력자로 유명하니…….”
“그렇죠. 아그나르 경도 드래곤 여러 마리를 동시에 상대할 수 있는 인물이라 들었습니다.”
니얼과 모리안, 아나스타샤 등도 관전을 위해 훈련장에 들어온 상태였다.
이번 원정에 참가하는 주요 인물들이 다 구경을 하러 온 셈이었다.
‘이것 참… 난감하게 되었군.’
주위를 둘러보며 이바르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 쪽이 제안한 일인지는 모르지만, 공격대의 단합을 위해서는 별로 바람직한 일이 아닐 것 같았다.
‘카이트 형님이… 아그나르 경을 당해 낼 수 있을까?’
아그나르는 소드 마스터로서 꽤 높은 경지에 올라 있는 사람이다.
시구르드와 에리크에게는 못 미친다고 해도, 북부 전체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인 건 분명했다.
카이트가 드래곤 네 마리를 쓰러뜨렸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지만… 아그나르는 평소에도 최전선에서 수많은 드래곤들을 상대해 온 인물.
아무리 생각해도 아그나르 쪽이 우세하다.
‘시간이 흐르면 카이트 형님이 아그나르 경을 능가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아그나르 경의 실력이 더 뛰어날 거야.’
마음만 같아서는 아그나르에게 좀 봐주면서 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바르가 부탁하면 역효과일 가능성이 높다.
‘제발 무난한 결과로 끝났으면 좋겠는데…….’
이바르는 기도하는 심정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 * *
“카이트 님, 구경꾼들이 없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상관없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나와 아그나르는 훈련장에서 대치했다.
양쪽 다 목검을 들고 있었다. 사실 우리에게 목검은 너무 연약한 무기지만, 대련이니까 어쩔 수 없다.
“목검이 견딜 수 없는 수준의 오러를 사용하시면 안 됩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실격패로 하죠.”
“좋습니다.”
이걸로 내공이나 마력의 양이 싸움에 영향을 끼치지 않게 되었다.
검사 대 검사로서, 순수한 기술의 싸움이 될 것이다.
“그럼 슬슬 시작하지요.”
아그나르가 목검을 든 채 천천히 자세를 취했다.
“준비되셨습니까.”
“물론입니다.”
“중간에 힘에 부치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십시오.”
“아그나르 경도 중간에 좀 힘들다 싶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십시오.”
“…….”
아그나르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감정을 드러내며 달려들지는 않았다.
에인헤랴르를 지탱하는 기사 중 한 명으로서 품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카이트 님이 먼저 공격하시죠.”
“괜찮습니다. 아그나르 경 먼저 하시죠.”
“제가 연장자이고, 소드 마스터로서도 선배입니다. 선공을 양보하는 게 도리입니다.”
“그러면 더 이상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직후.
한 걸음, 앞으로 움직였다.
“……!”
파앙!
한 걸음인데도 불구하고, 거리를 완전히 좁혔다.
전광석화처럼 펼친 찌르기가 아그나르의 가슴을 향해 파고들었다..
“윽……!”
파악!
아그나르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내 목검을 막아 냈다.
막아 내긴 했지만, 상당히 아슬아슬했다.
“루살카, 저건…….”
“네, 카이트 님이 저한테 훈련시키고 있는 검법의 초식입니다.”
근처에서 구경하던 이그니카와 루살카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수라비룡검의 대표적 초식인 섬뢰를 펼쳤다는 걸 눈치챈 것이다.
“대련에서 첫수부터 찌르기를 펼치다니… 에인헤랴르의 장남답지 않은 검이군요.”
“죄송합니다, 아그나르 경.”
아그나르의 표정이 방금까지와는 달라졌다.
이게 만약 생사결이었다면… 단번에 가슴을 꿰뚫려 즉사할 수도 있었다는 걸 눈치챈 것이다.
“이번에는 제가 공격하겠습니다.”
“그러시죠.”
아그나르가 움직였다.
그 움직임은 헤스테인과 비슷했다. 잘 균형이 잡혀 있고 절도가 있는… 명문정파의 검법을 연상케 하는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헤스테인보다 한참 높은 경지에 있군.’
쿠웅!
