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slayer's Class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724
4화
“후우…….”
지크는 얼음 절벽을 파서 만들어 놓은 은신처에 웅크린 채 얼어붙은 건량을 천천히 씹어 먹었다.
벌써 이 낭떠러지에서 버틴 지 한 달이 넘었다.
북부 레인저들 사이에서는 얼음산맥의 빙룡 계곡이 만 년 전 빙룡과 화룡이 한 달 동안 격렬한 전투를 치르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곳이라 전해져 내려왔다.
그런 전설이 그럴듯하게도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깊게 이어진 낭떠러지는 인간에게 근원적인 공포를 줬다.
얼음 산맥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북부 레인저들조차도 빙룡 계곡에는 접근하지 않을 정도였다.
지크는 그런 빙룡 계곡의 얼음 절벽에 매달린 채 직접 얼음벽에 구멍을 파서 은신처를 만든 후 그곳에서 추격자들을 피해 한 달이 넘는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독종도 보통 독종이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
사냥개들은 지크를 찾기 위해 빙룡 계곡 곳곳을 뒤지고 있었지만 설마 얼음 절벽에 매달린 상태로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지크는 타고난 탁월한 감각으로 균형을 잡으며 매일 같이 낭떠러지를 탐색하는 중이었다.
그가 한 달 동안이나 이곳에 붙어 있는 이유는 유적지 입구로 들어갈 곳을 찾기 위함이었다.
‘분명 이쪽에 길이 있을 거다.’
지크는 중요한 것은 다른 이들이 가기 싫어하는 곳에 숨겨 두라는 남부 대륙의 격언을 신뢰했다.
유적지 입구로 들어가는 우회로가 있다면, 그건 아무도 접근하지 않는 얼음 절벽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지크는 은신처에서 건량을 모두 먹고는 얼음을 녹인 물을 조금씩 마시며 수분을 보충했다.
그러고는 얼어붙은 몸에 스스로 힐링을 사용했다.
쿠드드드득!
동상에 걸리기 일보 직전이던 몸이 힐링에 의해 회복되는 것이 느껴졌다.
최대한 가벼운 몸이어야 했기에, 두꺼운 방한복은 입지 못한 상태. 아무리 지크가 독종이라 하더라도 제대로 된 방한 용품 없이 혹한의 추위 속에서 한 달이나 버틸 수는 없었다.
이레귤러로서 힐링의 힘을 가진 그는 스스로의 몸을 치료하면서 육신을 회복시켜 버틴 것이었다.
덕분에 다른 이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지크는 죽지 않고 견뎌낼 수 있었다.
얼어붙은 손발에 피가 돌고, 근육이 풀리자 지크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는 가져온 줄을 얼음벽에 고정시키고는 절벽에 매달린 채 손으로 벽을 두드리며 옆으로 기어갔다.
쿵! 쿵!
어느 한 곳에 도착한 지크는 더욱 세심하게 벽을 두들겨 보았다. 자신의 날카로운 감각을 통해 얼음벽 뒤쪽에 공간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었다.
일주일 전, 이 부근에서 뭔가를 느끼고서 집중적으로 탐색을 진행하고 있었다.
지크는 온 신경을 집중하며 얼음벽 곳곳을 손으로 두드리며 조금씩 옆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지크의 감각에 심상치 않은 진동이 느껴졌다.
쿠르르르르르릉!
빙룡 계곡 전체가 울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건?’
지크는 깜짝 놀라며 곧장 줄을 잡고 자신의 몸에 한 번 더 꽉 묶었다.
그러고는 자신이 만들어 둔 은신처로 재빨리 이동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위쪽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눈이 쏟아져 내렸다.
콰콰콰콰콰!
하얀 눈이 마치 폭포처럼 얼음벽을 타고 쏟아져 내렸다.
지크는 쏟아지는 눈사태를 보고 끈에 의지해서는 버틸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단검을 꺼내 과감하게 고정하고 있던 끈을 끊어 버렸다.
그러고는 그대로 단검을 얼음벽에 박아 넣은 뒤 이를 밟아 은신처가 있는 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휘이이이이이익!
밑은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낭떠러지였고, 위에서는 눈이 해일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위기의 순간, 은신처에 거의 닿았을 즈음. 지크의 몸이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지려 했다.
그러자 지크가 등 뒤에서 그람을 꺼내 들고는 혼신기를 일으켰다.
혼신기
솔로 스펠
폭(爆)의 의지
그람에서 폭발이 일어나더니 지크의 몸을 반대로 튕겨 벽을 파내서 만들어 놓은 은신처 속으로 밀어 넣었다.
퍼억!
은신처의 얼음벽에 부딪힌 지크는 등 전체가 부서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실제로 그의 등과 허리뼈는 아작이 난 상태였다.
“크으으윽!”
