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119
0118 맞을꼬야?(1)
“소은이가 좀 늦네?”
“그러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니겠지?”
동물원의 입구에서 나와 누나는 소은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물원 내부에 집을 지어놨다보니, 유치원 등하원 버스가 접근하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소은이가 뽀니와 함께 유치원에 가고 싶다고 강력하게 주장한 것도 이유였다.
뽀니를 타고 스스로 등하원을 하겠다는 소은이의 주장에, 나와 누나는 걱정을 하면서도 허락해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최강의 경호원이라고도 볼 수 있는 청호를 붙이는 것을 잊지도 않았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청호 녀석의 전투력은 거진 10 여고생에 필적하는 수준이었다. 20명의 특수부대원과 맞먹는 수준이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기에, 나는 곧바로 소은이의 위치를 확인했다. 아이용 휴대폰을 사주며 미리 설치한 어플과, GPS 내장 형식의 팔찌까지 채워둔 상태였으니 위치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일단 오고는 있는데, 조금 천천히 오나보네. 뭐 신기한 거라도 보는 건가?”
뽀니를 타고 오는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속도로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것을 보아하니, 금세 도착할 것 같았다. 그리고, 예상대로 오 분 정도 기다리니 소은이가 털레털레 걸어오고 있었다.
다만 평소와 다른 부분이 있었다. 평소라면 뽀니를 타고 호다닥 달려와서 안겨들었을 소은이가 추욱- 늘어져서 뽀니의 고삐를 잡고 걷고 있는 상태였다.
“소은아?”
“압뿌아…….”
소은이에게 다가가니, 왠지 소은이가 시무룩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우리 소은이가 왜 그럴까? 어디 아파?”
“으우웅.”
아픈 건 아니었는지, 소은이는 고개를 붕붕 저으며 내 다리에 매달렸다.
누나 역시 곁으로 와서, 소은이의 이마와 귀를 만지며 정말 아픈 건 아닌지 확인했다.
“소은아, 왜 그래?”
“엄마아. 캠뿌가 모야?”
“캠뿌? 아, 캠프?”
“웅…….”
누나의 물음에 소은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텐트에서 놀다가 자는 거야. 그런데 그건 왜?”
“재미니가 나보구, 캠뿌도 모루눈 바보래써!”
“뭐!”
시무룩한 소은이의 말에 나는 경악했다. 아니, 우리 딸한테 바보라니! 가만두지 않겠어!
우리 소은이가 얼마나 똑똑한데! 한글도 다 떼고, 구구단도 아주 잘 한다고!
“수환아, 가만히 좀 있을래?”
당장에 그 잼민인지 재민인지 모를 녀석의 부모에게 따질 생각을 하고 있으니 누나가 내 볼살을 꼬집었다. 내 생각이라도 읽은 건가…….
아무튼, 내 난동을 사전에 막아버린 누나는 쪼그려 앉아 소은이와 눈을 마주했다.
“그럼 재민이가 그렇게 못 놀리게, 소은이도 캠프 갈까?”
“캠뿌!”
“소은이는 재민이보다 더 대단한 캠프하고 오자. 재민이가 저~얼대로 못 놀리게. 알았지?”
“웅!”
누나의 달래기 스킬에 시무룩한 모습을 순식간에 지워낸 소은이는 다시금 뽀니에게 올라타더니 동물원 내부로 향했다. 집으로 향한다기 보다는 곧장 동물원에서 뛰어놀 것이 분명했다.
“으악!”
매표소를 뛰어넘어 지나가버리는 뽀니와 소은이의 모습에, 매표소 내부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아, 오늘 매표 쪽에 신입이 있다고 했던가?
잠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으니, 누나의 얼굴이 내 시야에 불쑥- 들어왔다.
“무슨 생각하고 있어?”
“아, 조금 전에 매표소에 비명소리가 들려서. 오늘 신입 왔다고 한 것 같았거든.”
“하긴……. 신입이 아니면 비명지를 사람이 어디 있겠어. 멀쩡한 입구 놔두고 맨날 점프해서 다니는데.”
“그렇지. 근데, 왜 그러고 있는 거야?”
나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누나의 모습에 의아함을 느꼈다. 뭐지, 뽀뽀라도 해달라는 건가?
살짝 입술박치기라도 해볼까- 하고 있으니 누나가 입을 열었다.
“캠핑, 가야지?”
“아, 그래. 가야지. 감히 우리 소은이를 무시해? 다시는 무시 못 하게 해주마.”
“괜히 애한테 화내지 말고. 그냥 소은이한테 좋은 추억 만들어준다 생각하고 다녀오자.”
“걱정 마. 준비는 내가 다 할테니까, 누나는 뭘 먹을지나 생각해둬. 난 잠깐 어디 좀 다녀올게.”
