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157
0156 수상기차놀이
무인도로 향하기 전부터 공사중이던, 동물원의 수로가 드디어 완공되었다.
동물원 전체를 한 바퀴 감싸는 길이의 수로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깊이도 성인의 허리 수준이었고, 폭 역시 고무보트 하나가 여유롭게 떠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수로였다. 아직 물을 채워넣지 않아, 바닥에 생긴 골짜기 같은 느낌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런 수로 내부에는 미리 깔아둔 수생식물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일부 수생동물들의 먹이가 될 수 있는 수초나 이끼 같은 것들을 미리 깔아둔 것이었다.
이제 수로의 완전한 완성에 남은 것이라고는 물을 채워넣는 것이 전부였다.
“같이 채울까? 이것도 기념이잖아. 우리 동물원에 생긴 수로에 처음으로 물을 채우는 건데.”
“……그래.”
내 말에 곁에 있던 누나가 무어라 말을 하려다가 말고 고개를 끄덕였다. 보나마나 별 걸 다 기념한다고 하려다가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니 수긍한 것이 분명했다.
어쨌거나, 나는 그렇게 누나와 함께 수로에 물을 채워줄 펌프의 전원을 작동시켰다.
자그마하게 우우웅- 소리가 나며 지하에 파묻어둔 펌프가 작동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내 쿠르릉- 소리와 함께 많은 양의 물이 쏟아져나왔다.
따로 바닷물에서 사는 수생생물들은 없었기에, 수로에 채워지는 것은 깨끗한 담수였다.
필터를 거치고 펌프에서 뿜어진 물은 천천히 수로 바닥을 적시더니, 수로를 타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빠르게 나오는 물에 수초나 이끼의 일부가 떠내려가긴 했지만, 대부분이 자리를 지키며 수로의 형태를 잡아주고 있었다.
물이 차오름에 따라 수로에 수류가 형성되었고, 한 방향으로 물이 흘러갔다. 처음에는 졸졸 흘러가던 물이 쌓이고 쌓이니 어느덧 발목 높이보다 조금 더 높은 수준으로 차올랐다.
“워후!”
“…….”
그리고, 물이 차오르며 수류가 생긴 것을 확인한 오리너구리 녀석이 힘차게 헤엄치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수초 사이를 파라락 헤집고 다니는 것을 보니 무척 만족하는 듯했다.
아니, 아직 물 다 안 찼다고.
오리너구리의 행동에 황당한 것도 잠시, 그 뒤로 다른 동물들도 따라가고 있었다. 물이 빠르게 차오르며 점점 더 다양한 동물들이 수로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
아무 생각도, 움직일 이유도 없다는 듯이 물에 둥둥 떠다니고 있는 악어.
“꾸에엑! 여긴 우리가 접수한다!”
여덟 마리가 수로를 틀어막듯 일렬로 힘차게 헤엄치는 거위들.
“수영장이양!”
다른 동물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물살을 가르며 헤엄치는 페엥 역시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바다에서 살던 녀석이긴 하지만 펭귄이 바닷물이 없으면 큰일나는 생물은 아니었기에, 녀석은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크헤헤헷! 이거 딱 좋은 거 같제?”
“그래. 인자, 튄다고 고생 안 해도 되그따.”
뿐만 아니라, 호랑이 사육장에서 훔쳐온 것이 분명한 듯한 닭고기를 품에 안고 물위에 둥둥 떠다니고 있는 라쿤들의 모습 역시 볼 수 있었다.
아니, 라쿤들이 저렇게 수영을 잘 했던가? 수로를 괜히 호랑이 사육장 곁으로 지나가게 만들었나 싶다.
어쨌거나 물이 다 차지 않았음에도 벌써부터 좋아하는 동물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조금 더 일찍 만들어줄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단순히 수생생물들만이 수로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슴이나 여우들처럼 풀어놓은 동물들이 꽤 좋아하고 있었다. 녀석들은 물을 마시려면 근처에 있는 수돗가에 찾아가야 했는데, 이제는 그냥 수로에서 물을 마실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동물들 외에도 수로를 반기는 녀석들은 많았다. 수로가 대부분의 사육장들을 관통하고 있었기에 다른 동물들도 좋아하는 편인 것이었다. 특히, 관종기질이 다분하여 다른 동물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는 뿌우뿌우가 가장 좋아하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여러 동물들이 지나다니니 녀석으로서는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겠지.
물론, 모든 동물들이 수로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에이씨! 물이 왜 여기 있어!”
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고양이들이 거치적거린다며 불평을 토로하는 것이었다.
물론, 하나같이 점프력이 좋은 녀석들이다보니 넓은 수로도 아무렇지 않게 넘나들 수 있었지만 물 자체가 싫다는 것이었다. 대화와 보상을 통해 목욕에 협조 하긴 한다만, 여전히 물을 별로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조금 전 라쿤들에게 먹이를 빼앗긴 호랑이들이 또 싫어하고 있었다. 수로를 타고 몰래 쳐들어온 라쿤들이 먹이를 훔쳐서 물에 퐁당- 빠져드니 호랑이들로서는 따라가기 애매했던 것이었다.
나는 결국 수로에서 호랑이 우리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을 막기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압빠아아!”
“……우리딸이 왜 거기 있을까?”
“그러게……?”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하나 있었다. 기껏 동물들이 이용하라고 만들어둔 수로를 소은이가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한 마리의 악어위에 올라탄 채로 말이다.
“악어보뜨야!”
