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134
0133 호주(1)
“으흥흠~ 으흐흐음~!”
가볍게 콧노래를 부르며 화단을 관리하고 있으니 무척 평화로운 느낌이 들었다.
벌들이 붕붕 날아다니며 열심히 수분을 시켜주고 있어, 딱히 관리할 것이라곤 없었지만 그래도 이상하게 자라는 것들을 정리해주거나 잡초 같은 것들을 뽑아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화단을 정리하고 있으니 가볍고 경쾌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압빠!”
우리 집에서 가볍고 경쾌한 발소리의 유일한 주인인 소은이가 내게 도도도도 달려와서 폭 안겨들었다.
“우리 딸이 갑자기 왜 왔을까? 토끼즈랑 놀고 있던 거 아니었어?”
“웅! 근데, 엄마가 압빠 델꾸 오래써!”
“엄마가?”
“웅웅!”
누나가 부른다는 소리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내가 일어나는 모습에, 소은이가 다급하게 딸기 하나를 따서 입에 베어물었다.
“같이 갈까?”
“움!”
내 말에 입안 가득 딸기를 베어물고 있는 소은이가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안아달라는 듯한 그 모습에, 소은이를 안아들고 누나가 있을 사무실로 향했다.
“히히, 딸기 마시써!”
“그치? 그게 다 아빠가 키워서 그런 거야.”
“더 키워줘!”
“그럴까?”
딸기가 무척 맛있었기 때문인지 행복한 표정을 지은 소은이는 내 품에 얼굴을 부벼댔다.
그런 소은이를 안고 사무실로 가니, 누나가 웬 백인 여성과 차를 마시고 있었다.
“수환아 왔……. 너 소은이한테 딸기 줬어?”
“오?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긴. 네 어깨에 소은이 입술 자국이 있는데.”
고개를 내리며 옷을 당겨보니, 소은이가 얼굴을 파묻었던 자리에 딸기즙 색깔로 소은이 입술 자국이 있었다.
“히히!”
자기가 했다는 듯이 해맑은 웃음을 지은 소은이의 모습에 순간 어이가 없었지만, 마주 웃어주며 머리를 쓰다듬어준 나는 테이블에 앉아 있는 백인 여성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저 분 때문에 부른 거야?”
“응. 널 찾아오셨더라고.”
나는 누나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를 찾는 사람이 온다고 해서 이렇게 나를 부르는 경우는 잘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외국에서 온 팬이라고 해도 이렇게 나를 부르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 의문은 금세 해결 되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호주 관광청의 한국 담당인 그레이스입니다.”
아주 유창한 한국어로 내게 명함을 건네며 인사하는 백인 여성, 그레이스의 인사 덕분이었다.
“호주요?”
“네. 한국에는 캥거루와 코알라의 나라라고도 알려져 있는 그곳이요. 인터넷 커뮤니티 유저들 사이에서는 캥거루국이라고 하던가요?”
“…….”
캥거루국이라는 말에 순간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호주인에게 캥거루국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뭔가 이상했다.
하지만 금세 정신을 차리고서, 어째서 나를 찾아온 것인지 물었다.
“저희 관광청에서 드루이드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서 이렇게 불쑥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미리 연락드리지 못하고 이렇게 찾아온 점, 머리숙여 사과드립니다.”
그레이스는 한국인인가 싶을 정도로 유창한 한국어로 사과하며 고개를 쑤벅 숙였다.
“그건 괜찮아요. 그래서, 부탁이라면 어떤 부탁인가요?”
“몇 년 전, 저희 호주에 초대형 산불이 났던 걸 기억하시나요?”
“어……. 네. 그 때 좀 심각했다고 들어서 알고 있어요.”
전 세계적으로도 영향을 미친 초대형 화재였기에, 그 단어를 듣자마자 머릿속에서 기억이 떠올랐다. 내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부분은 없었지만 그 당시 꽤 오랫동안 뉴스를 장식하던 것이었으니 기억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왜 꺼내는지 무척 궁금했다.
“제가 그 산불 이야기를 꺼내는 건 드루이드님께서 그곳에 방문을 해주셨으면 해서 입니다.”
“제가요? 제가 그곳에 갔으면 하는 이유가 뭐죠?”
내가 그 산불이 났던 곳에 방문해달라는 소리에, 나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소은이가 태어나기는 커녕 초능력을 개화하기도 전의 일인 만큼, 이미 많은 복구가 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그 흔적이 많이 남긴 했어도, 내가 필요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산불이 난 곳이 현재 회복 상태에 있습니다만……. 약간의 문제가 있어서 드루이드님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라고 할 수 있어요. 묘목을 심고 생태계를 어떻게든 복원하고 있는데…… 당시의 산불이 워낙 강하다보니 토질 자체가 많이 나빠졌어요. 묘목들을 심어도 정상적으로 자라는 것들이 없을 정도인 상태죠.”
그레이스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초능력이 동물들 뿐만이 아니라 식물들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은 이미 널리 퍼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호주는 큰 땅에 비해, 사람이나 동물이 살 수 있는 지역이 무척 부족한 편이예요. 대부분 사막지형처럼 거주 불가한 곳이 많거든요. 그런데, 그 상황에서 산불로 인해 그 영역이 더 줄어든 상태라 저희로서는 무척 곤란한 상황인 거죠. 사람들의 거주 구역도 문제고, 야생동물들의 서식지도 파괴된 상태라…….”
엄청 곤란하다는 듯한 그레이스의 말에, 남한 면적보다도 더 넓은 범위가 불타올랐다는 내용이 떠올랐다.
