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93
▣ 93화. 원로 드래곤 토벌 (1)
“베, 베리타스투스 님!”
용후작 스트라스는 흙먼지가 묻은 머리카락을 털어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인간들이 공격해 왔습니다! 이거 아무래도……!”
“호들갑 떨지 마라… 스트라스.”
붕괴된 동굴 밑에서 기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베리타스투스의 몸에는 먼지 하나 묻어 있지 않았다.
“아무래도… 우리가 당한 것 같구나.”
“네?”
“에인헤랴르의 움직임을 경계해서 각지에 드래곤들을 파견한 게 실수였군…….”
“……!”
에인헤랴르의 합동 군사 훈련.
그걸 경계해서 베리타스투스는 수정 동굴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드래곤들을 각지에 파견했다.
그 탓에 수정 동굴의 전력이 빈약해진 상태였는데……. 딱 그 시점에 맞춰서 인간들이 쳐들어온 것이다.
“아무래도 에인헤랴르 측의 계략이었던 모양이구나…….”
“계략……!”
스트라스 입장에서는 낭패 그 자체였다.
드래곤들과는 다른 관점에서 인간들의 동향을 살피며 대응하는 것도 용귀족의 역할이었으니까.
“네가 책임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드래곤들을 각지에 파견하는 것을 결정한 건… 나였으니까.”
“하, 하지만 베리타스투스 님.”
“일단 움직여라… 스트라스.”
베리타스투스의 말을 듣고, 스트라스는 몸을 움찔하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놈이 오고 있으니까…….”
“……!”
저 멀리서, 검은 머리의 청년이 드래곤의 목을 베는 모습이 보였다.
* * *
“하우레스디스……!”
흑회색 드래곤이 쓰러지는 모습에 남색 드래곤이 목소리를 높였다.
드래곤 두 마리가 함께 덤벼들었는데, 그중 더 과감하게 움직였던 흑회색 드래곤의 목이 먼저 날아갔다.
“네, 네놈도 소드 마스터냐……?!”
“그렇게 인정받았지.”
“제, 젠장…….”
남색 드래곤이 몸을 움츠렸다.
동료인 하우레스디스가 브레스 한번 못 쓰고 허망하게 죽는 모습을 보고 겁을 먹은 모양이었다.
“저, 젊은 소드 마스터여…….”
“뭐지?”
“협상을 하자. 난 유라코네우스는… 너와 대화를 할 용의가 있다.”
“얼씨구.”
겁이 많은 개체인 걸까.
싸우던 도중에 대화로 해결하자고 하는 드래곤은 처음이었다.
“원래 나는 싸움을 선호하는 드래곤이 아니다. 그 점… 알아줬으면 한다.”
“그래서, 어쩌자는 거지?”
“대, 대화를 하자니까. 이런 식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알맹이가 있는 소리를 해라, 유라코네우스.”
“네, 네 목적은 뭐냐? 베리타스투스 님을 죽이는 거라면 나는…….”
설마 자기는 물러날 테니 베리타스투스는 죽이든 말든 맘대로 하란 말인가.
“카이트 님!”
그때 등 뒤에서 부하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레이크 말고도 너커 등의 하위종들이 몇 마리 있었기 때문에, 부하들한테는 그런 놈들을 상대하는 걸 맡긴 상태였다.
“가까이 오지 마라, 위험하니까.”
잠깐 뒤돌아보면서 그렇게 말한 순간.
유라코네우스가 입을 쩍 벌리는 기척이 느껴졌다.
“카아아……!”
브레스를 뿜기 위해 마력을 응축되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유라코네우스는 브레스를 뿜지 못했다.
내가 이미 칼라드볼그에 뇌기를 담아 사출했기 때문이다.
“끄아악……!”
“비열한 짓을 하는군.”
칼라드볼그가 입안에 박혀 피를 토하는 유라코네우스.
발버둥치면서 어떻게든 검을 뽑아내려 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이미 내가 발뭉을 들고 접근하고 있었으니까.
“……!”
파앗!
차가운 검에 의해 목이 잘려, 유라코네우스의 머리가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런, 젠장…….”
“드래곤들은 자존심이 높다고 알고 있었는데, 꼭 그렇지도 않은가 보군.”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자, 니얼이 다가와 입을 열었다.
“자존심을 챙기면서 싸울 상대가 아니라는 걸 깨달은 거죠.”
“그런가?”
“네, 물론 개체간의 차이도 있겠습니다만.”
니얼의 설명을 들으며, 나는 앞으로 전진했다.
어느새 이그니카와 루살카, 모리안도 나를 따라잡은 상태였다.
“…….”
그리고.
