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109
0108 붉은여우(1)
“끙……. 이거 완전 격리당한 느낌이야.”
“어쩔 수 없잖아. 이거 마시고 좀 쉬고 있어.”
카페에 있다가 쫓겨나, 집으로 돌아오게 된 나는 누나가 내미는 커피 한 잔을 받아들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다름이 아니라, 카페에 찾아온 손님들이 내가 있을 때면 체류시간이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동물들을 보는 것도 보는 거지만, 내 주변에서 슬쩍 돌아다니면서 시간을 때우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었다.
내가 없다면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지만, 내가 있다면 체류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내가 쫓겨난 것이었다.
입장을 위한 대기열은 길어지고, 사람들이 복작거리니 카페도 비좁게 느껴지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에휴. 뭐 하지?”
할 일이 사라지고 백수마냥 놀게 된 나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리모컨을 만지작거렸다.
소은이라도 있으면 심심하지 않겠지만, 열심히 카페에서 뽀니를 타고 놀고 있는 중이라 부르기도 애매했다.
다른 아이들처럼 아동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보다 뛰노는 것을 좋아하는, 이 시대에는 조금 특이한 아이였으니 말이다.
“그러고보니, 요즘 청호가 뽀니를 많이 질투하고 있었지?”
뽀니가 소은이를 태우고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확인한 무하마드가 친절하게도 안장을 어디선가 공수해왔었다. 그로인해 소은이는 청호보다 뽀니를 타고다니는 경우가 더 많아진 상황이었다.
당연히 매번 소은이를 태우고 다니던 청호는 뽀니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며 어떻게든 소은이를 제 등에 태우려고 수작을 부리는 중이었다. 툭하면 엉덩이를 들이민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비록, 네다섯 번 중에 한 번 정도 성공하는 것이었지만…….
아무튼, 그렇게 하릴 없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나는 리모컨을 눌러 티비의 채널을 돌리기 시작했다.
예능을 재방송해주는 채널도 지나고, 홈쇼핑도 지나고, 영화 전문 채널도 지났지만 딱히 볼만한 것은 없었다.
아무래도 평일의, 이제 갓 점심을 넘긴 시각이다보니 볼만한 것이 없는 것이었다.
결국 돌고 돌다가 멈춘 채널은 뉴스 채널이었다.
[당악 그룹의 오너일가 3세가 벌인 중범죄에 대한 의혹들이 사실로 밝혀지며…….]“요즘 뉴스는 저딴 거 밖에 안 나오네.”
뉴스를 보던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저걸 왜 보고 있나- 싶었다.
어릴 때도 그랬지만, 뉴스를 보고 있는 지금도 부모님들이 왜 뉴스를 보고 있던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너무 부정적인 뉴스 밖에 안 나와서 그런가?’
나는 어릴 때 보던 뉴스와는 꽤나 많이 달라진 뉴스 분위기 때문인지 고민했다. 어릴 때는 그래도 긍정적인 부분도 꽤 많이 나왔던 거 같은데.
그런 내 생각을 알기라도 하듯, 금세 뉴스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정확히는 전국 뉴스에서 부산 지역 뉴스로 바뀐 이후였다.
[해운대에 위치한 산에 야생 붉은여우가 출몰한지 일주일이 경과 됐습니다. 경북 영주에서 강원도를 경유하여 내려온 것으로 확인 된 해당 개체는 약 400km를 움직인 것으로 알려졌으며…….]“붉은여우?”
뉴스에서 동물의 이야기가 나오니, 나도 모르게 관심이 가게 되었다.
[……하지만 포획에는 난항이 있다고 합니다. 먹이를 이용하여 포획틀에 가두어 포획하려 하지만, 흔히들 캣맘이라 부르는 이들이 여우의 먹이를 주고 있어 난항이라고 합니다. 환경부에서는 부디 야생 여우에게 먹이를 주지 말 것을 간곡히 부탁하고 있으며…….]“하여간 캣맘들이 문제라니까.”
