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136
0135 돌고래 쇼
자기를 도와주는 이들에게 내 부탁을 전달해준 그레이스는 우리 가족을 골드코스트의 비치 월드로 안내했다.
구름도 많지 않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좋은 날씨에, 좋은 기분으로 도착한 곳은 어마어마한 넓이를 자랑하는 테마파크였다.
몇 개의 놀이기구와, 각종 해양 생물들이 있는 아쿠아리움. 거기에 각종 쇼들이 가득한 것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우아아아!”
넓디 넓은 테마파크의 입구에 도착한 소은이는 나와 누나가 붙잡지 않았다면 그대로 뛰어들어갈 것 같은 모습으로 방방 뛰어댔다.
반려동물들의 출입이 불가능한 비치 월드 특성상, 뽀니나 청호를 비롯한 모든 동물들을 데려오지 못하는 것에 실망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역시 눈 앞의 사탕에 흔들리는 아이답다고 해야할까- 생각을 하며 비치 월드 내부로 진입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곧바로 보이는 것은 넓은 호수였다. 통역겸, 가이드 역할로 동행한 그레이스가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저기는 제트스키 같은 걸로 스턴트 쇼를 하는 인공호수예요. 나름대로 볼만한 구경거리죠.”
제트스키에 매달려 가는 수상스키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이 꽤나 볼만하다며 알려준 그레이스는 앞장서서 우리를 안내해주었다.
그레이스를 따라가며, 근처에 있던 간식매대에서 음료수를 하나씩 쥐고 걷던 우리가 처음 만난 동물은 돌고래였다. 꽤 널찍한 인공호수 같은 곳에 풀려 있던 한 마리의 돌고래는 수면 위로 한 번씩 튀어오르며 관람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었다.
“우아아! 압빠, 저기 돌고래야!”
“응, 돌고래네.”
소은이가 좀 더 잘 볼 수 있도록, 소은이를 들어올려 목마를 태워주니 돌고래를 향해 손을 붕붕 흔들어댔다.
그리고, 그런 소은이의 초능력은 한국이 아니라 호주에서도 그 능력을 십분 발휘했다.
“오옷! 마음에 드는 인간!”
물장구를 치던 돌고래가 소은이를 발견하더니, 곧바로 쪼르륵 다가왔다.
“돌고래야 안녕!”
다가온 돌고래를 향해 손을 붕붕 흔든 소은이는 즐겁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와, 진짜 마음에 드네. 나중에 들어오는 인간이 너라면 진짜 좋겠다!”
그런데 다가온 돌고래의 말에, 나는 의아함을 느끼며 그레이스를 바라보았다.
“얘가, 나중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그게 무슨 소리죠?”
“나라가 달라도 소통은 다 되나보네요? 일단, 돌고래가 말하는 건 애니멀 어드벤쳐 같아요. 비치 월드에서는 돌고래와 직접 수영할 수 있는 체험이 있거든요. 꽤나 비싼 가격이지만 인기는 있는 편이죠.”
“압빠!”
체험이라는 말에, 소은이가 파다닥 움직이더니 내 머릴 부여잡았다.
딱 봐도, 그 체험이라는 걸 하고 싶다는 것이 행동에 다 드러나는 소은이였다.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런 경험도 있으면 좋겠지.”
“그런데, 괜찮을까? 보통 그런 건 키 제한이나, 연령 제한이 있을 건데…….”
누나의 말에 그레이스를 바라보았다. 기껏 해주기로 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체험하지 못한다면 소은이가 실망할 게 뻔했다.
“연령 제한이 있긴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안전상의 이유로 제한을 걸어둔 거니, 드루이드님께서 동참하신다면 문제 없이 체험하실 수 있을 거니까요.”
안 되어도 되게 해주겠다는 그레이스의 믿음직스러운 말에 고개를 끄덕인 우리는, 다시금 관광을 이어갔다.
“돌고래 빠빠이!”
손을 붕붕 흔들며 돌고래를 뒤로한 우리는 여러 해양 생물들을 볼 수 있었다.
꼬리달린 보자기같은 가오리도 보고, 꾸엉꾸엉 소리내며 박수치는 물개도 볼 수 있었다.
