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148
0147 서바이벌 드림팀(2)
“와, 진짜 어디 휴양지 같은 느낌이네요.”
생존지로 정해진 거대한 무인도에 도착한 우리는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 휴양지의 해변같은 느낌이 물씬 들었기 때문이다. 넓은 백사장, 바닷속 모래나 산호같은 것들이 훤히 보이는 투명한 바닷물, 맑고 높은 하늘까지.
뒷편에 그 어떤 건물 하나 없이 숲이 펼쳐져 있는 것이 아니었더라면 휴양지 그 자체였을 것이었다.
잠깐 그 풍경을 보며 감탄하고 있으니, 어느새 촬영 준비가 끝난 카메라들과 PD가 몰려왔다.
“자, 여러분. 지금부터 여러분들은 무인도에 조난된 다섯 명의 초능력자입니다. 기본적인 목표는 이 무인도에서 생존하는 것이고, 최종적인 목표는 이 무인도에서의 탈출입니다.”
“생존이라면 정확히 어떤 걸 말하는 건가요?”
두 명의 여성 출연자 중 한 명이 손을 번쩍, 들어올리며 질문했다.
“불을 피우고, 집을 짓고, 음식을 공수해서 식사를 하고, 잠을 자는……. 가볍게 말해서 평범한 생활을 해주시면 되는 겁니다.”
말만 들어서는 어렵지 않을 것 같은 소리를 태평하게 하는 PD였다.
그는 우리가 더 이상 질문할 것이 없어 보이는 듯하자, 이야기를 이어갔다.
“일단, 저희 제작진은 비상상황이 아니라면 여러분께 그 어떤 도움도 드리지 않을 겁니다. 조난된 사람에게 도움을 줄 사람이 있을 수 없으니까요. 여러분께서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거죠.”
애초에 이야기가 된 내용이었기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전할 이야기는 그것이 전부였던 건지, PD는 가벼운 웃음과 함께 생존을 시작해달라 말했다.
“휴대폰은 그대로 써도 되나요?”
“예, 뭐. 어차피 여기가 통신이 가능한 지역이 아니니까요. 대신 위성폰은 따로 카메라에 찍히지 않는 곳에서 사용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위성폰으로 정보를 찾는 것도 자제해주시고요.”
저마다 위성폰까지 준비해온 우리였기에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촬영하는 것만 열흘에 가까울 예정인데, 그동안 아무런 연락도 할 수 없는 게 아니니 다행이었다.
그래도 위성폰은 필요할 때만 사용하기 위해 카메라에 잡히지 않을 위치에 따로 보관하기로 하고, 우리는 곧바로 촬영을 시작했다.
“…….”
다만, PD의 이야기가 끝나며 촬영이 시작되자마자 침묵이 맴돌았다. 비행기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판이 깔리니 어색해 죽을 것 같았다.
“어음……. 저희 자기소개부터 할까요? 조금 어색한 거 같은데.”
그리고, 그런 침묵을 참지 못한 한 사람이 먼저 운을 띄웠다.
“저는 손재주 관련된 초능력으로 합류한 스물다섯살 김손이에요. 미니어처, 프라모델, 스톱모션 위주의 뮤튜브 채널을 운영중이고 채널명은 금손이에요! 생존에 필요한 도구들을 말씀만 하시면 뭐든 만들어드릴게요!”
손재주 초능력의 보유자로 합류한 여성 팀원인 김손의 소개를 시작으로 우리는 한 명씩 자기소개를 간단하게 했다.
“심마니로 활동하는 하인두입니다. 탐색쪽 초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로 산삼을 찾는데 초능력을 활용합니다. 아, 나이는 서른여덟입니다.”
“건설계열 초능력을 보유한 권설도입니다. 스물여섯이고, 늦은 군입대를 앞두고 색다른 경험을 해보기 위해 참가했습니다.”
“저는 스물여섯인 금바리라고 해요! 물고기를 잘 낚는 초능력을 가지고 있고, 채널명 다금바리TV라는 뮤튜브 채널을 운영중이에요. 아, 다금바리는 제 어릴 때 별명이에요.”
가볍게 설명을 마친 이들은 나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이들 중에 나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넘어갈 수는 없는 듯했다.
“드루이드로 더 잘 알려진 신수환입니다. 동물원과 뮤튜브 채널을 운영중이죠.”
내 말에 금바리가 조심스레 박수를 쳤다. 비행기에서부터 내 팬이라며 싸인과 사진을 요청한 사람다운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자기소개가 끝나자, 또 다시 침묵이 내려앉으며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특히, 팀원들은 내 눈치를 많이 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잠시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금세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있었다.