우리 동물원에서 가장 덩치가 큰 악어의 위에 올라탄 소은이는 조금씩 꼬물거리며 가라앉지 않기 위해 애쓰는 악어 덕분에 조금도 물에 젖지 않은 채로 뱃놀이……아니, 악어놀이를 즐겼다.
그리고, 그런 소은이 뒤로 동물들이 하나둘씩 몰려들기 시작했다.
어느새 한 바퀴를 다 돌고 또 다시 돌아온 오리너구리나 페엥 같은 녀석들이 소은이의 뒤를 따르고 있는 것이었다.
과거, 카페에서 뽈뽈거리며 돌아다니던 시절의 소은이가 보여주었던 기차놀이의 재현이었다. 그 때는 손님들로 이루어진 기차놀이였다면, 이번에는 수생생물들로 이루어진 기차놀이였다.
다만,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이 있었다. 겨울철에는 최소한의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온열기능을 작동시키겠지만, 지금은 작동하지 않았기에 걱정되는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수영 정도는 할 줄 아는 소은이라 빠지는 것 자체는 크게 걱정되지 않았지만, 빠졌을 때 물의 온도가 걱정이었다. 차가운 물에 갑작스레 빠지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소은아, 물이 차가울 건데 괜찮아?”
“웅! 악어보뜨라서 갠차나!”
악어보트라며, 악어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준 소은이는 해맑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덩치가 워낙 큰 녀석이다보니 소은이가 엉덩이를 깔고 앉아도 넉넉할 정도였다.
확실히 저 정도라면 빠지진 않겠다- 싶었다. 악어가 열심히 움직이며 물에 잠기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다, 어느새 다가온 거위들이 그 주변에서 소은이가 빠지지 않도록 보호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엉덩이는 안 배겨?”
“이거 이써!”
내 외침에 소은이가 엉덩이를 살짝 들어올렸다. 그러자, 분홍색의 자그마한 방석이 눈에 띄였다. 폭신폭신한 방석이 악어 등에 있는 돌기들을 무시하고 앉아 있게 해주는 것이었다.
수로에 대해서 알려주고, 오늘 물을 채울 거라고 미리 알려주긴 했지만 소은이가 이렇게 준비성이 좋을 줄은 몰랐다.
그래도 걱정이 안 될 수는 없었기에, 나와 누나는 악어를 타고 유사 뱃놀이를 즐기는 소은이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악어가 대단하다고 해야할지, 소은이가 대단하다고 해야할지 모르겠네.”
나와 누나는 소은이의 모습을 보며 묘한 느낌을 받았다.
흔들리는 악어 위에서 중심을 잘 잡으면서도 물 한 방울 안 묻고 있는 소은이나, 그런 소은이를 태우고도 물에 둥둥 떠다니고 있는 악어나 둘 다 대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의 한 바퀴 가량을 따라다니며 그 모습을 지켜본 결과 딱히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느꼈다. 수류의 세기가 가장 세지는 모터의 앞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아하니 빠질 위험은 전혀 없어보였다.
“악어 위에서 내리는 건 어떻게 할 거야? 아빠가 내려 줄까?”
“갠차나!”
심지어 악어보트 위에서 하차하는 것도 문제가 없었다.
중간중간 동물들이 오르내릴 수 있도록 만든 경사로를 악어가 타고 올라가거나, 수로를 지나던 도중 뿌우뿌우 녀석이 소은이를 허공으로 들어올려주는 방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두 방법 모두를 내게 시범보인 소은이는 악어 위에 있는 방석을 다시 가다듬고서 올라탔다.
“히히.”
벌써부터 풍류를 즐길 줄 안다는 듯, 소은이는 언제 가져온 건지 모를 바나나 우유 하나를 꺼내 홀짝홀짝 마시기 시작했다. 심지어, 한쪽 팔을 뒤로 기대어 느긋한 자세를 완성하고 있었다.
“우리 딸이지만 정말…….”
그 모습에 누나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황당함에 걸음을 멈추고 있으니 소은이는 수류를 타고 흐르는 악어와 함께 우리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으앗, 차가워!”
“……뽀니, 뭐 해?”
“나도……! 나도 물에서 태워줄 거야!”
“멈춰!”
시야에서 벗어나는 소은이를 따라 수로를 헤엄치려는 뽀니 녀석을 급히 멈춰세웠다. 네가 뭍에서는 훌륭한 탈것이지만 물에서는 아니라고.
서글퍼하는 뽀니를 무하마드와의 영상통화로 달래주고 나서야, 녀석의 수로 정복 시도를 막아낼 수 있었다.
“청호! 너도 들어가면 안 돼!”
“어떻게 안 되겠슴까?”
“되겠냐?”
내 말에 청호가 무척 아쉬워하며, 수로를 떠다니는 소은이 곁을 졸졸 따라다녔다.
덕분이라고 해야할지, 며칠 가량이 흐른 이후부터 우리 동물원의 관광 코스가 새롭게 변하게 되었다.
기존에는 좌측이든 우측이든 이리저리 돌면서 동물원을 둘러보았다면, 이제는 수로의 방향을 따라 관람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특히, 소은이가 수로 위를 둥둥 떠다니는 날에는 그 현상이 특히 두드러졌다. 소은이를 따라다니는 동물들이 워낙 많다보니 소은이만 따라다녀도 웬만한 동물들은 다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물들을 풀어놓은 상태에서 관람하다보니, 몇몇 동물들의 경우에는 숨어다니거나 움직이는 경로가 맞지 않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런 일이 잘 없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수로가 만들어진 이후로 일부 고양이들을 제외한다면 사람이고 동물이고 할 것 없이 만족하는 상황이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