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170
0169 임시 휴업(2)
“미, 미안해! 있는 줄 몰랐어!”
자기가 털어낸 것이 눈이 아니라 새라는 걸 확인한 누나가 화들짝 놀라며, 떨어진 흰둥이를 주워 사과했다.
그 사과를 전달해 주니, 흰둥이는 생각보다 흔쾌히 사과를 받아주었다. 누나가 미안하다며 내미는, 잘게 부숴놓은 견과류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이렇게 되는 거 익숙해서 괜츈!”
“익숙하다니?”
“우리 무리에서 날다가, 큰 친구한테 치여서 떨어졌서!”
“아, 그래…….”
나는 희희낙락하며 견과류를 쪼아먹는 흰둥이를 짠하게 바라보았다.
불쌍한 녀석. 나와 누나에게만 치인 게 아니라, 동료에게도 치였던 거구나.
괜히 불쌍하게 느껴진 나는 조금 더 넉넉하게 먹이를 내어주며 녀석을 쓰다듬었다.
“이 참에 우리 집에서 같이 살래?”
“죠아!”
잡아먹힐 걱정도 없고, 먹이도 준다 하니 흰둥이 녀석은 고민하지 않고 수락했다.
나는 흰머리오목눈이 한 마리를 기르겠다고, 관련 절차를 직원들에게 부탁했다. 물론, 나중에 출근한 다음에 해달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흰둥이에 대한 처리를 부탁한 나는, 가족끼리 단란하게 아침 식사를 했다.
“모처럼 생긴 휴일이니까 느긋하게 쉴까?”
“그러자. 웹플렉스 볼래?”
볼만한 영화를 찾아뒀다는 누나의 말에 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우리의 그 선택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안대! 놀아야대!”
“아, 안 돼?”
“웅! 눈 오니까 놀아야 하는 거야!”
“그렇다네. 수환아. 파이팅! 나는 빨래부터 해야겠어.”
잽싸게 빠져나가는 누나를 허망하게 바라보던 나는, 내 손을 잡고 흔드는 소은이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소은이는 눈을 본 경험은 있어도 제대로 놀아본 적이 없다는 걸 떠올렸다. 타 지역에 놀러 갔을 때도 눈을 만져보기나 했지, 눈으로 놀이라고 할만한 것을 해보지 못했었다.
“소은이는 뭐 하고 놀고 싶어?”
“이글루!”
“이글루? 그건 또 어디서 본 거야…….”
어디서 본 건지, 이글루를 만들며 놀자는 소은이의 말에 나는 황당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를 만들며 노는 것이 성장발달에 도움 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곧바로 뮤튜브에서 이글루 만드는 방법을 간단하게 검색해 보았다.
플라스틱 용기에 눈을 가득 채우고, 물을 살짝 부은 다음 꾹꾹 눌러주면 눈이 잘 뭉쳐져 얼음 벽돌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음, 충분히 할 수 있겠는데?
동물원 전체를 가득 뒤덮고 있는 눈을 생각하면 이글루 하나 정도는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곧장 필요한 준비물들을 집안에서 꺼내왔다.
주로 김장김치를 담을 때 쓰던 커다란 플라스틱 용기를 가져왔다. 그리고, 살짝 사다리꼴 모양으로 벽돌이 만들어지도록, 열을 가한 다음 윗부분을 늘려주었다.
재료의 준비가 끝난 나는, 아직 남아 있는 공터로 향했다. 정확히는 공터라기 보다 일종의 광장 형태인 곳이었는데, 이글루를 짓기엔 그곳이 딱이었다.
“이글루다아아!”
곁에서 뽈뽈뽈 뛰어다니는 소은이를 바라본 나는, 미리 준비해둔 모종삽을 소은이에게 내밀었다.
“여기에 눈을 퍼서 담는 거야. 할 수 있지?”
“웅!”
소은이는 이글루를 만드는 것이 기대된다는 듯 열심히 눈을 퍼서 플라스틱 용기에 담기 시작했다.
용기는 금세 눈이 가득해졌고, 나는 그곳에 물을 살짝 붓고 꾹꾹 눌러주었다. 뽀드득 뽀드득 소리가 나더니 금세 단단한 얼음 벽돌이 되었다.