“……괜히 불안해지는 건 기분탓이겠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니까? 흐흐.”
나는 조금 불안하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는 누나를 뒤로하고 움직였다. 친구중에 캠핑을 잘 아는 녀석이 있었다.
캠핑을 잘 아는 녀석의 도움을 받아 짐을 한가득 싣고 온 나는 곧장 캠핑에 관한 준비를 시작했다.
재민이라는 그 아이에게 들었던 것이 있기 때문인지, 소은이는 숯불 바베큐를 먹고 마시멜로도 구워먹고 싶다 말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소은이가 원하는대로 이런저런 준비를 하다보니 어느덧 캠핑을 하루 앞두게 되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가을로 접어드는 이 시기에 자주 찾아오는 태풍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비가 주륵주륵 내리고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었으니 캠핑을 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히이이잉!”
집안에서 비가 주륵주륵 내리는 밖을 시무룩하게 바라본 소은이는 울적한 얼굴로 유리창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잠시 어딜 좀 다녀오겠소이다.”
“어딜 가려고? 태풍 오는데.”
“걱정 마시오!”
유부는 그런 소은이를 잠시 바라보더니, 훌쩍 날아올라 빗줄기를 뚫고 어디론가 향했다.
그리고, 녀석은 몇 시간 가량이 흐른 뒤 돌아왔다. 뭔가 격렬한 사투를 치루고 온 듯이 온 몸이 엉망인 채로 말이다.
“뭐야, 어딜 다녀온 거야? 그 꼴은 또 뭐고.”
“아무…… 일도…… 없었소이다!”
녀석은 끝내 어딜 다녀온 것인지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엉망이 된 유부와 다르게, 날씨는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다.
[강한 위력을 보일 것이라 예상되던 태풍이 갑작스레 소멸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기상학자들 이상기후로 인한 현상이라며 환경오염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주장하고 있습니다.]우중충하던 날은 금세 해가 나오기 시작했고, 햇살과도 같은 미소가 소은이의 입가에 걸렸다.
덕분에 다음 날 아침이 되었을 때는 즐겁게 캠핑을 즐길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출발할까?”
“꼬! 캠뿌!”
어린이 카시트에 앉아 팔다리를 번쩍 들어올리는 소은이의 모습에 피식 웃은 나는 곧바로 차를 움직였다.
짐도 가득하고, 동물들도 같이 가고자 하는 몇 마리를 데려가다보니 차가 평소보다 더 묵직한 느낌이었다.
두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캠핑장이었는데, 동물들을 여럿 데리고 가다보니 캠핑장을 통채로 예약한 곳이었다.
“도착!”
“와아아앙!”
차에서 내리자마자, 소은이는 뽀니에게 올라타서 캠핑장을 마구 누비기 시작했다. 산자락에 위치한 캠핑장이라 놀 것은 거의 없었지만, 소은이에게는 그것만으로도 놀이터가 되기에 충분했다.
소은이는 그대로 뽀니와 동물들을 이끌고 숲으로 들어가버렸다. 평범한 부모들이라면 걱정하기 딱 좋은 모습이었지만, 우리에겐 아니었다. 청호도 곁에 있었으니 걱정할 것이 전혀 없었다.
아무튼, 나는 그런 소은이를 보며 웃음을 짓고서, 곧바로 텐트 치는 것에 집중했다.
크고 비싸고 좋은 텐트는 치는 것도 생각보다 어려웠다. 폴대를 이리저리 끼우고 구멍에 맞춰 넣고 위치를 잡고 팩을 박고, 줄까지 연결하고 나니 땀이 줄줄 흘렀다.
그래도 커다란 텐트와, 그 앞에 그늘을 만들어주는 타프까지 완성하고 나니 무척이나 보람찼다. 생각보다 텐트와 타프의 모습이 아름답게 다가왔다. 역시 돈을 꽤 들인 보람이 있어.
“어후, 힘들다.”
“고생했어. 안에 정리는 내가 할테니까, 좀 쉬고 있어.”
텐트를 고정하기 위한 망치질이나 무거운 짐들을 옮긴다고 고생한 나를 톡톡 두드려준 누나는 곧장 짐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간단하게 식기류나 음식들을 정리한 누나는 내가 앉아 있는 의자 옆에 다가와, 비어 있는 의자에 털썩- 앉았다.
“후우, 힘들긴 해도 뭔가 풍경은 좋네?”
“그러니까. 나도 왜 캠핑을 다니는 건지 알 것 같은 느낌이야.”
텐트 치는 것은 좀 힘든 일이긴 했지만, 이렇게 느긋하게 앉아서 쉬고 있으니 꽤 힐링이 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누나와 둘이서 가볍게 휴식을 취하고 있으니 주변에서 동물들 몇 마리가 알짱거리기 시작했다.
