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158
0157 추억 공유
“누나! 이거 좀 봐봐!”
느긋하게 소파에 드러누워 휴대폰을 보던 나는 급히 누나를 불렀다.
갑작스런 호출에 누나는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이며 내게 다가왔다.
“왜?”
누나가 내게 다가오자, 나는 곧바로 휴대폰을 내밀었다. 내가 보던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디지포켓? 이거, 우리 어릴 때 하던 만화 아냐?”
“응. 근데 이번에 뮤튜브에 전편 업로드 됐다더라고.”
우연히 보게 된 소식인데, 어릴 때 보던 애니메이션이 뮤튜브에 업로드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저작권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제작사에서 직접 풀었다는 소식인 것이었다.
문득 떠오른 추억에 뮤튜브로 들어가 직접 확인하니 거짓 하나 없는 진실이었다. 심지어 애니메이션의 국내 팬들이 만들어낸 건지, 한국어로 친절하게 자막까지 달려 있었다.
“이참에 정주행이나 해볼까?”
“……맞다. 너 그거 엄청 좋아했지.”
나는 누나와 한창 사귀던, 성인이 된 이후에도 그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다. 딱히 뭔가 오타쿠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모든 시리즈를 찾아볼 정도로 좋아하긴 했었다. 한 번은 누나가 선물이라며 손가락만한 피규어 몇 개를 줄 정도였다.
그렇게 좋아하던 것이었지만 살다보니 내 기억속에서 잊혀진 상태였다. 회사를 다니고, 초능력을 얻으며 누나와 결혼도 하고 소은이까지 키우다보니 자연스레 잊혀졌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애니메이션을 다시금 볼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나는 묘하게 들뜬 듯한 기분을 느꼈다.
다만 누나는 나와 달리 조금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솔직히 나는 재미있는지 모르겠던데.”
“누난 어릴 때 뭐 봤는데?”
“음…….”
고등학교 시절 부터 함께 쌓아온 추억은 무척 많지만, 그보다 이전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물어보니 누나가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난 괴도소녀 제티? 아니면 셀러리문 정도 본 거 같은데.”
“오……. 난 그거 하나도 안 봤어.”
“우리 취향이 다른 게 만화 취향이었네?”
식성이나 각종 취향 같은 것들이 비슷한 우리 부부였지만, 어린 시절의 만화 취향만큼은 반대였던 것 같다.
흔히들 소년만화라거나 모험물 같은 걸 좋아한 나와 다르게, 누나는 그 나잇대의 여자아이들이 좋아하던 순정만화 같은 걸 좋아했던 듯했다.
“그건 없네. 지금 있는 건 디지포켓이랑 듣도 보도 못한 거만 몇 개 있어.”
“난 괜찮아. 딱히 다시 보고 싶은 건 아니라서.”
누나는 내게 보고싶은대로 많이 보라며 손을 내저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선 곧바로 영상을 재생했다.
[자 이제 시작이야, 찾아라 비밀의 열쇠!]정말 오랜만에 듣는 오프닝 노래를 들으니 추억이 떠올랐다. 티비에서 이 노래만 나왔다 하면 그대로 자리에 앉아 30분씩 보고 그랬었는데.
그리고 뒤 이어 추억의 내용이 천천히 진행되기 시작했다. 지금 다시 보니 어린아이들인 주인공들의 멘탈이 어마어마하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압빠, 이거 모야?”
그런데 추억에 빠지며 영상을 보고 있으니 소은이가 쪼르르 다가와 휴대폰을 향해 얼굴을 들이밀었다.
요즘 나오는, 소은이가 지금까지 보았던 애니메이션 같은 것들과 다르게 조금은 조악한 화질의 영상이 있다보니 신기한 듯했다.
더군다나 동물처럼 생긴 캐릭터들이 여럿 나오고 있으니 흥미를 보이는 것이었다.
“음, 이건 아빠가 소은이만할 때 보던 만화야. 여기 이 동물처럼 생긴 친구들이 디지포켓이라는 건데, 얘들이랑 여기 어린 친구들이 협력해서 모험하는 이야기지.”
