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14
0013 시작은 창대하게
“누나. 거기 좀 보고 와줘.”
“여기? 주택이랑, 땅?”
누나는 내가 내민 휴대폰 화면을 보며 되물었다.
내가 누나에게 부탁한 것은 땅과 건물을 나 대신 보고 와달라는 것이었다.
기장 해안가에 위치한 곳이었는데, 넓은 대지와 2층짜리 단독주택이었다. 카페 부지로 쓸 땅과, 거주를 목적으로 한 주택을 매입하기 위함이었다.
‘아직 대출을 받지는 않아서 바로 사진 못하지만.’
아쉽게도 대출을 받기 위해서 준비해야 할 것들이 조금 있다보니, 나는 그 사이에 누나에게 부탁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누나도 그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흔쾌히 승낙했다.
“안 그래도 카페 문을 닫고 심심했는데. 잘 됐다.”
간만에 혼자서 바람이나 쐬고 와야지- 하며 흥얼거리는 누나는 곧바로 움직일 생각인듯 했다.
“집은 꼼꼼히 봐! 우리 신혼집이니까!”
내 외침에 누나는 부끄럽다는 듯이 볼을 붉히며, 내가 찝어준 위치로 이동하기 위해 택시를 탔다.
하지만 내가 한 말에는 조금도 과장이 없었다.
어차피 누나와 헤어질 생각이 없으니 결혼하게 될 것이었다. 그럼 신혼집이 필요해질텐데, 이 참에 일터에서 가까운 곳에 집을 구하는 것도 좋았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는 반려동물을 마음대로 키울 수 없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누나가 보러 간 집이 괜찮았으면- 하는 바램을 갖고 누나가 탄 택시가 멀어지는 것을 잠시 바라보았다.
택시가 골목을 지나 코너를 도는 것을 보고나서, 노트북을 이용해 다시금 문서를 작성을 이어갔다.
그냥 나 최상급 능력자요- 하고 돈을 빌리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그것으로는 내가 원하는 수준의 자금을 빌릴 수가 없었다.
내가 원하는 수준의 자금을 빌리기 위해서는 사업계획서라던가 하는 서류등이 필요했다.
타닥 타닥, 탁- 소리를 내며 경쾌하게 한동안 키보드를 두드린 나는, 어느정도 완성 된 사업계획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문가가 작성한 수준은 아니더라도, 필요한 부분은 다 적혀 있었다.
‘고마워요, 구골!’
뭐, 구골에 검색해서 나온 예시를 거의 응용한 것이었으니 이상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사업계획서 만큼이나 중요한 절차가 하나 남았다.
동물원 관리 종합계획이니 뭐니 하는 것으로 인해, 동물 카페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신고를 하고 허가를 받아야 했다.
단순히 고양이나 개 정도만 동물 카페에 들인다면 몰라도, 여러 동물들을 들일 생각이었으니 필요한 절차였다.
“하셔도 됩니다. 건물 완공 이후 재 신청하시면 바로 허가 나올 거예요.”
“……네? 진짜요?”
그런데 생각보다 어려울 것이라 예상한 그 절차는 팩스 한 번과 전화 한 번으로 끝나버렸다.
“동물 관련 초능력 보유자는 보통 신청만 하시면 허가 됩니다. 현행 동물원법이 그래요. 예외 조건에 있습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큰 걸림돌이라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단단한 전용 돌다리였다.
내 생각보다 가벼워진 절차에, 나는 곧바로 사업계획서를 인쇄하여 은행으로 돌진했다.
단순히 동네 지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보니, 부산에 위치해 있는 가장 커다란 곳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택시비에 숫자가 다섯 자리가 찍히게 되어 아까웠으나, 왠지 모르게 푼돈처럼 느껴졌다.
‘벌써 경제관념이 박살나는 건가?’
거액의 대출을 받기도 전에 1, 2만원이 푼돈처럼 느껴지니 조금 긴장 됐다. 이러다가 물 쓰듯이 돈을 쓰다가 파산하는 건 아닐까- 걱정 될 정도였다.
물론, 최상급의 초능력자가 파산하는 건 죽었다 깨어나는 수준으로 힘든 일이었기에 가볍게 걱정을 털어내고 은행에 들어갔다.
“어서오십시오. 고라니 금융 부산 영업점입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말이 은행이지, 뉴스에서 보던 증권가 처럼 내부가 꾸며진 곳이었다. 규모에서 오는 긴장감에 몸을 굳혔으나, 청원경찰이 다가와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었다.
