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91
▣ 91화. 파죽지세 (2)
에인헤랴르와 크레스니크의 영지 사이에 위치한, 오비르 고개의 요새.
본래 크레스니크 측이 외부의 침입을 차단하기 위해 건설한 것이었지만, 현재는 에인헤랴르 대공인 시구르드가 기사들을 이끌고 와 있었다.
시구르드 직속의 흑룡기사단뿐만 아니라, 이바르가 이끌던 청룡기사단까지 머무르고 있는 상태였다.
‘북부대공이 이 병력을 이끌고 침공하면… 크레스니크는 순식간에 멸망하겠군.’
크레스니크 가문의 막내아들인 드미트리는 에인헤랴르 주력 부대의 위용에 감탄했다.
지금 드미트리는 이번 작전에서 에인헤랴르 측과 원활한 협력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이곳에 파견되어 있는 중이었다.
‘아마 드래곤들도 이쪽을 주시하고 있을 거야. 북부대공이 크레스니크를 복속시키려는 건지, 아니면 크레스니크 방면을 통해 드래곤들의 세력권으로 쳐들어가려는 건지… 긴장하면서 쳐다보고 있겠지.’
드래곤들도 에인헤랴르 주력 부대의 움직임은 경계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서쪽의 적룡기사단과 최북단 요새의 백룡기사단 등도 움직이고 있으니…….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전력을 각지에 분산시켰을 것이다.
그 틈을 이용해, 카이트가 이끄는 소수 정예의 공격대가 침투하는 것이다.
“드미트리 공자.”
“아, 네!”
거센 바람에 검은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서 있던 시구르드가 드미트리를 불렀다.
“머지않아 드래곤 측의 보복이 시작될 것이다.”
“보, 보복이라고 하셨습니까?”
“원래 드래곤들은 보복 같은 건 하지 않지만, 원로인 베리타스투스가 쓰러지면 얘기가 달라지겠지. 악룡 파프니르가 직접 지시를 내릴 수도 있다.”
“……!”
“그렇게 되면 크레스니크의 영지가 전화에 휩싸일 가능성도 높다. 그때를 대비해 에인헤랴르의 병력을 일부 파견해 두고 싶다.”
시구르드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크레스니크 입장에서는 에인헤랴르의 병력이 영내에 주둔하는 게 달갑지 않을 수도 있다. 임시 가주를 맡고 있는 예카테리나 공녀와 의견을 교환하고 싶으니, 주선해 주길 바란다.”
“아, 알겠습니다. 누님에게 제가 먼저 연락을 하겠습니다.”
크레스니크 측의 영지를 응시하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나 했더니,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대공 전하.”
“뭐지?”
“이번에 베리타스투스를 토벌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시는 모양이군요.”
시구르드는 베리타스투스가 죽는 걸 전제로 얘기하고 있었다.
“물론이지.”
검은 머리카락을 바람에 휘날리며, 시구르드가 냉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카이트라면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시구르드의 목소리는 냉정했지만… 장남에 대한 깊은 신뢰가 담겨 있었다.
* * *
“수정 동굴의 입구를 발견했습니다. 포로로 잡았던 용귀족이 실토한 정보와 일치합니다.”
정찰에서 돌아온 모리안의 보고를 듣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여기까지 왔군. 표적이 코앞이야.”
지금 우리는 빽빽한 침엽수림 속에서 몸을 숨기고 있는 중이었다.
험난한 산길을 통해 드래곤의 지배 영역을 돌파하여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침엽수림을 지나 산속 깊은 곳에 숨겨진 동굴이 바로 베리타스투스의 본거지였다.
“문지기처럼 드레이크 네 마리가 앞에 어슬렁거리고 있을 뿐, 다른 몬스터 같은 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건 다행이군.”
“원래 드래곤들은 몬스터를 자기들 본거지 근처에는 별로 배치해 놓지 않습니다.”
아그나르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소나 돼지를 기를 순 있겠지만 집 안에서 키우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죠. 같이 지내는 걸 별로 선호하지 않습니다.”
“저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니얼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일반적인 몬스터는 수정 동굴에 없을 겁니다. 시중을 들 용귀족 정도만 있겠죠.”
“용귀족이라…….”
“원로 드래곤의 직속 부하라면 상당히 높은 직위입니다. 용후작이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 대비하는 게 좋을 겁니다.”
니얼의 말을 듣고, 어윈이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용후작… 용귀족 중에서도 상위권의 힘을 갖고 있죠.”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윈 경. 그들은 확실히 대량의 마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소드 엑스퍼트의 손에 쓰러질 때도 많습니다.”
용귀족들은 대량의 마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드래곤들처럼 오러로 육체 표면을 보호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몸으로 마치 대형 몬스터처럼 싸우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육체적 능력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인지, 전투 기술 등은 일반적인 소드 엑스퍼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내 예상이지만, 내 부하 중에서 슈데르츠나 이그니카, 루살카 정도면 용후작하고도 충분히 일대일 대결이 가능할 것이다.
