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118
0117 나태의 라이벌
“무하마드, 오랜만이네요. 제가 갑자기 이사를 가버려서 한동안 못 만났죠?”
“오, 맞다요. 롱 타임 안 봤다요. 그래도 반갑다입니다.”
나는 오랜만에 우리 집을, 정확히는 동물원인 신수의 둥지에서도 깊은 둥지라고도 불리우는 내 집으로 찾아온 무하마드를 맞이해주었다.
그의 부탁으로 시작된 펫 호텔이 성장하며 이렇게 동물원까지 소유하게 되었으니 나름대로 깊은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가 중동의 기름 부자라는 것을 떠나서 말이다.
“미안해요. 이사한다고 미리 말이라도 해줬으면 무하마드가 손해볼 일은 없었을 건데요.”
“노 문제요. 큰 돈 아니었다요.”
“하긴.”
내가 이사가버린 탓에 훅 떨어진 집값에도 무하마드는 아무렇지 않다는 모습을 보였다. 평범한 직장인의 평생 급여를 분 단위로 버는 사람이다보니 드세권의 주택 정도야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
“무하마드, 오늘 뽀니 보러 온 거죠?”
“그것도 맞다요. 다른 일, 있지만 마이 뽀니 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비디오, 마음에 들다요. 그래도 직접 보고 싶은 거다입니다.”
비디오로 보는 것도 만족스럽긴 하지만 직접 만나고 싶어 찾아온 거라는 말에, 나는 곧바로 뽀니를 불렀다.
뽀니의 주 서식지가 소은이 곁이었으니 소은이를 부르면 간단하게 해결되는 것이었다.
“무하 아찌, 안녕하세오!”
워낙 넓은 동물원을 마음대로 종횡무진 누비는 소은이였기에 사준 휴대폰으로 연락을 하니 소은이가 금세 집으로 돌아왔다. 뽀니를 타고 돌아온 소은이는 뽀니에서 내려, 유치원에서 배워온 인사법으로 무하마드에게 인사했다.
“오우! 소은, 안녕입니다! 준다, 선물요!”
무하마드는 소은이를 보더니, 미리 준비해두었던 것인지 자그마한 상자를 내밀었다. 자세히 보니 자그마한 머리핀이 들어있는 상자였다. 복슬복슬한 토끼 모양의 머리핀이었는데, 눈동자 부분이 유난히 반짝거리는 모습은 절대 저렴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거마씁니다!”
선물을 받은 소은이는 토끼모양 머리핀이 마음에 드는 건지, 그것을 들고 누나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아무리 소은이가 또래에 비해 대단한 아이라고는 하지만, 다른 아이들처럼 본인 머리 스타일은 만지지 못하는 아이였다.
아무튼, 그렇게 소은이가 휙하니 가버린 모습을 본 무하마드는 곧바로 뽀니에게 다가갔다. 소은이가 빠르게 가버리는 바람에 따라갈 타이밍을 놓치고 멍하니 있던 녀석이었다.
“뽀니!”
무하마드는 그런 뽀니에게 달려가더니, 녀석을 화악 끌어안았다. 그러더니 아랍어로 추정되는 말을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다.
“뭐라는 건지 모르지만 오랜만에 보는 주인님은 참 좋네요.”
뽀니 역시 무하마드가 좋다는 듯, 무하마드의 옷가지를 오물오물 씹어댔다. 녀석 나름대로의 애정표현인 것이었다.
경마 출전 금지인 말과, 중동의 기름 부자는 서로 엉겨붙어 한동안 애정표현을 나눴다. 그리고, 한참동안 그러던 둘은 어느정도 만족했는지 슬그머니 떨어졌다.
“무하마드. 그런데, 조금 전에 다른 일도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맞다, 입니다! 무하마드, 애니멀 좋아하는 프렌드 있다요. 그 프렌드의 부탁 가져왔다입니다.”
“부탁이요? 그게 뭔데요?”