뽀니와 청호에, 다섯 마리의 토끼즈는 소은이와 함께 산으로 들어갔지만 다른 녀석들 중 일부는 따라가지 않은 상태였다.
“먹을 거 좀 가와바라.”
“내도 좀 도.”
“햐, 좋다. 애들 없는 곳으로 오니까 이렇게 좋네.”
우리 주변에 남아 있는 단 세 마리의 동물들. 대포동, 소포동, 남캣이 우리 주변에서 얼쩡거렸다.
특히, 대포동과 소포동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자그마한 과자들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누나와 쉬면서 먹으려고 놔둔 것이었는데, 두 라쿤이 노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남캣 녀석은 평소 가지지도 않던 육아의 부담을 내려놓은 건지 느긋하게 식빵을 굽고 있었다.
“포동이들 배고프니?”
주변에서 알짱거리는, 정확히는 두 라쿤의 모습을 본 누나는 녀석들을 들어올렸다.
까칠한 것 같으면서도 보드라운 녀석들의 털을 가볍게 쓰다듬은 누나는 녀석들이 먹을 수 있는 간식을 먹여주었다.
“캬, 직이네!”
주둥이 가득, 넘쳐 흐를 정도로 간식을 쑤셔넣은 녀석들은 게걸스레 간식을 탐했다. 실내였다면 당장에 청소기로 과자가 아니라 녀석들을 빨아들였을 법한 모습이었다. 실외라 걱정 없이 간식 부스러기를 흘려댈 수 있었다.
“수환아. 얘들도 슬슬 짝을 좀 찾아줘야 하지 않을까?”
“솔직하게 말하지? 그냥 새끼 라쿤들 보고 싶다고.”
“……알면 묻지마.”
집에, 정확히는 동물원에서 관리하는 새끼 동물들을 특히나 선호하는 누나는 새끼 라쿤들이 보고 싶은 듯했다.
토끼들을 달고 사는 소은이처럼, 누나는 새끼 동물들을 달고 사는 중이었다.
“뭐고? 새끼?! 내 짝짓기 하는 기가?”
“마! 내도 잘 할 수 있다!”
“어우…….”
두 라쿤은 내 말을 듣더니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 녀석들 많이 외로웠구나.
나는 내게 들러붙어 내 몸을 암벽등반하듯 타고 오르려는 라쿤들을 떼어냈다. 다시 붙으려는 녀석들은 내가 짝을 구해주겠다는 소리를 하고 나서야 떨어졌다.
그리고, 묘하게 기대하는 듯한 라쿤들이 떨어지니, 다시금 평화가 찾아왔다.
나는 슬쩍 누나와 가까이 앉아, 평화로운 시간을 즐겼다.
“이제 슬슬 소은이 부르는 게 어떨까? 조금 있으면 어두워질 거 같은데.”
“그러자.”
어느덧 슬슬 석양이 지려는 듯이 하늘에서 미약하게 붉은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소은아-!”
나는 그대로 소은이가 들어간 산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전화를 걸었더니 차에서 벨소리가 울렸기 때문이다. 주변에 아무도 없었기에 망설임 없이 소리를 지를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소리를 지르는 것과 동시에 하늘로 십여 마리의 새들이 날아올랐다. 집에서부터 직접 날아서 이곳까지 따라온 까마귀와 까치들이었다.
“불렀으니까 곧 올 거야.”
크게 소리를 치고 뭔가 후련한 느낌으로 의자에 다시 앉으니, 저 멀리서 뽀니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어어엄마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뿌아아아아아!”
거기에 소은이가 멀리서부터 외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은아, 저녁 먹……. 소은아, 머리 위에 걔는 누구야?”
어느덧 달려온 소은이를 반기려는데, 나는 말을 하다 멈출 수밖에 없었다. 소은이 머리 위에 처음 보는 녀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맞을꼬야?”
그것도, 웬 도토리를 당장이라도 던질 것 같은 하늘다람쥐 한 마리가 자리하고 있었다. 뭔가……. 오래된 기억 속의 분홍색 다람쥐가 떠오르는 느낌이었다.
“새 칭구! 쩌기서 만나써!”
소은이는 그런 하늘다람쥐를 들고서 방방 뛰었다. 자그마하고 귀여운 외모의 하늘다람쥐가 꽤 마음에 드는 듯한 모습이었다.
나는 그 모습에 자그마하게 한숨을 내쉬며 휴대폰을 꺼냈다.
“길휘 아저씨. 하늘다람쥐 한 마리를 잡았는데……. 키워야 할 거 같거든요? 좀 부탁드릴게요.”
멸종위기종인 하늘다람쥐였기에, 나는 사육 허가에 대한 부분을 코끼리 아재에게 떠넘겼다. 그래도 내가 드루이드라는 것 때문에 사육 허가가 쉽게 나오는 편이니 어려운 일을 맡긴 것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