정신도 없는 데다 밀려온 통증으로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위에서 쏟아지는 눈사태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그는 그람을 벽에 박아 둔 채로 이를 붙잡고 버티기에 들어갔다.
그러면서 힐링으로 부서진 등을 천천히 회복시켰다.
콰콰콰콰콰콰!
어마어마한 양의 눈들이 얼음 절벽을 타고 미친 듯이 쏟아져 내렸다.
지크는 몸을 웅크린 채 이 눈사태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후욱, 후욱, 후욱.”
수많은 위기를 겪었던 지크였지만 방금만큼 극적으로 생존한 건 처음이었다.
눈사태가 지나간 이후로도 한동안 힐링으로 겨우 등을 치료한 지크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죽을 뻔했네.”
그는 느릿하게 은신처 입구로 다가가 밑을 내려다봤다.
눈사태로 많은 양의 눈이 쏟아져 내렸지만, 계곡이 어찌나 깊은지 쌓인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 떨어지면 그야말로 흔적도 찾을 수 없을 듯싶었다.
겨우 살아남은 것은 다행이었지만 문제는 남아 있었다.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고정끈을 끊어 버린 바람에 은신처에서 옴짝달싹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혹시나 하며 확인해 봤지만, 잘라 놓은 끈은 눈사태에 휩쓸려서 낭떠러지 밑으로 사라져 버린 상태였다.
‘이대로 이곳에서 얼어 죽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나.’
지크의 정신이 절망으로 물들어 가는 찰나, 문득 그의 시야에 뭔가가 들어왔다.
눈사태로 인해 계곡 전체가 흔들리면서 절벽 중간에 금이 간 것이었다.
지크는 이를 보고 뭔가를 느꼈다.
‘설마……?’
그는 자신에게 남아 있는 단검의 개수를 살폈다.
네 개 정도의 단검이 남아 있었는데, 벽에 잘 박아 넣으면 금이 간 곳까지 닿을 수 있을 듯싶었다.
‘만약 저곳이 입구가 아니라면…… 나는 여기서 꼼짝없이 죽겠군.
지크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심호흡을 하고 은신처에 매달린 채 벽 반대편으로 단검을 던졌다.
그러자 혼신기의 힘이 실린 단검이 방향을 휙 틀더니 그대로 벽에 틀어박혔다.
“좋아.”
지크는 나머지 세 개의 단검 역시 차례대로 벽에 박아 넣었다.
절벽에 금이 간 곳까지 듬성듬성 고정된 단검을 확인한 지크는 호흡을 가다듬은 뒤 은신처에서 몸을 던졌다.
휘이이익!
그의 날랜 몸이 벽에 박힌 단검을 밟고 위로 떠올랐다.
네 개의 단검을 징검다리처럼 밟은 지크는 마지막 순간, 손에 쥐고 있던 그람을 절벽에 금이 간 곳을 향해 내리꽂았다.
퍼억!
그람이 얼음벽에 깊숙이 박혔다.
지크는 그람에 매달린 채 금이 간 곳을 살폈다.
놀랍게도 틈새 사이로 빈 공간이 보였다.
“후우우…….”
지크는 두 손을 그람으로 쥔 채 몸을 흔들어 금이 간 곳을 두 발로 찼다.
퍼억!
힘이 제대로 실리지 않았는지 금이 간 곳은 그대로였다.
만약 이곳에서 힘이 빠지면 지크는 곧장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지크는 더 강하게 몸을 흔들어 마나를 다리에 집중했다.
“하아앗!”
기합 소리와 함께 휘둘러진 지크의 발이 금이 간 얼음벽을 완전히 부숴 버렸다.
투두두둑!
벽이 부서지자 그람이 박혀 있던 곳도 함께 무너져 내렸고, 지크는 재빨리 무너진 절벽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콰콰콰콰!
겨우 동굴 안으로 굴러 들어간 지크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후우…….”
그람에 의지한 채 자리에서 일어난 지크는 주변을 둘러봤다.
바깥에서 볼 때는 동굴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흔적이 보였다.
바닥에 매끈한 돌이 깔려 있었고, 벽 역시 오래된 타일로 마감이 되어 있었다.
‘고대 유적지일 가능성이 높겠군.’
미친 황제가 찾는 엘더 드래곤의 유적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뭔가가 있는 곳이라는 것은 충분히 추측할 수 있었다.
지크는 품에서 마력 등을 꺼내 주변을 비추며 유적지를 살폈다.
조금씩 걸음을 옮긴 그는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따듯해지는 것을 느꼈다.
한 달 동안 혹한의 추위 속에 있던 지크는 오랜만에 안락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 지크의 눈앞에 뭔가가 보였다.
‘제단?’
크지 않은 방 한가운데 계단이 있었고, 그 위에 제단이 놓여 있었다.
지크는 주변을 경계하며 천천히 제단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주변을 살펴보니 이곳으로 들어오는 문은 닫힌 상태였다.
