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slayer's Class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335
335화
‘황금여명회? 발렌시아?’
여명회는 지크의 어머니인 로라 아가멤논과 아크 팔라딘이었던 파브 발렌시아가 이끌던 조직이었다.
그런데 교황이 그와 이름이 비슷한 황금여명회라는 조직의 회주인 데다가 발렌시아라는 성을 가지고 있다니, 지크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베아트리체가 지크를 보며 말했다.
“내려가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지크는 그녀를 따라 비밀 통로 아래로 내려갔다.
석관 아래에 마련된 비밀 통로는 상당히 길게 이어져 있었다.
“성하, 이 통로는 비상시 사용할 수 있는 탈출로인 겁니까?”
“맞습니다. 이전 교황 폐하께서 알려 주셨습니다. 지금으로서는 황금여명회의 조직을 은밀히 만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베아트리체를 따라 비밀 통로를 걷던 지크는 어느새 앞에 거대한 문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철문에는 이전에 파브가 만들었던 지하 무덤의 휘장이 똑같이 새겨져 있었다.
‘일반적인 태양교의 휘장과는 다른 모양의 휘장.’
지크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베아트리체에게 물었다.
“성하, 이 휘장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지크의 질문에 베아트리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건 지금의 태양 교단 이전 빛의 신을 모시던 빛의 교단이 사용하던 휘장입니다.”
지크는 이 휘장을 방주에서도 본 적이 있음을 떠올렸다.
‘빛의 교단이 이 휘장을 사용했다면…… 어쩌면 이 휘장은 빛의 신, 즉 창조신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겠군.’
지크가 신학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것은 아니었기에 이 정도만 추측할 수 있었다.
더 자세한 것은 신학에 밝은 아리나를 만나면 물어보기로 했다.
베아트리체는 빛의 휘장에 힘을 불어넣었고, 또다시 문이 저절로 열렸다.
그녀가 지크에게 손짓했다.
“이쪽입니다.”
지크는 베아트리체를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맵을 확인해 보니, 놀랍게도 비밀 통로는 교황청에서 빠져나와 바도카 성국 외곽 쪽으로 연결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오래된 창고 지하와 연결되어 있어서 다른 이들의 눈에 띄지 않게 밖으로 나올 수가 있었다.
위로 올라온 베아트리체는 능숙하게 성의를 벗고 미리 준비해 둔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거기에 마법으로 머리카락 색을 갈색으로 바꾸니 교황이 아닌 평범한 여인처럼 보였다.
“이쪽으로 오세요, 지크 경.”
지크는 베아트리체를 따라 창고 밖으로 나왔다.
바도카 성국 외곽 지역에 만들어진 평민들이 사용하는 시장으로 성직자들과 귀족들이 오가는 시내와 달리 도로나 시설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복잡하고 소란스러웠다.
곧 몬스터들이 다가온다는 소문 때문인지 시장은 더욱 혼란해 보였다.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며 불길한 소문들을 서로 옮기고 있었다.
“이미 다른 도시들은 놈들이 전부 불태워 버렸다던데?”
“그럼 여기도 위험한 거 아녀?”
“에잉, 그럼 높으신 분들이 먼저 도망쳤겠지! 아직 그대로 있는 거 보면 괜찮은 거여!”
“멍청한 소리 하지 말어. 그런 분들은 그 뭐시기냐, 이동 마법 이런 걸로 가니까 하룻밤에도 다른 나라로 갈 수 있다고. 그래서 계속 버티고 있는 거 아녀?”
설왕설래하며 어떻게든 불안감을 떨치려는 신민들의 모습에 베아트리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그래도 마음을 다잡는 듯 단호한 걸음으로 시장 골목에 있는 낡은 건물로 들어갔다.
평범한 잡화점처럼 보였지만 지크는 들어서자마자 이곳이 위장 가게라는 것을 알아챘다.
가게 점원으로 있는 여인은 마법사였고, 주인처럼 보이는 사내는 기사 훈련을 받은 기사였다.
그들은 베아트리체가 낯선 인물을 데려오자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그러자 그녀가 손을 들고 그들을 안심시켰다.
“괜찮아. 우리를 도와주러 오신 분이야. 2층을 열어 줘.”
베아트리체의 말에 점원으로 위장한 마법사가 은밀하게 감춰진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그러자 가게 한쪽에 쌓여 있던 장작들이 저절로 맞춰지면서 계단을 만들어 냈다.
베아트리체가 지크를 이끌었다.
계단을 오르자 그 위에는 놀랍게도 대륙 전도와 함께 상황판을 비롯해 여러 가지 자료들이 벽에 붙어 있었다.
베아트리체가 지크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지크 경, 황금여명회 본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 *
까아아아악!
불길한 까마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아래, 도열한 병사들이 날카로운 금속음을 내며 진군을 하고 있었다.
말을 탄 기사들이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오와 열을 맞춰라!”