“그 프렌드도 원한다입니다. 동물 맡아주길!”
“어……. 펫 호텔 말하는 거죠?”
“Exactly!”
무하마드는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런 무하마드와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펫 호텔은 아직도 서비스중인 것이었다. 예전보다 더 저렴해진 가격으로 말이다.
동물들을 관리해줄 사육사들이 넘쳐나는 상황인데다, 규모가 카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졌으니 다섯이 아니라 오백 마리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이제는 맹수 같은 동물들 역시 받고 있는 상태였으니 더더욱 문제될 것이 없었다.
“어떤 동물을 맡기려는 거예요?”
“Sloth!”
“슬로스……?”
영어로 동물의 이름을 말하는 무하마드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모든 동물의 명칭을 영어로 아는 것이 아니다보니 이해가 느렸다.
하지만 무하마드가 말하려는 동물이 무엇인지는 금세 알 수 있었다. 미리 데려왔던 건지, 무하마드의 비서인 아저씨가 한 마리의 동물을 안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나무늘보?”
그 동물의 정체는 바로 나무늘보였다. 그리고, 그제서야 기억이 났다. 나무늘보의 영단어가 ‘나태’를 뜻하는 Sloth임을.
아저씨에게 들려서 들어온 나무늘보 녀석은 온 몸을 축- 늘어트린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
“…….”
아주아주, 익숙하디 익숙한 느낌이 드는 나무늘보였다.
‘완전 그냥 나태랑 판박이네.’
움직이지도 않고 사람에게 안겨 이동하는 나태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니, 정확히는 녀석에게 나태의 모습이 덧씌워졌다.
“프렌드의 Sloth다요. 잘 부탁해요입니다.”
무하마드는 잘 부탁한다며, 또 다시 거액의 수표를 쥐어주며 나태……아니, 나무늘보를 떠넘겼다.
내게 나무늘보를 떠넘긴 무하마드는 그대로 바쁜 일이 있다며 가버렸고, 나는 멍하니 나무늘보 녀석을 잡고 서있었다. 녀석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받은 상황이었으니, 나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녀석을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 녀석을 데리고 밖으로 나온 나는 곧장 나태를 찾기 시작했다. 비슷한 놈들끼리 붙여놓으면 조금이라도 편하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재우야!”
“엇, 사장님? 무슨 일이라도……. 아니, 걔는 뭐예요? 우리 동물원에 나무늘보는 없었잖아요.”
“오늘 새로 들어온 녀석이야. 펫 호텔 입주자라는 거지.”
“아……. 그 돈내고 하는 노동의 현장이요?”
“어허! 어찌하여 펫 호텔이란 정식 명칭이 있음에도 그런 그릇된 호칭을 쓰는 것이냐!”
마치 사극을 연기하듯 말하는 내 모습에 피식 웃음을 지은 한 직원은 그래서 왜 불렀냐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태 담당이 어디 있는지 알아?”
“나태 담당요? 어……. 워낙 여기저기 다니는 녀석이라……. 잠시만요.”
직원들끼리의 단톡방을 이용한 직원은 곧바로 내게 나태 담당 직원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땡큐. 수고해.”
나는 곧장 나태 담당의 직원에게로 향했다.
나태 담당은 그냥 겉으로 보기에는 하릴 없이 동물원을 누비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실제로는 나름대로 중요한 일을 하고 있었다.
관람객들에게 안겨서 여기저기 이동하는 나태 뒤를 따라다니며, 마감 시간에 녀석을 회수하는 것이 주 업무였다.
관람객에게 안겨 돌아다니다가, 원래 장소에 되돌리는 것을 깜빡한 관람객 덕분에 나태를 찾아 밤새 동물원을 헤맨 다음부터 생겨난 업무인 것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나태 담당에게 찾아간 나는 나태의 앞에 또 다른 나태, 나무늘보를 내려놓았다.
“…………………무엇?”