“문제는 저기가 동굴 안이라는 점입니다.”
아나스타샤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안에 드래곤이 몇 마리가 있는지, 용귀족이 몇 명 있는지를 정찰하는 게 어렵습니다. 섣불리 돌입하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아나스타샤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저 안에 생각보다 많은 적들이 숨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제가 내부로 잠입해 보겠습니다.”
“모리안 공녀님,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모리안의 제안에 니얼이 한숨을 내쉬었다.
“공녀님도 위험하고, 자칫하면 놈들이 우리의 작전을 눈치챌 수도 있습니다.”
“으음…….”
기껏 용기를 냈는데 쓴소리를 들어 버린 모리안이 풀 죽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동굴 안의 전력이 어느 정도일지 알 수 없다는 건 확실히 문제입니다.”
아그나르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번처럼 카이트 님과 제가 먼저 돌입해 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
나는 잠시 생각을 해 봤다.
더 괜찮은 작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나스타샤.”
“네, 카이트 님.”
“우리가 드래곤 하트를 몇 개 가져왔었지?”
“다섯 개입니다. 하나는 두고 왔죠.”
아나스타샤에게 드래곤 하트를 이용한 영약 개발을 부탁해 둔 상태지만, 아직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드래곤 하트를 그냥 두고 올 수는 없었기 때문에 이번 원정에 다섯 개를 들고 왔다.
“혹시 이렇게 할 수도 있나? 크레스니크 측의 마법사들이 힘을 합쳐서 말이야.”
“네?”
의아해하는 아나스타샤 앞에서, 나는 내 작전을 밝혔다.
그러자 주위에서 듣고 있던 사람들이 다 같이 숨을 삼켰다.
“카, 카이트 님, 무슨 그런…….”
“그런 게 가능하겠습니까?”
“카이트 님다운 파격성이긴 한데…….”
다른 사람 반응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아나스타샤의 대답이었다.
“아나스타샤, 가능할까?”
“…….”
아나스타샤는 손가락 끝을 입술에 댄 채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합니다.”
“좋아.”
숨을 삼키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 그 작전으로 가지. 동굴 안에 숨어 있는 놈들이 깜짝 놀라도록 말이야.”
* * *
스트라스는 용후작의 작위를 지닌 용귀족이다.
나이는 올해로 178세지만, 30대 후반의 나이에서 노화가 멈췄기 때문에 아직도 젊은 외모를 유지하고 있다.
스트라스는 태어났을 때부터 용귀족이었다. 대대로 베리타스투스를 섬기는 집안에서 태어났기에, 스트라스도 베리타스투스를 섬기는 것에 아무런 의문을 갖지 않고 있었다.
“베리타스투스 님.”
“무슨 일이냐…….”
수정 동굴에서 가장 깊숙한 곳이 베리타스투스의 거처였다.
아름다운 자수정에 뒤덮인 공간에 엎드려 있는 거대한 드래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스트라스는 무한한 감동을 느끼곤 했다.
“섹트리우누스 님이 내일부터 동면에 들어가신다고 합니다.”
“이런 시기에 동면인가. 태평한 녀석…….”
현재 수정 동굴에 머무르고 있는 드래곤은 고작 일곱 마리.
평소에는 스무 마리 가까이 되는 드래곤들이 머무르고 있었지만, 지금은 베리타스투스를 포함하여 일곱 마리뿐이었다.
“그래서 북쪽의 자기 둥지로 귀환하시겠다고…….”
“흠, 하긴 이곳 생활에 질릴 때도 되었지.”
평상시 드래곤은 단독 생활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많은 드래곤들이 모여 있었던 건 일종의 전진 기지이기 때문이다.
베리타스투스를 중심으로 뜻있는 드래곤들이 한곳에 모여 인간들의 움직임에 대처하고 있었다.
“스트라스, 너는 어떠냐……?”
“네? 저 말입니까?”
“너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으냐?”
“고향은…….”
여기서 북쪽으로 더 올라가 만년설 지대를 통과하면, 얼어붙은 대지 위에 용귀족들의 도시가 세워져 있다.
남쪽에 있는 인간들은 상상도 하기 어렵겠지만, 황제의 궁전에도 결코 뒤지지 않는 으리으리한 저택들이 즐비하다.
상당수의 용귀족들은 그곳에서 우아하고 윤택한 생활을 보내고 있다.
“저는 아직 봉공(奉公)을 수행 중입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건 아직 이릅니다.”
“흠, 그런가…….”
용귀족들은 최소 수십 년은 드래곤들에게 봉사를 해야 한다.
봉사를 마치고 다음 용귀족에게 임무를 넘겨준 뒤에야 느긋한 생활이 가능하다.
다만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고, 스트라스처럼 스스로의 의지로 오랫동안 드래곤을 섬기고 있는 용귀족도 있다.