기사가 든 깃발은 늑대의 얼굴이 그려진 채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신성 왕국의 가도를 꽉 채운 끝 없는 병력의 행렬.
현재 대륙에서 한 번에 이 정도의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곳은 단 한 곳, 롬 제국뿐이었다.
롬 제국의 13군단 중 하나인 천갈궁의 기사단이 병력의 가장 앞 단에서 전진하고 있었다.
천갈궁의 기사단을 지휘하는 이는 아티팩트로 온몸을 무장하고 있는 부단장 칼리토 루치아노였다.
이전에 지멘스와 함께 지크를 잡으려다가 오히려 역으로 당해 병력을 잃고 공간 이동 능력자이자 식스의 수장인 라힘 덕분에 겨우 목숨을 건진 자였다.
당시의 패전으로 부단장의 자리를 잃을 뻔했지만, 특유의 정치 감각과 언변술로 다행히 자리를 보전한 칼리토는 이번 황제의 친정에 자처해서 추가 병력을 끌고 나선 상태였다.
칼리토 옆에는 마치 바바리안을 연상케 할 정도로 덩치가 큰 사내가 눈을 감은 채 말 위에서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바로 천갈궁의 기사단 단장인 길리언 아펙스였다.
천갈궁의 기사 길리언 아펙스는 칼리토와 달리 전형적인 무골이었다.
정치력이라곤 전무한 자였기에, 기사로서의 기량이 떨어지는 칼리토가 천갈궁의 기사단을 이끌며 대외적인 일을 처리했다.
길리언 아펙스는 흑색 기사로 가는 마지막 벽을 뚫기 위해 모든 시간을 수련에 쏟고 있었다.
만약 칼리토의 설득이 없었다면 이전 출정에도 결코 참여하지 않았을 터였다.
‘전장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설득이 통해 다행이지.’
천갈궁의 기사단은 황제의 군사들이 머물고 있는 신성 왕국의 국경 지역을 향해 진군을 멈추지 않았다.
곧 가도가 끝이 나고 언덕을 넘어서자 국경 지대 평야에 수만의 병사들이 진을 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곳곳에 황제를 상징하는 은빛 늑대의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칼리토는 침을 꿀꺽 삼키고 황제의 진영으로 들어갔다.
‘왜 이렇게 조용하지?’
칼리토는 진영에 도착했을 때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 정도 대군이 머물고 있는 진지가 이렇게 조용할 리가 없었다.
아무리 군기가 잘 잡힌 병영이라 하더라도 진지 공사를 하거나, 밥을 짓거나, 하다못해 병사들끼리 잡담하는 소리라도 들려야 하는데 그런 소리가 일절 없었다.
마치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은 고요함이 소름 끼치는 불길함을 불러왔다.
말에서 내린 칼리토가 진영 곳곳을 둘러봤다.
병사들이 머무는 천막을 힐끔 보니 그 안에 인기척이 있기는 했다.
그런데 병사들은 아무런 말도 없이 멍하니 앉아 있거나 중얼거리면서 누워 있는 게 다였다.
생기라고는 하나도 없이 작게 혼잣말을 읊조리며 초점 없는 눈으로 어딘가를 응시하는 병사들은 결코 정상이 아니었다.
‘X발, 뭐야. 다들 소마 중독에 빠지기라도 한 건가?’
칼리토가 소름 끼치는 광경에 몸을 부르르 떠는 그때 갑자기 그의 앞에 검은 로브를 입은 마법사가 나타났다.
“으힉! 뭐야, 깜짝 놀랐잖아!”
갑작스럽게 나타난 마법사를 보며 칼리토가 뒤로 물러섰다.
후드를 깊게 눌러써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마치 시체처럼 검은색으로 물든 마법사의 입술과 새까만 손톱이 눈에 띄었다.
거기다가 마법사의 피부는 청동빛을 띠고 있었는데 움직이고는 있으나 산 사람처럼 느껴지지가 않았다.
“폐하께서 두 분을 부르십니다.”
마법사의 목소리도 한껏 갈라져 있어 듣는 내내 소름이 끼쳤다.
칼리토는 문득 지멘스와 일하면서 만난 노스트라 패밀리의 혈계 능력자들이나 나락의 흑마법사들이 떠올랐다.
그들도 정말 이상하다고 여겼었는데, 지금 마주하게 된 황제의 군대나 마법사보다는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황제가 불로불사를 위해 온갖 사술을 다 익힌다더니. 저런 불경하고 위험해 보이는 놈들까지 옆에 두었구나.’
칼리토는 자신의 지위를 보전하기 위해 일부러 이번 전장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사실 그는 지멘스와 연계되어 있는 율리우스 쪽의 줄을 잡으려다가 어그러져서 어쩔 수 없이 다시 황제 쪽에 줄을 대 보려고 이번 원정에 참여 한 것이었다.
황제의 신변에 대한 것이나 다른 여러 가지 소문들이 워낙 좋지 않아 다른 기사단은 이번 친정에 참여하기를 꺼렸다.