다만, 그 얼음 벽돌은 금방 깨져나갔다.
“쀼악! 죽는 쥴!”
다름이 아니라, 또다시 눈처럼 생긴 외형 탓에 눈에 휩쓸려 벽돌 내부에 같이 들어갔던 흰둥이 덕분이었다.
흰둥이가 또 얼음 벽돌의 일부가 되는 일을 막기 위해 소은이의 어깨에 올려준 뒤, 다시금 얼음 벽돌을 만들어 냈다. 이번에는 흰둥이가 들어가지 않은, 말 그대로의 얼음 벽돌이 된 것이었다.
“우아!”
벽돌이 뚝딱 만들어진 것에 감탄한 소은이는 손이 시린 것도 참아가며, 벽돌을 가져가 바닥에 톡 내려놓았다.
그리고, 나와 소은이는 그 동작을 계속 반복했다. 도중에 동물들의 도움도 받아 가면서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성인 남성 하나에 어린 여자아이 하나로는 이글루를 지을 수 없었다.
원숭이나 콩콩이처럼 손을 잘 쓰는 동물들이 우리의 작업 같은 놀이를 서포트해 주는 것이었다.
눈을 퍼 오고, 몇 개 더 만들어낸 용기에 눈과 물을 넣어 벽돌을 만들어준 것이었다.
나와 소은이는 그렇게 만들어진 벽돌을 이리저리 쌓고, 사이에 눈과 물도 채워 넣으며 열심히 이글루를 지어갔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생각보다 조금 크게 만드는 바람에, 주변에 있던 눈이 벌써 사라지고 바닥이 보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흠…….”
어떻게 해야 좋을까- 고민하던 나는 한 가지를 떠올리고서, 창고로 향했다.
곰이나 호랑이, 코끼리 같은 녀석들에게 유흥거리로 준비해둔 것이 있었다. 철제로 된 거대한 상자였는데, 내부에 과일을 넣어두고 닫은 걸 줘서 알아서 꺼내먹게 하려던 것이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단단하게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인지 동물들이 열지 못하던 물건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 상자와 질긴 로프를 챙긴 나는, 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코끼리가 그려진 옷을 입고 있는 코끼리인 뿌우뿌우를 데려왔다.
“뿌우뿌우야, 힘 좀 쓰자.”
“힘쓰기? 좋지!”
자신을 뽐내기 좋아하는 관심종자답게, 녀석은 힘을 쓰자는 말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로프로 녀석의 몸을 칭칭 감고, 그것을 상자와 연결하니 훌륭한 넉가래(상자ver)가 완성되었다.
“자, 가자!”
“가자!”
“가즈아-!”
내가 먼저 외치니 소은이가 따라 외치고, 뿌우뿌우 녀석도 코끼리 특유의 울음소리를 내며 내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녀석을 몰고 동물원 곳곳을 움직이니, 녀석에게 묶인 상자가 바닥을 긁으며 내부에 눈을 채웠다. 그렇게 눈을 수급해낸 나는 빠르게 이글루를 지어갔다.
나와 소은이가 뿌우뿌우를 몰고 눈을 모아오면, 그 눈으로 다른 동물들이 얼음 벽돌을 만드는 것이었다.
용기에 눈을 채우는 것은 콩콩이가 담당했고, 물을 붓고 뭉치는 것은 원숭이가 담당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벽돌을 쌓는 것은 곰이 담당하고 있었다.
동물들의 합동 작전 덕분에, 이글루는 빠르게 지어지고 있었다.
사다리꼴 모양으로 벽돌을 만든 덕분에, 이글루가 점점 둥글둥글한 형태를 갖춰갔다.
거기에 동굴 형태로 입구까지 만들어놓으니 정말 이글루 그 자체가 되었다.
“마지막은 소은이가 올릴까?”
“웅! 내가 할래!”
소은이는 내가 내미는 얼음 벽돌을 힘차게 들어 올렸다. 꽤나 커다란 얼음 벽돌이었지만, 내 초능력에 강하게 영향을 받은 소은이에겐 그리 무거운 무게가 아니었다.
“뿌우뿌우! 올려줘!”
그리고 근처에 있던 뿌우뿌우에게 자기 허리를 감으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뿌우뿌우는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센스 좋게 소은이의 허리를 코로 휘감았다.
