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139
0138 복원의 시작(3)
“이게 어떻게…….”
앵무새들이 씨앗을 뿌리고 간 곳으로 도착한 그레이스는 주변 풍경을 보며 꽤나 놀란 듯한 모습을 보였다.
바로, 잿빛으로 가득하던 곳에서 다른 색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잿빛으로 칙칙한 색감을 자랑하던 바닥에서, 초록색과 옅은 노란색이 조금씩 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분명 어제 저녁에 앵무새들에게 씨앗을 뿌리게 시키신 게 아니었나요? 어떻게 벌써 싹이…….”
바닥에 있는 푸른색과 노란색은 조금씩 돋아나고 있는 새싹들로 인해 보이는 색이었다. 이제 막 손톱만큼 자라난 상태라, 확연하게 눈에 띌 정도는 아니었지만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이게 바로 드루이드 퀄리티라고 할까요?”
놀람을 감추지 못하는 그레이스의 모습에 어깨를 으쓱인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산불의 영향으로 새카맣게 타버린 나무들이 모조리 사라진 곳에서 새싹이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모습을 꽤나 아름답게 보였다. 나도 모르게 휴대폰을 꺼내 사진 한 방을 찍었다.
나름대로 만족할만한 사진이었지만, 뭔가가 조금 부족한 느낌이었다.
‘나무. 나무가 좀 있어야겠네. 이대로 놔두면 여긴 숲이 아니라, 들판이 될 수준인데?’
부족한 것은 나무였다. 원래라면 나무로 가득한 숲이었을 곳이, 내 영향으로 들판이 될 판이었다.
“그레이스.”
“진짜 싹이 폈……. 아, 네 부르셨나요?”
“묘목을 좀 대량으로 구할 수 있나요? 코알라들도 있으니, 유칼립투스 묘목도 포함해서요. 거기에 엄청 빠르게 자라는 나무들도 있을텐데, 그것도 좀 있으면 좋긴 하겠네요.”
그레이스는 내 말을 다 듣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묘목은 대량으로 구비되어 있어요. 땅의 상태가 좋아지면 심으려고 구비해둔 건데, 좀처럼 땅의 상태가 좋아질 기미가 안 보여서, 심지 못한 것들이죠. 그리고, 빠르게 자라는 나무는 유칼립투스 나무가 딱일 거예요. 유칼립투스 나무가 꽤 빠르게 자라는 종이거든요.”
유칼립투스 나무로 이 주변 일대를 가득 채울 수 있을 정도로 구비되어 있다는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유칼립투스 나무만 심는 건 불가능해요. 유칼립투스 잎에서 불이 잘 붙는 오일이 나오거든요.”
또 다른 산불의 원인이 될 수도 있으니 적당히 조절해서 심어야 한다는 주의를 준 그레이스는 곧바로 묘목들을 수송하라는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
잿더미 속에서 하루만에 새싹이 돋아나는 모습을 직접 보았으니, 묘목을 심어도 되겠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그 모습에 가볍게 웃은 나는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제 막 싹이 트기 시작한 상태에서 내가 따로 할 것은 없었다.
“……어째, 좀 더 늘은 거 같은데?”
다만, 숙소로 돌아가니 보이는 것은 더 많은 수로 불어난 동물들이었다. 식물이 아니라, 동물이 빠르게 번식하고 있나 착각이 들 정도로 많이 불어난 상태였다.
숙소 주변에 널부러져 있는 캥거루들 때문에 난데없이 장애물 넘기를 해야했고, 사람이 좋은 건지 경호원들 주변에 들러붙은 웜뱃들이 경호원들의 움직임을 열심히 방해하고 있었다. 코알라는…… 적당히 구석에 널부러져서 자고 있었고 말이다.
그래도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보니, 녀석들은 내가 시킨 일을 아주 착실하게 잘 수행한 상태였다. 잿빛의 바닥에 각종 풀잎들이 흩뿌려져 있는 것을 확인했기에 알 수 있었다.
적당히 녀석들을 밟지 않게 조심히 걸음을 옮겨 숙소 내부로 들어가니, 소은이가 누나에게 붙잡혀 칭얼거리고 있었다.
“응? 왜 그러고 있어?”
“……캥거루 주머니가 궁금하다고 들어가려 하잖아. 좀 말려봐.”
“압빠! 캥거루 주머니에 들어갈 수 이써?!”
캥거루 주머니에 들어가려다가 붙잡힌 것이 분명해 보였다. 우리 동물원에는 캥거루 대신 왈라비 밖에 없는데다, 새끼가 없어 주머니에 관심이 없다가 새끼를 가진 캥거루를 보니 관심이 생긴 것이었다.
“거긴 아기 캥거루들을 위한 곳이라서, 소은이는 들어가면 안 돼.”
“우웅……. 들어가보구 시펐눈데!”
무척 아쉽다는 듯이 입술을 비죽이는 소은이의 모습에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근처에 있던 몇몇의 경호원들이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가끔 왈라비와 대련을 하다가 패배해, 녀석의 주머니에 머리를 처박히는 식으로 티배깅당한 이들이었다.
누나에게서 풀려난 소은이는 창문에 얼굴을 밀착하고서 바깥을 구경했다. 딱히 볼만한 것은 없었지만, 동물들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압빠! 얘두리 도망쳐!”
“응?”
동물들이 도망친다는 소리에, 나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고 소은이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 밖을 바라보았다
밖에서는 정말, 소은이의 말대로 동물들이 호다닥 도망치는 듯한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유는 금세 알 수 있었다.
거의 다섯 대 정도 되어 보이는 대형 화물차들이 줄지어 숙소 주변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밖으로 나가니 도망쳤던 동물들이 슬그머니 다시 돌아와, 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발치에서 오들오들 떠는 한 웜뱃의 등허리를 가볍게 쓸어준 나는 화물차들을 향해 손짓하고 있는 그레이스에게 다가갔다.