디지털 세계로 들어가 체육관 관장이 되는 스토리라고 말해주니, 소은이는 그게 도대체 뭐냐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에 가볍 웃은 나는 소은이를 안아들었다.
“소은이도 아빠랑 같이 볼까?”
“웅!”
뭔지는 몰라도 나랑 같이 보는 거면 좋다는 듯, 소은이가 내 배 위에 몸을 뉘이며 자세를 잡았다.
소은이를 가볍게 안아든 나는 곧장 티비로 영상을 재생하기 시작했다. 커다란 화면으로 보니 보기는 편했다.
“우와아아!”
동물처럼 생긴 캐릭터가 몸통박치기를 한다던가, 아니면 비현실적으로 입에서 불을 내뿜는다던가 하는 모습에 소은이가 무척 신기하다는 모습을 보였다.
“압빠, 악어두 불 뿜어?”
악어처럼 생긴 캐릭터가 입에서 불을 뿜어대는 모습에, 소은이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바라보았다.
순간 동심이 가득한 소은이를 놀려볼까- 생각도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쟤는 악어가 아니라 공룡이라서, 악어는 불을 못 뿜어.”
“그럼 공룡은 불 뿜는 거야?”
“글쎄? 아빠가 공룡은 잘 몰라서 모르겠네.”
공룡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악어가 불을 뿜을 수 있는지가 중요했던 건지, 소은이는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티비로 시선을 돌렸다.
악어가 불을 뿜을 수 있다고 했으면, 당장 가서 불을 뿜어보라고 했을 게 확실했다.
어쨌거나, 소은이도 나처럼 이내 영상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순식간에 몇 편을 연달아 시청했다.
“저녁 먹어.”
화장실도 한 번 가지 않고 내리 시청을 이어가던 나와 소은이는 누나의 밥 먹으라는 소리가 들려올 때 까지 움직이지 않고 시청에 집중했다.
“우리 소은이도 아빠처럼 저게 재밌어?”
“웅! 신기해! 쿵하면 꽝하고, 뿌아아아 하면 꾸앙해!”
“……그, 그렇구나.”
소은이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누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소은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물론, 나도 소은이의 말은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튼, 그렇게 식사를 빠르게 마무리한 우리는 계속 이어서 애니메이션을 시청했다. 하지만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저녁을 먹은 다음, 씻고 다시 보다보니 소은이가 금세 졸리다는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압빠, 나 졸려어…….”
“그래? 그러면 나머지는 내일 볼까?”
“웅…….”
고개를 꾸벅꾸벅 숙이던 소은이는 결국 잠을 버티지 못하고 색색거리며 잠에 빠져들었다.
소은이를 재운 나는 누나와 함께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캐릭터들이 동물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거라 그런지, 소은이가 엄청 좋아하네. 평소였으면 밖에서 동물들이랑 뛰어놀 건데.”
“지금까지 소은이가 봤던 다른 애니메이션 대부분이 동물이 주인공인 거였잖아. 여자애들이 좋아하는 여름왕국 같은 것보다 동물 나오는 걸 더 좋아할 정도니까.”
“그런 걸 보면 우리 딸도 취향이 참 확고해.”
덕분에 취향 맞춰주긴 참 편하다며 가볍게 웃은 누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던 우리 역시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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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이는 나와 함께 보았던 디지포켓에 푹, 빠진 건지 거진 사흘 동안 나와 함께 정주행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주인공들이 디지털 세계의 최강 체육관 관장이 되는 시점에서 소은이가 박수를 짝짝 칠 정도로, 디지포켓에 푹 빠진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디지포켓에 푹 빠진 소은이는 그 내용을 따라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릴적 애니메이션이 방영된 다음날 아침, 학교에서 보이는 그런 모습이었다.
“뽀니, 전광석화야!”
뽀니에 올라탄 소은이는 그대로 뽀니에게 빠른 속도로 달리는 기술을 주문했다. 사자성어 그대로 부싯돌이 튈 때 보이는 자그마한 빛과 불꽃처럼 빠르게 달리는 만화속 기술이었는데, 그걸 주문한 것이었다.
