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slayer's Class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667
667화
쿠구구구구―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이동 요새가 암흑해 위를 부유하며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마계의 거친 환경 속에서도 충분히 움직일 수 있도록 일공녀 엘리자베타가 마법으로 개조를 해 두었기 때문에 암흑해 영역에서도 이동하는 게 가능했다.
지크는 이동 요새의 상황실에서 바깥을 비추는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깥 상황을 살피는 용이라고는 했지만, 화면 안은 마력 폭풍으로 시야를 확보하기가 어려웠고,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우박들과 번쩍이는 플라즈마들로 가득 차 있었다.
엘리자베타의 수하들은 침착하게 이동 요새를 움직이며 방어막을 전개해 거친 외부 환경을 무력화시켰다.
마계의 이동 요새를 이용해 암흑해를 건너려 했던 지크의 계획이 통한 것이었다.
“공정한 고통의 인도자시여.”
그때, 일공녀인 엘리자베타가 지크 쪽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뒤에는 이공녀인 예카테리나와 삼공녀인 아나스타샤도 있었다.
공손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엘리자베타와 달리 예카테리나는 평소처럼 성난 표정을, 아나스타샤는 어딘가 주눅이 들어 있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동생들과 인사를 마친 엘리자베타가 지크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지금으로부터 다섯 시간 후면 암흑해를 넘어 버려진 대륙에 이르게 됩니다.”
지크는 출발하기 전, 엘리자베타에게 로라 아가멤논의 항로를 알려 주고 버려진 대륙으로 가는 길을 찾도록 한 상태였다.
공중을 날 수 있는 이동 요새의 속도는 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지크는 엘리자베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섯 시간이라. 예상보다 빠르군.”
“예, 대군주께서 넘겨주신 새로운 항법 체계의 효과 덕분입니다. 덕분에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순항 중입니다.”
엘리자베타가 말한 새로운 항법 체계란 본래 방주에 적용되어 있던 것으로 지크가 하데스에게 부탁해 이동 요새로 이식할 수 있도록 했다.
덕분에 이동 요새는 자동으로 외부 환경의 위험을 상쇄시키고 최적의 항로를 찾아낼 수 있었다.
지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엘리자베타를 향해 입을 열었다.
“버려진 대륙에 도착하게 되면 수많은 마수가 달려들 것이다. 놈들은 마왕의 힘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왔기에 중앙 대륙의 마수들보다 훨씬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놈들을 막아 내면서 그곳에 침식 요새를 소환해 게이트를 열 거점을 만들어야 한다.”
엘리자베타가 지크에게 걱정 말라는 투로 말했다.
“아무리 강한 마수라도 요새의 방어 시스템을 뚫고 들어올 수는 없을 겁니다.”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군. 이곳의 마수들은 마계의 마수들보다도 지독한 놈들이다. 방심하는 순간 요새가 통째로 무너져 내릴 거다.”
그때 엘리자베타 뒤에 서 있던 예카테리나가 지크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리 대군주라 하더라도 그 말은 흘려들을 수 없군! 지금 긍지 높은 마계 전사들의 힘을 의심하는 것인가!”
엘리자베타의 이동 요새에는 예카테리나의 병력 역시 함께 실려 있었다.
강력한 투마들을 수하로 부리는 그녀는 평소 자신의 전투 부대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다.
마수들 따위를 자신의 전사들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그녀에게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예카테리나의 말을 들은 지크가 그녀를 지그시 보며 말했다.
“마계 전사들의 능력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얘기하는 거다. 놈들은 마족들조차 쉽게 상대할 수 없는…….”
콰콰콰콰쾅!
지크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이동 요새가 크게 흔들렸다.
이동 요새의 주인인 엘리자베타가 놀라며 수하들에게 외쳤다.
“무슨 일이냐!”
그러자 이동 요새를 조종하고 있던 마족이 엘리자베타를 향해 소리쳤다.
“무,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것이 요새의 방어벽과 충돌했습니다!”
마족의 말에 지크가 미간을 그러모았다.
‘버려진 대륙에 가까워지면서 마수들의 영역에 도달한 건가.’
그때 예카테리나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 잘됐군. 내가 직접 가서 투마족 부대의 힘을 보여 주도록 하지.”
엘리자베타가 그런 예카테리나를 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리나, 아직 적의 정체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다. 우선 차분하게 상황을…….”
“멍청하긴, 그럴 시간에 가서 적을 쓸어버리면 된다. 헛소리 따위는 집어치워!”
예카테리나는 곧장 상황실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용형 마수 위에 올라탄 뒤 자신이 자랑하는 투마족 부대를 이끌고 이동 요새 밖으로 나갔다.
육중한 몸집을 지닌 투마족들이 날개를 펼치고 예카테리나와 함께 공중으로 날아갔다.
쿠르르르릉!
그렇게 호기롭게 나선 예카테리나는 요새 밖으로 나오자마자 당황했다.
