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127
0126 누렁이
마당에 놔둔 의자에 앉아, 벌들이 붕붕 날아다니고 있는 모습을 잠시 구경하고 있으니 저 멀리서 무언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다그닥, 다그닥. 말의 발굽이 단단한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 것이었다.
“소은이 오나보네.”
그 소리가 집근처에서 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바로, 뽀니를 타고 유치원에 간 소은이가 귀가하는 소리였다. 뽀니가 혼자서 다닐 때는 저렇게 빠른 속도로 소리가 크게 나지 않았다.
“압빠! 다녀와씀미다!”
내 앞으로 뽀르르 달려온 소은이는 뽀니에게서 내리더니, 유치원에서 배운 인사법으로 꾸벅 인사했다.
나는 그런 소은이를 안아들었다. 내 품에 폭삭 안긴 소은이는 곧바로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했다.
“압빠, 오늘 유치언에서 그림 그려써!”
“그림? 소은이는 어떤 거 그렸을까?”
내 말에 소은이는 가지고 있던 가방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잉, 포동이눈 나와.”
가방에 들어 있던 소포동이 끄집어내졌고, 그 다음으로 종이 하나가 나왔다. 내부에서 소포동에게 치이며 이리저리 조금 구겨져 있었지만 찢기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 종이를 받아보니, 꽤나 잘 그린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우리 가족을 표현한 건지 나와 누나 사이에 소은이가 있었고, 주변으로는 동물들이 가득했다.
“우와, 우리 소은이 그림 잘 그리는데?”
그런데 정말 유치원생의 그림이라 믿기 힘들 정도로 꽤나 잘 그린 축에 속했다. 물론, 미대를 목표로 하는 사람들의 수준에 닿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2~3년 정도 배운 어린아이의 수준은 되는 것 같았다.
“히히!”
그림 실력을 칭찬하니, 소은이는 기쁘다는 듯이 웃으며 내 품에 파고들었다.
나는 곧바로 소은이를 안아들고 누나를 찾아갔다. 이런 그림은 자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게 정말 소은이가 그린 거야?”
“웅! 열심히 그려써!”
“우리 소은이 엄청 대단한데? 화가 시켜도 되겠다!”
소은이는 누나의 격렬한 칭찬에 해맑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림을 액자에 넣어서 영구 보존하니 마니 하는 소리를 하면 할 수록 소은이는 더더욱 행복하게 웃었다.
그런데, 나와 누나에게 안겨서 웃음을 짓던 소은이가 갑자기 나를 바라보며 얼굴을 팟, 치켜들었다. 게다가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듯이 조그마한 입술이 달싹이고 있었다.
“소은아 왜?”
“압빠, 뱀 키우고 시퍼!”
“……뱀?”
“웅! 샥샥! 뱀!”
뱀을 흉내내듯, 소은이는 몸을 부드럽게 흔들며 혀를 내밀었다 넣길 반복했다. 귀엽기 그지 없는 모습이지만, 왜 갑자기 뱀을 키우고 싶다고 하는 건지 의아했다.
“소은이가 뱀은 왜 키우고 싶을까?”
“재미니가, 우리 동물원에 뱀 없다고 뱀 있는 자기 집이 더 좋다구 해써! 우리 동물원 더 조은데! 자기는 뽀니도 청호도 없으면서!”
입술을 비죽이는 소은이는 재민이라는 아이가 무척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나는 또 다시 들은 한 아이의 이름에 눈썹을 꿈틀거렸다. 유치원에서 현장학습을 왔을 때 그 녀석을 찾아서 미리 교육을 시켰어야 하는 건데!
“넌 이상한 생각 좀 하지 마. 애가 부러워서 그런 거겠지.”
“내가 무슨 생각을 했다고?”
“보나마나 그 재민이라는 아이를 따끔하게 혼냈어야 하는건데, 하고 생각했을 거 아냐.”
“…….”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아니, 생각만 한 걸 어떻게 아는 거야.
누나는 내 볼을 살며시 꼬집고서는 소은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소은아. 소은이가 뱀을 키우고 싶은 건, 집에서 키우고 싶은 거야? 아니면, 동물원에서 키웠으면 하는 거야?”
“우웅……. 둘 다!”
소은이는 누나의 물음에 잠시 고민하더니, 해맑게 대답했다. 사실, 그 고민하는 순간도 내가 볼 때는 집과 동물원의 차이를 고민한 것 같았다.
누나도 그런 것 정도는 눈치챘는지,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누나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수환아, 요즘 리뷰 안 봤지?”
“리뷰? 어 요즘은 좀 안 보긴 했지. 왜?”