“저는 베리타스투스 님을 모시는 삶에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앞으로 계속 곁에 두어 주셨으면 합니다.”
“기특하구나…….”
그래도 스트라스가 순수한 충성심 때문에 베리타스투스를 섬기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계속 충성심을 보이면… 언젠가는 베리타스투스의 추천을 받아 ‘용공작(龍公爵)’의 작위를 받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용공작은 에인션트 드래곤에게 인정받은 용귀족만이 도달할 수 있는 위치인데, 용공작이 되면 일반 드래곤과 동격(同格)의 존재가 된다.
용후작까지는 드래곤들에게 절대복종해야 하지만, 용공작은 일반 드래곤에게 복종할 의무가 없으며 오로지 에인션트 드래곤의 명령만 듣는다.
이런 용공작이 되어 드래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이 스트라스의 야망이었다.
“베리타스투스 님.”
스트라스는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작전… 긍정적으로 검토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대규모 병력을 동원한 고틀란드 공략 작전 말인가…….”
베리타스투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본래 그런 건 우리 드래곤들의 방식이 아니다. 하지만… 슬슬 괜찮을지도 모르겠군.”
“아……!”
“에인헤랴르도 계속 우리를 도발하고 있지. 파프니르 폐하에게 허락을 받아 보겠다…….”
“감사합니다!”
스트라스는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때는 제가 선봉에 서서 인간들을 도륙하도록 하겠습니다!”
“공을 서두르지 마라, 스트라스. 중요한 건…….”
바로 그때.
갑자기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주위가 진동했다.
“뭐지……?”
“……!”
베리타스투스가 스트라스와 함께 고개를 치켜든 순간.
굉음과 함께 동굴 전체가 흔들리면서, 무수한 자수정 조각이 떨어져 내렸다.
* * *
쿠쿠쿠쿠쿵!
엄청난 진동이 우리 위치까지 전달되었다.
“성공한 건가요?!”
“아무래도 그런 것 같군.”
우리는 나무 위에서 작전 결과를 살폈다.
거대한 산사태에 의해 수정 동굴의 입구가 완전히 파묻힌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 내부도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역시 크레스니크의 마법적 능력은 매우 뛰어나군요.”
근처 나무 위에서 니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래곤 하트 여러 개를 연결한 뒤 그 마력을 활용하여 전개한 ‘폭파 마법’. 지형을 바꿀 정도의 위력이라니… 정말 놀랍습니다.”
그렇다.
아나스타샤가 이끄는 마법병단은 복수의 드래곤 하트를 동시에 사용하며 거대한 마법을 전개했다.
그걸 수정 동굴의 입구를 향해 작렬시켜, 그 주변을 완전히 붕괴시킨 것이다.
‘확실히 대단하군. 무공으로 저런 파괴력을 내는 게 가능할까?’
충분한 준비가 선행되기만 한다면, 마법은 무공이나 오러로는 불가능한 광범위 파괴가 가능하다.
그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다들 준비는 됐겠지.”
“네, 카이트 님!”
“크레스니크의 마법병단은 방금 공격으로 기진맥진한 상태일 것이다. 그쪽의 지원 마법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기사들이 숨을 죽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기사들의 접근전으로 승부를 내야 한다. 알겠나?”
“알겠습니다……!”
바로 그때.
폭파 마법으로 무너져 내렸던 일대가 다시금 흔들렸다.
화산 폭발처럼 엄청난 힘이 분출하면서 땅이 갈라졌고, 브레스로 추정되는 불길이 뿜어져 나오기까지 했다.
그리고… 흙무더기를 뚫고 거대한 생명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드디어 나타났군.”
우리도 이 마법으로 놈들을 모조리 생매장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모조리 무너뜨리면……. 동굴 안에 숨어 있던 드래곤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기어 나올 거라 예상했다.
“드래곤… 일곱 마리!”
“적지는 않지만, 많지도 않은 숫자군요.”
옆에서 니얼이 중얼거렸다.
“잔챙이 용귀족들은 다 깔려 죽었을 겁니다. 그래도 용후작 정도 되는 놈은 살아 있겠죠.”
“그렇겠지. 적절히 분담해서 상대해야 할 거야.”
모습을 드러낸 드래곤 중에, 남들보다 더 큰 몸집을 지닌 적색의 드래곤이 있었다.
아마 저놈이… 베리타스투스일 것이다.
‘저놈은 내가 잡아야겠군.’
멀리서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보이는 붉은 드래곤이 평범한 드래곤보다 훨씬 막강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저 원로 드래곤을 해치워 드래곤 하트를 얻는다면… 내공을 한 단계 더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슬슬 움직이도록 하지.”
그렇게 말하며 나는 검을 뽑아 들었다.
“드래곤 사냥이다.”
둥지를 폭파당해 이성을 잃었을 드래곤들을 향해, 기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