다들 나름대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유명인들이긴 하지만, 대부분이 그 해당 분야에서 이름이 알려진 편이었다. 자화자찬같지만 나와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 없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다보니 내 눈치를 보는 것이었다. 괜히 나서다가 내 팬들에게 꼬투리 잡히는 건 아닐까- 걱정하는 것이 분명했다. 한두 명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괜히 모험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내 팬들이 그 정도로 극성인 건 아니지만, 나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입을 열었다.
“일단 불부터 피울까요? 예전에 정생 볼 때, 불부터 피우던데.”
“좋아요!”
“그러시죠. 숯은 건축자재로도 쓸 수 있으니까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팀원들이 반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불은 어떻게 붙이죠?”
하지만 곧바로 난관에 부딪혔다. 불을 어떻게 피워야할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가져온 짐들이 있긴 했는데, 이동하면서 다 압수당했기 때문이다. 조난이 컨셉이라며, ‘평범한 여행자가 가지고 다닐 물건’을 제외한 물건들은 다 압수당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라이터가 하나 있었는데 조난 될 때 물에 빠졌다는 컨셉이라며 부싯돌 부분을 촉촉하게 적셔버려 사용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활비비라도 만들어 볼까요? 적당한 재료만 있으면 금방 만들 수 있어요!”
그렇지만 사람들이 뽑은, ‘무인도에 조난 되었을 때 필요한 초능력 TOP5’에 포함되는 초능력의 보유자들 답게 금방 의견이 나왔다.
우리는 곧바로 움직여, 김손이 이야기해준 활비비의 재료를 찾기 시작했다. 적당히 단단하면서 휘어 있거나 탄성이 있는 나뭇가지, 질긴 덩쿨 같은 것을 찾는 것이었다.
무인도라,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재료를 찾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바로 해변 앞에 있는 숲에 들어가자마자 발견할 수 있을 정도였다.
“여길 이렇게 묶고, 여기를 조금 파주면……. 완성!”
그리고, 그 재료를 김손에게 가져다주니, 그녀는 순식간에 활비비를 만들어냈다. 역시 손재주 관련되어 물건을 만드는데 재주가 있는 초능력자 다운 모습이었다.
“활비비는 위아래를 고정해주고, 활처럼 생긴 여기에 회전축을 걸어서 문지르는 도구예요. 들이는 힘 대비 마찰력이 높아서 불 붙이기 쉬운 도구라고 할 수 있어요.”
활비비를 뚝딱뚝딱 만들어낸 김손은 반으로 쪼개져 있는 나무막대에 활비비의 회전축을 비비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하얀 연기가 솔솔 올라오며 탄내가 났다.
“풀! 풀! 풀주세요!”
빠르게 불똥을 만들어낸 김손이 마른 풀에 불똥을 올리더니 그대로 화르륵, 불을 피워냈다.
순식간에 피워낸 불에 다들 기뻐했다. 슬쩍 PD를 바라보니, PD도 이렇게 빨리 불을 피워낼 줄은 몰랐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앗! 언니, 오빠들. 그런데 저희 집으로 쓸곳을 정한 다음에 불 피워야 하는 거 아녜요?”
“아…….”
“불 피워야 한다는 거만 생각했지, 집은 생각도 못했네.”
약간의 문제가 있었지만, 어쨌든 불은 성공적으로 피워냈다.
“불이야 나중에 옮기면 되니까, 주변을 한 번 돌아볼까요? 당장 뭐 먹을만한 게 있는지, 아니면 손이 말대로 집으로 쓸곳이 있는지 찾아봐야죠.”
내 말에 팀원들이 좋다고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곧바로 주변 일대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대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생존에는 정말 최적화 된 섬이라고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해변에 가까운 곳에는 코코넛이 그득하게 열린 나무가 즐비해 있었고, 숲 안에도 여러 과일나무 같은 것들이 많이 보였다.
적어도 쫄쫄 굶을 걱정은 없다며 밝게 웃은 우리는 계속해서 주변을 돌아다녔다.
여러 과일들의 위치를 확인한 우리는 다음 순서로 집을 짓기 위한 공간을 찾기위해 움직였다. 그리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적당한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가 좋겠네요. 앞쪽의 나무들이 돌풍을 막아주고, 햇빛도 잘 드는데다 조금 거리가 있긴하지만 작은 냇물이 있으니까요.”
