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95
▣ 95화. 원로 드래곤 토벌 (3)
‘냉기? 쓸모없는 짓을 하는군.’
카이트에게서 냉기가 분출되는 것을 인식한 순간, 베리타스투스는 코웃음을 쳤다.
소드 마스터이면서 빙결 마법과 비슷한 힘을 사용하는 건 확실히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그런 걸로는 베리타스투스의 오러 블레이드를 막아 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얼음 장벽을 만들어 오러 블레이드를 막아 낼 생각이겠지.’
크레스니크의 마법사들이 종종 그런 식의 방어 마법을 쓸 때가 있었다.
9서클의 매직 마스터가 얼음 장벽을 만들면 웬만한 공격은 다 막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다.’
9서클 매직 마스터가 방어 마법을 펼쳐도, 베리타스투스가 만드는 오러 블레이드를 완벽하게 막는 건 불가능하다.
오러 블레이드 한두 자루가 꽂히는 정도는 견뎌 낼 수 있어도, 수십 자루가 연달아 꽂히면 결국 방어막은 깨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베리타스투스는 오러 블레이드 한 자루 한 자루를 정확히 컨트롤하고 있기 때문에, 방어막이 커버해 주지 못하는 빈틈을 얼마든지 공략할 수 있다.
그러니… 카이트는 소용없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걸로 끝이다, 카이트 에인헤랴르.’
서로 다른 궤도를 그리며, 백여 자루의 오러 블레이드가 카이트에게 쇄도했다.
카이트가 저걸 막으려고 해도 아무 소용없을 것이다.
이제 곧 오러 블레이드가 카이트의 육체를 관통할 것이고, 그 숨통을…….
“……!”
바로 그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카이트를 향해 쇄도하던 백여 자루의 오러 블레이드가… 모조리 정지해 버린 것이다.
공중에서 미동조차 못 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베리타스투스는 오러 블레이드를 다시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전혀 반응이 없었다.
“대체…….”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모든 오러 블레이드가 공중에서 정지한 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 앞에서, 베리타스투스는 전율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카이트 에인헤랴르……!”
* * *
빙공(氷功)은 빙결 마법과는 다르다.
빙결 마법은 마법사의 마력을 이용해 주위의 온도를 낮추고 얼음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빙공은 다르다. 빙공에서는 주위를 얼리는 것이 아니라 무인의 기(氣)를 차갑게 만들어 방출한다.
그렇기 때문에 빙공의 냉기는 자연의 냉기와 다른 성격을 띤다.
“본래 빙공이라는 것은…….”
모든 것이 얼어붙은 세상 속에서, 나는 천천히 말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얼음의 무공이 아니라 극음(極陰)의 무공이다. 냉기가 발생하고 얼음이 어는 것은 음(陰)의 작용에 지나지 않아.”
“뭐, 뭐라고……?”
베리타스투스가 당혹스러워하며 나에게 시선을 향했다.
“그렇다면 극음이란 무엇일까.”
“……?”
“극음은 오행(五行)에서는 수행(水行)에 해당된다. 그 성질은 모든 것이 얼어붙는 겨울과 같지.”
오행에서 조화와 변화를 뜻하는 토(土)를 제외한 목화금수(木火金水)는 각각 4계절의 성질에 대응된다.
양중지음(陽中之陰)인 목(木)은 봄에 새싹이 나듯이 뻗어 나가는 힘.
양중지양(陽中之陽)인 화(火)는 여름에 잎이 무성해지듯이 넓게 퍼지는 힘.
음중지양(陰中之陽)인 금(金)은 가을에 열매를 맺듯이 끌어모으는 힘.
그리고 음중지음(陰中之陰)인 수(水)는 겨울에 초목이 모든 생명 활동을 멈추는 것처럼… 정지시키는 힘.
“빙공에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단순히 적을 얼려 버리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을 정지시키는 것이지.”
“모든 것을… 정지시킨다고?”
그렇다.
북해빙궁의 빙공을 연구하여 만들어진 수라백상검 또한, 궁극적으로는 모든 것을 정지시키는 것을 추구한다.
그렇기에 수라백상검의 절기(絶技)는 수라창뢰검의 절기 ‘뇌광(雷光)’ 같은 순수한 공격기가 아니다.