덕분에 나는 초능력자 대출 창구를 찾을 수 있었고, 손쉽게 영업점의 점장을 만날 수 있었다.
‘아니, 왜 점장이……?’
직원이 있는 창구에 앉았다가, 금박이 테두리 쳐진 인증서를 내미는 것과 동시에 영업점의 점장이 찾아왔다. 덧붙여서 점장과 함께 VIP들만 이용한다는 내부의 특별 상담실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커피 좋아하시나요? 음료도 있으니 원하시는 걸 말씀해주세요.”
“아, 그냥 주스로 부탁드릴게요.”
점장의 비서인지, 직원인지는 모르겠지만 미모의 여직원이 내게 주스를 한 잔 가져다 주었다.
VIP 대우인지, 흔한 공장제 주스 같은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직접 레몬 즙을 짜내어 탄산수에 섞어주는 레몬에이드였다.
그런 대우 덕분에, 왠지 점점 가시방석에 앉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지. 난 전 세계에 몇 없는 최상급의 애니멀 커뮤니케이팅 능력자라고. 이 정돈 당연한 거야.’
그래도 내 가치를 다시금 떠올리니, 이 정도는 당연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맛있네.’
즉석에서 만들어낸 레몬 에이드는 제법 맛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에이드를 홀짝이고 있으니 점장이 꽤 두꺼운 결제판 같은 것을 들고왔다.
“초능력자 대출 신청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제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하는데, 기반을 닦을 돈이 필요해서요.”
“잘 찾아오셨습니다. 웬만한 금융 그룹에서는 받지 못할 수준의 대우를 받으실 수 있으니까요.”
점장은 내 말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내가 원하는 것들을 차근차근 알려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사업계획서 등을 받은 점장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동물원에 가까운 형태의 펫 카페와, 동물 관련된 내용이 주를 이루는 뮤튜브가 주 계획이시군요. 동물 산업이 성장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수익 창출은 확실하다고 볼 수는 있겠네요.”
점장은 내가 쓴 사업계획서를 한 번 훑어보더니 나쁘지 않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 정도면 문제는 없겠습니다. 그런데 요청하신 금액대가 꽤 높다보니 이율이 높을텐데, 괜찮겠습니까?”
“어쩔 수 없죠.”
점장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일 수밖에 없었다.
돈이 있어야 뭘 하든 할텐데, 이율이 높다고 시도조차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조금 넓은 땅과 주택, 카페 건축 비용등을 다 합한다 하더라도 내 능력이면 금세 갚을 수 있으리란 확신도 있었으니 문제는 없었다.
내 확고한 의지를 확인이라도 한 건지, 점장은 자신이 처리해줄 것이라 하며 서류를 건네주었다.
여기저기 서명할 곳이 많았기에 귀찮긴 했으나, 금세 끝낼 수 있었다.
그 서류와 함께 등초본, 인감증명서 등을 주며 대출 업무가 마무리 되었다.
“심사 과정을 거친 다음, 고객님의 통장으로 입금 될 예정입니다. 심사가 있긴 하지만, 반려 될 일은 없으니 걱정하지 마시고요.”
점장의 배웅까지 받으며, 나는 은행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대출의 결과는 점장이 장담한대로 아무런 문제가 없이 이루어졌다. 사흘 가량의 시간이 지난 이후, 내 통장에 거액의 현금이 꽂혔다.
“이게 나라냐…….”
대출을 했는데 세금을 떼가다니…….
돈을 빌리는 것도 세금을 내야 한다는 사실에 한숨을 푹푹 내쉬며, 나는 곧바로 누나가 확인하고온 땅과 건물을 구매했다.
땅은 카페를 지어 영업하는데 문제가 없는 곳이었고, 그 바로 옆에 있는 주택은 꽤나 예쁘게 지어져 있는 신식 건물이었다.
자그마한 마당과 그 주변을 감싸고 있는 담벼락, 개인용 차고까지 있는 건물이었다. 나도 제법 마음에 드는 곳이었고, 누나가 특히 마음에 들어하는 곳이었다.
“솔직히, 마당 있는 집은 내 꿈이었는데…….”
구매하여 완전히 나의 것이 된, 아니 정확히 따지면 은행의 지분이 더 높은 내 집에 들어온 누나는 거실에서 마당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럼 꿈 이뤘네?”
뒤에서 살며시 끌어 안으며 말하니, 누나는 부끄럽다는 듯이 꼼지락거렸으나 도망치거나 하지 않았다.
“누나도 여기로 이사 와. 이제와서 따로 살 필요는 없잖아.”
“으, 으응?”
