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92
▣ 92화. 파죽지세 (3)
“진형대로 움직여라!”
“알겠습니다!”
선두에 선 것은 나와 아그나르였다.
그 뒤를 내 직속인 이그니카와 루살카가 따랐고, 이어서 모리안과 니얼이 따라왔다.
좌익과 우익에는 각각 어윈이 이끄는 감찰기사대 1분대와 슈데르츠가 이끄는 감찰기사대 2분대가 위치했으며, 후방에는 황룡기사단에서 파견된 기사들과 피어너 창기사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카이트 님, 드래곤 두 마리가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군요. 그리고… 아까 문지기 역할을 하던 드레이크도 있습니다.”
“드레이크도? 그 폭발에서 용케 살아남았군요.”
어깨를 나란히 하고 질주하면서 나는 아그나르와 함께 의견을 교환했다.
“이렇게 합시다. 좌측 드래곤은 제가, 우측 드래곤은 카이트 님이 맡는 걸로.”
“적절하겠군요.”
그렇게 결론을 내린 직후.
아그나르는 좌측 드래곤을 향해, 나는 우측 드래곤을 향해 움직였다.
쿵쾅거리며 땅을 달려오는 드레이크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정도쯤은 내 부하들이 상대할 수 있을 테니까.
* * *
“드레이크 네 마리 접근!”
앞서가던 루살카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니얼이 손을 치켜들어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미리 훈련한 대로 기사들이 움직였다.
“이그니카 언니.”
“그래!”
가장 앞장서서 달려든 드레이크와 접촉하기 직전, 이그니카와 루살카가 도약했다.
먼저 공격한 건 이그니카였다. 공중에서 쌍검으로 연리음양검을 펼치면서 드레이크의 육체에 상처를 냈다.
“루살카!”
“네……!”
쐐애액!
루살카가 펼친 수라비룡검 섬뢰가 드레이크의 옆구리를 꿰뚫었다.
“케에엑……!”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치는 드레이크.
거대한 도마뱀의 몸부림에 부딪히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이그니카와 루살카는 다음 공격을 위해 신속히 움직였다.
그녀들은 차르노보그에게 철저히 교육받은 8서클의 소드 엑스퍼트.
카이트의 집중교육으로 ‘검법’까지 습득한 그녀들에게, 드레이크 한 마리를 상대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모리안 공녀님, 제가 주의를 끌겠습니다!”
“네, 부탁드립니다!”
평상시에는 참모로서의 역할에 주력하고 있지만, 니얼 또한 8서클의 소드 엑스퍼트.
오러 블레이드를 전개하면서 맹렬한 공격을 펼치자, 무섭게 달려들던 드레이크가 주춤했다.
그러는 사이, 모리안은 게 볼그를 든 채 마력을 끌어올렸다.
“하아압……!”
지난번에 아카샤니그두의 습격을 받았을 때, 모리안은 무력했다.
그 분통함을 원동력 삼아, 모리안은 그동안 열심히 수련을 해 왔다.
그 덕택에… 신화병장인 게 볼그의 힘을 제대로 끌어낼 수 있게 되었다.
“……!”
쿠웅!
니얼이 몸을 비키는 순간에 맞춰서, 게 볼그를 투척했다.
그리고, 게 볼그가 드레이크의 몸통에 꽂힌 순간.
“크어어어어!”
푸푸푹!
게 볼그에게서 돋아 나온 ‘가시’가 드레이크의 체내를 유린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것이 신화병장인 게 볼그의 진정한 힘이다. 본래 게 볼그는 특별한 마수(魔獸)의 뼈로 만들어진 것인데, 오러를 잔뜩 불어넣으면 뼈가 증식하여 수많은 가시가 돋아난다.
“좀 잔인한 것 같아서,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모리안이 게 볼그를 뽑아내자, 드레이크의 몸에서 엄청난 피가 솟구쳤다.
결국 드레이크는 쿵 소리를 내며 쓰러졌고…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1분대는 좌측에서 달려오는 드레이크를 맡는다!”
“2분대! 우측의 드레이크를 해치운다!”
좌익의 1분대와 우익의 2분대가 드레이크를 상대하기 위해 움직였다.
“캬아아아!”
“크아아아!”
무서운 기세로 달려드는 드레이크.
저 녀석들은 예전에는 카이트가 해치웠었다. 당시 기사들은 드레이크에게 전혀 상대가 안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춤하는 기사는 아무도 없었다.
“계도나후진(計都羅睺陳)을 펼쳐라!”
“훈련대로 움직인다!”