가오리를 보며 자기 얼굴로 가오리의 얼굴을 표현하는 소은이의 행동에 웃기도 하고, 소은이가 박수를 치니 물개들이 단체로 박수를 치는 진귀한 광경도 볼 수 있었다.
뭔가 움직일 때마다 우리 가족을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우리는 아쿠아리움에 진입했다.
어두운 복도와 푸르른 수조의 모습이 상반되는 아쿠아리움에는 수 많은 해양 생물들이 가득했다.
각종 물고기들은 물론이고, 조금 전에 봤던 가오리를 비롯하여 상어들이 가득했다.
“상어야!”
목마를 태우던 소은이를 바닥에 내려주니, 수조에 도도도도 달려가 착 달라붙었다. 그리고, 그대로 유유자적하게 헤엄치던 상어를 불렀다.
두껍고 단단한 유리창이 있었으나, 상어는 소은이의 부름에 응했다. 스르륵, 다가온 상어가 콩- 소리가 나도록 수조에 부딪힌 것이었다.
코를 박았기 때문인지 살짝 몸부림치던 상어였으나, 녀석은 이내 소은이를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소은이는 상어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눈치챘는지 갑자기 손을 휘휘 휘저어댔다.
“오오오오!”
그리고, 뒷편에서 우리를 졸졸 따라다니던 몇몇 사람들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다름이 아니라, 수조 안에 있던 커다란 상어 녀석이 소은이의 손짓에 맞춰 몸을 빙글빙글 돌려대고 있는 것이었다.
“……지가 무슨 범고래나 벨루가인 줄 아나.”
흔히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범고래나 흰돌고래인 벨루가가 인간의 행동을 따라하는 듯한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황당함은 가면 갈수록 더 커져갔다.
상어의 이상행동 때문인지 다른 상어나 가오리들이 몰려들더니, 똑같이 소은이의 모습을 따라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건 나 때문인 거야? 아니면 소은이 때문인 거야?”
단체 군무를 추듯이 조금의 차이도 없이 움직임을 맞춘 상어와 가오리들의 모습에 나는 황당함을 넘어 의아함마저 들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사람들 중 일부가 돌고래 쇼보다 낫다는 말을 하며 사진과 영상을 찍어댔다.
이젠 익숙해진 그 모습에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잠깐 기다리니, 충분하게 즐긴 소은이가 돌아왔다.
“소은아, 좋았니?”
“웅! 쟤들 귀여워!”
누나의 품에 폭삭 안긴 소은이는 해맑은 웃음을 지었고, 우리는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아쿠아리움도 볼 것이 많았지만, 아직 남아 있는 볼거리도 많았다.
어린이용 놀이기구와 물놀이에 가까운 놀이기구도 타고, 널부러져 있는 북극곰을 구경하는 것까지 관광을 이어가고 있으니 그레이스가 시간이 되었음을 알려주었다.
“돌고래 쇼가 곧 시작할 시간이니, 가실까요?”
놀이기구를 타며 가볍게 젖어 축축한 몸을 이끌고, 돌고래 쇼가 시작되는 곳으로 다가갔다. 쇼를 보며 먹을만한 음식을 사, 자리에 앉았다.
잠시 기다리며 소은이의 입에 샐러드를 넣어주고 있으니 어느덧 공연을 진행할 사육사 같은 이들이 전신수영복을 입고 나타났다.
영어로 무어라 소개를 하더니, 곧바로 쇼가 진행되었다.
돌고래가 하늘로 펄쩍, 뛰어오르는 것은 기본이고 사육사들이 돌고래를 타고 공연장 여기저기를 누비는 모습이 보여졌다.
싱크로나이즈를 하듯 여러 마리의 돌고래가 순서를 맞춰 뛰어오르고, 빙글빙글 돌기도 했다.
심지어, 수중에서 사육사와 합을 맞추어 사육사를 하늘로 띄워올리기까지 할 정도였다.
“우아아아아!”
“와아, 쟤들 엄청 훈련했나봐.”