“파충류가 별로 없어서 아쉽다는 사람들이 좀 있어.”
“파충류? 아…….”
나는 누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포유류와 조류가 넘치는 상황에서 파충류는 그 두 종류 동물들의 수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있는 파충류를 생각해보니 정말 많지 않았다. 내가 인수하기 이전부터 있던 악어 몇 마리가 사육장에서 늘어지게 햇볕이나 쬐고 있었고, 한무를 비롯한 몇 마리의 거북이들이 있는 정도에 그쳤다.
“이참에 몇 마리 들이는 것도 좋겠네. 소은아, 그러면 정말 뱀 키우고 싶어?”
“웅웅웅웅!”
머리가 휙휙 흩날릴 정도로 고개를 끄덕이는 소은이의 모습에 나와 누나는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에, 나는 곧바로 노트북을 가져왔다. 모처럼 소은이가 원하는 것이었으니, 소은이가 원하는대로 해줄 생각이었다.
“소은이는 어떤 뱀이 좋아?”
“큰 뱀! 재미니가 키우는 뱀보다 더어어어 큰 뱀!”
“그래, 걔가 뭘 키우는 건진 모르겠지만, 일단 큰 뱀으로 하자. 아니, 더 크고 더 예쁘고 더 똑똑한 뱀으로 할까?”
“웅!”
“어휴.”
나와 소은이가 웃으며 이런저런 뱀들을 찾는 동안, 누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하지만 누나 역시 금세 어떤 동물들을 들일 건지 찾는데 합류했다.
“일단 독사는 안 돼. 소은이가 동물들한테 다치지 않는다고 해도, 어쩌다가 긁히기라도 하면 큰 사고잖아.”
“그건 그렇지. 음……. 그러면…….”
나는 곧바로 뱀들에 대한 정보를 확인했다. 그리고, 한 종의 뱀을 찾을 수 있었다.
“버마비단뱀, 얘는 어떨까?”
“비단뱀이면 위험한 뱀 아냐? 엄청 큰 뱀인 걸로 기억하는데…….”
“그건 아닌 거 같더라. 일단 비단뱀은 독도 없다니까. 게다가 주인도 잘 알아본다고 하네. 사람을 공격한 경우도 전부 배가 고픈 경우라서 그렇고.”
내 말에 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소은이도 노트북 화면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압빠! 나눈 얘가 조아!”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던 소은이가 손가락으로 노트북 화면을 콕 눌렀다.
소은이가 가리킨 것은 노란색의 무늬를 자랑하는 비단뱀이었다. 내가 보고 있던 버마비단뱀이었는데, 그중에서도 흰 바탕에 노란 무늬가 인상적인 녀석이었다.
“노란색, 조아!”
소은이가 좋아한다는 것에, 나는 곧바로 노란색의 버마비단뱀을 들이기로 결정했다. 애초에 소은이의 요청에 들이기로 한 파충류였으니 더 논의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딱 한 마리의 파충류만 들일 생각은 아니었다. 나는 그 뒤로도 몇 마리의 파충류들을 더 찾기 시작했다. 조류관처럼 파충류관도 하나 만들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노트북을 뒤지며, 동물원에 새로이 들일 동물들의 목록을 작성할 수 있었다.
소은이가 선택한 버마비단뱀을 시작으로 여러 종의 카멜레온과 이구아나, 도마뱀 등이 포함된 목록이었다.
“목도리 도마배애앰~!”
그 목록을 본 소은이가 목 주변에 손을 넓게 펼치고서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일이 있었다.
나는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전반적인 운영을 담당해주는 팀장에게 해당 목록을 넘겨주었다. 여러 국가와 국내 여러 동물원 등과의 교류를 통해 동물들을 얻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직원들이 하나같이 프로페셔널한 이들이다보니, 동물들을 들이는 것은 금방 해결되었다.
동물들을 들이는 것에서 가장 오래걸린 일이 해외에서 동물들이 국내로 들어오는 이동시간일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수송차량이 고장났다고요?”
“네. 항만에서 나오는 순간에 그냥 딱 퍼져버렸다네요. 당장 수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상태가 엉망이라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데…….”
나는 갑자기 들려온 소식에 골치가 아파왔다.
“다른 방법은 없어요? 다른 차량을 수배한다거나.”
“지금으로서는 없을 거 같은데요? 부산에 원래 동물원이 없다보니 동물용 수송차량이 거의 없었거든요. 당장 수배하려면 못 해도 몇 시간은 걸릴 거예요.”
“끙…….”