1분대를 지휘하는 어윈, 2분대를 지휘하는 슈데르츠의 지시에 따라 기사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카이트가 훈련시킨 계도나후진은 육합흑구검법의 사용을 전제로 한다.
철저한 방어를 추구한 움직임으로 드레이크의 돌진을 틀어막았다.
“……!”
드레이크의 공격에 밀려나는 기사가 있으면 다른 기사가 그 공백을 메웠다.
어느새 드레이크는 기사들에게 완전히 포위된 상태였다.
“카아아……!”
“쿠오오……!”
기사들이 쉴 새 없이 위치를 바꾸면서 공격을 펼쳤다.
드레이크가 반격을 해도 소용없었다. 견실한 방어로 막아 낸 뒤 곧바로 다른 사람과 위치를 바꿨다.
어지럽다는 듯이 드레이크가 머리를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카이트가 가르쳐 줬던 대로, 실제로 현기증을 느끼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
기사들은 잡념을 버리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들 전체가 공유하는 일체감에 의해 진법 자체의 완성도가 점점 높아졌다.
그 속에 갇힌 드레이크가 압박감을 느끼는 듯이 움츠러드는 모습이 보였다.
그 순간, 계도나후진이 절정에 달했다.
“하압!”
“흐읍!”
일식과 월식을 일으키는 계도성과 나후성처럼, 진법이 드레이크를 집어삼켰다.
일제히 움직인 기사들의 칼날이 드레이크의 전신에 꽂혔다.
좌측에서는 어윈과 모르트의 검이 동시에 드레이크의 양쪽 눈을 찔렀고, 우측에서는 슈데르츠의 오러 블레이드가 드레이크의 목을 관통했다.
“끄으으…….”
“크어…….”
쿵! 쿠쿵!
단말마의 비명을 흘리며 쓰러지는 드레이크들.
기사들은 피투성이였지만 대부분 드레이크의 피였다. 중상자는 아무도 없었다.
카이트의 명령에 따라 매일 열심히 훈련해 온 성과라는 걸 깨닫고, 기사들은 다 함께 웃었다.
* * *
부하들이 드레이크를 하나씩 쓰러뜨리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우측으로 달려 나갔다.
암갈색의 드래곤 하나가 눈을 부릅뜬 채 이쪽을 날아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만난 파프니르 파벌의 드래곤들은 거의 다 어두운색이었던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암갈색 드래곤이 입을 벌린 채 포효했다.
“대체 뭐하는 놈이냐……!”
“글쎄, 뭘까.”
“네놈! 이름을 밝혀라! 나는 섹트리우누스! 수백 년 전부터 위대한 파프니르 폐하께 충성을 바치며 지혜로운 베리타스투스 님과 함께 싸워 온…….”
“자기소개가 너무 길다.”
짤막하게 대꾸하면서, 오른손에 뇌기(雷氣)를 모았다.
수라창뢰검 절기 뇌광(雷光)으로 칼라드볼그를 사출하자, 천둥소리와 함께 한 줄기 번개가 하늘을 갈랐다.
“크어억……!”
칼라드볼그는 섹트리우누스의 날개에 박혔다.
균형을 잃은 섹트리우누스가 추락하는 것에 맞춰서, 나는 허리에 차고 있던 발뭉을 뽑았다.
나중에 자기가 직접 발뭉을 휘두를 수 있게 되었을 때 돌려받겠다며 이바르가 나한테 빌려준 것이었다.
‘전부터 어렴풋이 느낀 거지만…….’
칼라드볼그는 뇌기에 잘 반응하는데, 뇌기는 양(陽)의 기운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발뭉은 음(陰)의 기운에 더 잘 반응하는 것 같았다.
‘발뭉은 빙검(氷劍)에 더 어울려.’
음기를 끌어올렸다.
서늘한 한기가 느껴지기 시작한 발뭉을 들고 도약했다.
섹트리우누스가 눈을 부릅뜨고 입을 크게 벌리는 모습이 보였다.
브레스가 올 것이다.
‘소용없지.’
발뭉으로 검막을 펼쳤다.
이미 차가운 기운이 발생하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냉기의 검막이라 할 수 있었다.
“크아아아……!”
쿠쿠쿠쿵!
섹트리우누스의 입에서 발사된 화염의 폭포가 내 위로 떨어졌지만, 냉기의 검막을 뚫지 못하고 사방팔방으로 흩어질 뿐이었다.
“좀 따뜻해졌군.”
“네놈, 어떻게 막아 낸 거냐……?!”
섹트리우누스가 경악했다.
그 직후, 섹트리우누스가 눈을 크게 뜨고 내 얼굴을 다시 살펴봤다.
