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169
0168 임시 휴업(1)
[전 세계 곳곳에서 이상기후가 나타나며 기후학자들이 환경보호를 외치고 있습니다.]“쩝. 이상기후기는 하지.”
나는 아침 뉴스에서 나오는 내용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부산 사람 특유의, 이상기후를 직접 체감하는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와, 부산에 눈 내리는 게 얼마 만이야?”
바로, 부산에 눈이 내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비인지 눈인지 모르고, 땅에 쌓이지 않을 정도의 진눈깨비가 아니라 땅에 쌓일 정도로 많은 양의 눈이 내리고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온 세상이 새하얗게 보일 정도였다.
창틀만 하더라도 3cm 가량의 눈이 쌓여 있었고, 주변에 가득하던 나무는 눈이 소복하게 쌓여 풍성하게 보이고 있었다.
부산에서는 정말 보기 힘든 그 광경에, 찰칵찰칵 사진을 찍고 있으니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학부모님들께 알려드립니다. 금일 많은 눈으로 인해 통학차량의 운행이 불가능하며 일부 선생님들의 출근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불가피하게 금일 휴원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어, 휴원이네.”
나는 유치원의 휴원 메시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지역에서는 겨우 눈 오는 걸로 무슨 휴원까지 하냐- 하겠지만, 부산 사람인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다.
중학교 다닐 때의 일인데, 정말 드물게 눈이 많이 온 어느 날 갑작스럽게 휴교를 했기 때문이다. 산이 많은 부산의 특성으로, 많은 학교가 산 중턱에 있어 선생님들의 출근은 물론 학생들의 등교도 힘들다는 것이 이유였다.
가르칠 선생님이 먼 거리에서 출근이 불가능하고, 선생님이 있어도 배울 학생들의 등교도 힘들었으니 임시로 휴교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갑자기 열받네. 그때 학교 바로 앞에 가니까 휴교한다고 문자 왔었는데.”
학교 정문을 시야에 두니 휴대폰으로 휴교한다고 문자가 왔었지.
갑자기 피어난 짜증을 새하얀 풍경으로 가볍게 털어내고서, 동물원의 전 직원이 참여해 있는 단체 메신저를 열었다.
[오늘 출근 힘든 사람?]메시지를 보내니 금세 답장이 하나둘씩 달리기 시작했다. 출근 준비를 하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보니 하나같이 다 깨어 있던 것이었다.
[저 오늘 출근 힘들 것 같아요 사장님 ㅠㅠㅠㅠ 집이 산동네라 버스가 못 와요 ㅠㅠㅠㅠㅠ] [살려주십셔! 눈길에 미끄러진 차가 저희 집 문을 들이받았슴다!] [사장님ㅠㅠ 저 오늘 병가 좀 쓸게요ㅠㅠ 눈길에 자빠져서 병원 왔어요.] [(대충 차 7대가 부딪힌 사진)] [ㅋㅋㅋㅋㅎㅎㅎㅠㅠ]나는 곧바로 달린 답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눈길에 미끄러지며 다친 사람도 있었고, 미끄러진 차량으로 인해 집이 피해본 사람과, 눈길에 미끄러지며 생긴 7중 추돌 사고의 당사자마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에 도저히 영업할 수준이 안 되리라 판단한 나는 곧장 휴대폰을 두드렸다.
[오늘은 그럼 임시 휴업할 테니, 다들 출근하지 마시고 쉬세요. 다친 분들이나 집 문이 망가진 분은 나중에 따로 연락 주시고요.]아무리 봐도 눈이 금방 그칠 것 같지도 않고, 눈에 대한 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부산이니 도로 상황도 무척 안 좋을 것이 뻔했다.
단순히 우리 직원들은 물론이고, 동물원을 찾아올 사람들 역시 거의 없을 것이 분명하니 영업하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등산하듯 언덕길을 올라와야 하는 우리 동물원 특성상, 직원들이나 관람객이나 올라오다 다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누나. 나 잠깐 나갔다 올게. 오늘 휴업할 거니까, 밑에 안내판 세워둬야지.”
“오늘 휴업하게?”