‘요새 바깥의 환경이 이 정도로 거칠었던 건가?’
방어벽의 범위에 있었음에도 사방으로 몰아치는 마력 폭풍과 우박, 내리치는 강력한 플라즈마 전류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마계 내에서도 이 정도로 열악한 환경은 찾기가 어려웠다.
그녀가 타고 있는 용형 마수조차 제대로 몸을 가누기 힘들어할 정도였다.
당황해 멈칫했던 그녀가 마음을 다잡는 그때 이동 요새의 방어벽 측면에서 뭔가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마력 폭풍 속에서 나타난 거대한 그림자가 방어벽을 향해 몸을 들이박는 것이었다.
콰콰콰콰쾅!
이동 요새의 방어벽이 흔들리면서 강렬한 진동이 울려 퍼졌다.
“으윽!”
예카테리나와 투마 부대는 충돌에서부터 일어난 파동만으로도 균형을 잡을 수가 없었다.
흔들리는 몸을 바로 세운 예카테리나는 비로소 이동 요새를 공격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저, 저건……?’
그것은 그야말로 거대했다.
마수 하나가 마치 이동 요새 하나만큼이나 거대한 크기를 지니고 있었는데, 검은 독수리의 날개 같은 것이 온몸에 돋아나 있었고 가운데에는 얼굴의 형상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눈알이 달려 있었다.
그 마수의 날개가 펄럭일 때마다 마력 폭풍이 일고, 플라즈마가 사방으로 쏟아졌다.
예카테리나는 상상의 범위를 훌쩍 뛰어넘은 마수의 자태에 아버지인 메피스토펠레스 이후 처음으로 절망감이라는 것을 느꼈다.
‘아아…….’
전투 본능을 지닌 투마족은 공포와 두려움, 체념의 감정 자체가 없는 종족이었다.
아무리 강력한 존재가 앞에 나타난다 해도 오히려 광기를 앞세워 달려드는 것이 투마족이었다.
예카테리나 역시 고위급 투마족으로서 그런 성향을 지니고 있었기에 강력한 적 앞에서 오히려 전의를 불태우는 속성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마주하고 있는 마수는 차원이 달랐다.
도저히 자신이 어찌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좌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예카테리나뿐만 아니라 그녀의 뒤를 따르는 다른 투마족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방어벽 바깥에서 자신들을 바라보는 마수의 눈동자와 마주할 때마다 투마족 특유의 전투 본능이 사라지고 패배감이 온몸을 가득 채웠다.
‘만약 놈이 방어벽을 뚫고 들어온다면?’
예카테리나는 스멀스멀 피어올라 오는 공포심에 점점 몸이 굳어져 가는 걸 느꼈다.
그때 마수의 눈동자에서 불길한 빛이 솟구쳤다.
우우우우우웅!
그러더니 주변에 휘몰아치는 플라즈마가 마수의 눈동자로 몰려 한 점으로 집중되어 방어벽을 향해 쏘아졌다.
콰콰콰콰콰콰!
플라즈마 강선이 방어벽과 충돌하자 이동 요새 전체가 흔들리며 옆으로 기울었다.
“으으으윽!”
예카테리나는 물론 공중에 떠 있던 투마족 부대 전체가 충격파에 휩쓸려 균형을 잃었다.
지지지지직―
예카테리나는 이동 요새의 주변을 감싸고 있던 방어벽 일부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음을 알아챘다.
마수 역시 그것을 알았는지 날개를 바짝 세우더니 약해진 방어벽을 향해 깃털을 날리기 시작했다.
파바바바바박!
날카로운 깃털들이 방어벽의 틈을 파고들며 날아들었다.
예카테리나는 검을 뽑아 들고 수하들에게 외쳤다.
“막아라!”
그녀의 명령에 투마족 부대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입을 벌려 깃털을 향해 마력포를 발사했다.
콰콰콰콰!
투마족의 마력포에 날아오던 깃털들 일부가 없어지기도 했지만, 그중에서는 궤도를 바꿔 마족들의 몸에 꽂히는 것들도 있었다.
퍼억!
가슴팍 한가운데 깃털이 꽂힌 마족은 신음을 흘리며 곧장 이를 뽑아내려 했다.
그런데 그 깃털이 마치 나무뿌리처럼 마족의 몸에 퍼져 나가더니 투마족 전사의 몸을 변형시켰다.
“끄르르륵!”
잠시 후, 깃털이 꽂힌 마족들의 몸에서 작은 날개들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우드드드득!
곧 깃털이 꽂힌 마족들의 몸체가 방어벽 바깥에 있는 거대 마수와 비슷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쿠드드드득!
순식간에 마족들 수십이 마수의 모습으로 변하더니 자신들끼리 모여들어 일렬로 쭉 늘어섰다.
이를 본 예카테리나가 소리쳤다.
“빌어먹을! 놈들을 공격해라!”