소은이와 누나가 똑같은 모습으로 똑같이 감탄할 정도로, 돌고래 쇼는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두 사람과 다르게, 돌고래 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다름이 아니라, 돌고래 쇼에서 주인공을 맡고 있는 돌고래들이 나누는 대화내용 때문이었다. 조금 거리가 있고, 물속으로 들어갈 때는 잘 들리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긴 했지만 어떻게든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야, 얼마나 남았냐?”
“이 짓을 몇 번을 했는데, 아직도 그걸 몰라?”
“몰라. 저번에 복어 씹은 게 잘못 됐나? 요즘 기억력이 좀 딸리는 느낌이야.”
“미친놈아. 그러게 내가 복어 좀 작작 씹으랬지?”
“야야야야, 복어 남는 거 좀 있냐? 나 저번에 뺐겼어.”
“나도 없어. 저번에 잘못 씹었다가 기절해서 다 털렸어.”
“뺏긴 게 다 너 때문이었냐!”
“내가 이 놈들이랑 친구라니. 탈출마렵네.”
열심히 움직이며 떠들어대는 녀석들의 대화는 뭔가 조금 이상했다.
‘돌고래가 복어를 씹으면서 독을 빤다더니……. 사실이었냐고.’
사람들이 환호하는 쇼의 주인공인 돌고래들이 약쟁이라는 사실에,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환호할 수가 없었다.
어정쩡한 웃음을 지으며 돌고래를 바라보고 있으니, 누나가 나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수환아, 왜 그래?”
“어……? 아, 아냐. 아무것도 아니야.”
차마 돌고래 쇼를 보며 환호하고 있는 누나의 환상을 깨부술 수가 없었다.
애써 시선을 돌린 나는, 이대로 소은이에게 돌고래 체험을 시켜도 되는 건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내 걱정과는 다르게 돌고래 쇼는 문제 없이 이어졌고, 돌고래 쇼가 끝났을 때는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있었다.
소은이가 돌고래 쇼를 보며 돌고래와의 만남에 한껏 기대한 상태인데다, 이미 예약까지 끝났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어쩔 수 없이 돌고래 어드벤쳐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돌고래 어드벤쳐를 진행할 때, 내가 우려했던 사건이 터졌다.
“와! 너 엄청 마음에 드는데? 내가 선물 줄게! 잠깐만 기다려!”
비치 월드의 협조를 받아 우리 가족이 돌고래를 만나러 가니, 소은이를 보며 무척 기뻐한 돌고래 한 마리가 어딘가에 숨겨두었던 복어를 가져온 것이었다.
“Holy……!”
빵빵하게 부풀어 있는 복어가 돌고래의 주둥이에 물려 있는 모습에 사육사는 크게 당황하며 복어를 빼앗았고, 나는 그런 돌고래의 주둥이를 붙잡았다.
“너 임마. 그런 걸 왜 들고 와.”
돌고래의 주둥이를 잡고 흔드니, 꼬리를 퍼덕이며 여기저기 물을 튀겼다.
그렇지만,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소은이는 그것마저도 좋다는 듯이 해맑은 웃음과 함께 돌고래의 몸에 올라타고 있었다.
잠깐의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소은이가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돌고래 어드벤쳐를 즐길 수 있었다.
복어를 뺏긴 것에 시무룩해하던 돌고래도 소은이가 올라타니 좋다고 여기저기 헤엄치며 소은이와 놀아주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물개와 만남이나 펭귄과 만나는 체험까지 모두 즐긴 우리는, 한껏 놀고 지쳐 색색거리며 잠든 소은이를 안아들고 숙소를 향해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부드럽게 움직이던 차량이 갑자기 우뚝, 멈춰섰다. 딱히 주변에 차량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신호가 있는 곳이 아니었음에도 차량이 멈춰서는 것에 나는 의아함을 느꼈다.
그레이스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앞에 있는 기사와 이야기를 주고 받더니, 어떻게 된 일인지 알려주었다.
“……앵무새가 도로를 점령해서 멈췄다네요.”
나는 호주에 대한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토끼에게 지고, 낙타에게 지고, 에뮤에게 지고, 이제는 앵무새에게 마저 지고 있는 호주라고 말이다.
‘이 대륙에서 제일 약한 동물은 인간이 아닐까?’
자그마하게 한숨을 내쉰 나는, 차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