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104
0103 영물
“반갑습니다. 이 병원의 원장겸 수의사인 해수병입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젊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연령대로 보이는 수의사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는 오늘 내가 키우고 있는 동물들의 전반적인 건강검진 등을 해주기로 한 수의사였다.
나름대로 특이한 동물들을 키우는 만큼 동물들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병원이 필요했는데, 거기에 적합한 곳이 사실상 이곳 밖에 없었다.
“오늘 잘 부탁드릴게요. 아, 그리고 저번에 말씀드린대로 방송에 출연하셔도 괜찮으실까요?”
“물론입니다. 저야 병원 홍보도 되고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나는, 곧바로 동물들을 이끌고 동물병원 내부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 들어가니 푸른색의 유니폼 같은 것들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이 분들은……?”
“아, 말씀드리는 걸 잊었군요. 저희 병원 수의사 선생님들입니다. 아무리 저라고 해도, 모든 동물들을 잘 보는 건 아니니 말입니다.”
나는 저마다 맡은 분야가 다르다는 수의사들과 인사를 나눴다. 게다가, 그들은 나와 인사를 나눈 이후, 내 뒤를 따라 오던 동물들에게 다가가 부드럽게 인사를 건넸다.
저마다 담당하고 있는 동물들에게 다가간 듯 누구는 개들에게 다가가고, 또 누구는 새들에게 다가가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수의사들이 나름대로 진료 전의 친목을 도모하는 모습을 본 나는 걱정이 들었다.
“악! 때, 때리지 마아…….”
남캣에게 후드려 맞는 한 수의사를 보며, 과연 진료를 맡겨도 될까-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하기로 결정된 것이었기에, 나는 진료를 진행했다.
가장 먼저 진료를 본 것은 소은이가 무척 좋아하는 토끼즈였다. 깨어 있는 시간의 절반을 토끼즈를 데리고 다닐 정도로 좋아하니, 녀석들의 건강이 내심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여기 올라가서, 몸을 쭉 펴고 있어달라고 해주실 수 있을까요?”
엑스레이를 찍기 위해, 수의사들은 내 도움을 요구했다. 동물들의 저항이 없다면 엑스레이의 결과가 무척 선명하게 나오니 들어주지 못할 것도 없었다.
토끼즈를 한 마리씩 들어올려, 엑스레이를 찍었다. 자세를 잡아주고 마법의 단어인 “멈춰!” 한 번이면 붙잡고 있지 않아도 가능했다.
아무튼, 그렇게 토끼즈의 엑스레이 촬영이 끝난 이후, 곧바로 검진이라 할만한 행위에 들어갔다.
“음, 귀는 깨끗하네요. 코도 괜찮고……. 털도 깔끔하네요. 자주 관리해주시는 건가요?”
“그렇죠. 아무래도 소은이가 얘들을 엄청 좋아하다보니 더 관리한다고 해야할까요?”
“정말 상태가 좋아요. 여기, 엑스레이 부분을 보시면 평범한 토끼들 보다 뼈 자체가 튼튼하고요. 이빨도 이 이상 좋을 수 없을 수준이네요.”
토끼를 봐준 수의사는 무척 감탄을 연발하며 토끼들의 몸 여기저기를 만졌다.
“진짜 건강한 아이들이네요. 체중도 정상이고, 어디 하나 부족한 부분이 없어요!”
이렇게 건강한 토끼를 보는 건 오랜만이라는 수의사의 말에 괜히 내 어깨가 으쓱여졌다.
하지만 아직 남아 있는 동물들이 많았기에, 나는 곧바로 다음 동물의 진료를 위해 이동했다. 이번에는 유부를 비롯한 조류였다. 까치와 까마귀의 일부와 거위들이 대상이었다. 물론, 페엥 역시 포함이었다.
역시 검진의 시작은 엑스레이였다.
“……너네 다리 엄청 길었구나?”
엑스레이에 찍힌 사진을 본 나는 새삼 신기함을 느끼며 유부와 페엥을 바라보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짤막하기 그지 없는 다리였음에도, 엑스레이상으로 보이는 것은 거의 겉으로 보이는 몸의 길이만한 수준이었다.