다른 투마족들이 예카테리나의 명령에 따라 변형된 작은 마수들을 향해 달려들었지만 이미 그들의 전의는 꺾인 상태였다.
그때, 마수들의 눈동자에 역시나 플라즈마가 몰려들더니 달려드는 투마족들을 향해 강선을 발사했다.
지이이이이잉―
강력한 플라즈마 강선이 투마족들의 몸을 삽시간에 조각냈다.
예카테리나는 이 모습을 보고 어금니를 꽉 물었다.
“이놈들이!”
수하들의 죽음에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자 아까 느꼈던 공포심이 사라지고 다시 투쟁심이 끓어올랐다.
그녀가 검을 치켜들고 투기를 끌어 올렸다.
콰콰콰콰콰!
투기가 솟구친 검을 들어 올린 그녀가 용형 마수를 몰아 마수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마수들은 이번에도 플라즈마 강선을 쏘아 보냈다.
그러자 예카테리나가 검을 휘둘러 강력한 투기를 날렸다.
콰콰콰콰쾅!
예카테리나의 투기와 플라즈마 강선이 충돌을 일으키며 사방으로 파동이 일어났다.
방어벽 내부에서 전투가 벌어지자 이동 요새의 방어 결계는 점점 약해져 갔다.
바깥에 있는 거대 마수는 약해지는 결계를 더욱 밀어붙였다.
쿠드드드득―
거대한 질량으로 부딪치며 방어 결계를 깨부수려 했다.
동시에 한 번 더 방어벽 안쪽으로 깃털을 날려 보냈다.
파바바바박!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많은 숫자의 깃털이 이동 요새까지 도달해 표면에 틀어박혔다.
그러다 깃털 중 하나가 예카테리나가 타고 있던 용형 마수의 몸에 박혔다.
끄르르르륵!
깃털이 꽂힌 용형 마수 역시 몸체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예카테리나는 즉시 등 뒤에 감추어 놨던 날개를 펼치며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콰드드드득!
온몸에 날개가 돋아난 용형 마수가 주인이었던 예카테리나를 향해 플라즈마 폭풍을 일으켰다.
“크으윽!”
그녀는 본능적으로 투기를 일으켜 겨우 플라즈마 폭풍을 막아 내기는 했지만, 그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파지지지직!
수십 줄기의 플라즈마 전격들이 그녀의 몸을 휘감았다.
예카테리나는 어떻게든 이를 떨쳐 내려 했지만 플라즈마 전격은 그럴수록 더욱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예카테리나는 그제야 지크가 보통 마수들과 다르다며 경고한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깨달았다.
그때 일렬로 서 있던 작은 마수들이 예카테리나를 향해 눈동자를 맞췄다.
우우우우웅!
그들의 눈에서 솟구친 강력한 플라즈마 강선이 예카테리나를 향해 쏘아졌다.
플라즈마 폭풍에 휩쓸려 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예카테리나는 이를 피할 수 없었다.
쏘아진 강선에 예카테리나가 증발해 버릴 것만 같았다.
서걱―
날아오던 플라즈마 강선을 비롯해 일렬로 서 있던 작은 마수들이 순식간에 횡으로 갈라졌다.
파지지지직―
예카테리나의 몸을 휘감고 있던 플라즈마 폭풍 역시 그제야 잦아들었다.
그녀의 앞에는 어느새 지크가 나타나 있었다.
그가 예카테리나를 보며 말했다.
“놈들의 기운은 투마족의 본능조차 거스른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
지크가 말과 함께 손가락을 튕기자 가디언인 칼리귤라가 소환됐다.
지크는 소환된 칼리귤라에게 오만한 구원자의 보물 중 하나인 ‘저주받은 왕의 머리뼈로 만든 왕관’을 씌웠다.
수천 년간 응축된 원한과 저주가 깃든 보물이 칼리귤라의 힘을 증폭시켰다.
쿠구구구구구!
칼리귤라와 ‘저주받은 왕의 머리뼈로 만든 왕관’의 힘이 합쳐진 순간, 놀랍게도 마수가 미치는 영향력이 차단되면서 예카테리나를 비롯해 투마족들이 본래 가진 투쟁심이 다시 살아났다.
예카테리나는 되찾은 투쟁심 덕분에 아까와 달리 거대 마수를 향한 공포심을 완전히 떨쳐 낼 수 있었다.
그녀는 마수를 노려보며 다시 검을 꼬나 쥐었다.
“아직 기다려라.”
그녀를 제지한 지크가 다시 손가락을 튕기자 공중이 갈라지며 거대한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만한 구원자의 또 다른 보물인 파괴신의 눈동자가 나타난 것이었다.
파괴신의 눈동자가 붉은빛을 내뿜자 예카테리나는 물론 다른 투마족들의 몸에서 강렬한 파괴의 힘이 솟구쳤다.
지크는 오만한 구원자의 두 가지 보물을 이용해 강화시킨 예카테리나와 투마족 부대를 향해 담담히 말했다.
“놈들을 쓸어버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