결국 황제는 자신의 친위대와 병사들만을 이끌고 원정에 나섰다.
그 모습을 보며 마지막까지 고민하던 칼리토는 길리언을 설득해 황제를 따르기로 한 것이었다.
‘듣기로 이번 원정의 목표는 몬스터가 아니라 신성 왕국이라지. 만약 황제가 이번에 고비를 넘기고 계속 황권을 유지하면서 신성 왕국을 시작으로 점차 영토 전쟁을 확장한다면…… 충분히 출세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칼리토는 스스로 기회를 보는 눈이 뛰어나다고 자부하는 사람이었다.
지방 하급 남작의 차남이었던 그가 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은 기회를 잘 잡았기 때문이었으니, 자신감을 가질 만도 했다.
그는 어떻게 보면 도박과도 같은 상황이었지만, 이 순간을 제대로만 넘기면 충분히 새로운 미래를 그려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소란한 마음을 다잡고는 길리언과 함께 황제의 막사로 들어갔다.
하지만 황제의 막사에 들어간 칼리토는 인생을 통틀어 처음으로 자신의 결정을 후회했다.
막사 안은 참혹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검은 입술과 검은 손톱을 가진 사교도의 무리들이 살아 있는 사람의 생피를 짜낸 뒤 그 피에 여러 가지 약물을 섞어서 기묘한 약을 만들고 있었다.
사교도의 마법사들은 흑마법사보다 더욱 사악하고 끔찍한 금기를 아무렇지 않게 행하는 악귀와 같은 놈들이었다.
그런 사교도들이 황제의 막사에서 사람을 재료로 삼아 끔찍한 비약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고 있었다.
‘우욱.’
비위가 강하다 자부한 칼리토마저 황제의 막사에서 풍기는 피비린내와 독한 약 때문에 머리가 어질하고 헛구역질이 나올 지경이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던 길리언 역시 어느새 눈을 뜨고 그 끔찍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그들을 안내한 마법사가 그들에게로 손짓하며 말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칼리토와 길리언은 지옥의 풍경과도 같은 막사를 지나 황제가 머물고 있는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황제의 막사에는 수많은 약병들과 피로 그려 놓은 마법진, 알아볼 수 없는 언어로 휘갈겨 놓은 스크롤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향로에서는 끊임없이 향이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그 기괴한 향을 맡는 것만으로도 미쳐 버릴 것 같았다.
황제는 십수 명의 사교도들에게 둘러싸인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침대를 장막으로 가리고 있어 그의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십수 개의 약병들과 연결된 관이 황제의 현재 상황이 얼마나 안 좋은지를 여실히 보여 줬다.
“천갈궁의 기사가 온 것이냐.”
순간 장막을 넘어 목소리가 들렸다.
칼리토는 황제의 또렷하고 위엄이 넘치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
“폐하께 인사 올리옵니다! 천갈궁 기사단의 부단장 직책을 맡고 있는 칼리토 루치아노가 인사 올립니다. 폐하의 명을 받들어 단장인 길리언 아펙스 님과 함께 천갈궁의 기사들을 이끌고 이곳에 도착하였나이다!”
칼리토의 말을 들은 황제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아까와 같이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칼리토. 그래, 기억이 나는구나. 말을 하지 못하는 길리언을 대신하여 여러 어려운 일들을 자처하던 의로운 이였었지.”
사실 단장인 길리언은 말을 하지 못하는 벙어리였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이는 거의 없었다.
단순히 길리언이 과묵하다고만 생각했고 대외적인 일은 대부분 칼리토가 처리를 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황제가 그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그, 그렇습니다 폐하! 저를 기억하십니까.”
“그래, 기억이 난다. 영민하고 지혜로운 눈빛을 가진 젊은이였었지. 내가 작위를 내린 것이 벌써 20년 전이로군.”
자신의 이름과 작위를 내린 시기까지 기억하는 황제의 말에 칼리토는 순간 감동하여 눈물이 날 뻔했다.
그러고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황제의 병이 호전된 것인가?’
장막에 가려져 얼굴은 볼 수 없었으나 목소리만 들으면 전혀 병환을 느낄 수가 없었다.
오히려 자신이 20년 전 기사 취임식에서 들었던 목소리보다 더 힘이 넘치고 위엄이 흘렀다.
‘황제의 병이 낫고 있다면 나에게 큰 기회가 올 것이다.’
앞서 봤던 끔찍한 현장은 이미 잊은 지 오래였다.
칼리토는 어떻게 하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을지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때 황제가 칼리토에게 말했다.
“칼리토, 내 오랜 친구. 그대의 벗 길리언과 함께 나를 위해 신성 왕국을 위협하는 몬스터들을 토벌하고 고통받은 성국의 신민들을 구원해 줄 수 있겠나.”
아무렇지 않게 구원이라는 말을 꺼낸 황제의 말에 칼리토는 한 가지 결론을 냈다.
‘몸 상태는 호전되었을지언정, 황제는 여전히 미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