아침 준비하던 누나는 내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침을 준비한다고 휴대폰을 보지 않아, 단체 메신저 상황을 보지 못한 것이었다.
“단체 메신저 한 번 봐. 그럼 알 걸?”
꼴이 말이 아니라고 고개를 내저은 나는 곧바로 집을 나섰다.
그리고, 동물원 입구에 다가가서 멈춰 섰다.
“……이거 내려가면 올라오질 못하겠는데?”
내려가는 것도 평범하게 다리로 걸어서 내려가는 건 아닐 것 같았다.
내리막 가득하게 쌓여 있는 눈을 보며 고개를 내저은 나는 다시금 걸음을 되돌렸다. 하지만 집으로 향하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향한 곳은 호랑이들이 자리하고 있는 사육장이었다.
“좋은 아침이야. 잘 잤어?”
“잘 잤죠. 도둑놈들도 이 추위엔 잘 오지 않으니까요.”
남캣이나 라쿤 모두 춥다고 실내에서 잘 안 나가니, 무척 좋아하는 호돌이가 꼬리를 살랑였다.
“할 게 있는데, 도와줄래?”
“어떤 거요?”
“나 좀 태우고 저기 밑에까지 내려갈 수 있겠어?”
“어렵지 않죠.”
호돌이는 아주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육장의 철창을 뛰어올라, 내게 다가왔다.
“살이 쪘는데도 잘 뛰네?”
“크흠, 큼.”
살이 쪘다는 말이 동물에게도 똑같은 건지, 녀석은 헛기침을 하며 어서 타라는 듯이 등을 내밀었다.
녀석의 등 위에 올라타니, 뒤룩뒤룩 쪘다고 해도 될 정도로 차오른 녀석의 살이 푹신한 쿠션이 되어주었다.
“저기로 가자.”
호돌이의 목덜미를 살짝 붙잡으니, 녀석은 내 지시를 따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원래 시베리아에서도 살던 호랑이라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녀석은 눈길에서도 미끄러지지 않고 천천히 나아갔다.
순식간에 동물원의 입구를 지나, 기나긴 내리막을 내려왔다.
“으아아악! 호랑이가 탈출했다아아!”
“아니에요!”
“어, 어? 신수님?”
“눈 때문에 움직이기 힘들 것 같아서 호돌이 타고 온 거예요. 탈출한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아……. 다행이네요. 며칠 전에, 괴물의 둥지 체험하다가 호랑이한테 핥아져서…….”
“하, 하하…….”
내가 타고 있는 호돌이에게 시선을 주었다가 화들짝 놀라는 모습에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앞으로 핥지는 말라고 해야겠네.
“그런데 저희 동물원 가시려고요?”
“네. 눈 올 때 풍경은 어떤가 싶어서 가보려고요.”
“아……. 이거 어쩌죠? 오늘은 임시 휴업할 생각이라서요.”
“진짜요?”
놀란 듯한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해주었다. 직원들의 출근이 힘든 데다, 입구가 조금 가파른 언덕이다 보니 올라올 때 다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 이유라고 말이다.
무척 아쉬워하던 그는 나와 사진을 찍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돌아갔다.
나는 그와 함께 조금 더 걸으며 언덕의 초입 부근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우리 동물원의 휴무일을 알릴 수 있는 것이 있었는데, 그곳에 오늘을 지정해둔 것이었다.
근처에 있는 진입 차단 시설을 꺼내고, 입구까지 막으니 완벽하게 휴일임을 표시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금 호돌이를 타고 동물원으로 올라갔다.
“호돌아, 덕분에 편하게 갔다 왔네. 수고했어.”
호돌이를 거칠게 쓰다듬어준 나는, 녀석이 다시금 사육장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압빠! 히히히, 눈이야!”
그런데, 집으로 가던 도중, 새하얀 패딩을 입고 눈으로 장난치는 소은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저기 놀러 다닌 덕에 눈을 보는 것이 처음은 아님에도, 처음 본 것처럼 신기해하고 있는 소은이를 말이다.
“눈이 그렇게 좋아? 어이구, 머리에도 가득 쌓아뒀네.”
손, 발, 무릎, 머리, 어깨. 몸 곳곳에 눈이 그득한 걸 보니 소은이가 마당에 가득 쌓인 눈 위를 구르기라도 한 것 같았다.