“잠깐, 설마 네놈……!”
“그러고 보니 내 이름을 대지 않았군.”
섹트리우누스가 먼저 자기 이름을 밝혔으니, 나도 이름을 밝히는 것이 예의겠지.
“카이트 에인헤랴르다.”
“……!”
짤막한 자기소개만으로도 충분했다.
섹트리우누스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눈을 치켜뜨고 나를 노려봤다.
“그런가, 네놈이 바로… 에인헤랴르의 장남!”
섹트리우누스의 전신에서 분노가 느껴졌다.
“아카샤니그두, 테르라샤크두, 샤가르디오스, 트리케트라스, 바빌라인투두, 세인트갈리아, 맥크라페리온… 많은 동족이 너에게 목숨을 잃었다!”
“생각해 보니 단기간에 좀 많이 죽이긴 했군.”
“특히 맥크라페리온은 내가 특별히 아끼던 후배였다. 그 어린놈을 죽인 것으로도 모자라서, 이곳까지 쳐들어오다니……!”
“나한테 이곳을 가르쳐 준 게 맥크라페리온이었다.”
내 말을 듣고, 섹트리우누스가 몸을 움찔했다.
“네놈… 지금 뭐라고 했지?”
“너희 동료한테 위치를 들었으니 이곳에 온 거야. 그런 게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침투할 생각을 못 했겠지.”
“마, 말도 안 된다. 어떻게…….”
“나는 너희들을 통솔하는 베리타스투스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
“베리타스투스 님에게……?”
“그래.”
얼어붙을 듯한 냉기를 발산하는 발뭉을 손에 든 채, 섹트리우누스에게 다가갔다.
“너희들의 죽음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묻고 싶으니까.”
“무슨 헛소리를……!”
섹트리우누스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포효했다.
그 분노는 자연스러운 것일까, 아니면 에인션트 드래곤인 파프니르가 심어 준 것일까.
어쨌든 나를 죽이기 위해 달려드는 이상, 자비를 베풀어 줄 필요는 없다.
“크아아……!”
전신에서 불꽃을 뿜으며 섹트리우누스가 달려들었다.
강대한 마력에 의해 발생한 화염 마법이 나를 불태우려 했지만, 발뭉에서 발생하는 냉기가 모든 열기를 차단했다.
“죽어라, 에인헤랴르의 장남……!”
불꽃과 함께 섹트리우누스가 앞발을 치켜들었다.
그 앞에서 나는 발뭉을 잡고 자세를 취했다.
‘수라백상검, 은화(銀華).’
파앗.
섹트리우누스의 옆으로 스쳐 지나가며, 일직선의 횡(橫) 베기를 펼쳤다.
그리고 암갈색 드래곤의 목에 생긴 상처에서 얼음이 퍼져 나갔다.
“……!”
파파팍!
은색의 꽃이 피듯이, 섹트리우누스의 목이 얼음으로 뒤덮였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번 발뭉을 휘둘러, 얼어붙은 섹트리우누스의 목을 쳤다.
쩌쩍!
얼어붙어 있던 섹트리우누스의 목 전체가 산산조각 났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섹트리우누스의 머리가 땅으로 떨어졌다.
“말도, 안 된다, 어떻게, 이런…….”
다시 한번 검을 휘둘러 섹트리우누스의 머리 전체를 얼려 버렸다.
말 상대를 해 줄 이유도 없고, 내 부하들이 지나가다가 이 녀석이 계속 떠들어 대는 걸 보고 깜짝 놀랄 수도 있으니까.
“카이트 님.”
고개를 돌려 보니, 좌측에서 아그나르가 검을 거둬들이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두개골이 두 조각난 흑색 드래곤의 머리를 밟고 서 있었다.
“아직 다섯 마리 남았습니다. 어서 움직이죠.”
한 마리의 드래곤과 싸움을 마쳤는데도 불구하고, 아그나르는 아직 여유로워 보였다.
역시 에인헤랴르를 대표하는 소드 마스터 중 한 명다웠다.
“두 마리씩 잡고, 마지막 한 놈은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 잡는 걸로 하면 어떻겠습니까.”
“카이트 님, 마지막 한 놈은 베리타스투스 아닙니까? 혼자서 상대하는 건 어려울 텐데요.”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아그나르가 대꾸했다.
“그래도 뭐, 나쁘지 않군요. 한번 해봅시다.”
“그러죠.”
전장에서의 아그나르는 의외로 혈기 넘치는 남자였다.
그 모습을 든든하게 생각하면서, 나는 앞으로 나섰다.
계속해서 몰려드는 드래곤들을 도륙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