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112
0111 까마귀
“후……. 진짜 뭐 할 게 없네.”
붉은여우 포획 이후, 나는 또 다시 무료함을 느끼며 소파에서 뒹굴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아침부터.
포획한 여우들은 금세 교육이 완료되어 카페에서 사람들에게 이쁨을 받는 중이었으니, 더 이상 내가 할 게 없었다. 심지어, 소은이도 유치원을 다니고 있었으니 더더욱 할 것이 없었다.
결국 나는 무료함을 참지 못하고, 휴대폰을 들어올려 뮤튜브 라이브를 시작했다.
[드하!] [ㄷㅎㅅㅎ] [helloooooooo!] [신수님 방송 공지좀 하고 해주세요 ㅠㅠ]라이브를 시작하자마자 사람들이 몰려들어와, 시청자 수가 순식간에 팍팍 올라갔다. 전 세계에 퍼져 있긴 하지만, 구독자 수가 5천만 명을 넘긴 상태였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온갖 언어로 된 인사에 보답할 생각으로, 여전히 소파에 뒹굴던 자세 그대로 손을 슥- 들어올렸다.
“좋은 오후입니다. 물론, 어딘가에는 밤이거나 이른 아침일 수도 있겠지만요.”
내 인사에 다시금 채팅창이 와르륵- 올라갔다.
[오늘 뭐 하려고 방송 키셨나요?] [ㅇㅋㅁㅇㅋㅁ] [딱 봐도 할 거 없어서 켰자늠.] [오컨무?]내가 방송을 킨 이유를 확실하게 파악한 사람들의 채팅이 보여, 머쓱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와, 어떻게 알았죠? 진짜 할 거 없어서 켰는데.”
[수독카 님이 1만 원 후원!] [“지금 표정이 당장 심심해 죽겠다는 건데 무슨.”]후원 메시지에 나는 머쓱하게 웃음을 지어보였다. 내 표정에 그렇게 심심하다는 게 드러났나?
“아무튼! 오늘 이렇게 방송을 켠 이유는!”
[이유는?]“오늘 뭘 해야할지 추천받기 위함입니다!”
[광어회 님이 5만 원 후원!] [“날로 먹겠다는 거네?”]“하하하핫!”
나는 후원 메시지를 애써 무시하며, 다른 채팅들을 집중해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동물탐방 ㄱㄱㄱ] [유부 고개 돌아가는 거 찍어주세요.] [시청자 집 방문해서 동물 케어해주기! 예전에 세복이처럼!] [소은이 보여줘요! 소은이!] [오랜만에 남캣이랑 유부 싸우는 거 구경!]채팅을 유심히 바라보던 나는 어느 한 채팅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복이를 언급해주는 분들이 계시네요.”
[간식 자판기좌 보러 갑시다!] [이제는 간식달라고 안 짖나요?]“네. 세복이는 잘 지낸다고 해요. 아버지랑도 잘 지내고요.”
세희 어머니가 우리 편집팀의 메인 PD였으니 모를 수가 없는 일이었다.
어쨌거나, 오늘의 할 일을 정한 나는 곧바로 아웃스타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세복이 이후, 내 아웃스타에는 자기들의 반려동물에 대해 말하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온갖 쓸데없는 DM들을 지나, 이런저런 내용들을 확인하던 도중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신수님 ㅠㅠㅠ 제발 도와주세요 ㅠㅠㅠ 까마귀한테 테러당하고 있어요 ㅠㅠㅠㅠㅠㅠㅠ]모음을 눈물표시로 쓰는 이모티콘이 그득한 DM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눈을 끄는 것은 까마귀한테 ‘테러’를 당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까마귀한테 테러를 당하고 있다고? 신기하네.”
까마귀들을 부하로 부리는 유부 덕분에 까마귀에게 테러를 당한다는 것이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때 또 다시 후원 메시지가 터졌다.
[까마귀피해자 님이 1만 원 후원!] [“와! 제가 보낸 거예요!”]“정말 본인인가요?”
