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9
▣ 9화. 전장을 질주하라 (2)
내가 이곳에서 더 높은 위치에 오르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바닥을 치고 있었던 망나니 장남 카이트의 위상을 회복하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20년 어치밖에 없는 내공을 이서원 시절의 8갑자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
사실 이 두 가지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카이트로서 공을 세워야 마석을 얻어 내공을 늘릴 수 있을 테고, 내공을 늘려야 카이트로서 공을 세울 수 있을 테니까.
‘차근차근 해야겠어.’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마석을 들여다봤다.
‘마석에 저장되어 있는 마력을 뽑아내서 흡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림에는 ‘흡성대법’이라는 무공이 존재했다.
상대방의 내공을 빨아들여 자기 것으로 만드는 무공이었다.
그런 무공을 응용해 마력을 뽑아내면 될 것 같은데… 나는 흡성대법을 배운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래도 뭐…….’
나는 마석을 앞에 두고 가부좌를 틀었다.
‘그 정도 무공은 즉석에서 만들 수 있지.’
검마 이서원은 현경의 경지에 도달한 고수였다.
살아 있는 인간에게서 강제로 내공을 뽑아내는 것도 아니고, 가만히 있는 돌덩이에서 마력을 흡수하는 기술 정도는 충분히 만들 수 있었다.
‘흡성대법의 원리 자체는 이미 알고 있으니…….’
머릿속으로 차근차근 이론을 정리한다.
어떻게 해야 딱딱한 돌덩이 안에 내재된 기운을 꺼낼 수 있을지, 내 나름대로의 방법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
잠시 뒤, 나는 천천히 마석을 향해 손을 뻗었다.
수소음심경(手少陰心經)의 소부(少府), 수궐음심포경(手厥陰心包經)의 노궁(勞宮)… 손바닥에 있는 두 경혈을 마석에 접촉시켰다.
그리고 마석에 저장된 기운을 느끼면서 나 또한 기운을 뻗었다.
허공섭물(虛空攝物)로 물건을 끌어들이는 것처럼, 마석에 내재된 기운을 끌어당기기 위해.
“……!”
파팟!
마석이 산산이 깨져 버렸다.
파편 일부가 튀어서 내 피부에 상처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성공이군.’
마석에 저장되어 있던 마력.
그 기운이 소부혈과 노궁혈을 통해 내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나는 흑천수라심법의 구결에 따라 기운을 순환시켰다.
‘이걸 그대로 단전에 집어넣으면 안 된다.’
하이 리자드맨의 마석에서는 음침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건 음기(陰氣)… 아니, 오행으로 봤을 때 수기(水氣)였다.
이걸 그대로 받아들였다간 습하고 차가운 곳의 기운을 함부로 받아들였을 때와 비슷한 증상이 나타날 것이다.
‘내 안에서 잘 다스려 중화시킨 뒤… 나를 위한 내공으로 만든다.’
원래 내공이라는 것은 아무 기운이나 뒤섞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어떤 사파 고수는 흡성대법을 연마해서 내공을 마구 빨아먹고 다녔지만, 결국 여러 기운이 몸속에서 충돌하여 주화입마에 빠졌다.
외부의 기운을 받아들일 때는 자기가 그동안 쌓아 온 내공에 맞춰서 조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흑천수라심법은 이 부분에 관해서는 아주 우수하지.’
아무리 맹렬한 성질을 가진 기운이라도 잘 다스려서 조화시킬 수 있다.
나는 흑천수라심법을 통해 하이 리자드맨의 기운을 차근차근 내 것으로 만들어 나갔다.
* * *
사흘 뒤.
나는 대공궁 밖으로 나갔다.
프리드레이프가 조직한 임시 기사대의 일원으로서 토벌전에 참가해야 했기 때문이다.
“카이트 님!”
잔뜩 모여 있는 기사들 사이에서 가장 먼저 나한테 말을 걸어온 건 의외로 모르트였다.
“역시 이번에도 참가하시는군요! 저도 프리드레이프 님의 기사대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지난번에 나한테 대놓고 시비를 걸었던 녀석인데… 지금은 태도가 완전히 달랐다.