“위로!”
이후, 뿌우뿌우는 그대로 소은이를 들어 올렸고, 내 키보다도 조금 더 높은 이글루의 꼭대기 부근으로 소은이를 들어 올렸다.
마지막 한 개의 벽돌이 들어갈 자리로, 구멍이 뚫려 있던 공간에 소은이가 얼을 벽돌을 내려놓았다.
뽀드득- 소리를 내며 얼음 벽돌이 미끄러지며 이글루 천장의 마지막 한자리를 채웠다.
성공적으로 완성된 이글루의 모습에, 나와 소은이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하이파이브!”
“하빠부!”
서로 손바닥을 부딪히며 즐겁게 웃은 우리는, 자랑하기 위해 집으로 재빨리 달려갔다. 그 자리에 있던 눈들은 이미 이글루의 일부가 되어 있어 미끄럽지 않았다.
“누나!”
“엄마!”
누나에게 자랑하러 온 우리는 느긋하게 티비를 보고 있던 누나를 데리고 이글루로 향했다.
“와, 잘 만들었네?”
“우리가 다 해써!”
아주 허리춤에 손까지 척- 얹으며 말하는 소은이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린 우린 곧바로 이글루 내부에 들어갔다.
얼음으로 만든 것치고는 내부가 무척이나 아늑했다.
“캠핑 용품 가져와서, 차나 마실래?”
“오, 좋다.”
그 아늑함 때문인지, 우리는 이글루 내부에 캠핑용 체어와 테이블을 놔두고 잠시 동안 티타임을 즐겼다.
그리고, 단순히 우리만 티타임을 즐긴 것이 아니라, 이글루를 짓는 데 도움을 준 여러 동물들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보상을 내어주었다.
“수환아. 그런데, 올라오는 길에 있는 눈도 다 치워야 하지 않을까? 녹으면 나중에 얼 거 같은데……. 그럼 나중에 또 영업 못 하는 거 아냐?”
“그럴 수도 있겠네.”
누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글루 밖을 바라보았다.
“눈도 슬슬 그치는 것 같으니까, 치워야겠네.”
하늘에서 펑펑 쏟아지듯 내리던 눈발이 어느덧 사그라든 것에, 이글루 밖으로 빠져나왔다. 누나 말대로 내린 눈이 녹게 되면 나중에 더 골치 아플 것이 뻔했다.
“음…….”
눈이 쌓여 있고, 호랑이 발자국이 남아 있는 언덕길을 바라보던 나는 다시금 창고로 달려갔다.
창고에는 뿌우뿌우가 끌었던 것과 같은 상자가 몇 개나 더 있었다.
그것들 중 두 개를 꺼낸 나는, 느긋하게 쉬고 있던 코뿔소 두 마리를 데려왔다.
“내가 알려주는 대로, 이걸 밀면서 내려가면 돼. 할 수 있지? 조금 무거울 수도 있어.”
“맡겨줘요.”
두 마리의 코뿔소들은 내 지시에 따라, 상자를 뒤에서 천천히 밀기 시작했다.
눈이 가득 쌓여 있던 가파른 언덕길을 따라 두 마리의 코뿔소가 내려가기 시작하니, 눈들이 좌우로 밀려나며 길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흡사 불도저가 길을 막는 것들을 밀어내며 길을 내는 듯한 모습이었다.
단순히 상자 두 개를 두 마리의 코뿔소가 밀어내는 것이 전부였지만, 그 행동 한 번으로 3미터의 폭을 가진 길이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녀석들이 가볍게 왕복하는 것만으로도 동물원으로 올라가는 길이 완벽하게 정비된 것이었다.
“수고했어. 너희한테 매번 도움만 받네.”
두 코뿔소는 별것 아니라며, 넓적한 주둥이를 내 다리에 비벼댔다.
그런 두 녀석을 쓰다듬어준 나는 다시금 이글루에 돌아와, 가족들과 즐거운 티타임을 이어갔다.
그리고, 코끼리와 코뿔소의 제설작업 덕분에, 다음 날이 되었을 때 무사히 정상적으로 영업할 수 있었다. 광장에 생긴 이글루라는 새로운 볼거리가 생긴 상태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