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10
0009 정밀 검증(1)
“여보세요!”
나는 구원의 동앗줄, 아니 전화를 반갑게 받았다.
누나가 어이 없다는 모습을 보였으나, 나는 이내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지금 걸려온 전화 때문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초능력 연합회의 정밀 검증 부서 장일운 대리입니다.”
“네.”
“정밀 검증 신청 건 관련하여 협의가 필요해서 전화 드렸습니다.”
내게 걸려 온 전화는 초능력에 대한 정밀 검증이 목적이었다.
누나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는 것 보다도 더 중요한 전화였기에, 나는 스피커를 통해 전해지는 상대방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일단, 회신이 늦은 점.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능력이 특수한 케이스다보니 준비하는 게 힘들어서 말이죠.”
“아, 괜찮습니다. 저번에도 말씀해주셔서,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원래는 동물원을 이용할 계획으로, 울산을 고려하고 있었습니다만. 부산에 폐업처리 후 동물원을 유지 하고 있는 곳이 있더군요.”
“오……?”
나는 상대방의 말에 작게 감탄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부산에는 동물원이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일한 동물원이던 곳이 몇 년 전, 폐업을 하며 문을 닫았으니 타 지역에 원정 검증을 하러 갈 각오까지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럴 필요 없이, 부산에서 할 수 있다고 하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이 대공원 아시지요?”
“아, 네. 어릴 때 몇 번 갔었죠.”
“그곳에 동물원이 있는데, 여러 문제로 현재는 폐업 상태입니다만 내부 동물들의 관리는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현재는 해당 동물원의 협조를 받아, 검증을 진행할 계획으로 진행중입니다.”
“그럼 저야 좋죠. 안 그래도 동물원이 없어서 타 지역으로 가면 귀찮을 것 같았는데요.”
상대의 말에 나는 흐뭇하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지만 상대방은 단순하게 정밀 검증의 일정이 정해졌다고 통보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해당 동물원 측에서 한 가지 요구 조건이 있었습니다. 그 조건을 수용한다면 동물원에서의 검증을 적극 협조하겠다고요.”
“어……. 그 조건이 뭐죠?”
“아무래도 신청인께서 검증 요청하신 능력이 애니멀 커뮤니케이팅이잖습니까? 동물원에서 관리하고 있는 코끼리가 한 마리 있는데, 최근들어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그 부분에 관해 통역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런 거라면 상관 없어요. 어차피 검증을 진행하면서 충분히 가능하지 않나요?”
나는 동물원 측에서 요구하는 조건이 대단한 것이 아님을 확인하고서 수용했다.
어차피 능력을 검증하게 된다면 동물과 대화를 하는 것이 필수 불가결한 것이었다. 어차피 해야 하는 걸 하면서 상대방의 조건을 수용할 수 있다면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다행입니다. 그럼 편하신 일정을 제게 따로 보내주시겠습니까? 해당 동물원은 현재 폐업 상태라, 신청인의 일정에 얼마든지 맞출 수 있습니다. 다만, 주말이나 근무 시간 외의 검증에는 약간의 수수료가 부과되는 것을 알아주십쇼.”
먼 거리를 이동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물론, 일정까지 내가 마음대로 정할 수 있었다.
폐업한 동물원이 이렇게 내게 도움이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기에, 나는 환하게 웃으며 일정을 지정했다.
펫 카페에 관한 준비도 할 것이 많았기에, 나는 당장 내일로 일정을 지정했다.
“예. 그럼 내일 오전 열 시. 해당 동물원 입구에서 뵙겠습니다.”
상대는 전화를 끊었고, 곧바로 해당 일정에 관한 내용이 담긴 문자를 받았다.
그리고 내 곁에서 그 이야기를 모두 듣고 있던 누나가 두 눈을 반짝빤짝 빛내고 있었다.
내게 잔소리를 할 준비를 하던 누나는 어디 가고, 호기심에 불타는 누나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었다.
누나가 그 모습을 보이는 이유를 알고 있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같이 가자. 뭐, 참관이 불가능하다고 하진 않겠지.”
“사장언니남친 오빠아아아아아! 나아아아아아도오오오오오오!”
“……그래 너도.”
언제 다가온 건지는 몰라도, 내게 들러붙어 소리를 내지르는 영지도 데려가기로 결정했다.
고막 나가는 줄 알았네. 아니, 나갔나? 왜 소리가 잘 안 들리지?
딱, 딱딱!
나가진 않았네. 어휴, 다행이다.
○ ◑ ● ◐ ○ ◑ ● ◐ ○
부산 초읍에 위치한 어린이 대공원. 그곳에는 이제 들어갈 수 없는 동물원이 하나 있다.
뭐, 기업과 부산시의 문제가 얽히고 설켜, 폐업하게 된 동물원이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라면 한 번 정도는 가봤을 법한 곳이기도 했다.
당연히, 내게도 그곳에 추억이 많이 있었다. 어릴 때는 어린이날이니까 어린이 대공원을 가는 게 일상이나 마찬가지였다.
“와……. 나 예전에 여기서 엄마 손 잡고 나비 장난감 끌고 다녔는데. 그 뭐야, 바퀴 구르면 나비 날개가 탕탕 치는 거 있잖아.”
“정말? 보통 남자 애들은 그런 거 안하지 않았어?”
“나야 모르지. 했다는 기억 밖에 없어.”
어린이 대공원 내부에 위치한 동물원으로 가기 위해 어린이 대공원을 가로지르며 추억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아장아장 걸어다닐 때라 기억에 남기 보다는 사진처럼 한 장면 한 장면이 떠오른 것이었다.