뉴스의 내용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캣맘에 대해서 별로 좋지 못한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능력을 개화하기 한참 이전, 고등학생 시절이던 그 때. 캣맘으로 인해 당시 살던 아파트에 큰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파트에 이사온 캣맘이 그대로 동네 길고양이들을 싹 끌어모아버렸고, 그 탓에 겨울철 아침만 되면 본넷 안에 들어간 고양이들을 뺀다고 아파트 주민들이 고생을 겪어야 한 것이었다. 당연히 거기엔 나와 아빠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매일 아침마다 고양이를 꺼내는 것을 도와야 했었다.
“겨울방학인데 늦잠 한 번 못잤지. 고양이들을 꺼낸다고. 아, 그 때 이 능력 있었으면 딱인데.”
기분 나쁜 추억과 짙은 아쉬움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나는 티비를 끄고 마당으로 나갔다.
마당으로 나간 나는 곧바로 화단에 다가가 작물들의 상태를 바라보았다. 어느것 하나 빠짐없이 내 초능력의 영향인지 아주 파릇파릇한 잎과 단단한 줄기, 거기에 아주 튼실한 열매가 가득했다.
“오, 잘 익었네. 저녁에 먹을까?”
“웅!”
“으악!”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하던 나는, 갑자기 들려온 대답에 화들짝 놀라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리고, 내 혼잣말에 대답한 범인을 바라볼 수 있었다.
뽀니 위에 위엄 넘치게 올라탄 소은이가 그 범인이었다. 해맑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니 놀람 대신 의문이 자리잡았다.
대문은 닫혀 있고, 동물들이 오갈 수 있도록 만들어둔 문은 뽀니가 넘나들 정도의 크기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떻게 온 거야? 대문도 닫혀 있는데.
“소은아, 어떻게 온 거야?”
“뽀니 타고!”
“어……. 그럼 뽀니는 어떻게 왔어?”
“뽀니!”
내 물음에 소은이는 뽀니를 향해 손짓했고, 뽀니는 도움닫기를 하듯이 마당을 두어 바퀴 돌더니 그대로 담벼락을 향해 점프했다.
“위험……!”
그 모습에 위험하다 소리치려던 나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담벼락의 반도 안 되는 자그마한 뽀니 녀석이, 그대로 담벼락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가볍게. 그 움직임에 효과음을 붙이자면 뽀용- 정도가 될 것 같았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한 건데?’
믿기 힘든 그 모습에 입을 떡- 벌리고 있으니 반대편에서 토도독,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다시금 뽀니가 마당으로 날아들었다. 말 그대로 날아든 것이었다. 심지어 녀석이 바닥에 떨어질 때 착지음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뽀니야 다시 한 번 해볼래?”
“네!”
뽀니는 내 말에 별 것 아니라는 듯한 모습으로 다시금 도움닫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다급히 휴대폰을 들어 그 모습을 촬영했고, 뽀니가 담벼락을 왕복으로 넘나드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그대로 영상을 무하마드에게 전송해주었다.
영상을 전송해주고 이삼 분 정도 있으니 답장이 돌아왔다.
[옆집중동부자 님이 1,000,000,000 원을 송금하셨습니다.] [사진] [뽀니 그뤠잇! 뮤튜브 업로드 주세요! 뽀니 팬클럽, 비디오 좋아한다 입니다!]무척 흡족하다는 듯이 웃으면서 박수를 치는 무하마드의 사진과 10억 원이 송금되었다는 알림이 보여졌다.
괜시리 흡족해진 나는 소은이와 뽀니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다시금 소은이를 뽀니의 등에 태웠다.
“소은아. 엄마한테 가서 저녁에 참외 먹자고 해.”
“웅웅!”
참외를 특히 좋아하는 소은이는 해맑게 웃더니, 뽀니의 갈기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것이 신호라도 된 것인지 뽀니가 달리더니 다시금 담벼락을 뛰어넘었다. 약 15kg 정도 되는 소은이를 태우고서도 뽀니는 아주 가볍게 담벼락을 뛰어넘었다.