“저 차들은 뭔가요?”
“아까 주문한 묘목이요. 근처에 보관중이어서, 바로 가져왔죠.”
자연의 복원에 정말 진심이라는 듯, 일처리를 바로바로 해대는 모습에 고개를 내저은 나는 주차를 마무리한 화물차로 다가갔다.
화물차 내부에는 정말 묘목들이 빼곡하게 쌓여 있었다. 이것들을 꺼내서 심는 것도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묘목을 심는 건 저희쪽 인부들과 자원봉사자들이 힘을 써줄 거예요.”
그래도 다행스럽게 묘목을 심어줄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저런 걸 직접 심어야 했다면 엄청 힘들었을 것이 뻔했다.
“이, 이 냄새는……!”
그런데, 묘목들이 담긴 화물차를 잠시 바라보고 있으니 근처로 코알라들이 느릿느릿하게 다가왔다.
내부에 있는 유칼립투스 묘목들에서 나는 향을 맡고 다가온 것이었다.
유칼립투스 잎이 아니라면 제대로 영양소를 섭취하기 힘든 코알라였기에, 녀석들은 삐쩍 마른 상태였다. 나는 녀석들의 모습을 보며 안쓰러움을 느꼈다.
결국, 화물차에 가득 차 있는 묘목들 가운데 유칼립투스 묘목을 몇 그루 꺼내어 내어주었다.
“이 맛이야!”
녀석들은 오랜만에 먹는 유칼립투스 잎에 환장한 듯이 묘목에 달린 잎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그거 아세요? 코알라들은 어린 잎을 안 먹는다는 걸요.”
“그래요?”
“네. 어린 잎이 더 독성이 강하거든요. 그래서 다 자란 잎 위주로 먹어요.”
그레이스의 말을 듣고 자세히 보니, 어린 잎은 건드리지도 않고 있었다. 덕분에 묘목에 달린 잎은 절반 이상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고 있으니, 녀석들을 위해서라도 묘목들을 빨리 심어야 할 필요가 느껴졌다.
“흠…….”
코알라들이 유칼립투스 잎을 물고 오물오물 씹어대는 모습을 바라보며 잠깐 고민하던 내 시선에 캥거루들과 웜뱃들이 들어왔다. 풀들이 담겨 있던 상자에서 약간 남아 있는 풀들을 두고 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녀석들이었다.
“캥거루, 웜뱃 전부 집합!”
내 말에, 캥거루와 웜뱃들이 왜 그러냐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다가왔다. 녀석들은 내가 먹이를 준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내게 무척 협조적인 상태였다.
나는 다가온 캥거루와 웜뱃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두 마리의 캥거루와 한 마리의 웜뱃이 한 개의 조가 되는 형식으로 편성한 것이었다.
그렇게 조를 편성하고 나니 수십여 개의 조가 편성되었다.
“자, 너희들은 이걸 들고가서 심으면 돼. 캥거루들은 이걸 들고가고, 웜뱃은 이걸 심을 수 있는 땅을 파주면 돼. 거기에 캥거루들이 한 그루씩 심고.”
가볍게 시범을 보여주었다. 묘목의 밑둥에 있는 포장을 벗기고, 그만큼의 깊이로 땅을 판 다음 그대로 심어준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묘목 밑둥에 있는 포장을 벗겨야 할 필요가 있었는데, 캥거루와 웜뱃들이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문제는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었다. 호주 도시의 플라잉 냥아치라고도 할 수 있는 앵무새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워낙 똑똑한 녀석들이니 포장지 정도는 가볍게 벗길 수 있었다.
“웜뱃이 땅을 파고, 앵무새가 포장을 벗기고, 캥거루가 심는다. 쉽지? 그럼 출발!”
땅파기의 웜뱃 한 마리, 운송과 심기의 캥거루 두 마리, 포장 제거의 앵무새까지 한 조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캥거루들에게 몇 그루의 묘목들을 들려주고 보내니 녀석들은 착실하게 내가 시킨대로 묘목들을 심어갔다.
적당한 곳에 웜뱃이 땅굴을 파듯이 자그마하게 땅을 파내면, 그 자리에 캥거루 한 마리가 묘목 한 그루를 들고 섰다. 그러면 앵무새가 재빨리 포장지를 벗겨내고, 캥거루가 묘목을 바닥에 내리 꽂듯이 심어버렸다. 그 위로 웜뱃이 다시금 흙을 덮고 다지는 것으로 묘목 한 그루를 심는 것이 끝났다.
“……이것도 자연적인 생태계 복원이라고 봐야할까요?”
“동물들이 하는 거니까, 자연적인 게 아닐까요?”
그레이스가 곁에서 그 모습을 보며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그 모습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자원봉사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웜뱃과 캥거루, 앵무새의 협동으로 묘목들이 심겨지는 모습을 본 자원봉사자들은 저마다 모종삽을 들고서 황당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심지어, 모종삽으로 열심히 땅을 파서 묘목을 심는 자신들보다 몇 배는 빠르게 묘목을 심는 동물들의 모습에 패배감을 느끼는 이들까지 있었다.
“뀨잉!”
“아, 알았어. 빨리 움직일게.”
더군다나, 자원봉사자의 일부는 묘목셔틀이 되어 동물들의 뒤를 따라다니고 있을 정도였다. 빨리빨리 움직이라며 꼬리로 후려치는 캥거루의 구박을 받으면서 말이다.
그래도 덕분에 묘목의 식목은 아주 빠르게 진행되어갔고, 온통 잿빛이던 곳에 여러 색이 추가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