“내 다리가 그리 짧게 보였소이까?”
“나눈 다리 짧앙!”
유부는 몸을 길쭉하게 늘이며 제 다리를 과시했고, 페엥은 차마 펴지지 않는 건지 뒤뚱거렸다.
서로 비슷하면서도 상반된 모습을 보이는 것에 피식 웃은 나는 거위는 물론, 까치와 까마귀들의 엑스레이도 손쉽게 찍어냈다.
“유부는 전체적으로 괜찮지만, 활동량이 조금 부족한 것 같네요. 조금 더 활발하게 움직이도록 해주시는 게 좋겠어요. 보통의 부엉이보다 체중이 살짝 더 나가는 상황이거든요. 근력 자체가 뛰어난 편이라 문제가 될 건 아니지만요.”
활동량이 부족한 거면 해결방법이 하나 있지.
나는 유부와 남캣의 대결을 다시금 붙일 생각을 하며, 페엥을 진료대에 올렸다.
“페엥이도 괜찮은 편이예요. 사실 펭귄에 대한 부분은 부족한 부분이 좀 많아서 더 자세한 검진은 힘들어요. 그래도, 엑스레이나 외형적인 부분에서는 전혀 문제가 없어요.”
페엥의 검진 결과가 조금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문제가 없다는 것에 나름 만족할 수 있었다.
“까치와 까마귀들은……. 얘들 진짜 까치랑 까마귀 맞아요? 왜 이렇게 큰 거예요?”
그리고 까치와 까마귀들은 수의사를 경악시켰다. 까치와 까마귀의 덩치가 생각보다 크다는 것이 이유였다.
인쇄기에 출력된 종이 한 장을 건네주길래 봤더니, 까치와 까마귀의 실제 크기를 1:1 비율로 그려놓은 그림이 인쇄되어 있었다. 슬그머니 까치와 까마귀에게 대어보니 그 차이가 확연히 눈에 띌 정도였다.
“일단 얘들도 전체적으로 건강하네요. 대신 서열 싸움이 조금 있는 건지, 상처 있는 아이들이 있으니 그 부분만 조금 관리만 해주시면 될 거예요.”
수의사의 말에, 까치와 까마귀들 중 몇 마리를 보니 상처가 있는 녀석들이 있긴 했다. 나는 가볍게 상처를 처치하는 방법을 전해듣고서, 곧바로 다른 동물로 넘어갔다.
“이야! 한무 이 녀석은 정말 건강한데요? 한 백 년은 더 살겠어요.”
“……장난이죠?”
“아뇨, 진짠데요? 이 녀석, 지금 건강 상태로만 보자면 아직 열 몇 살 정도로 보여요. 수명이 한 백 년 정도 되니, 진짜 백 년을 더 사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죠.”
나는 한무의 수명 이야기에 입을 다물었다.
나보다 더 오래사는 건 물론이고, 소은이보다도 더 오래 살 수 있다는 소리였으니 황당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라쿤들도 참 건강하네요. 다만 발톱이 조금 너저분한 편이라, 관리해주시는 게 좋겠어요. 스크래쳐나, 깎아주거나요. 그리고, 지능도 제법 높아 보이네요.”
라쿤들 역시 건강 그 자체라는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라쿤에 이어 검진을 진행한 것은 고양이들이었다.
“저, 솔직히 얘는 진짜 검진해보고 싶었어요. 매번 보면서, 쟤는 고양이가 아니라 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거든요. 어느 고양이가 부엉이를 후드려패서 이기는지…….”
정말 신기하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은 고양이 담당 수의사는 남캣을 붙잡았다.
귀를 이리저리 까보기도 하고, 털 사이사이를 들추며 피부를 확인하는 것은 물론이고 입을 벌려 이빨을 확인하는 것도 서슴치 않았다.
게다가 그것으로는 모자랐던 건지, 수의사는 남캣의 가랑이 사이마저 확인하려고 했다.
“악! 미안, 미안해! 거긴 안 볼테니까 때리지만 마!”