나는 할 수 없이 내가 직접 움직이기로 했다. 동물들을 편하게 수송할 수 있는 차량이 움직일 수도 없고 새로 구할 수도 없으니, 내가 직접 가야하는 것이었다. 나만큼 동물들을 편하게 수송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차를 이용해 돈을 버는 사람이면 미리 좀 정비를 하지, 하며 투덜거린 나는 곧장 그 위치를 향해 이동했다.
그곳에 도착하니, 갓길에 비상등을 켜고 멈춰 있는 차량이 있었다.
“동물 운송 맞죠?”
“아, 네. 신수의 둥지 동물원 관계자신가요?”
가볍게 인사를 한 나는 곧바로 동물들의 인수증에 서명을 하고서 동물들을 내 차로 옮겨 실었다.
평평하게 만들어둔 뒷좌석과 트렁크에는 각종 이구아나와 도마뱀, 카멜레온 등이 들어가 있는 이동장이 쌓였다.
한가득 쌓인 뒷좌석과 트렁크를 바라보던 나는 마지막 남은 이동장인, 소은이가 원하던 버마비단뱀이 담긴 이동장을 열어젖혔다.
“안녕?”
“으앗!”
내 인사에, 말이 통하는 인간을 처음 본 버마비단뱀이 화들짝 놀란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내 앞으로 함께 지낼 거라는 것을 알려주니, 녀석은 애교를 부리듯 내 팔에 몸을 휘감았다.
아직 완전하게 다 자란 것이 아님에도 조금은 커다란 녀석이라, 제법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집으로 갈거니까, 조금만 참아줘.”
보조석 자리에 내려놓으니, 녀석은 조용히 똬리를 틀고서 나를 바라보았다.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조금 부담을 느끼며, 나는 곧바로 차를 동물원을 향해 몰았다.
그리고, 동물원에 도착하니 소은이가 가장 먼저 보였다. 내가 동물들을 데리러 간 것을 알고서, 동물원 입구에서부터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차에서 내리니, 소은이가 쪼르르 달려와서 차 안을 엿보기 시작했다. 이윽고 샛노란 몸체의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을 본 소은이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뱀!”
“그래, 뱀이야. 크지?”
“웅! 디따 커!”
소은이는 차에 올라가더니, 그대로 버마비단뱀에게 다가갔다. 똬리를 틀고 있던 녀석은 소은이를 바라보더니 코브라마냥 머리만 슬쩍 들어올렸다.
“우아, 이뿌다!”
하얀 바탕에 짙은 노란색의 무늬가 가득한 뱀의 모습을 바라본 소은이는 녀석을 슥슥 쓰다듬었다.
“압빠, 얘두 이름 이써?”
“소은이가 한 번 지어볼래?”
“움……. 누렁이! 얘눈 누렁이야!”
“…….”
나는 소은이의 작명실력에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를 닮은 건지, 누나를 닮은 건지…….
짙은 노란색의 무늬를 가졌다고 누렁이라는 이름을 얻은 녀석에게 조금 미안해졌다. 소도 아니고, 뱀인데 그런 이름을 얻었으니 미안해진 것이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소은이의 모든 동물들에게 사랑받는 초능력 덕분인지는 몰라도 녀석은 나름대로 만족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그 외에도 소은이는 오늘 데려온 동물들에게 하나하나 이름을 지어주기 시작했다.
뾰족한 가시같은 피부를 가진 이구아나는 뾰족이, 주변 색과 어우러져 찾기 힘든 카멜레오는 꼭꼭이. 하나같이 소은이의 시점에서 어울리는 단어들로 만들어진 이름이었다.
묘한 죄책감을 느끼게 된 나는, 새로이 합류하게 된 파충류들에게 푸짐한 식사를 주는 수밖에 없었다.
“이히히, 시어내!”
그리고, 소은이가 그토록 기다리던 누렁이는 이상기온답게 더워진 날씨로 인해 소은이의 훌륭한 아이스팩이 되어 있었다. 온 몸에 누렁이를 칭칭 휘감고 즐겁게 걸어다니는 소은이의 모습은 정말 묘한 느낌을 선사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높은 곳에 위치한 물건 같은 것을 잡는데 누렁이를 부리는 걸 보면, 누렁이를 제 3의 손 정도로 쓰는 것 같은 느낌까지 받았다.
그래도 누렁이 녀석도 스스로의 이름과 지위……라고 할만한 것에 만족한 듯한 모습이어서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압빠! 재미니가 다른 유치언으로 간대써! 히히!”
게다가 소은이가 좋아하지 않던 친구까지 이겼으니, 나도 나름대로 만족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