갑자기 터진 후원 메시지에 놀란 나는 급히 되물었다. 그리고, 뮤튜브 채팅이 아닌, 내가 쥐고 있는 휴대폰으로 대답이 돌아왔다.
아웃스타의 DM을 통하여 답이 돌아온 것이었다.
[저 맞아요! 까마귀피해자!]“오……. 이렇게 사연의 주인공을 만날 줄은 몰랐네요.”
설마 방송을 시청하고 있는 시청자 중에 사연의 주인공이 있을 줄은 몰랐다. 시청자들도 DDDG, ㄷㄷㄷㅈ, 주인공업 등의 채팅을 치며 사연의 주인공을 반겨주었다.
나는 곧장 DM을 통해 연락처를 받아, 사연의 주인공과 전화를 연결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신수님 정말 팬이에요!”
사연의 주인공은 앳된 목소리의 여자였다. 그녀는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꺅꺅 소리를 치더니 팬이라며 온갖 감탄사를 터트려댔다.
진정하는 것을 잠시 기다려준 나는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일단 사연의 주인공께 한 번 질문을 좀 해보겠습니다. 까마귀들에게 테러를 당하고 계신다고 했는데, 정확히 어떻게 테러를 당하고 계신 건가요?”
“아, 그게요. 저번 달 부터인가? 까마귀들이 저만 보면 막 공격을 해대요. 진짜 크게 다칠 정도는 아닌데……. 머리카락을 물어뜯는다던가, 지나가다가 쪼거나 똥을 싸대는 정도로요.”
“와……. 그게 진짜인가요?”
“네! 증거도 보내드릴게요!”
내 물음에 사연의 주인공이 곧바로 아웃스타 DM으로 영상과 사진을 보냈다.
영상은 CCTV 영상으로 보이는 것이었는데, 길가를 지나가던 한 여성이 열 마리 남짓한 까마귀들에게 공격당하는 모습이었다. 이리저리 후려치며 어떻게든 도망치는 것에 성공한 영상이었다.
그리고, 사진은 그 영상에 나온 여성이 입고 있던 옷과 똑같은 것이 찍혀 있었다. 처참한 상태로 말이다. 여기저기 찢기고, 허여멀건 이물질로 더럽혀져 있는 상태였다.
[ㅗㅜㅑ] [와 이건 좀 심했다;;] [나 저거랑 똑같은 옷 있는데 30만 원 정도 함.] [ㄹㅇ 나같으면 약 뿌렸다.] [한두 마리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ㄷㄷㄷ]증거라고 할 수 있는 영상과 사진을 보게 된 시청자들이 놀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긴, 한두 마리도 아니고, 열 마리 정도 되어보이는 까마귀들에게 공격당하는 모습을 봤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겠지.
“와, 진짜 장난 아니네요. 이런 일이 매번 있는 건가요?”
“거의 매번이요. 딱 저 장소를 지나가면 꼭 그래요. 집이 바로 근처라서 저기를 지나다니지 않을 수도 없고……. 이사도 생각할 정도예요.”
“아……. 힘드셨겠네요.”
네, 무척이요! 하고 외치는 상대방의 목소리는 진심이 가득 묻어났다.
“그럼 지금 주거하고 계신 곳이 어디시죠?”
“부산이요!”
“오? 가깝네요. 그럼 지금 바로 보실래요?”
“저는 좋아요!”
나는 마침 같은 부산지역인 만큼, 곧바로 만나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할 일이 없어 방송을 켰으니, 지금 당장 만나는 것이 좋았다.
누나에게 잠시 외출한다고 알린 후, 곧장 움직인 나는 사연의 주인공을 만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신수님께 사연을 보낸 오윤지입니다! 팬이에요!”
“반가워요.”
사연의 주인공, 오윤지를 만난 나는 반쯤 휘말리듯 팬서비스를 해줘야 했다. 사진도 찍어주고, 싸인도 해주게 된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야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혹시, 까마귀들이 왜 그러는 건지 의심 될만한 게 있나요?”
