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154
0153 돌아온 일상
무인도에서 돌아온 이후, 나는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보름 가량의 시간동안 떨어져 있던 것이 내심 싫었던 건지는 몰라도, 소은이가 곁에 찰싹 달라붙어 다닌다는 것이었다.
“휴, 편하다.”
보름동안 소은이를 챙기며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야 했던 누나는 뭔가 해방감을 느끼는 듯한 모습이었다.
“제주도에서 어땠길래?”
“나는 너랑 다르게 동물들이랑 말이 안 통해서 청호만 데려갔잖아? 그렇다보니까 소은이가 심심했던 건지 동물만 보면 따라가려고 했거든. 거기다, 제주에서 말 같은 동물들을 보면 다른 곳으로 가려고 안 했고.”
청호가 아니었으면 한 눈 판 사이에 길고양이도 따라가려 했었다며 한숨을 푹 내쉰 누나가 소은이의 볼을 쿡- 찔렀다.
“히히!”
물론, 소은이는 엄마 손길이 좋다는 듯이 웃을 뿐이었다.
그 모습에 으이그- 하며 소은이의 볼을 가볍게 꼬집은 누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가?”
“너무 놀았잖아. 할 일이 많이 쌓여 있어.”
쌓인 일이 한가득이라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은 누나는 곧바로 사무실로 향했다.
보름동안 보지 못했던 누나와 더 있고 싶었으나, 아쉬움을 뒤로하고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지자면 나도 할 일이 있었다. 어느덧 마무리 단계로 접어든 공사를 확인해야 했다.
내 목덜미를 끌어안고 대롱대롱 매달린 소은이를 안아든 나는 동물원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음, 깔끔하게 잘 되고 있네.”
동물원 전체를 한 바퀴 감싸는 형식으로 만들어지는 수로는 거의 마무리가 끝나고, 물에 관한 각종 장비류의 설치만 남은 상태였다. 수류를 만들어줄 모터라던가 수질 개선을 위한 정화장치 등을 설치하는 것만 남은 것이었다.
공사에 관한 부분을 확인한 나는 완전한 완공까지 며칠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동물원 전체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보름가량, 내가 없던 사이 동물들에게 무언가 문제는 없었는지 직접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위성전화로 간간히 통화하며 별 문제가 없다는 건 사육사들에게 전해들었지만,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시작은 우리 동물원에서 가장 주의를 필요로 하는 녀석들인 두 마리의 코뿔소들이었다. 북부흰코뿔소라는 종으로, 전 세계에서 마지막 남은 개체가 이 녀석들 뿐이었기 때문이다. 이 녀석들이 사라지면 북부흰코뿔소라는 종 자체가 멸종하게 되는 것이었다.
“나 없는 동안 잘 지냈어?”
오래간만에 만나는 코뿔소들은 나와 소은이를 보며 슬쩍 다가와 몸을 부벼댔다. 거대하고 단단한 녀석들이 부벼오는 것에 몸이 휘청거렸지만, 그래도 녀석들이 건강하게 보여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현재 인공수정 등의 방법으로 임신한 상태인 녀석들의 상태를 한번 더 꼼꼼하게 확인한 나는 다른 동물들도 둘러보았다.
“아- 교미하고 싶다-!”
내가 없는 동안 사람들과 충분한 대화를 나누지 못해 심심해하던 뿌우뿌우는 다시 교끼리가 되어 있는 문제가 있긴 했지만 대형 동물들에겐 딱히 문제가 없었다.
아니,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호랑이들 살이 왜 이렇게 빠진 거 같죠?”
“아, 또 약탈당해서 그렇습니다.”
“남캣이랑 라쿤들인가요?”
“네.”
먹이를 상습적으로 빼앗기는 호랑이들이 강제 다이어트를 하게 된 문제가 있긴 했다. 물론, 더 많은 먹이를 주었음에도 어차피 빼앗길 거- 라며 식욕을 잃은 탓이 컸다.
그래도 내가 지켜보는 사이에는 빼앗길 염려가 없다는 것에 식욕이 돌아왔으니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었다.
