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164
0163 학계의 점심(2)
“형님! 눈표범이 뭐라고 합니까? 도대체 그 꼬리는 왜 물고 있다는 거죠?”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황당하다는 시선으로 눈표범을 빤히 바라보고 있으니 뒤편에 있던 나묵휘가 안달 난 모습으로 보챘다.
그 모습에 잠시 고민하던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기분이 좋아서 그런다는데요.”
“……예?”
“물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서 저러고 있다네요.”
나는 꼬리를 물고서 꼼지락거리는 눈표범을 가리켰다.
“흐헤헤.”
정말 기분이 좋은지, 녀석은 그르릉- 소리를 내고 있었다.
“정말, 그냥 별다른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아서 저러는 거라고요?”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금 눈표범을 바라보았다.
“진짜 그렇게 꼬리를 물고 있는 게, 꼬리나 입이 추워서 그런 게 아니라 단순히 기분이 좋아서 그러는 거야?”
“기부니 조크든요!”
“아니, 기분이 좋은 건 알겠는데. 따로 이유가 있는 건 아냐?”
“딱히?”
눈표범은 태연하게 말하더니, 그대로 꼬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물어댔다. 몸의 왼쪽으로 돌려 물고, 오른쪽으로 돌려 물고. 심지어, 몸의 위나 아래로 움직이기까지 했다.
진심으로 그냥 좋아서 한다는 것처럼 보이는 녀석의 모습에 고개를 내저은 나는 나묵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진짜 그냥 기분이 좋아서 하는 것 같네요. 뭐랄까, 남자들이 가끔 티비나 휴대폰 보면서 바지 안으로 손 넣는 느낌이랄까……? 과학적으로 뭔가 이유는 있다고 하지만, 사람들이 그걸 생각하면서 하는 건 아니잖아요.”
“끙……. 저는 뭔가 이유라도 있을 줄 알았더니. 아, 형님. 그러면 그 행동을 처음 한 이유라도 물어봐 주실 수 있습니까?”
어려울 것 없었기에, 나는 눈표범에게 나묵휘의 물음을 전해주었다.
“처음? 으음…….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엄마한테 배웠던 것 같아. 엄마가 이렇게 하면 기분이 좋다고 알려줬지.”
어미 개체에게 배운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주니 나묵휘가 꽤나 흥미 있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확실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네요. 눈표범은 어미가 새끼를 기르며 절벽을 타는 방법이나, 사냥 방법을 가르치는 동물이니까요. 그 과정에서 꼬리를 무는 행동을 가르친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닐 테고…….”
“그렇지. 동물들도 부모 자식 간에 지식들을 전수한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니까. 먼 과거의 인류도 지식을 전파한 것이 가족 구성원으로 한정되어 있었잖나.”
나묵휘 뿐만 아니라, 나묵휘의 뒤에 있던 이일생 교수 역시 무척 흥미롭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중얼거리듯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고개를 끄덕여댔다.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의 초반은 이해할 수가 있기는 했지만, 뒤로 갈수록 전문용어 같은 것들을 쓰다 보니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어졌다.
나는 두 사람의 대화에 끼기 보다, 내 곁에서 흐헤헤- 웃고 있는 눈표범과 잠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녀석을 쓰다듬고 있으니, 주변에서 눈표범들의 건강을 체크하고 있는 일본인 사육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응악!”
털을 이리저리 뒤집으며 피부병의 유무를 검사하기도 하고, 녀석이 내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는 사이에 주둥이를 확- 벌려 구강검진을 하기도 하는 것이었다.
“엣퉤퉤.”
구강검사를 하며 각종 검사기구가 입안에 잠깐 들어왔던 것이 기분 나빴는지, 눈표범 녀석은 혀를 문질러댔다.
“가끔 인간들이 이렇게 하면 협조 좀 해줘. 네가 아픈지 안 아픈지 검사하는 거니까. 아프면 안 아프게 해주기도 할 거야.”
“으으움.”
다시금 꼬리를 물고 고민하는 녀석의 머리를 북북 쓰다듬었다.