집짓기 담당이 될 권설도의 말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건축에 대해서는 아는 게 하나도 없는 우리보단 건축가인 권설도가 더 믿음직했으니 말이다.
해변가에 피워둔 불을 옮겨오고, 오는 길에 과일도 몇 개 따온 우리는 곧바로 집짓기에 착수했다. 해가 지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남은 것이 아니었으니, 일단 집부터 짓기로 한 것이었다.
“일단, 오늘은 간단하게 지은 다음에 보수하는 걸로 하죠. 밤에 비라도 오면 막아줄 게 있어야 하니까요.”
권설도의 계획은 임시 주거지로 나무와 나뭇잎등을 연결해 만드는, A형 텐트와 비슷한 형태인 일종의 움막이었다.
우린 곧바로 주변에 있던 대나무들을 잘라왔다. 가지고 있는 날붙이가 없었지만, 김손이 깨진 돌과 나무에 덩쿨을 이용해 돌도끼를 뚝딱 만들어준 덕분에 어렵지는 않았다.
그런데 대나무를 쾅쾅 두드리며 자르던 도중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딱, 딱, 딱, 딱.
무언가를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가 조용해지길 반복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팀원이 다른 곳에서 나무를 하는 것인줄 알았는데, 잘 들어보니 돌도끼로 나무를 잘라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저기 소리 들리는 곳에 잠깐 다녀올게요. 뭔가 있는 거 같은데.”
나는 곧바로 대나무를 패고 있는 팀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소리의 근원지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무를 두드리고 있는 딱따구리 한 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고개를 한 번 튕굴 때 마다 나무조각이 땅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오?”
굵은 나무에 커다란 구멍을 뚫고 있는 딱따구리를 발견한 나는 순간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딱따구리야! 잠깐 내려와봐!”
“따악?”
내 외침에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딱따구리가 나를 발견하고서는 포로록- 날아왔다.
소은이처럼 사랑받는 수준으로 동물들에게 호감을 받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 역시 동물들에게 어느정도 호감을 받는 편이었다.
딱따구리는 살며시 들어올린 내 손가락에 안착해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 좀 도와줄래? 먹을 거 줄게.”
“먹을 거?”
“그래. 과일 같은 게 있는데, 그거 줄게. 어때?”
“좋아!”
내 말에 딱따구리가 날개를 펄럭이며 긍정을 표했다. 나는 곧바로 녀석을 데리고 팀원들이 대나무를 패고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오빠, 어디 갔다 오셨……?”
돌아가니 팀의 막내, 김손이 혼자서 돌도끼로 대나무를 콩콩 찍다가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내 손에 들려 있는 딱따구리 한 마리를 보더니 입을 헤- 벌리고 움직임을 멈췄다.
마치 고장난 것 마냥 움직이지 않고 놀란 모습을 보이는 김손에게 손을 휘휘 흔들어보인 나는, 곧바로 딱따구리에게 대나무를 가리켰다.
“저거 밑 부분으로 해서 좀 부숴줄래? 잘라야 하는데 우리는 조금 힘들거든.”
“저 나무엔 먹을 게 없는데?”
“먹으려고 하는 게 아니거든. 부탁할게.”
내 말에 딱따구리는 의아하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날아가, 대나무 밑동을 따다다다닥 두드리기 시작했다. 반쯤 잔상이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로 고개가 움직이며 대나무를 두드리는 것이었다.
딱따구리의 단단한 부리가 대나무에 부딪힐 때마다 대나무가 쩍쩍 갈라지고 깨져갔다.
내가 돌도끼를 5~6번 두드렸을 법한 시간이 지났을 때, 대나무는 부러지기 직전인 상태가 되었다. 가볍게 당기기만 해도 똑하고 부러질 정도였다.
“으악!”
부러지기 직전의 대나무를 딱, 쪼아버린 딱따구리는 넘어지는 나무를 피해 다시 내게로 날아왔다.
나는 조금 전에 주웠던 과일 하나를 녀석에게 주며, 몇 번 더 똑같은 일을 부탁했다. 과일을 먹으며 배를 채우기도 하고, 어느덧 내 초능력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 녀석은 어마어마한 속도로 대나무들을 부러트렸다.
“이게 무슨…….”
그리고, 대나무를 집지을 공간으로 옮겨놓고 돌아온 다른 팀원들이 경악스레 나를 바라보았다.
“아, 마침 딱따구리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부탁 좀 했죠.”
팀원들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저, 딱따구리를 데려올 때부터 함께 있던 김손이 딱따구리를 신기하게 바라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