나는 그 이후로도 다른 동물들을 하나씩 찾아갔다. 소은이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들 중 하나인 토끼즈를 시작으로 동물들을 찾아간 것이었다.
“토끼즈야!”
청호 외에는 동물들을 데려가지 않은 누나 덕분에 보름 정도 토끼즈와 떨어져 있어야 했던 소은이는 무척 기뻐하며 토끼즈를 끌어안았다.
다섯 마리의 토끼들을 한 번에 끌어안은 소은이는 행복한 표정으로 녀석들에게 얼굴을 부벼댔다. 당연히 토끼즈 역시 소은이와의 재회가 기쁜 듯, 코를 씰룩대며 소은이에게 들러붙었다.
“그렇게 좋아?”
“웅! 거기는 청호바께 없어서 심심해써!”
동물들이 없어서 심심했다는 소은이는 토끼즈를 놓지 않았다. 다른 동물들을 확인하러 가려는 내게 다시 매달리면서도 끝까지 한 마리 만큼은 놓지 않았다.
“압빠, 이제 누구 보러 갈꺼야?”
“음……. 소은이가 보고 싶은 친구 있어?”
“오리너구리! 오구리!”
나는 소은이 뜻대로, 오리너구리를 보러 가기로 결정했다.
오리너구리들이 있는 거북이 사육장으로 가니, 오리너구리들이 거북이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햇빛을 쬐며 느긋하게 있는 거북이들의 등껍질 위로 오리너구리의 새끼들이 올라가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안뇨오옹!”
거북이 사육장에 뛰어든 소은이는 거북이들을 가볍게 쓰다듬어주고서, 새끼 오리너구리들과 인사했다. 그리고, 그중에 가장 큰 새끼 하나를 집어들더니 제 머리 위에 턱하니 얹었다.
“히히!”
머리위에 새끼 오리너구리를 얹고, 품에는 일기토를 끌어안은 소은이의 모습이 귀여워 나도 모르게 사진을 찰칵 찍었다.
유치원에서 배운 건지, 쁘이- 소리를 내며 손을 내밀어 V자를 그리는데 그 모습이 또 셔터를 누르게 만들었다.
몇 장의 사진을 더 찍은 나는 다시금 동물들을 둘러보았다.
소은이가 없다는 것에 아쉬움을 드러내며 시무룩해하던 뽀니를 찾아갔다. 녀석은 소은이를 보자마자 히히힝- 울음소리를 내며 소은이에게 들러붙었다.
“좋아! 좋아!”
소은이가 좋다며 들러붙는 녀석에게 소은이를 태워주니, 엉덩이를 씰룩대며 기쁨을 온 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웃음을 터트린 나는 계속해서 동물들의 상태를 체크했다.
자기들끼리 사육장에서 평화롭게 지내는 늑대나, 서식지에서 새끼들을 돌본다고 바쁜 붉은여우들은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다. 페엥, 낙타, 사슴 같이 풀어두고 자기들이 알아서 돌아다니는 동물들도 둘러보니, 역시 문제가 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은 녀석들은 하나도 없었다.
손님들과 접촉이 잦은 녀석들이다보니 내심 걱정했는데, 걱정한 것이 무색하게도 평소와 다를 것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오랜만에 만나는 나와 소은이의 모습에 더더욱 활기찬 모습을 보일 정도였다.
물론 모든 동물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뭐고, 왔나? 쳇.”
내가 없는 동안 마음껏 활개치며 즐거움을 만끽하던 포동이들은 나를 보며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호랑이들의 먹이도 마음대로 훔치고, 관람객들의 소지품도 마음껏 약탈했기 때문이다.
내가 아니면 훈계도 들어먹을 수 없는 녀석이다보니 내가 없는 기간은 녀석에게 천국과도 같았을 것이었다.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는 인간에게 붙잡혀 잠깐 멍하니 있다가 풀려나면 그만이었으니 말이다.
녀석들은 내가 돌아왔다는 것에 아쉬워하며, 몰래 숨기고 있던 차키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이건 또 언제 훔친 거야.