“카이트 님,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카이트 님을 얕잡아 보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었는데.”
“하지만 지난번에 하이 리자드맨을 쓰러뜨리는 모습을 보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카이트 님은 용살검가 에인헤랴르에 걸맞은 분이십니다.”
모르트의 눈빛에는 존경심이 담겨 있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카이트 님.”
“그건 내가 할 말이지.”
“네?”
“그동안 나는 기사들과 어울려서 전장에 나서본 적이 별로 없었어. 여러모로 익숙하지 않은 부분이 많으니 도움을 줬으면 좋겠군.”
“제,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얼마든지 돕겠습니다!”
솔직하고 호탕한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모르트와 대화를 나누고 있자 근처에서 어윈이 다가왔다.
“카이트 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어윈의 눈빛도 예전하고는 달랐다.
나를 완전히 인정한 눈빛이었다.
“저도 프리드레이프 님의 요청을 받아 임시 기사대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기사들하고도 함께 말입니다.”
“그래, 잘 됐군.”
어윈 말고도 지난번에 봤던 젊은 기사들이 몇 명 있었다.
특정 기사대 소속이 아니었기 때문에 임시 기사대에 참여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다들 모여 있군요.”
“프리드레이프 님!”
그때 프리드레이프가 부관인 세디스를 대동하고 모습을 드러냈다.
대부분의 기사들이 프리드레이프보다 연상이었지만, 다들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카이트 형님도 제 시간에 오셨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지각할 거라 생각했나?”
“그런 게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프리드레이프의 태도는 딱히 공격적이지 않았다.
“얘기를 들은 사람도 있겠지만, 이번 토벌전은 알비스 경의 기사대를 중심으로 진행될 겁니다.”
“베테랑 소드 엑스퍼트인 알비스 경이 나서주신다면 안심할 수 있겠군요. 알비스 경의 기사대는 규모도 큰 편이고.”
어윈이 합당한 인선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위 사람들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좌익을 발레드 경이 지휘하는 기사대가 담당하고, 우익을 저희가 담당합니다. 평소대로라면 알비스 경이 지휘하는 정예부대만으로 적들을 섬멸할 수 있겠지만, 어떤 돌발 상황이 벌어질지 알 수 없으니 다들 긴장을 늦추지 말았으면 합니다.”
프리드레이프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이미 여러 사람들을 이끄는 것에 익숙한 것 같았다.
“그러면 여러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십여 명의 기사들로 구성된 임시 기사대.
나는 그들과 함께 리자드맨 토벌에 참가하게 될 것이다.
* * *
행군이 시작되었다.
프리드레이프가 미리 말한 대로 우리는 토벌군 우측에 위치했다.
나는 어윈, 모르트 등과 함께 얼어붙은 땅을 걸었다.
‘이 세계에서는 소드 엑스퍼트가 되어야 비로소 고수로 인정받는 모양이야.’
어윈과 모르트 등에게서 주워들은 얘기에 의하면, 검사로서 책임 있는 자리를 맡으려면 반드시 6서클에 도달해 소드 엑스퍼트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한다.
선봉을 맡은 알비스, 좌익을 맡은 발레드, 우익을 맡은 프리드레이프 모두 소드 엑스퍼트의 검사였다.
‘일단 나는 소드 엑스퍼트 수준의 힘을 지녔다는 걸 증명하는 걸 우선해야겠군.’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가볍게 진기를 운용했다.
하이 리자드맨의 마석에서 얻어낸 마력은 이미 내 단전에 완전히 정착한 상태였다.
‘현재 내공은… 30년 어치.’
20년 정도였던 내공이 30년으로 늘어났다.
하이 리자드맨의 마석이 10년 내공을 늘려주는 영약 역할을 한 셈이다.
‘산술적으로는… 하이 리자드맨의 마석을 세 개 더 먹으면 1갑자에 도달할 수 있다.’
다만, 불안 요소가 있었다.
원래 영약은 먹으면 먹을수록 효과가 떨어지니까.
‘똑같은 영약을 10개 먹는다고 해서 내공 상승량도 10배가 되지는 않지.’
