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174
0173 세발자전거
“수환아.”
“응?”
침대에서 뒹굴거리던 나는 갑자기 누나가 부르는 것에 고개를 돌렸다.
“자전거가 아이들 성장발달에 좋다는데, 소은이도 하나 사 줄까? 세발자전거 같은 거로. 운동도 되고 좋을 거 같은데…….”
“자전거? 음, 뭐 나쁘진 않겠다. 소은이가 타려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안 타려나?”
“뽀니나 청호, 호돌이 같은 애들 타다가 세발자전거를 타게 되는 거니까, 별로 안 좋아하지 않을까?”
자동차로 따지자면 100% 자율주행이 가능한 최고급 슈퍼카를 타다가, 평범한 소형차를 타는 느낌이라고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한 번 사서 보는 게 낫지 않을까? 혹시 알아? 엄청 좋아할 수도 있잖아.”
“그래, 뭐. 우리 형편에 자전거 하나 사 주는 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지갑 사정이라면 자전거 하나가 아니라, 자전거로 산을 쌓아줄 수도 있었다.
“소은이가 탈 거니까, 그럼 좋은 걸로 한 번 찾아봐야겠네.”
“나중에 둘째가 탈 수도 있으니까, 좋은 걸로 하자.”
둘째를 언급하며 배를 슬쩍 내미는 누나의 모습에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누나를 끌어안고 잠시 배를 쓰다듬던 나는 곧장 자전거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정보들을 찾다 보니, 자전거는 역시 카본이 좋다- 라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카본 자전거 주문 제작]물론, 기성제품을 살 생각은 없었다. 소은이가 탈 건데, 최대한 좋은 걸로 맞춰줘야지.
적당한 업체 하나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예, Go자라니입니다.”
“자전거 주문 제작하는 곳이죠?”
“예. 국내 유일! 금속제 프레임 주문 제작부터 카본까지 주문 제작이 가능한 Go자라니입니다.”
“오……. 그럼 세발자전거도 주문 제작되나요? 어린이용으로요.”
“……?”
내 말에 갑자기 상대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전화기 너머로 느껴지는 기색이 살짝 당황한 듯했다.
“저기, 죄송하지만 장난전화는 받지 않습니다.”
“장난이 아니라, 진심으로 묻는 거예요. 어린이용 세발자전거를 주문 제작하려고요.”
“그……. 비용이 어마어마할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따로 설계도가 있는 것도 아니라, 바닥부터 다 짜 올려야 하다 보니 비용이 좀…….”
“비용은 신경 쓰지 말고, 최고급으로 맞추고 싶은데요. 가능하시죠?”
내 말에, 상대방은 의심쩍다는 모습을 지우지 못했다. 아무래도 저렴한 가격대의 물건이 아니다 보니, 만들고 결제가 되지 않을 경우 생길 피해를 걱정하는 것이었다.
“가격을 미리 지불할 수도 있으니까, 걱정 마시고 깔끔하게만 만들어주세요.”
선 결제도 가능하다고 하니, 그제야 상대방의 반응이 바뀌었다.
“고객님! 그러시면 탑승자의 신체 사이즈를 측정해서 보내주시겠어요?”
엉덩이부터 어깨나, 발부터 무릎, 무릎부터 골반 등등의 사이즈를 측정해달라는 요구가 있었다.
어렵지 않은 일이었기에, 곧바로 수치를 보내주었다.
“자세한 금액과 기간 등은 조금 있다가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해 주세요.”
“걱정 마십쇼 고객님!”
힘차게 대답하는 상대의 말에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견적서가 도착했다.
“수환아, 정말 이걸로 할 거야?”
“응. 찾아보니까, 세발자전거는 가벼워야 좋다고 하길래. 따로 브레이크가 달린 게 아니라 앞바퀴에 고정형 페달이 달린 거라, 달리다가 정지할 때는 가벼운 게 최고라더라. 가벼운 건 카본이 최고라고 하고.”
“으음, 그렇구나.”
견적서에 적힌 비싼 가격을 보며 누나가 살짝 놀란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내 우리 수입으로 하지 못할 것도 아니라는 생각인지, 금세 수긍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만드는데 시간은 조금 걸린다니까, 기다려 보자.”
나는 대충 송금을 해주고서, 곧바로 누나를 끌어안았다.
누나와 즐거운 시간도 보내고, 소은이와 놀아주기도 하며 시간을 보내니 금세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자전거를 결제했었다- 라는 기억이 옅어질 즈음 연락이 왔다.
“안녕하십니까! Go자라니입니다. 자전거가 완성되어 배송해 드리려 하는데, 오늘 시간 괜찮으십니까?”
“네. 저번에 전해드린 그 주소로 좀 가져다주세요. 입구에 있는 직원한테 맡기면 됩니다.”
“예!”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한 직원이 조금 큼지막한 상자를 끌차에 실어 가져왔다.
“고마워요.”
수고해 준 직원에게 감사 인사를 한 나는, 곧바로 자전거 박스의 언박싱을 진행했다.
상자 찢듯이 박스의 테이프를 뜯어내고, 박스를 해체하니 스티로폼 같은 완충제에 싸여 있는 세발자전거가 눈에 들어왔다.