그 정도면 시간이 꽤 흘렀다 하더라도 복원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좁은 범위의 피해도 복구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이 정도 넓이라면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 뻔했다.
하지만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제 초능력이 영향을 미치는 범위는 1km 정도인데, 그 넓은 곳을 어떻게 감당할 생각인가요? 설마, 제가 그 넓은 곳을 다 돌아다녀 달라는 소리를 하시는 건 아니겠죠?”
“그렇지는 않아요. 저희가 필요한 건 복원의 시작점이 될 구간이니까요. 오아시스 주변에 풀이 자라면서 그 영역을 넓히듯이, 차츰차츰 넓혀갈 생각이예요.”
어느정도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인 그레이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보수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호주에 체류하시는 동안 모든 종류의 편의를 봐드리는 건 기본으로, 높은 금액대의 보수를 생각하고 있어요. 물론, 그 금액은 드루이드님의 동물원에서 운영하는 펫호텔 가격을 기반으로 정했고요.”
그레이스는 슬그머니 내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그곳에는 호주 정부에서 제시하려는 금액대로 추정되는 글자들이 적혀 있었다.
“보름 가량 체류해주시는 것으로 이 금액을 지불할 생각입니다.”
호주에서 제시해준 금액은 동물원이 아니라 카페 시절, 무하마드가 뽀니를 맡기며 지불하던 돈의 열 배에 달했다. 하지만 호주에서 보수로 제시하는 것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드루이드님의 동물원에 한해서, 호주에 있는 동물이라면 얼마든지 반출이 가능하도록 협조하겠습니다.”
“코알라도요?”
그레이스의 말에 나는 놀란 모습으로 되물었다.
우리 동물원에 펫호텔 형식으로 코알라가 들어온 적은 있지만, 우리 동물원에서 정식으로 사육하고 있지 못한 동물이 코알라였기 때문이다.
캥거루나 왈라비야 우리 동물원을 비롯해서 국내 여러곳에도 사육중이지만, 코알라는 국내 그 어디에도 사육중인 곳이 없었다. 그래서 펫호텔에 코알라가 들어왔을 때 코알라만을 보기 위해 찾아온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어떤 동물이든 반출이 가능하다면 당장에라도 코알라를 데려오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챈 듯이 그레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모든 동물이니 코알라도 포함이죠. 드루이드님께서 북부흰코뿔소의 번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신 것을 알고 있으니, 호주에서도 동물의 반출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어요. 동물 보호나 멸종위기종의 보호 등을 이유로 반출을 금지하고 있는데 드루이드님이라면 믿을 수 있으니까요.”
하긴, 멸종위기종의 보호에 우리 동물원만큼 좋은 곳도 없지. 나는 자화자찬 아닌 자화자찬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랑같지만, 전 세계 동물원 가운데 동물들의 스트레스가 가장 적고, 그 적은 스트레스도 잘 케어해주는 곳이 우리 동물원이었기 때문이다.
내 초능력 영향이라고는 하지만 동물들이 행복해하는 것이 드러날 정도였으니, 그런 평가를 받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럼 그냥 보내주시죠?’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동물의 반출을 불허할 것이 뻔했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잠깐 누나와 이야기를 주고받은 다음, 그레이스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호주의 요청을 수락하는 걸로 하죠. 대신, 추가 조건이 있어요.”
“어떤 건가요?”
“3주 동안 체류하면서 관광도 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이동수단만 괜찮으면 복원하려는 지역에 숙소를 잡아도 상관은 없어요.”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충분히 가능할테니까요! 이동수단도, 헬기든 뭐든 다 준비해두겠습니다!”
그레이스는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어진 내 말에 순간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저희 동물원의 동물들 몇 마리를 좀 데려가고 싶은데요.”
“도, 동물이요?”
그레이스는 말까지 더듬으며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었다. 현재 호주는 외래유입종인 토끼나 낙타로 인해 큰 고통을 받고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토끼들이 억 단위로 불어나 황무지를 만들어내고 있었으며, 많은 수의 낙타들이 호주 북부의 사막화를 가속하고 있는 상태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거기 풀어놓겠다는 게 아니니까요. 청호나 뽀니, 유부 같은 애들만 조금 데려가려고요. 토끼같은 애들은 데려가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아! 그 정도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네요!”
호주 정부가 가장 싫어한다는 토끼를 데려가는 것이 아니란 말에, 그레이스는 다시 밝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후, 추가적인 일정이나 세부적인 사항의 조율은 추후 다시 정식으로 만났을 때 하기로 결정한 그레이스는 밝은 표정으로 떠나갔다.
그렇게 그레이스가 떠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누나는 내게 덥석 안겨들었다.
“호주 여행가면 어디 구경갈까? 골드코스트 해변이 그렇게 예쁘다던데, 거기도 가보자!”
보름 정도를 원하던 그레이스의 조건을 3주에 관광을 더한 일정으로 바꾼 것이 바로 누나였다. 한 번씩 여행가는 걸 좋아하는 누나다보니, 호주라는 말에 일하는 겸 관광도 하러 가자는 주장을 한 것이었다.
나는 그런 누나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소은이를 안아들었다.
“소은아, 여행 갈래?”
“여행! 조아!”
소은이는 여행이라는 말에 놀란 표정을 지어보인 소은이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우리 세 명은 갑작스럽게 여행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각종 블로그, 뮤튜브 영상 등을 찾아보며 여행지를 결정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