“관람객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현재 미래자동차 차량의 차키를 찾고 있사오니, 해당 분실물을 획득하신 분께서는 가까운 직원에게 전달해주시기 바랍니다.”
차키를 받는 것과 동시에 안내방송이 울려퍼졌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근처에 있던 직원을 호출해, 차키를 넘겨주었다. 차키를 분실한 주인에게 돌려주고 보상까지 해주라는 말을 덧붙여서.
그리고 라쿤처럼 다른 반응을 보이는 녀석이 있었다. 바로 남캣이었다.
입구 부근에 있는 관광안내소의 팜플렛 거치대에서 녀석을 찾았는데, 녀석의 반응이 아주 황당했다.
“남캣. 잘 지냈어?”
“……뭔 소리야?”
“무슨 소리긴. 나 없는 동안 잘 지냈냐고.”
“어디 갔었냐?”
“…….”
내가 어딜 갔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았던 건지, 남캣은 내가 없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아니, 이 놈은 매일같이 냥아치짓을 하면서도 내가 없다는 걸 어떻게 모를 수가 있지?
‘설마 관심도 없는데 그냥 보인다고 시비거는 거였나…….’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으니, 남캣 녀석은 거치대에 있던 팜플렛들을 바닥에 우르르- 떨어트리고선 그대로 떠나버렸다.
“하…….”
어처구니 없는 냥아치 남캣의 행동에 황당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언제나와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닫고선 팜플렛을 정리했다. 조그마한 손으로 소은이가 열심히 도와준 덕에 금세 정리를 끝낼 수 있었다.
“압빠, 이제 모하꾸야?”
“글쎄. 소은이는 뭐 하고 싶어?”
동물들을 대부분 다 둘러보았기에, 나는 소은이를 안아들고 가볍게 돌아다니며 시간을 때우기 시작했다.
누나가 일하고 있는 사무실에 찾아가 간단하게 일을 도와주기도 하고, 오랜만에 돌아온 나를 반겨주는 팬들과 인사를 주고받기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그러던 도중 경호원들과 체력단련겸 훈련을 하고 나타난 청호를 발견했다.
“청호야.”
귀국하던 길에 누나와 함께 만난 청호였지만, 녀석은 내게 달려와 꼬리를 붕붕 흔들어댔다. 마치 처음 만나는 듯한 모습이나 마찬가지였다. 장시간의 비행으로 피로에 지친 내가 녀석과 해후를 나눌 틈도 없이 곯아떨어졌었기 때문이다.
“쥔님!”
내게 달려온 녀석은 내 몸에 앞발을 척- 올리며 몸을 일으키더니, 내 얼굴을 찹찹 핥아댔다. 조금 전 만났던 마루나 치킨이 같은 녀석들도 똑같은 반응이었기에 나는 익숙하게 녀석을 받아주었다.
반가움을 표시하는 녀석을 마구 쓰다듬어준 나는 녀석이 진정하는 것을 기다렸다.
어느정도 진정한 녀석은 조금 전의 촐랑거리는 모습을 싹- 지우고서 늠름한 군견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잘 지냈지? 어젠 피곤해서 인사도 제대로 못했네.”
“괜찮슴다. 피곤하면 다 그런 거 아니겠슴까.”
다 이해한다는 듯한 녀석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댔다.
“너도 고생했어. 누나랑 소은이 따라가서 열심히 지켜줬을 거 아냐.”
“그게 제 일이지 말임다.”
녀석은 당연한 일이라며 짧게 컹- 하고 짖었다.
하지만 이내 녀석이 고개를 슬쩍 숙였다.
“그치만 조금 힘들긴 했슴다. 여쥔님이나 아가씨는 쥔님과 다르게 대화가 통하지 않잖슴까.”
“그건 그렇지.”
“꼭 알아야 할 게 있어서 여쥔님께 말씀드려도 알아듣질 못하시니 엄청 답답했지 말임다.”
녀석은 그 부분을 제외하면 딱히 힘든 건 없었다며 끼잉- 소리를 내었다.
나는 수고했다며 녀석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