“안 아파야, 기분 좋게 꼬리도 물고 있지.”
“좋아!”
조금 전 자신의 주둥이에 검사기구를 넣었던 인간들에게 호다닥- 달려가, 주둥이를 벌려주는 녀석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다.
“형님. 이제 다음 동물을 보러 가시죠.”
“그래.”
웃음을 터트리고 있으니, 어느새 사제 간의 이야기를 끝냈는지 나묵휘가 다가와 다른 동물에게로 이동하자고 알려왔다.
눈표범 사육사들의 감사 인사를 받으며 이동한 곳은 주둥이가 엄청나게 커다란 펠리컨이 있는 곳이었다.
“형님. 펠리컨이 한글 학명도 있다는 거 아십니까?”
“그냥 펠리컨이 아니었어요?”
“예. 사다새라고 하죠. 펠리컨은 철새로, 한국에서 보는 게 불가능한 새는 아니니까요. 조선왕조실록이나 동의보감에도 기재되어 있을 정도죠.”
신기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펠리컨이라는 새는 알긴 알지만, 이런 이야기는 정말 들어보지 못했었다.
“그건 그렇고, 얘들한테 물어볼 건 뭐죠?”
“펠리컨은 간혹 부리의 늘어진 피부가 뒤집힐 정도로 목을 꺾어댑니다. 사람들이 자기 목에서 척추를 빼낸다고 할 정도로요. 아, 저기 저러고 있네요.”
나묵휘가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니, 조금 경악할 만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부리를 쫘악 벌리고 있는 펠리컨의 주둥이로 녀석의 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아니, 자세히 보니 나묵휘가 말한 대로 부리의 내부가 뒤집히며 목이 빠져나온 듯한 모양이었다.
“체온을 식히기 위한 일이라는 이야기가 있긴 했지만, 오히려 부리의 피부가 목을 덮게 되는지라 낭설로 치부됐습니다.”
나는 펠리컨 사육사들의 도움을 받아, 펠리컨들에게 다가갔다. 처음에는 도망가려는 모습을 보였지만, 녀석들은 이내 호기심을 가지고 내게 몰려들었다.
“……쪼지 마. 이것들아.”
내 다리와 발을 콕콕 쪼는 녀석들을 막아낸 다음, 조금 전까지 부리 내부를 뒤집고 있던 녀석을 찾아냈다.
“조금 전에 부리를 뒤집고 있었잖아. 그거, 왜 그러고 있던 거야?”
“이궉?”
내 물음이 끝나기가 무섭게, 녀석은 부리를 뒤집어 보였다. 부리 내부의 연분홍빛 피부가 보이며 조금은 그로테스크한 모습이 나타났다.
“그, 그래.”
“스트레칭! 이렇게 하면 목이 편해지거든. 큰 걸 먹기에도 목이 편해지고, 여러모로 편해지니까.”
녀석은 목을 이리저리 움직여댔다. 부리를 쫙쫙 벌리기도 하고, S자로 굽혀져 있던 목을 일자로 쭉 뻗기도 하는 것이었다.
정말 스트레칭이 목적이었던 건지, 녀석의 목에서 아주 자그마하게 뚜둑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단순하게 스트레칭이라네요. 아무래도 커다란 먹이도 먹다 보니 목을 편하게 해주려는 것 같아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묵휘와 이일생 교수가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또 생물학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보여, 나는 고개를 저으며 사육장에서 빠져나왔다. 녀석들이 쪼는 탓에 계속 있다간 바지든 신발이든 뭔가 하나는 망가질 것 같았다.
잠시 후, 바지 끝단을 펠리컨들에게 물어뜯긴 두 사람이 사육장에서 나왔고, 나는 그들과 함께 물범이라고도 부르는 바다표범을 찾아 나섰다.
“물범은 잘 알려진 동물 아닌가요?”
“맞습니다. 근데 한 가지 알려지지 않은 것이 있죠. 자기 배를 통통 두드려대는 행동입니다.”
“어……. 박수 치는 거요?”