그런데, 소은이의 주문을 받은 뽀니가 보인 모습이 의외였다. 동물들에게 강한 호감을 받지만 말이 통하는 건 아니었던 소은이였음에도, 소은이가 원하는대로 움직여주는 것이었다.
“……빛?”
뽀니가 정말 빠르게 파라락 움직인 모습에, 나는 순간 잘못 본 건가 싶었다. 분명 뽀니가 움직일 때 아주 약간 빛이 일었던 것 같은데.
“소은아, 다시 해봐.”
“웅? 아라써! 뽀니, 전광석화야!”
소은이의 외침과 동시에, 뽀니가 다시금 바닥을 박차고 빠른 속도로 나아갔다.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지만, 딱히 빛이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 잘못 본 것이든, 여러 요인이 뒤섞이며 우연한 일치의 결과물이었던 것 같았다.
그 이후로도 소은이가 뽀니에게 전광석화를 주문했지만, 처음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소은이는 뽀니로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동물들에게도 갖가지 기술들을 주문하고 있었다.
“뿌우뿌우, 물대포!”
“꾸악! 라쿤 죽네!”
호랑이 우리로 접근하는 길이 막힌 수로에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틈을 보던 대포동이 뿌우뿌우의 물대포에 희생되었다. 녀석은 수로의 물살에 둥둥 떠다니며 흘러갔다.
“한무는 단단해지기!”
“…….”
소은이의 외침에, 한무는 뭘 뜻하는지 모르겠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이리저리 눈치를 보더니 몸을 한껏 웅크렸다. 몸을 바닥에 착 붙을 정도로 낮추며 머리와 다리를 등껍질 안으로 최대한 밀어넣은 것이었다.
“단단해!”
한무의 등껍질을 탁탁 두드린 소은이는 만족스런 표정을 지어보였다.
“오구리 파도타기!”
오리너구리는 소은이가 자그마하게 만들어낸 물살에 둥둥 떠다녔다. 녀석이 한 것은 딱히 없었지만, 자기가 말하고 물살에 둥둥 흔들리는 녀석의 모습이 만족스러운 듯한 소은이였다.
이리저리 동물원을 누비며 동물들에게 여러 기술들을 학습시킨 소은이는 무척 만족스러워 하고 있었다. 불을 쏘거나 전기를 만들어내진 못해도, 소은이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동물들에게 기술들을 학습시키던 소은이는 마지막에 거하게 사고를 치고야 말았다.
“코뿔소! 몸통박치기!”
내 초능력의 영향을 받으며 전성기 시절보다도 더 건강해진 코뿔소들에게 해서는 안 될 주문을 해버리고 만 것이었다.
소은이가 벽을 가리키며 달려가라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니, 코뿔소가 냅다 그 벽을 향해 돌진해버렸다. 내 초능력의 영향을 한가득 받은 녀석의 힘을 버틸 정도로 벽이 단단하지 못했고, 벽은 그대로 무너져내려버렸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그 너머가 사육장과 관람로를 구분짓는 빈 공간이었기에 인명피해는 없었다.
물론, 인명피해만 없었다.
“노오오오오-! 내 자료가아아아!”
라이노레스큐 소속으로, 코뿔소를 전담으로 케어하는 데이비드가 그곳에 몇몇 자료들을 보관하고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 자료들이 벽의 잔해에 깔려버린 것이 피해였다.
결국, 거하게 사고를 쳐버린 소은이는 누나에게 붙잡히게 되었다.
“히잉……. 잘못해써요.”
누나에게 붙잡힌 소은이는 처음으로 크게 혼이 났다.
눈물을 쏙, 빼며 혼이 난 소은이는 자기가 기술을 가르친 동물들에게 사과를 해야했다. 그래도 동물들은 소은이를 좋아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소은이의 행동에 화 내는 녀석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자료를 잃을 뻔했던 데이비드 역시 잔해의 아래에서 멀쩡하게 자료를 찾아낸 덕분인지 소은이의 행동을 가볍게 용서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