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128
0127 심부름
“누나. 우리도 소은이한테 심부름 시켜볼까?”
“심부름? 갑자기?”
“그, 왜 있잖아. 어린 아이들 심부름 시켜놓고 잘 하는지 몰래 따라가는 거.”
“……재미있긴 하겠는데?”
내 말에 누나가 끌린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더군다나, 유치원도 혼자서 등하원하는 소은이다보니 크게 걱정될 것도 없었다. 든든한 보디가드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청호를 비롯한 동물들을 딸려서 보내면 안전에 대한 걱정을 할 것도 없었다.
“그럼 뭐 시킬 생각이야?”
“음, 그냥 과자나 음료수 하나씩 사오게 하면 되지 않을까?”
“한 번 해보자.”
부드럽게 웃음지은 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은이에게 심부름을 시키고 몰래 따라가기로 결정한 우리는 곧바로 준비를 시작했다. 물론, 준비라고 할만한 것은 크게 없었다. 단 하나를 제외하면 말이다.
“쥔님. 무슨 일임까?”
“소은이한테 심부름 시키고 몰래 따라갈 건데, 우리가 따라가도 아는 척 하면 안 돼. 알았지? 만약 같이가는 다른 녀석들이 있으면, 걔들한테도 알려주고.”
“어……. 예, 알겠슴다.”
나는 소은이의 보디가드를 겸해서 딸려보낼 청호에게 주의사항을 알려주었다. 몰래 따라가다가, 동물들 때문에 소은에게 들키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청호에게 다른 녀석들에게도 전해주라며 주의사항을 알려준 나와 누나는 소은이를 불렀다.
“히히!”
경쾌한 발걸음으로 달려온 소은이는 그대로 나와 누나의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나와 누나의 다리를 동시에 끌어안는 모습은 귀엽기 그지 없었다.
“소은아. 엄마랑 아빠가 소은이한테 심부름시킬 게 있는데, 해줄 거야?”
“웅! 할래할래!”
유치원에서 심부름에 대한 걸 배우긴 했던 건지, 소은이는 앙증맞은 주먹을 앞으로 내뻗으며 의지를 보였다.
나는 피식 웃으며 주머니에서 1만 원 지폐 하나를 꺼냈다.
“이거 가지고, 저기 밑에 편의점 있지? 거기 가서, 감자칩 하나랑 오렌지 주스 하나 사오면 돼. 할 수 있지?”
“웅! 할쑤 이써!”
소은이는 내가 내미는 지폐를 받아, 소중하다는 듯이 꼬옥 움켜쥐었다.
“다녀와.”
“다녀오게쑴미다!”
소은이는 우리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여보이고선 그대로 뽀르르- 달려나갔다. 물론, 곁에는 여러 동물들을 데리고 말이다.
심부름 가는 길에 함께하기로 선택한 동물들은 늘상 함께하는 뽀니와 청호에, 요즘 제 3의 손으로 활약하고 있는 누렁이였다. 거기에, 동물원 입구에 있던 이기토 한 마리를 잡아채서 함께 가려는 모습을 보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와 누나는 그런 소은이의 뒤를 쫓아가고 있었다. 약간의 거리를 띄운 상태로 말이다.
“유부, 부탁한다.”
“걱정 마시오! 내 절대 놓치지 않으리다!”
심지어 유부를 하늘로 보냈다. 만에 하나라도 우리가 소은이를 놓칠 경우, 소은이를 찾기 위해 유부를 공중감시장비……가 아니라, 드론……도 아니고, 아무튼 이용하기로 했다.
우리가 유부를 하늘로 보내고 있으니, 소은이가 동물원의 출구로 다가갔다. 주로 동물의 탈출을 막는 역할을 하는 이들은 소은이가 동물을 몰고 오는 모습을 보며 의아하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응? 우리 동물원 공주님 아냐. 공주님, 어디가요?”
“심부름!”
동물원 입구의 매표소 직원들이 소은이를 발견하더니, 심부름 간다는 말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열어주었다.
소은이가 힘차게 걸음을 내딛으니, 그 뒤로 동물들이 뒤따랐다.
우리도 그런 소은이의 뒤를 따라갔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에 마스크를 쓴 상태로 말이다. 거기에 소은이를 뒤따르는 걸 이상하게 여길 사람들을 피하기 위하여 우리는 흰색 바탕에 ‘아빠’, ‘엄마’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조금 부끄러운 꼴을 하고 있긴 했지만, 얼굴을 가려주는 마스크 덕분에 용기 가득하게 소은이 뒤를 쫓았다.