“그렇게도 말하죠. 실제로는 자기 배를 두드려대는 겁니다. 그 행동이 동족 간의 대화 수단이다, 적을 위협하는 행동이다, 말이 많은 상황이죠. 현재 학계에서는 위협하는 행동으로 보는 쪽이 더 많은 편입니다.”
“오…….”
나묵휘와 이야기하고 있으면 잘 알지 못했던 사실 같은 걸 조금씩 알 수 있었다.
바다사자와 바다표범을 구분하는 방법은 앞다리의 발달 정도나 콧수염 부분, 귀의 생김새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는 이야기 같은 것도 들으며 이동하니 금세 물범의 사육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푸드드드드득!
물범의 사육장으로 다가가니 물범이 자기 배를 빠른 속도로 두드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점박이물범이라는 종이었는데, 회색빛에 가까운 피부에 검은 반점 같은 것들이 가득한 녀석이었다.
그리고, 그 녀석의 모습을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배를 두드리는 행동이 정말 동족 간의 대화 수단이라는 것을 말이다.
“밥 갖고 와! 밥밥밥밥밥!”
분명 주둥이는 열지도 않았는데, 배를 두드리는 그 행동만으로도 녀석이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마냥 그렇게 생각하기도 힘들었다.
두 마리의, 아직은 성체가 되지 못한 자그마한 두 마리 물범들이 서로 엉키며 끄르릉-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었다.
“나랑 놀아!”
“그래!”
배를 두드리던 녀석과 달리, 두 녀석은 소리를 내어 의사소통을 하고 있었다. 배를 두드려 의사소통을 하는 건지, 소리로 하는 건지, 아니면 그 둘 모두를 이용하는 건지 헷갈렸다.
그래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녀석들이 배를 두드리는 의미를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물 위에 있을 때는 소리도 내고, 배도 두드리며 서로 의사소통을 하지만 물속에 있을 때는 배를 두드리며 소통하는 것이었다. 물속에서 소리를 내봐야 호흡할 공기만 소모하니 배를 두드려 의사소통을 하는 거라고 보였다.
“얘들이 배를 두드리는 건 일종의 의사소통 수단이네요. 다만, 육지에서는 약간 짜증을 내는 형태에 가까운 것 같아요. 배고프다, 이건 내 거다, 저리 가라 정도?”
내 말에 곧바로 나묵휘와 이일생이 저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 다른 의미가 있을 줄 알았는데 아쉽다 같은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아직 동물들의 행동을 밝혀내는 것은 끝나지 않았다.
다음으로 찾아간 동물은 바다거북이었다. 바다거북이 알을 깨고 나오기 전부터 주변의 형제 개체들과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가능하긴 하다네요. 여러 의미를 가지고 소통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나 나갈 건데 너도 나갈래? 수준은 된다고 해요. 그렇게 다 같이 부화하면서 한 마리라도 더 살아서 바다로 가겠다는 거죠.”
나는 그 이후로도 국내와 일본, 중국의 동물원들을 돌며 여러 동물들을 만날 수 있었다.
벌꿀오소리는 겁대가리 없는 성격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만 봐도 분노를 참지 못하는 분노조절장애가 있다는 것이나, 절벽을 타는 염소인 아이벡스는 눈앞에 절벽이 있기에 오른다는 소리를 한다는 등의 사실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동물이라 할 수 있는 판다가 제대로 번식하기 힘든 이유도 알 수 있었다.
발정기가 너무 짧다, 성적인 지식 부분으로 배우지 못해서 그렇다 등의 추측이 많았지만 그것이 이유가 아니었다. 게으른데 먹이를 꼬박꼬박 챙겨주니 모든 욕구가 사라지고 수면욕밖에 남지 않은 것이 그 이유였다. 너무 애지중지 사육하다 보니 판다용 야동이 아니면 성욕이 일어나지 않을 정도가 된 것이었다.
그 밖에도 여러 동물들이 가진 소문이나 오해 같은 것들을 파악하게 되었고, 나묵휘의 논문이 공개된 이후로 많은 문의에 시달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