“우리가 사귄 것도 벌써 십 년이잖아. 이제 슬슬 결혼하자. 지금까지야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돼서 말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할 수 있을 것 같아. 같이 살자.”
누나는 내 말에 놀랐는지 몸을 딱딱하게 굳혔다.
하지만 어느정도 예상은 하고 있던 것인지, 금세 풀어지며 내 팔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무드도 없이 이게 뭐야…….”
“그래서, 대답은?”
“……좋아.”
내게 가볍게 타박한 누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유리창에 비친 누나의 얼굴에는 홀가분함과 행복함이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누나는 내가 최상급의 능력자가 되는 것과 동시에 기뻐하고 축하해주면서도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걱정이었지만, 그만큼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나 역시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누나를 꽉- 끌어 안으며 온 집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 방은 어떤 용도, 저 방은 어떤 용도. 여긴 이렇게 꾸미고. 누나와 나는 집 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행복한 미래를 그려갔다.
제 딸을 빼앗아가는 도둑놈이라며 아버님이 나를 끌고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런저런 절차를 끝내고, 기본적인 가구를 채워 넣은 다음 동거를 시작한 우리에게 찾아온 아버님께서 나를 끌고 간 것이었다.
“이놈아! 니가 쓸 건물인데 왜 내가 도와야 허냐! 하다못해 조감도는 니가 그려! 원하는 형태는 있을 거 아녀!”
누나가 이야기를 한 것인지는 몰라도, 누나와 내가 동거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들은 아버님은 내가 집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내 집인데…….
조금 반항이라도 해보려해도, 내가 부탁드린 일에 관한 것들로 나를 붙잡으니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서슬퍼런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 아버님의 눈빛을 받으며 원하는 형태의 건물을 내 손으로 직접 그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학생 시절 캐드를 배운 덕분인지는 몰라도 어느정도 건물의 형태를 잡을 수 있었다. 그림실력이 글러먹어서 그렇지만, 나름 봐줄만한 형태로 그림을 그려냈다.
“단층도 아니고 삼 층짜리 건물을 짓겠다는 겨?”
“아, 네. 일이 층은 카페로 쓰고, 삼 층은 제가 스튜디오로 쓸 생각이예요. 이 층도 사실상 절반은 루프탑 형태로 생각중이고요.”
“요즘 것들은 영~ 이해를 못하겠구먼. 뭣허러 루프탑이니 뭐니 하는 걸 하려는 건지……. 일자로 쫙 올려뿌믄 공간도 더 많고 얼매나 좋아?”
아버님은 내가 그린 유사 조감도를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딱히 반대할 생각은 없는지, 내가 그린 조감도를 파일 안에 적당히 챙겨 넣었다.
“저 가봐도 될까요? 누나랑 가구 보러 가기로 했는데…….”
“안 돼, 이놈아! 그런 건 하은이 혼자서 하라그려!”
아버님은 내가 누나랑 있는 것이 그렇게 싫으신 건지, 나를 놓아주지 않으셨다.
덕분에 나는 아버님을 따라 이곳저곳을 기웃거려야 했고, 건축에 관련 된 민원을 직접 봐야했다. 옆에서 거들어주시긴 했지만 어떻게든 나를 붙잡고 있으려는 의지가 느껴졌다.
‘누나…….’
그렇게 아버님께 붙잡혀 있던 내가 풀려난 것은 해가 뉘엿뉘엿 지는 것으로도 모자라, 달이 높게 떠오르고 아버님이 술에 취한 다음이었다.
“눠 의 색뀌……! 하으니 울리믄 뒤져부러……. 내가 지기삔다잉…….”
술에 거하게 취하신 아버님은 누나를 울리면 날 죽이겠다는 말을 남기시고는 택시를 타고 가버리셨다.
딸 가진 아버지들이 으레 보일만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었기에, 나는 충분히 이해하며 나 역시 집으로 향했다.
그 때 까지는 예상 못했다. 아버님의 꼬장이 일회성이 아닐 것이라고는. 그 꼬장이 건축이 시작될 때 까지 계속 될 것이라고도 예상하지 못했다.
“어허! 사내새끼가 돼서 이것도 못하겠다는 거냐! 그래가지고 하은이를 지켜줄 수 있겠나!”
‘나도 딸 낳으면 똑같이 해야겠다. 이게 내리사랑이지.’
아버님의 꼬장에 휘둘리며, 나는 다짐했다. 내가 딸을 가지게 된다면 먼 미래의 사위에게 똑같이 해주리라고.
미래의 사위. 뒤졌다. 각오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