실제로 어느 정도일지는 실험을 해봐야겠지만… 하이 리자드맨의 마석만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경지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결국, 다양한 몬스터를 잡아 봐야겠군.’
궁극적으로는 ‘드래곤 하트’를 지녔다는 드래곤도 잡아 봐야 한다.
아직 한참 먼 얘기겠지만 말이다.
* * *
리자드맨들의 소굴은 이미 정찰병들이 발견해 둔 상태였다.
놈들은 으슥한 계곡을 보금자리로 삼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 저 동굴 안에 부화장이 있을 겁니다.”
지난번에 들은 바에 의하면, 부화장은 몬스터들이 태어나는 웅덩이다.
점액질의 영양 물질이 가득 차 있어서 마치 오물이 가득 찬 늪처럼 보인다고 한다.
“리자드맨들을 소탕한 뒤 그 부화장까지 완전히 없애 버리면 토벌이 완료되는 겁니다.”
“부화장이 없어지면 놈들도 더 이상 태어나지 않겠군.”
“네, 리자드맨 몇 마리를 놓치더라도 부화장만 없애 버리면 놈들은 더 이상 숫자가 늘어나지 않죠. 그러니 부화장을 없애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어윈의 설명을 들으니 대충 이해가 되었다.
“물론, 부화장을 없애는 건 우리가 아니라 알비스 경의 선봉대이겠지만요.”
“…….”
정면에서 돌격하는 건 선봉을 맡은 알비스였다.
좌익의 발레드, 우익의 프리드레이프는 각각 좌측과 우측에서 리자드맨들을 압박할 것이다.
“이제부터 우측으로 움직입니다. 중앙을 맡은 알비스 경의 부대와 연계해서 놈들을 압박할 거니, 다들 함부로 움직이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네!”
프리드레이프의 지시대로 우리는 우측 비탈을 통해 리자드맨들에게 접근했다.
하지만… 나는 조금씩 불길한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뭔가가 있어.’
마음만 같아서는 직접 확인하러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프리드레이프가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고 계속 경고했으니 그럴 수는 없다.
“프리드레이프.”
그래서 나는 직접 프리드레이프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뭔가 수상하다.”
“무슨 소리죠?”
“중앙의 선봉대에게 신호를 보내서 잠시 진군을 멈추게 할 수는 없나?”
“형님, 지금 무슨 황당한 소리를…….”
프리드레이프가 어이없다는 듯이 내 얼굴을 쳐다본 순간.
중앙 쪽에서 굉음이 들렸다.
“……!”
쿠쿠쿵!
갑자기 땅이 꺼지면서 리자드맨들의 소굴로 돌진하던 기사들이 추락했다.
그와 동시에 이곳저곳에 몸을 숨기고 있던 리자드맨들이 뛰쳐나와 공격을 시작했다.
“리자드맨들이 함정을 팠다고?!”
“놈들한테는 저런 작전을 꾸밀 지능이 없는데……!”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여러 기사들이 당황해했다.
리자드맨들이 저렇게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건 그들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인 것 같았다.
‘다들 허를 찔렸군.’
나는 리자드맨들의 습성을 잘 모른다.
하지만 놈들이 평소 안 하던 짓을 하고 있는 거라면,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을 거라 생각한다.
놈들을 조종하는… 하이 리자드맨 이상의 개체가 있는 것이다.
“프리드레이프.”
나는 허를 찔린 상태인 프리드레이프에게 말을 걸었다.
“기사들을 움직여라. 중앙의 선봉대를 구원하려면 네가 움직여야 한다.”
“앗……!”
프리드레이프가 흠칫하면서 다급히 주위에 지시를 내리려 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프리드레이프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훌쩍 몸을 날렸다.
“어딜 가시는 겁니까?!”
“약속했을 텐데. 내 뜻대로 자유롭게 움직이겠다고.”
대형을 유지하면서 얌전히 있을 단계는 이미 지나 버렸다.
지금부터 벌어질 혼전에 대응하려면 나 혼자서 움직이는 쪽이 편하다.
‘사냥을 시작해야겠군.’
수많은 도마뱀 인간들을 향해 도약하면서, 나는 허리에 찬 칼을 뽑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