“………………우?”
서로를 마주한 두 나태는 서로를 빤히 바라보았다. 숨을 쉬느라 오르락 내리락하는 가슴팍이 아니었다면 죽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미동 없이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느낄 수가 있었다. 아무런 미동도 없는 두 녀석 사이에서 튀는 경쟁 심리를 말이다.
‘이 놈들……. 누가 더 게으른가 승부하려는 거다……!’
나태한 녀석들 답게, 녀석들은 누가 더 게으른지 승부를 하기 시작했다.
아주 자세히 본 것이 아니라면 모르고 넘어가는 것이 당연할 정도로, 두 녀석은 온 몸에서 더더욱 힘을 빼고 있었다.
나태는 흐물거려 바닥으로 녹아내리듯이 온 몸에서 힘을 풀었고, 나무늘보는 살짝 부풀어 있던 털이 촤악- 가라앉을 정도로 힘을 풀고 있었다.
“세기의 대결이네. 서울에서는 멍때리기 대회도 있다던데, 너희들 참가하면 바로 우승이겠다.”
서로를 바라보며 게으름을 자랑하는 두 녀석의 모습에 고개를 저은 나는 나태 담당 직원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었다.
“한 명 더 지원받아서, 저 녀석까지 좀 관리 부탁할게. 보면 알지?”
“……설마 저 나무늘보도 똑같은 타입인가요?”
“지금 저 두 녀석, 승부를 펼치고 있어. 게으름의 승부를 말이야.”
“하…….”
나태 담당 직원은 골치아프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두 녀석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나태들을 담당하게 된 직원은 마감 시간에 다급히 나를 찾았다.
“사, 사장님! 나무늘보 얼굴이 새빨개요!”
나는 직원의 말에 나무늘보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녀석의 얼굴은 직원의 말대로 정말 붉었다. 털로 뒤덮힌 얼굴임에도 붉은 것이 고스란히 티가 날 정도였다.
단순히 내가 기르는 동물이어도 놀랐을 모습인데, 타인에게 부탁받은 동물이다보니 더더욱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그 원인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쪼로로록-
“으악!”
바로, 나무늘보 녀석의 아랫도리에서부터 쪼로록 흘러내리는 물줄기 때문이었다.
“……혹시, 이 녀석 오늘 배변활동하긴 했어?”
“어……. 아, 안 한 거 같은데요?”
“이 놈들은 진짜야. 게으름 승부를 한다고 배변활동까지 참고 있었어…….”
조금 전까지 붉던 얼굴이 물줄기와 함께 원래대로 돌아간 모습을 보고서야 사건의 전말을 알 수 있었다.
게으름 승부를 하는 두 녀석이 ‘난 이 정도로 게으르다!’하고 배변활동까지 참다가 결국 이렇게 지려버린 것이었다.
“………………………히.”
“……………………쳇.”
그렇게 흘러내린 물줄기와 함께, 드디어 누가 더 게으른지 판가름하는 승부의 결과가 나타났다.
즐겁다는 듯이 살짝 웃는 나태와 묘하게 패배감에 찌들어 있는 나무늘보의 모습을 보면 누가 승자고 누가 패배자인지 알 수 있었다.
이후, 승부의 결과를 깔끔하게 받아들인 두 녀석은 사이좋게 널부러져 있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물론, 꼭 움직여야 할 때는 패배자인 나무늘보가 대신 움직이게 되긴 했지만 말이다. 패배자의 말로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 승부의 결과가 나오고 한 달 가량이 흘렀을 때 또 다시 승부가 펼쳐졌다. 이번에는 세 녀석이었다.
“코알라도 한 게으름 하네…….”
바닥에 녹아내리듯이 널부러져 있는 나태(개)와, 나태(나무늘보)와, 나태(코알라)의 콜라보는 보는 사람도 축축 처지게 만들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승부의 승자는 나와 오랫동안 함께 했던 나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