가장 거대한 적색 드래곤과 비로소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머, 멈춰라!”
하지만 30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나를 가로막았다.
아무래도 용귀족인 것 같았다.
“더 이상의 접근, 허용하지 않겠다!”
마법을 쓰려는 듯이 마력을 끌어올리는 게 느껴졌다.
그러자 이그니카와 루살카가 앞으로 나섰다.
“카이트 님, 저 정도 잔챙이는 저희가 상대하겠습니다.”
“카이트 님이 나설 정도의 상대가 아닙니다.”
“뭐, 뭐라고?”
이름 모를 용귀족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오른손을 치켜들었다.
“목숨이 아깝지 않나 보구나! 내가 누구인지 알고…….”
용귀족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그니카와 루살카가 움직였다.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으로 루살카가 용귀족의 오른팔을 베었고, 이어서 이그니카의 쌍검이 용귀족의 목과 가슴에 꽂혔다.
“어, 어떻게…….”
입에서 피를 흘리며 용귀족이 비틀거렸다.
“나는, 공을 세워서, 용공작의 작위를…….”
촤악!
루살카의 일격이 용귀족의 머리와 몸을 분리했다.
완전히 조용해진 용귀족의 모습에, 거대한 적색 드래곤이 탄식했다.
“참으로… 덧없구나.”
위엄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아무래도 몸집만 큰 게 아닌 것 같았다.
“용귀족들은 평범한 인간보다 강인한 육체를 지니고 있다. 마력량도 많지. 하지만… 육체가 부실하고 마력도 부족한 인간에게 당할 때가 많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글쎄.”
나는 냉담하게 대꾸했다.
“아마 너희 드래곤들이 인간들한테 당하는 이유와 비슷하지 않을까.”
“뼈아픈 지적이군…….”
적색 드래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용귀족들은 우리 드래곤들을 닮아서 절실하지 않지. 절실하지 않기 때문에 실력을 제대로 갈고닦지 않고, 인간 상대로 필사적으로 싸우지 못한다…….”
“…….”
“물론… 가끔 예외는 있지만 말이다.”
그렇게 말하며 적색 드래곤이 내 얼굴을 쳐다봤다.
“만나서 반갑다, 카이트 에인헤랴르…….”
“나를 알아보는군.”
“현재 북부에서 이런 일을 벌일 만한 청년은… 너 하나뿐이지.”
적색 드래곤이 미소를 지었다.
“내가 베리타스투스다. 나를 쓰러뜨리러 온 것이냐……?”
“정확히는 네 본거지를 괴멸시키러 온 것이지.”
“그렇군. 절반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겠구나…….”
그렇다.
아직 절반밖에 끝나지 않았다.
베리타스투스를 쓰러뜨려야 이번 작전이 완수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카이트 에인헤랴르… 내가 여기서 날개를 퍼덕여 더 북쪽으로 도망치면 그 시점에서 너는 임무에 실패하는 것 아니냐?”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베리타스투스는 드래곤 중에서도 원로에 해당되는 중진이다.
그런 드래곤이 자존심을 버리고 도망칠 것 같지는 않았다.
“작전상 후퇴라고 생각하면 못할 것도 아니지, 카이트 에인헤랴르…….”
“놀랍군. 너희 드래곤에게 그런 개념이 있는 줄은 몰랐어.”
“오래 살았기 때문에 사고방식이 유연한 편이다. 괜히 원로인 게 아닌 것이지…….”
그 직후.
사방에서 부스럭 소리가 들렸다.
“이건……!”
니얼이 다급히 주위를 둘러봤다.
“카이트 님! 당했습니다!”
“뭐지?”
“용아병입니다!”
투툭, 투툭!
땅속에서 수많은 ‘뼈다귀’들이 일어서기 시작했다.
살 없이 뼈만 남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일어서서 움직였다.
그 모습을 보고 다들 당황스러워했다.
“드래곤의 이빨을 촉매로 삼아 죽은 자들을 살려 내는 술법입니다! 이미 소실된 술법인 줄로만 알았는데……!”
“나는 오랜 옛날부터 활동해 왔다. 이 술법이 소실되기 이전부터 말이다…….”
덜그럭, 덜그럭!
뼈마디를 부딪치면서 해골 병사들이 우리를 포위했다.
대부분 몬스터의 해골이지만 인간의 해골도 있었다. 예전에 이 일대에서 죽은 인간의 유골 같았다.
‘강시도 아니고 해골 병사들에게 둘러싸이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군.’
신기하긴 했지만, 동요를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소드 엑스퍼트 수준만 되어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적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카이트 님!”
쿠웅!