어떤 눈속임도 없는 세로 방향의 베기가 펼쳐졌다.
나는 일부러 피하지 않고 목검으로 막았다. 목검이 울리면서 진동이 팔을 타고 올라왔다.
‘묵직한 공격!’
쿵! 쿠쿵!
아그나르의 연속적인 공격이 시작되었다.
공격 하나하나가 견실하고 육중했다. 평범한 검사였다면 제대로 받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에인헤랴르의 검사들을 보면… 기본적으로 중검(重劍)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었어.’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 그들이 평소 상대하는 게 인간보다 맷집이 강한 몬스터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평범한 인간은 칼만 한번 푹 찔러도 죽지만, 몬스터들은 결코 그렇지 않다. 가죽도 두꺼워서 가벼운 공격으로는 깊은 상처를 입히기 어렵다.
그렇기에 무거운 공격으로 확실히 숨통을 끊는 걸 중요시하게 된 게 아닐까.
‘지금 아그나르가 펼치는 검술은, 그 완성형이라 할 만하다.’
내가 아니었다면 진작 검을 손에서 떨어뜨리고 패배했을 것이다.
그만큼 아그나르의 검술은 동작 하나하나가 위력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아그나르의 동작을 살폈다.
‘그게 전부가 아닐 터.’
큰 움직임으로 돌진해 온 아그나르의 공격을 막아 낸 직후.
아그나르의 모습이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
쐐애애액!
어느새 머리 위로 솟구친 아그나르에게서, 전광석화 같은 공격이 떨어져 내렸다.
* * *
쿵!
충격파로 인해 흙먼지가 날렸다.
잠시 앞을 분간하기 어려워졌을 정도였다.
‘아그나르 경……!’
먼지가 눈에 들어가지 않도록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이바르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그나르가 너무 강하게 나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속력으로 움직이다니,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아그나르는 ‘북부 최속(最速)의 검사’라 불린다.
검을 휘두르는 것도, 몸을 움직이는 것도… 북부에서 가장 빠르다고 평가받고 있다.
원래 에인헤랴르의 검사들은 검을 무겁게 다루라고 교육받는다. 가벼운 공격으로는 몬스터에게 상처를 입히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드 마스터에게는 이런 건 별로 중요치 않다. 소드 마스터의 오러 블레이드라면 몬스터는 물론 드래곤의 가죽도 찢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소드 마스터가 되면 좀 다른 길을 추구하게 된다. 시구르드도 에리크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아그나르는 줄곧 ‘속도’를 추구해 온 소드 마스터였다.
‘카이트 형님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아그나르 경의 속도에 대응할 수는 없어!’
처음에 아그나르는 정석적인 에인헤랴르식 검술을 사용했다.
그리고 그 공격 속도에 카이트가 익숙해졌을 무렵… 갑자기 속도를 끌어올려, 카이트의 허를 찌른 것이다.
‘대련에서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아그나르 경!’
오러를 견고하게 압축하여 오러 블레이드 상태로 만들지는 않았겠지만, 흙먼지가 날리는 걸 보니 목검에 상당한 오러를 실은 상태에서 공격한 것 같았다.
저런 공격을 정통으로 맞으면 카이트도 부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
하지만.
흙먼지가 가라앉으면서 눈에 들어온 광경에, 이바르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전광석화 같았던 아그나르의 공격을… 카이트가 목검으로 완벽하게 막아 내고 있었으니까.
“아그나르 경.”
“…….”
카이트의 표정은 차분했다.
반면 아그나르는 입술을 깨문 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이바르는 비로소 깨달았다.
아그나르가 갑자기 전속력으로 공격을 펼친 건 카이트를 혼쭐내 주려고 심술을 부린 게 아니었다.
그렇게 전력을 다해 싸우지 않으면… 망신을 당하는 건 자기가 될 거라고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서로 과열되는 일 없이, 선을 지키면서 하자고 얘기했습니다만…….”
카이트가 손목을 비튼 순간.
정체불명의 충격이 발생하며, 아그나르의 몸이 밀려 나갔다.
“서로 조금씩, 더 열기를 높여도 될 것 같습니다.”
검을 치켜들며 내뱉은 카이트의 냉정한 목소리에, 아그나르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