“이히히!”
소은이도 따로 충격을 받는 건 아닌지, 아주 즐겁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래, 좋아하면 됐지. 딱히 위험해 보이는 것도 아니니까.
뽀니가 담벼락을 뛰넘는 모습을 보아하니 조금도 위험하게 보이지 않았다. 착지음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게 착지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근데 어째, 내 주변 동물들이 점점 괴물처럼 바뀌는 거 같은데……. 기분탓이겠지?”
애써 현실도피를 한 나는 현관 신발장의 수납함에 들어 있는 꽃가위를 가져왔다. 말이 꽃가위지, 실상은 열매를 따는데 쓰는 가위였다.
“세 개나 네 개만 딸까.”
참외를 먹기로 결정했으니, 미리 따서 씻어놓고 시원하게 냉장고에 넣어둘 생각이었다.
전화받어어어어- 전화아아아- 받어어어어어-
그런데 참외를 두 개 땄을 때, 주머니에 들어 있던 휴대폰이 울렸다.
[010 – XXXX – XXXX]“모르는 번혼데?”
모르는 번호라 전화를 거절할까- 생각도 했지만, 카페에서 쫓겨나 할 일도 없이 참외나 따고 있던 내게는 딱 좋은 여흥거리 같이 느껴졌다.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저는 국립공원연구원에서 야생동물을 담당하고 있는 공연수입니다. 혹시, 이 번호가 신수환님 휴대폰 번호가 맞습니까?”
“네, 본인인데요.”
“아! 반갑습니다!”
나를 찾는 전화에, 본인이라 알려주니 상대방이 무척 기뻐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번호를 잘못 전달받고 다른 곳에 몇 번 걸기라도 한 건지, 그는 다행이라 중얼거리더니 곧장 본론을 꺼내기 시작했다.
“제가 이렇게 신수환님께 연락을 드린 것은 다름이 아니옵고, 현재 부산에 출몰한 붉은여우 때문입니다.”
“붉은여우요? 그 해운대에 있는 산에 나타났다던?”
붉은여우라는 말에 나는 조금 전 뉴스에서 보았던 내용이 떠올랐다. 붉은여우가 나타났지만 캣맘들의 방해아닌 방해로 인해 포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예. 현재 여러 방법으로 포획을 시도 하고 있지만……. 솔직히 결과가 좋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런 붉은여우에 관한 이야기로 인해, 나는 내게 전화를 건 국립공원연구원의 공연수라는 사람의 의도를 유추해낼 수 있었다.
“제 도움이 필요로 하시는 거죠?”
“아……. 그렇습니다. 인력도 부족한데 포획에 난항까지 겪고 있다보니…….”
공연수는 할 말이 없다는 듯이 말을 흐렸다. 하긴, 야생동물 담당인데 그 야생동물을 아직까지 포획하지 못하고 있으니 무어라 떠들기 애매하겠지.
“이렇게 전화로 이야기하는 것 보다, 직접 오셔서 자세하게 설명해주셨으면 하는데요. 괜찮으실까요?”
“네! 오히려 제가 부탁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럼 지금 오세요.”
“……네?”
“지금 오세요. 저희 집으로 오시면 돼요. 위치는 아시나요? 모르시면 저희 카페에 붙어 있는 단독주택으로 오시면 돼요. 누가 막으면 제가 허락했다고 하시고요.”
내 말에 공연수가 얼떨떨하다는 듯이 어물쩡 대답을 했다. 하지만 일이 정말 급하긴 했던 건지, 금방 찾아왔다.
집으로 찾아온 공연수는 이런저런 자료같은 것들을 챙겨와 내게 보여주었다.
기존에 관리되다 야생에 풀려난 녀석들이라 GPS가 달려 있었는데, 그 경로가 상상 이상이었다. 경북 영주에서 시작해, 강원도를 거치고 동해안을 따라 남하해서 부산까지 도달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부분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