“전혀 모르겠어요. 갑자기 저만 보면 달려들어서……. 저도 왜 그러는지 꼭 좀 알고 싶어요. 다른 곳으로 갔을 때는 까마귀들이 공격하지 않는데, 유독 여기서만 까마귀들이 저를 공격해요.”
“다른 지역에서는 그러지 않는다고요?”
“네에. 딱 집이 있는 골목에서만 그래요. 지금도, 집에서 좀 떨어진 곳이잖아요? 저기 까마귀가 있지만, 저를 본 척도 안 하잖아요.”
오윤지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까마귀 한 마리가 먹을 것이 있나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이곳으로 시선이 간간히 오긴 했지만, 오윤지를 공격하려는 모습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네요. 그럼, 일단 그 골목으로 가볼까요? 어떻게 된 건지, 그 까마귀한테 물어보는 게 제일 빠르겠죠.”
나는 곧장 오윤지와 함께, 그녀가 사는 집이 있는 골목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골목에 접어드는 것과 동시에 까마귀들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힉!”
오윤지는 그 모습을 보며 오들오들 떨더니 내 뒤로 쏙, 숨어버렸다.
“죽어라! 원수!”
내 뒤로 숨는 오윤지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까마귀들은 곧바로 오윤지를 공격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멈춰!”
“깍!”
언제든지 유용하게 쓰는 마법의 단어를 내뱉자마자, 날아오던 까마귀들이 그대로 바닥을 나뒹굴었다.
열 마리에 가까운 까마귀들이 바닥을 나뒹굴고 그대로 굳어 있었다. 나는 그런 녀석들에게 다가가, 한 녀석을 잡아들었다.
“야, 왜 공격하려고 하는 거야?”
내 물음에 까마귀는 도망치려고 했지만, 꽈악 붙잡힌 상태에서 도망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결국, 버둥거리는 것을 포기한 까마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인간이 내 둥지와 알을 다 부쉈다! 복수하는 거다.”
“둥지와 알을 부쉈다고?”
“그렇다! 저 인간이 부쉈다!”
나는 곧바로 오윤지에게 시선을 돌렸다. 까마귀들이 바닥을 나뒹구는 모습을 보며 금세 진정한 상태였기에 대화를 나누는 것에 문제는 없었다.
“까마귀들이 윤지씨가 둥지랑 알을 부쉈다고 하는데……. 어떻게 된 건가요?”
“저는 절대 그런 적 없어요! 제가 싸이코도 아니고, 까마귀 둥지를 왜 부수겠어요.”
“으흠…….”
나는 결백함을 주장하는 오윤지의 말에 잠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고민은 금세 풀릴 수 있었다.
“아……! 생각해보니, 그 때 어떤 술취한 여자가 제가 가진 옷이랑 똑같은 옷을 입고 있었어요!”
“예? 술취한 여자요?”
“네. 생각해보니까, 그 뒤로 까마귀들이 저를 공격한 거 같아요. 술취한 여자가 제가 가진 옷이랑 똑같은 옷을 입고 있어서 아직도 기억나고 있었거든요.”
술취한 사람과 똑같은 옷이라……. 어떻게 된 것인지 어느정도 유추할 수 있었다.
“혹시, 너희 둥지랑 알을 부쉈다는 그 사람이 막 비틀거리진 않았어?”
“맞다! 이리저리 흔들거리더니, 나무를 흔들어서 둥지와 알을 그대로 부숴버렸다!”
“아…….”
까마귀의 외침에, 나는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있었다.
“윤지씨. 그 이후에 그 옷을 입었죠? 술취한 그 여자랑 똑같은 옷을요.”
“음……. 네. 제가 꽤 좋아하는 옷이라서 입었는데…….”
“그거 때문인 것 같네요. 까마귀들이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한 게 아니라, 그 옷을 기억한 거죠. 그 술취한 사람이 술김에 몸을 못 가누다가 둥지와 알을 부쉈고, 그걸 기억한 까마귀들이 윤지씨를 공격한 거죠.”