검에서 극한의 음기를 방출하여 주위를 모조리 정지시키는 기술…….
그것이 바로 수라백상검의 절기인 ‘백야(白夜)’였다.
“네가 뿜어 내는 냉기에는, 모든 것을 정지시키는 힘이 담겨 있단 말이냐? 내 오러 블레이드조차……?!”
“그런 것이다, 베리타스투스.”
“어, 어떻게 그럴 수가…….”
“오히려 무형의 오러 블레이드라서 더 쉽게 막을 수 있었지.”
“뭐, 뭐라고……?!”
베리타스투스의 오러 블레이드가 실체를 지닌 검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완벽히 막아 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실체를 지닌 물질을 완전히 정지시키는 건 6갑자 내공으로는 어림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리타스투스의 오러 블레이드는 실체 없는 무형검이었다.
무형의 기운만으로 만들어진 검이었기에, 무형의 음기(陰氣)로 정지시키는 것이 더 수월했다.
“그,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다……!”
파파팟!
베리타스투스의 주변에서 또다시 백여 자루의 오러 블레이드가 생성되었다.
그것들이 나를 향해 쏟아졌지만, 역시 공중에서 정지했다.
백야의 영향권 안에 들어온 시점에서 움직임을 멈출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건, 있을 수가……!”
파파파팟!
베리타스투스가 또다시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어서 사출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소용없었다. 극한의 음기에 사로잡혀, 시간이 멈춘 것처럼 공중에서 정지했다.
“어떻게……!”
계속해서 날아온 오러 블레이드가 내 주위를 완전히 가득 채웠다.
수백 자루의 무형검이 나를 둘러싸고 정지해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헉, 헉…….”
베리타스투스의 입가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베리타스투스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드래곤이라고 해도 이렇게 많은 숫자의 무형검을 동시에 조종하는 건 부담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리고 이건 내 노림수이기도 했다.
‘드디어 승기(勝機)가 보이는군.’
사실 나한테도 여력이 거의 없었다.
이 정도의 음기를 방출하는 건 지금의 나로서도 부담이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리타스투스가 내 도발에 넘어가 무형검을 연발해 준 덕분에… 베리타스투스도 한계에 도달했다.
‘나라도 무형검 수십 자루를 제어하려고 하면 머리가 터져 버릴 거야. 그런데 무형검 수백 자루를 만들었으니……. 아무리 드래곤이라고 해도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나를 포위하려던 수백 자루의 오러 블레이드는 결국 모조리 소멸해 버렸다.
그걸 확인하면서 나는 주위에 방출했던 음기를 다시 끌어들였다.
‘본래 백야는 두 단계의 기술.’
첫 번째 단계는 극한의 음기로 주위를 얼려 버리는 것.
두 번째 단계는… 역할을 완수한 음기를 다시 모아서, 검에 부여하는 것.
‘평범한 검이라면 견디지 못하겠지만, 신화병장인 발뭉이라면…….’
극한의 음기가 발뭉의 칼날에 압축되었다.
내가 잡고 있는 칼자루까지 차가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위기(衛氣)를 강화하여 한서불침, 수화불침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내 손까지 얼어붙었겠지.’
본래 백야는 원래 북해빙궁 궁주의 성명절기였던 기술이다.
백야를 펼칠 때 궁주는 마지막에 장법(掌法)으로 마무리를 지었는데, 빙공의 극에 달한 궁주조차 손이 얼어붙는 문제점이 있었다.
하지만 수라백상검은 검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 부분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 그건 또 뭐냐! 발뭉의 힘인가……!”
베리타스투스가 뒷걸음치며 물었다.
하지만 이미 내 목표는 달성되었기 때문에, 굳이 일일이 원리를 설명해 줄 이유가 없었다.
“크윽……!”
현재 베리타스투스는 오러 블레이드 수백 자루를 만들고 제어하느라 많이 지쳐 있었다.
복잡한 전술을 펼치면서 나에게 대항할 여유는 없을 것이다.
“크아아악……!”
베리타스투스가 야수처럼 포효하면서 입을 벌렸다.