물론, 누나 역시 이곳에서 이런저런 추억이 많았기에 같이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나이를 먹고, 이렇게 느긋하고 평온하기 짝이 없는 곳은 잘 찾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엄청 오랜만에 찾아온 곳은 추억이 하나하나 되살아나게 만들었다.
“에헤헤!”
영지가 해맑게 웃으며 달려나가기 전까지는.
“영지야!”
“빨리가요오오!”
한 시라도 빨리 내가 정밀 검증 하는 것을 보고 싶다는 건지, 영지는 비글마냥 전력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누나는 우다다 달려나가는 영지의 뒤를 따라 뛰기 시작했고, 나 역시 그런 영지와 누나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아니, 댁들은 나 없으면 들어가지도 못해!’
속으로 아무리 외쳐봐야 저만치 앞서 나가는 두 여자에게 들리는 일은 없었다.
결국 헉헉거리며 두 여자를 따라 올라간 나는 동물원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두 여자를 발견했다.
“헉, 헉허억……! 학, 뒤지……하악……! 겠네……!”
“괜찮아?”
한동안 운동하지 않았더니 가빠오는 숨을 몰아쉰 나는 곁에 다가와 등을 두드려 주는 누나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헥헥대느라 바쁜데 어떻게 말을 하고 있어.
‘와, 진짜 뒤지겠다. 운동해야겠네…….’
새삼 내 체력이 거지같음을 확인한 나는 운동할 것을 다짐했다. 일단 오늘은 말고.
“후우우우우…….”
어느정도 진정되어, 숨을 길게 토해낸 나는 굽히고 있던 몸을 다시금 들어올렸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차마 누나의 앞에서 그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애써 떨리는 다리를 억누르며 주변을 둘러 보았다.
오래 전, 동물원의 명칭이 지금과 달랐을 때 온 기억과는 많이 달라진 동물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만 폐업으로 인해 입장이 불가능한 탓인지 입구 부근에는 입장이 불가능하다는 팻말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때 두 명의 남자들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한 명은 가볍게 입을 수 있는 정장을 입고 있는 남자였고, 다른 한 명은 사육사처럼 보이는 남자였다.
“반갑습니다. 신수환씨 되시죠?”
두 남자 가운데 정장을 입고 있는 남자가 다가왔다. 그는 내게 손바닥보다 작은 종이, 명함을 건넸다.
[초능력 연합회] [정밀 검증 부서 장일운 대리]“앗, 제가 얼마 전에 퇴사해서 명함이…….”
명함을 주고 받아야 할텐데, 줄 명함이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 본인의 신분을 증명할 용도로 준 것인지 장일운 대리는 손을 내저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참관인 분들도요.”
장일운 대리는 제 곁에 있는 사육사로 추정되는 남자와 함께 앞장서서 걸음을 옮겼다.
입장이 불가능함을 알리는 팻말을 지나, 오르막길을 조금 걷다보니 몇몇 사람들이 더 자리하고 있는 곳이 눈에 띄였다.
장일운 대리처럼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반, 사육사로 추정되는 사람과 비슷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반이었다.
당연하지만 그들은 초능력 연합회에서 나온 검증단이었고, 동물원의 동물들을 사육하고 있는 사육사들이었다.
그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눈 나는 장일운 대리의 안내를 받아 정밀 검증이 어떤 식으로 이뤄질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검증은 간단했다. 검증단이 챙겨온 여러 장비들을 통해, 초능력자에게서 나온다는 특유의 파장의 세기를 1차적으로 검증하고, 초능력의 활용을 2차적으로 검증한다는 것이었다.
1차 검증은 무척 간단했다. 헬스장이나 보건소에서 인바디 측정을 하듯, 측정 봉 같은 것을 양 손에 쥐고 머리에 헬맷을 쓴 다음 기계를 작동하는 것이 전부였다.
컵라면 하나 다 먹기도 힘들 시간 안에 1차 검증은 끝이 났고, 남은 것은 활용 검증이었다.
“활용 검증은 동물들과 커뮤니케이팅이 어느 수준으로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 검증할 예정입니다. 저희가 사전에 준비해둔 것들을 동물들을 통해 파악하시는 형태로 진행 될 겁니다.”
“사전에 준비해둔 것들이요?”
“예. 뭐, 대단한 건 아닙니다. 저희가 동물들에게 이런저런 행동을 보여주었는데, 동물들과의 대화를 통해 파악하시면 됩니다. 약간 비유를 하자면 동물들을 상대로 목격자 진술을 받으시는 거죠. 아, 참고로 이 부분은 녹화가 될 예정입니다.”
동물들을 통해 추리를 하라는 장일운 대리의 말에 피식 웃으면서도, 흥미가 동하기 시작했다.
방탈출 카페를 처음 갔을 때 느끼던 그 느낌과 비슷했다.
그리고 그것은 내 곁에 있던 누나와 영지 역시 마찬가지인지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일단, 시작은 기린입니다. 저희가 기린에게 어떤 것을 했는지 파악하시면 됩니다.”
시작은 기린이었다.
기린이 시작임을 알린 장일운 대리 옆에서 사육사가 곁으로 다가왔다.
“기린이 온순한 동물이긴 하지만, 맹수 축에 끼는 동물입니다. 하마나 코뿔소랑도 맞다이가 가능할 정도니까요. 혹시라도, 과한 자극을 하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네.”
순하기만한 초식동물이라 생각했는데, 맹수라고하니 괜히 걱정 됐다.
‘하마랑 코뿔소랑 맞다이라니…….’
괜히 까불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사육사가 건네준 식빵 한 쪼가리를 들고서 난간에 가까이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