절벽의 무너진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앞쪽의 문이 아닌 제단이 있는 방으로 곧장 들어온 모양이었다.
‘저쪽으로 들어왔으면 온갖 함정들이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군.’
고생을 하기는 했지만, 운이 좋았던 셈이다.
지크는 계단을 밟고 제단 위로 올라갔다.
돌로 만들어진 제단 위에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아무런 무늬가 없는 평범한 검은 상자 하나가 올라가 있을 뿐이었다.
지크는 천천히 검은 상자 쪽으로 다가섰다.
“이게 황제가 찾던 유물이려나.”
지크는 그람을 들어 검은 상자를 툭툭 건드려 봤다.
함정이 설치되어 있지는 않았다.
그는 천천히 검은 상자를 집어 들고 잠겨 있는지를 확인했다.
놀랍게도 상자는 잠겨 있지 않은 상태였다.
극한의 장소에 숨겨 놓은 것치고는 별다른 보안 장치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조금 의아한 마음으로 상자를 열고 내용물을 확인해 보니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 튀어나왔다.
거무튀튀한 드래곤 조각상.
지크는 조각상을 집어 들고 유심히 살폈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여기 숨겨져 있는 건가.”
엘더 드래곤의 유물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거나 이런 곳에 숨겨진 이상 보통 물건은 아닐 게 분명했다.
하지만 지크는 힐링을 쓸 수 있는 검사지 마법사가 아니었기에 어떤 기능이 숨겨져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미친 황제가 노리는 것일 수 있으니 가로채기로 했다.
만약 놈이 이걸 찾기 위해 직접 움직인다면 암살의 기회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지크는 알리시아와 히모나스의 기사들을 잠시 떠올리고서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드래곤 상을 챙겼다.
그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방 곳곳을 살폈지만, 이곳에 있는 것은 오직 이 드래곤상뿐이었다.
다른 유물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지크는 이곳에서 나갈 길을 찾기로 했다.
이 방으로 들어올 수 있는 석조 문은 마법이 걸려 있는지 지크가 아무리 밀어도 전혀 열릴 기미가 없었다.
결국 지크는 다른 길을 찾아볼 수밖에 없었다.
‘절벽으로 다시 기어 나가는 것은 불가능하고…… 저 동굴이 다른 곳과 연결되어 있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겠군.’
지크는 방으로 들어왔던 동굴로 되돌아가 나갈 길을 찾으려 했다.
그는 자신이 들어왔던 곳과 반대 방향으로 주변을 경계하며 걸어갔다.
생각보다 동굴은 길게 이어져 있었다.
그는 중간중간 휴식을 취하면서 건량을 먹고 눈을 녹인 물을 마셨다.
‘한눈에 볼 수 있는 지도 같은 게 있으면 편할 텐데. 좌표를 찍어서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는 공간 이동 능력이라든지.’
지크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약간의 휴식을 즐긴 뒤,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을 계속 찾았다.
얼마나 헤맸을까, 인공적으로 다듬은 길이 끝나고 얼음으로 이루어진 동굴이 나타났다.
지크는 얼음 동굴을 살피다 희미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고는 그것이 불어오는 방향을 찾았다.
‘이쪽으로 바람이 빠져나가고 있다.’
그의 예민한 생존 본능을 십분 발휘하여 나갈 수 있는 길을 찾았다.
바람이 부는 곳을 따라 얼음 동굴을 나아가던 중 지크는 앞에서 심상치 않은 기척을 느꼈다.
‘이건……?’
아이스 트롤이 무리 지어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었다.
중앙 대륙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몬스터였지만, 북부 지역에서는 종종 볼 수 있었다.
일반 트롤과 달리 두꺼운 털에 뒤덮여 있어서 검이 잘 들어가지 않는 데다가, 회복력은 트롤과 비슷하기에 상대하기가 까다로운 몬스터였다.
지크는 그람을 쥔 채 아이스 트롤들의 움직임을 살폈다.
그러던 그때 지크의 감각에 뭔가 이상한 것이 잡혔다.
‘놈들이 뭔가를 두려워하고 있다?’
아이스 트롤은 자신의 영역을 중요시하는 몬스터였다.
그런데 지금 이곳은 그들의 영역처럼 보이지가 않았다.
마치 자신들의 영역에서 쫓겨난 채, 침입자들을 두려워하며 경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스 트롤들이 두려워할 만한 놈들이라면…….’
그런데 그때 반대편에서 뭔가가 날아왔다.
촤아아아악―
순식간에 날아든 날카로운 오러 블레이드가 아이스 트롤의 목을 베고 지나갔다.
쿵!
목에서 피를 뿜어내며 쓰러진 동료를 보고 다른 아이스 트롤들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괴성을 내질렀다.
카아아아아악!
아이스 트롤들이 손톱을 세우고 달려가는 곳에 침입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사냥개 부대의 척살조였다.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