“히히히, 감자칩이다아아~!”
깨발랄하게 통통 튀는 걸음으로 내려가는 소은이는 감자칩을 사러간다는 것이 무척 좋은 듯했다.
그런데, 발랄하게 가던 소은이가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었다.
“하누라!”
다름이 아니라, 나무 사이에서 움직이던 다람쥐를 찾았기 때문이었다. 소은이는 그 다람쥐를 하늘다람쥐인 하늘이라고 착각해서 멈춘 것이었다.
“컹!”
청호는 소은이가 갑자기 멈춰서, 다른 곳으로 가려는 것에 소은이의 앞을 살짝 막아섰다. 녀석에게 목적지를 알려준 건 아니지만, 최소한 지금 소은이가 가려는 곳이 목적지로 가는 길이 아니라는 걸 아는 것이었다.
“왜구래?”
소은이는 제 앞을 막는 청호의 모습에 의아하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내 자신이 바라보던 다람쥐가 하늘이가 아님을 눈치채고서는 다시금 편의점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감자아치이입~ 히히!”
감자칩 노래를 부르며 걸어간 소은이는 어느덧 편의점 건물을 바로 앞에 놓았다.
간간히 소은이와 손잡고 다녔던 길이라, 소은이도 헤매지 않고 충분히 갈 수 있던 것이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눈 앞에 편의점을 두게 된 소은이는 조금 더 빠른 속도로 편의점에 다가갔다.
철컹!
그런데 소은이가 편의점을 문을 열려고 했으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철컹이는 소리를 내며 문은 열릴 줄 몰랐다.
“우웅……. 심부름 해야 하눈데!”
문이 닫혀 있는 것에 소은이는 발을 동동 굴렀다. 당연히 우리도 그 모습을 보며 예상 외의 사태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수환아, 어떡하지? 잠겨 있나봐.”
“그러게……. 지금이라도 그냥 오라고 할까?”
우리는 편의점 문 앞에 서서 발을 동동 구르는 소은이를 보며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그 고민은 길지 않았다.
“움……. 화장실! 히히, 쉬야 하러 가꾸나!”
문에 붙어 있던, 화장실에 다녀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라는 문구를 발견한 소은이가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청호에게 다가갔다.
바닥에 대충 털썩- 앉은 소은이는 순식간에 제 곁에 다가와 몸을 감싸는 청호에게 슬며시 기대었다.
그렇게 청호에게 기댄 소은이는 품에 안은 이기토를 스윽스윽 쓰다듬었다.
잠시동안 소은이가 이기토를 쓰다듬으며 멍하니 있으니, 편의점 마크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있던 사람이 다가왔다.
“안녕? 편의점 온 거야?”
“심부름!”
“잠시만 기다려줘.”
편의점 알바생은 소은이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바로 문을 열어주었다. 열쇠를 이용해 잠금을 풀고, 문을 열어주자 소은이가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소은이는 이내 알바생에게 가로막혔다.
“미안한데, 강아지랑 토끼는 데리고 들어가면 안 돼. 안에 음식을 팔아서, 동물은 출입이 안 되거든. 그…… 배, 뱀?!”
소은이 어깨에서 슬며시 고개를 치켜드는 누렁이의 모습을 바라본 알바생은 잠깐 당황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내 소은이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동물원에서 가장 가까운 편의점이라고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소은이의 정체를 금세 파악한 것이었다.
“공주님이었구나. 대충봐서 몰랐네. 몰라봐서 미안해. 그리고, 뱀은 데리고 들어와도 돼. 털이 날리지는 않으니까, 괜찮겠지.”
“고마씀미다! 너히눈 요기서 기다려!”
소은이는 알바생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청호와 뽀니, 이기토를 밖에 내버려두고 편의점에 들어갔다.
편의점까지 따라 들어갈 수 없었지만, 편의점 외벽이 투명한 유리창이어서 보는 것에 문제는 없었다.
편의점에 들어간 소은이는 그대로 과자가 몰려 있는 코너에 접근했다. 중간 부근에 위치한 감자칩은 소은이의 시야에 아주 잘 들어왔고, 소은이는 기쁜 얼굴로 그것을 집어들었다.
그런데, 그 모습은 곧 바뀌었다. 소은이의 키보다 높은 곳에 오렌지 주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소은이가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위치에 말이다. 애초에 냉장고의 그 문도 열 수 없는 상태였지만…….