바람처럼 날아온 아그나르가 착지하면서 검을 휘두르자, 오러 블래스트에 휩쓸린 용아병들이 나가떨어졌다.
“제가 먼저 도착했으니, 아그나르 경은 물러나 있으시죠.”
“지금 그런 말을 할 때입니까?”
아그나르가 인상을 찌푸리며 베리타스투스를 쳐다봤다.
“네가 베리타스투스인가?”
“그렇다, 에인헤랴르의 소드 마스터여…….”
“그동안 네가 여러 드래곤들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었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로 끝이다.”
아그나르가 검을 치켜들면서 오러 블레이드를 전개했다.
“과연 그럴까……?”
바로 그때.
배후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으악!”
“드, 드래곤들이……!”
뒤돌아본 순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동안 우리가 해치운 드래곤 여섯 마리가… 다시 일어서고 있었던 것이다.
목이 잘렸든, 가슴에 구멍이 뚫렸든 상관하지 않고, 피를 뚝뚝 흘리면서.
“대단한 사술(邪術)을 쓰는군, 베리타스투스.”
원래 나는 웬만해서는 사술이란 말을 운운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해야 했다.
“해골과 시체를 조종하다니, 드래곤의 품격은 어디에 갖다 버린 거지?”
“후후후…….”
베리타스투스가 처음으로 웃음소리를 냈다.
“먼저 선을 넘은 것은 너희들이다…….”
“우리가 먼저 선을 넘었다고?”
“그렇지. 너희들이 여기까지 쳐들어오는 건 솔직히 예상치 못한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베리타스투스가 앞발로 북쪽 하늘을 가리켰다.
“이곳이 괴멸당했다는 것을 알면 파프니르 폐하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도 무사하기 어렵겠지.”
“…….”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너희들을 몰살시킬 수밖에 없다. 결국… 다 너희가 자초한 일인 것이다.”
베리타스투스의 엄숙한 목소리에 다들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는 냉담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 베리타스투스.”
“뭐라고……?”
“우리가 여기까지 쳐들어오는 건 선을 넘은 행위다? 그동안 너희는 마음껏 인간들의 영역을 침범했을 텐데.”
“…….”
“얼마 전에도 아카샤니그두가 대군을 이끌고 얼스터 지역을 침략했어. 가문 하나를 멸망시키려 했었지. 그게 지금 우리가 한 일보다 심한 짓인가?”
나는 칼라드볼그를 치켜들며 말했다.
“오히려 내 쪽에서 말하지. 그동안 너희들은 ‘내 앞에서’ 선을 넘는 짓을 너무 많이 했어.”
“네 앞에서……?”
“그래.”
만약 드래곤들이 직접 내가 있는 곳으로 쳐들어오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고틀란드나 감찰기사대 본부에서 느긋하게 수련이나 하고 있었을 것이다.
놈들이 계속 나타나서 나를 도발해 댔기 때문에… 지금 내가 여기까지 올라온 것이다.
“결국 다 너희가 자초한 일인 거다, 베리타스투스.”
“…….”
베리타스투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그야말로… 오만 그 자체이구나, 카이트 에인헤랴르.”
“그 말, 그동안 너무 많이 들어서 식상한데.”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 순간.
베리타스투스의 머리 옆에서 강렬한 기운이 느껴졌다.
강력한 공격 마법이 연속적으로 준비되고 있다는 걸 감지하고, 나는 입을 열었다.
“아그나르 경.”
“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드래곤 사체를 상대해 주십시오. 저 드래곤 사체들의 전투력이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겠지만, 일반 기사들이 맞서 싸우기에는 역부족일 겁니다.”
“카, 카이트 님, 그럼 저놈은…….”
“베리타스투스는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저놈은 일반 드래곤들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입니다! 딱 보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협공해야……!”
“잊으셨습니까?”
나는 아그나르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마지막 한 마리는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 잡는 걸로 했을 텐데요.”
“……!”
숨을 삼키는 아그나르를 내버려 둔 채, 나는 앞으로 달려 나갔다.
“카이트 님!”
“아그나르 경, 카이트 님의 지시에 따라 주십시오! 카이트 님은 승산 없는 싸움에 나설 분이 아닙니다! 그러니 부디……!”
“젠장……!”
니얼에게 제지당한 아그나르의 욕설을 내뱉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나도 더 이상 뒤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너희들을 몰살시키고… 발뭉과 칼라드볼그, 게 볼그를 파프니르 폐하에게 진상하여 용서를 빌 것이다.”
“용서를 빌고 싶다면…….”
콰콰콰쾅!
지옥 같은 불길이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칼라드볼그와 발뭉을 동시에 뽑았다.
“지옥에서 빌도록 해라, 베리타스투스.”
격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