“그, 그럴 수도 있겠네요!”
내 말에 오윤지가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처음에는 그 옷을 기억해서 공격을 했지만, 그 과정에서 얼굴을 기억하고 다음부터는 윤지씨를 고정적으로 공격한 거라고 생각해요.”
“맞아요! 그 옷 입은 다음부터 집요하게 저만 노렸어요!”
윤지는 드디어 이유를 알아냈다는 것에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하지만 이내 다시금 시무룩해졌다.
“어떻게 해야 하죠? 신수님 말씀대로라면 옷이 아니라 저라는 사람을 기억한 거잖아요. 이사라도 가야할까요?”
“걱정 마세요. 제가 왔잖아요.”
나는 자신감 넘치게 말했다. 오윤지는 그 말에 감동한 표정을 지어보였고, 채팅창에서도 온갖 채팅이 터져나왔다.
[이것이 드루이드의 자신감!] [꿇어라, 까마귀!] [이래놓고 못고치면 레게노]“자자,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나는 자신감 넘치게, 바닥에 있던 까마귀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너희들이 공격하던 저 사람은 너희들의 둥지와 알을 부순 사람이 아니야. 그냥 똑같은 옷을 입고 있던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거지.”
“그게 무슨 말인가!”
내 말에 까마귀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설마 자신들이 착각했으리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인간들이 옷을 입는 건 알지? 너희나 다른 동물처럼 깃털이나 털이 많은 게 아니잖아.”
“그건 우리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래. 사람들이 다 다른 옷을 입는 것 같아도, 똑같은 옷을 입는 사람도 많거든. 그때 너희 둥지를 부순 사람이랑 저 사람이랑 똑같이 생긴 것 같아?”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하다. 그 때 인간은 머리털이 더 짧았던 거 같다. 그럼 정말 우리가 실수한 거란 말인가?”
까마귀들은 내 말에 잠시 고민하더니 자신들이 실수했음을 인정했다.
그러더니, 오윤지에게 포로록 날아가더니 미안하다는 듯이 그녀의 앞에서 몸을 낮췄다.
“한 번씩 쓰다듬어주세요. 쟤들 나름대로 미안함을 표시하는 거니까요.”
오윤지는 내 말에 따라 까마귀들을 쓰다듬어줬고, 까마귀들은 그제서야 내 주변으로 다시 돌아왔다.
나는 그런 녀석들을 바라보며, 미리 챙겨온 것들을 꺼내들었다.
“너희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건 충분히 이해해. 당장 둥지는 물론이고 알까지 잃었으니 복수할 대상이 필요했겠지.”
“맞다.”
“그래. 그렇지만 이제는 이 사람을 그렇게 공격하면 안 돼. 대신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너희들이 한동안 먹을만한 것들을 챙겨줄게.”
미리 준비해둔, 유부의 부하들이 즐겨 먹는 먹이를 까마귀들에게 내어줬다.
한동안 넉넉하게 먹고, 둥지를 새로 정비하고 알을 낳고 부화시킬 때 까지도 충분히 먹을만한 양이었다.
까마귀들은 그러한 보상이 충분히 마음에 드는 건지, 내가 내어준 먹이를 챙겨 휘리릭 떠났다.
“앞으로 윤지씨를 공격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정말 다행이네요.”
오윤지는 너무나도 기쁜지, 눈물을 한 방울 찔끔 흘렸다.
나는 그런 오윤지를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금 카메라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무리 술에 취했다고, 동물들을 괴롭히시게 되면 보복을 당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죄 없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죠. 그러니, 동물들을 괴롭히지 마시기 바랍니다. 동물들이 지능이 낮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얘들도 꽤나 똑똑한 애들입니다.”
그렇게 약간의 경고를 마친 나는 그대로 방송을 종료하고, 집으로 향했다. 사연의 주인공인 오윤지도 만족했고, 나름대로 시간도 떼웠으니 오늘도 성공적인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