당연히 거기까지 허락할 생각은 없던 남캣이 수의사를 폭행하는 일이 있었지만, 다행히 그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고양이들도 전체적으로 괜찮은 상태네요. 그리고, 축하드려요.”
“……네? 뭐가요?”
“폭신이가 새끼를 가졌거든요. 아직 초기라서 티는 잘 나지 않는데, 새끼를 가진 건 확실해요.”
“허…….”
건강 상태를 확인하러 왔다가, 폭신이의 임신 소식을 들은 나는 황당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 황당함은 이내 묘한 감정으로 바뀌었다. 내 자식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족이라 할 수 있는 폭신이가 새끼를 가졌다니 묘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고양이들은 알아서 잘 하는 편이라, 약간의 도움만 주시면 될 거예요.”
나는 이것저것 알려주는 수의사의 말을 메모하고서는 폭신이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 그런 고양이들의 검진이 끝나고 나니 남은 것은 꼬리를 힘차게 흔들어대는 개들이 남았다.
“……얘들 진짜 개 맞습니까?”
개들의 검진이 시작되자, 개들을 담당하는 수의사가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또 왜?
“여기 좀 보시죠.”
국내에서 가장 보편적인 반려동물이 개다보니, 개들을 위한 검진 장비가 제법 많은 편이었다. 그렇기에, 검사 결과도 꽤나 자세하게 나왔다.
수의사는 그 수많은 결과 사이에서 한 개의 결과를 가리켰다. 청호의 검진 결과였는데, 치악력 부분이었다.
[치악력 – 1157psi]“1157psi? 이게 어느정도 수준이죠?”
“북극곰 보다 살짝 낮은 수준이요…….”
“……예?”
나는 또 한 번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수의사의 이야기는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어제 방송하신 걸 봤는데, 그것 때문에 청호는 추가적으로 몇 가지 검사를 더 했거든요? 근데 그것도 평균을 아득하게 상회하네요.”
수의사는 청호의 상태가 최상, 그 이상이라 설명했다. 등허리는 조금도 굽지 않았으며, 오히려 비슷한 나잇대의 개들과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좋다고 했다.
뿐만아니라, 성인 둘을 질질 끌고 가던 그 모습에 혹시몰라 테스트를 해보니, 200kg 이상의 무게를 끌고 달릴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도 했다.
그렇게 말한 수의사는 이런 동물은 수의사 일을 시작한 이후로 처음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심지어, 청호 외에도, 다른 개들 역시 평범한 개들과 비교할 수 있는 수치가 아니었다.
특히, 마루의 경우에는 지구력이 그래프의 천장을 뚫고 있었고, 최대 속력 역시 70km/h 이상을 나타내고 있었다.
“나태는……. 진짜 안 움직이는 게 맞나요?”
“네. 움직이라고 해도 안 움직이니까요.”
“근데 왜 체중이나 기타 다른 부분들이 전체적으로 정상일까요?”
“……글쎄요?”
나는 그걸 왜 나한테 묻나 싶었다. 오히려 내가 궁금한데.
그래도 전체적으로 건강에 문제가 있는 녀석들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만족스러웠다. 아니, 오히려 대부분이 갓 태어난 동물들보다도 더 건강한 상태였으니 만족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카메라를 보면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내가 동물학대를 했으면 동물들이 나를 좋아해주고, 이렇게 건강했겠어요? 앞으로 이딴 헛소리 하는 분들은 명확한 증거를 가져오세요.”
동물들의 건강 그 자체를 확실하게 증명해낸 나는 후련한 마음으로 방송을 종료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방송이 종료된 이후, 동물들은 정말 영물이라는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아니 어떤 개가 혼자서 200kg을 끄냐고 ㅋㅋ] [동물의 평균치에 가장 근접한 녀석이 나태라니. 움직이지도 않는 놈이 평균이고, 움직이는 놈들은 평균을 아득히 상회하네…….] [북극곰 vs 청호. 가슴이 웅장해지는 대결!] [그 와중에 살찐 유부.] [싸워서 이길 자신이 있는 동물이 나태밖에 없다…….]범상치 않은 동물들의 건강에, 사람들은 진심으로 녀석들을 영물로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