아무튼, 소은이는 잠시 고민하더니 제 3의 손으로 쓰고 있는 누렁이를 바라보았다.
조그마한 입이 달싹이더니, 늘어져 있던 누렁이가 휙하니 몸을 일으켰다.
“쟤는 진짜 소은이 손 같아…….”
누나는 이어진 광경에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몸을 일으킨 누렁이가 그대로 냉장고 문의 손잡이를 물더니, 열어젖혔기 때문이다.
문을 연 누렁이는 소은이가 손짓하는 것으로 머리를 움직이며 제품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은이가 선택한 음료를 물어서 꺼내주었다.
우리가 심부름 시킨 물건 두 개를 성공적으로 확보한 소은이는 해맑은 웃음과 함께 계산대로 향하려 했다. 하지만 소은이는 이내 멈추었다.
“왜 멈췄지?”
“어……. 지금 밖에 있는 애들 보는 거 같은데?”
멈춰선 소은이는 편의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동물들을 바라보는 듯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듯이 소은이가 다시금 움직였다. 바로, 편의점 구석에 있는 동물 간식 코너 쪽으로 말이다.
이내 소은이가 그곳에서 몇 가지 물건들을 고르는 것이 보여졌다. 휴대폰 카메라로 확대해서 보니, 강아지용 육포 같은 것들을 고른 것이었다.
“……뭐 먹을 땐 애들도 같이 먹어야 한다고 가르친게 이렇게 돌아오네.”
먹을 걸 시켰더니, 소은이가 동물들이 먹을 것도 같이 사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시킨 물건과 그 동물 간식들을 모두 계산하기에는 내가 준 돈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편의점 알바생이 소은이가 내미는 만 원 지폐를 보며 손을 휘젓고 있었다.
나와 누나는 소은이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까- 기대를 가지며 바라보았다.
“뭐지? 왜 그냥 나오지?”
어떤 방법을 선택할까- 고민하던 우리의 생각과는 조금 동 떨어진 결과가 나왔다. 소은이가 계산대에 물건을 고스란히 놔두고 밖에 나온 것이었다.
“유부야아아아!”
밖으로 나온 소은이는 갑자기 하늘을 향해 소리치기 시작했다. 유부를 부르는 것 같았는데, 애초에 근처에서 하늘을 날던 유부는 그 소리에 재빨리 소은이에게로 날아갔다.
“이거, 압빠한테 줘!”
소은이는 유부에게 돌돌 말은 종이 하나를 주더니, 그대로 녀석을 날려보냈다.
허공을 잠시 배회하며 날던 녀석은 구석진 곳에서 나를 향해 날아왔다.
“……뭐야?”
“모르겠소. 그대에게 갖다주라는 것 같아서 가지고 왔소이다.”
나는 유부가 내미는 종이를 받아, 그대로 펼쳤다.
“…….”
“…….”
아직 어린 아이 특유의, 삐뚤빼뚤한 글씨로 돈을 달라는 글귀에 나와 누나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이것도 나름대로의 방법은 방법이었기에, 나는 어쩔수 없이 지갑에서 지폐 몇 장을 더 꺼내어 유부에게 쥐어주었다.
“소은이한테 갖다줘.”
지폐를 돌돌 말아 발에 쥐어주니, 녀석은 곧장 날아가 소은이에게 다가갔다.
“히히, 고마어!”
유부에게서 지폐를 받은 소은이는 녀석의 부리를 살짝 쓰다듬어주고선, 다시금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내가 준 지폐를 내민 소은이는, 물건과 잔돈을 받고 편의점에서 나왔다.
“집으로 꼬!”
봉지에 물건들을 받은 소은이는 그것을 뽀니의 안장에 묶고서는 다시금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나와 누나는 급히 집으로 먼저 돌아가 소은이를 기다렸다.
“다녀와씀미다!”
잠시 기다리니 소은이가 봉지를 달랑거리며 돌아왔다.
나는 수고했다고 칭찬을 해주었고, 누나는 소은이가 사온 감자칩과 오렌지 주스를 까주었다.
소은이는 좋아하는 감자칩과 오렌지 주스를 먹는 것이 좋은지, 해맑은 미소와 함께 연신 입을 오물거렸다.
“너희도 수고했어. 이건 소은이가 너희한테 주는 거.”
그리고, 소은이가 사온 동물용 간식들을 녀석들에게 하나씩 먹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