“뀨엑!”
그런데, 소은이의 머리에 쌓인 눈을 털어내는데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뭐, 뭐야?”
“흰둥이!”
눈을 털어내는 내 손짓에 함께 털려버린 무언가를 재빨리 주워낸 소은이는, 제 자그마한 손과 비슷한 크기를 지닌 새 한 마리를 보여주었다.
“……?”
“안뇽!”
소은이 머리 위에 쌓인 눈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온통 새하얀 털을 가진 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도, 귀여운 새 랭킹을 따지자면 1, 2등을 다투는 ‘흰머리오목눈이’라는 새였다.
“소은아. 얘……. 그러니까, 흰둥이는 어디서 났어?”
“조금 전에! 하늘에서 날아와써!”
이제는 가만히 있어도 동물이 날아와 들러붙는 소은이의 모습을 보며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호에에엑!”
그런데 소은이가 쥐고 있는 흰둥이를 바라보고 있으니, 녀석이 갑자기 오들오들 떨기 시작했다.
왜 그러나 싶어 주변을 둘러보니, 저 위에서부터 유부 녀석이 빠른 속도로 우리가 있는 곳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왜?”
“이거 받으시오. 부인께서 전해주라고 하는 것 같았소이다.”
나는 유부 녀석이 내미는 노란색 메모지를 받아들었다. 메모지에는 누나가 쓴 것이 분명한 글귀가 적혀 있었다.
[아침 먹게 얼른 와. 오는 길에 소은이도 데리고 오고.]“아. 그래. 너는 먼저 가 있을래?”
“그럼 잠시 후에 보겠소이다.”
내게 메모지를 넘겨주는 것이 목적이었던 유부는 다시금 날아올랐다.
“피휴우우.”
그리고, 유부가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흰둥이가 안도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왜 그러나 싶은 것도 잠시, 부엉이들이 야생에서는 자그마한 조류들도 잡아먹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여기서는 네가 다른 동물들한테 잡아먹힐 일이 없으니까, 그렇게 놀라지 않아도 돼.”
“정말?”
“그래.”
내 말에, 기쁜 건지 흰둥이 녀석이 소은이 손바닥 위에서 폴짝폴짝 뛰어댔다.
소은이는 그런 녀석을 바라보더니, 자기도 따라 하겠다는 듯 바닥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소은아, 그만. 넘어지겠다.”
“웅.”
“일단, 엄마가 오라니까. 가서 밥 먹자.”
“바아압!”
소은이는 밥이라는 소리에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도도도- 달려나갔다.
그리고, 저러다 넘어지지- 싶어 걱정하는 것과 동시에 발이 쭉 밀리며 몸이 앞으로 쏠렸다.
“애기는 다치면 안 되는 거샤-!”
“휴…….”
재빨리 달려나가 소은이를 잡으려던 나는,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모를 토끼즈 덕분에 안도할 수 있었다.
내 초능력 덕분인지는 몰라도 덩치가 커지고 털도 푹신푹신해진 녀석들이, 예전에 얻은 별명대로 활약해 준 것이었다. 바로, 에어백 토끼 말이다.
“히히, 토끼즈 안녕!”
자기가 넘어질 뻔했다는 건 아는지 모르는지, 소은이는 제게 다가온 토끼즈에게 몸을 비비며 무척 즐거워했다.
“우리도 좋은 거샤!”
“나는 조금 더 안아달라는 거샤!”
토끼즈와 이리저리 엉키기 시작하는 소은이를 잠시 바라보던 나는, 소은이와 토끼즈들을 모두 번쩍 안아들고서 집으로 돌아갔다.
미리 준비를 다 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누나가 현관에서 우리를 반겨주었다.
내 어깨에 내려앉은 눈을 털어준 누나는, 온몸에 눈이 묻어 있는 소은이에게 다가갔다.
“눈밭에서 구르기라도 했니? 왜 이렇게 눈이 많아.”
“뀨에엑!”
“흰둥아!”
그리고, 어느새 소은이 머리 위에 자리했던 흰둥이가 또다시 눈과 함께 털려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