드래곤 최강의 무기인 브레스로 나에게 맞서려는 것이다.
지극히 드래곤다운 전법이었지만, 내 앞에서 노련한 모습을 보여 주던 베리타스투스답지 않은 전법이었다.
“해 봐라, 베리타스투스.”
나는 발뭉을 치켜든 채 말했다.
“이걸로 끝이니, 네 전력을 다해 봐라.”
“카이트 에인헤랴르……!”
절규하듯이 내 이름을 부르면서, 베리타스투스가 막강한 화염을 토해 냈다.
그와 동시에 나는 발뭉을 앞으로 내밀며 도약했다.
“……!”
브레스 앞에 몸을 날린 순간, 발뭉의 냉기가 화염을 좌우로 갈랐다.
드래곤 최강의 화염 공격을 말 그대로 ‘베어 버리면서’ 쇄도했다.
“오오오……!”
베리타스투스의 포효가 들려왔다.
그것은 겁먹은 듯한 목소리이기도 했고, 경탄하는 듯한 목소리이기도 했다.
“카이트 에인헤랴르, 너란 존재는 대체……!”
쉬익!
극한의 음기가 실린 발뭉을, 베리타스투스를 향해 휘둘렀다.
칼날을 닿게 할 필요조차 없었다.
차가운 기운이 하나의 참격(斬擊)이 되어 베리타스투스를 덮쳤다.
* * *
극심한 피로감을 느꼈다.
이미 나는 베리타스투스에 도달하기 전에 세 마리의 드래곤을 쓰러뜨렸다. 그 상태에서 수라백상감의 절기인 백야까지 사용했으니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카이트 님……!”
그때 다급히 달려와 나를 부축해 준 사람이 있었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는 아그나르였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습니다. 다른 적들은…….”
“모조리 활동을 정지했습니다.”
고개를 돌려 보니, 드래곤 좀비와 해골 병사들은 모조리 움직임을 멈춘 상태였다.
놈들을 일으켜 세운 베리타스투스가 쓰러진 탓 같았다.
“카이트 님!”
“공자님……!”
다른 사람들도 나한테 달려왔다.
격전을 치르느라 다들 지친 모습이었고, 부상을 입은 사람도 꽤 있는 것으로 보였다.
“카이트 님, 그럼 베리타스투스는…….”
“그래.”
나는 베리타스투스에게 시선을 향했다.
베리타스투스는 온몸이 얼어붙은 채 쓰러져 있었다.
몸이 거의 반으로 갈라져 있었는데, 절단면이 얼어붙어 피조차 흘러나오지 않고 있었다.
“내가 쓰러뜨렸어.”
“오오……!”
“대단하십니다!”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평범한 드래곤보다 훨씬 강한 개체 같았는데, 용케 쓰러뜨리셨군요.”
“아그나르 경이 나머지 적들을 상대해 준 덕분이죠.”
“겸손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카이트 님.”
아그나르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카이트 님은 정말로 엄청난 위업을 달성하신 거니까요. 발뭉의 진정한 힘까지 개방하신 것 같고, 정말 대단하십니다.”
“진정한 힘?”
“저렇게 다 얼려 버린 거, 발뭉의 힘 아닙니까?”
아그나르가 베리타스투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무래도 아그나르는 발뭉의 힘으로 베리타스투스를 얼려 버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긴 발뭉 덕을 보긴 했지. 무림에서 8갑자였을 때도 이 정도 위력은 내지 못했어.’
나는 아직도 손에 들려 있는 발뭉을 내려다봤다.
‘상흔검(傷痕劍)’이라는 별명을 지닌 발뭉은 왠지 모를 음침한 기운이 느껴지는 검이다.
그래서인지 빙검에 잘 반응하는 느낌이었다.
‘신화병장에는 에테르라는 고대의 기운이 담겨 있다고 했지. 그 영향인가?’
칼라드볼그도 그렇고, 신화예장은 내 무공의 힘을 강화시켜 주는 느낌이었다.
‘모리안한테 게 볼그도 좀 빌려달라고 해 볼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갑자기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이트 에인헤랴르, 너는…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될 생각인가……?”
얼어붙은 채 쓰러져 있는 베리타스투스에게서 들려온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