“오……. 때깔 좋은데?”
세발자전거를 언박싱한 나는 살짝 감탄했다. 까맣고 하얀, 카본 특유의 패턴 무늬가 있는 세발자전거는 꽤 유려한 모습이었다. 딱 봐도 비싼 티가 난다고 해야 할까?
잠시 세발자전거를 보던 나는 바퀴도 잘 굴러가는 걸 확인하고서, 곧바로 소은이를 찾아 나섰다.
사람과 동물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곳을 찾으면 그곳에 99% 확률로 소은이가 있었기에,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소은아!”
“웅? 압빠다!”
동물들과 놀던 소은이는 나를 발견하더니 도도도 달려와 안겼다.
그런 소은이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고서, 가져온 자전거를 보여주었다.
“이거 모야?”
“세발자전거야. 소은이를 위한 선물!”
“우와아앙!”
선물이라는 소리에 기뻐한 소은이는 곧바로 자전거에 올라탔다.
안장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은 소은이는 페달에 발을 올리고, 천천히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움직여!”
자기가 발을 구를 때마다 바퀴가 돌며 움직이는 것에 신기해하는 소은이는 열심히 주변을 돌아다녔다. 핸들을 틀며 방향도 바꾸고, 갑자기 멈추기도 해보면서 조작감을 익히는 듯했다.
그리고, 소은이가 그 자전거에 적응했을 때, 소은이의 주행 스타일이 확 바뀌었다.
“히히히!”
소은이는 매우 빠른 속도로 발을 구르며, 빠르게 질주했다. 성인이 뛰는 정도의 속도로 세발자전거를 타고 질주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단순히 직진으로 질주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소은이는 급커브를 만나더라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몸을 기울이며 코너링을 진입했다.
심지어, 미끄러지며 코너링에서 벗어나려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빠르게 발을 구르며 드리프트마저 하고 있었다.
“……괜히 사준 건가?”
“뭐 어때. 운동신경이 좋다는 거니까, 더 좋은 거지.”
소은이가 코너에서 드리프트를 하며 빠르게 치고 나가는 모습을 본 누나가 살짝 걱정스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저러다 괜히 다치는 건 아닐까- 하고 걱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주변으로 토끼즈가 따라다니고 있었고, 청호와 뽀니도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으니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였다.
실제로, 소은이가 세발자전거에 적응을 하던 도중에 넘어졌었는데, 곁에 있던 토끼즈 덕분에 소은이는 조금도 다치지 않았었다. 피부가 조금도 까지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며칠 정도 소은이가 세발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더 이상 넘어지는 일이 없다는 것에, 누나도 조금씩 안심하기 시작했다.
조마조마하게 바라보던 시선이, 흐뭇하게 바라보는 시선으로 바뀌는 것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웅……?”
그러나, 문제가 생기는 것 역시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느 주말 아침. 평소처럼 자전거를 타려던 소은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늘 자전거를 놔두는 곳에 자전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기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도 자전거가 없다는 사실에 소은이의 표정이 꽤나 귀여워졌다. 아니, 찌푸려졌다.
“업써!”
혹시 자기 눈에만 안 보이는 건가 싶어, 허공에 손을 쥐기도 하는 모습은 무척 귀여웠다. 마치 자전거 핸들을 잡듯 조심스레 허공을 움켜쥐는 모습은 귀여움 그 자체였다.
“압빠! 자전거가 업써!”
“그러게…….”
하지만 그 모습이 귀여운 것과는 별개로, 나도 나름대로 심각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소은이의 귀여운 모습을 보겠다고 그 자전거를 숨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놈의 나라는 자전거만 보면 왜 환장을 하는 거야. 성인용 자전거도 아니고, 어린이용 세발자전거마저 탐내?”
CCTV를 확인해 보니, 괴물의 둥지를 진행하는 시각 즈음에 직원처럼 생긴 인간 하나가 소은이 자전거를 들고 가는 모습이 보였다. 관람객이나 다른 직원들도 그 모습 때문인지, 크게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는 듯했다.
그러나 그 영상에 나온 사람은 직원이 아니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직원들 한 명 한 명을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소은이의 자전거가 도난당했음을 파악하고서, 곧장 도난 신고를 진행했다.
내 이름값 때문인지는 몰라도, 경찰들이 순식간에 몰려와 도난품에 대한 조사를 해갔다.
하지만 나는 경찰들이 자전거를 찾아줄 때까지 마냥 기다리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뽀니에게 올라타, 뽀니의 갈기를 핸들처럼 잡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당장 자전거를 찾아줘야겠다 싶었다.
“유부야!”
나는 유유자적하게 사람들에게 생고기를 받아먹으며, 완전한 애완 부엉이의 길로 접어든 유부를 호출했다.
애완 부엉이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녀석은 여전히 맹금류의 위엄을 떨치고 있었다.
“소은이가 타고 다니던 자전거 알지?”
“알고 있소이다.”
“어떤 몹쓸 놈이 그걸 훔쳐 갔거든? 좀 찾아야겠어.”
“천하의 몹쓸 놈이구려! 내 당장 그놈을 족치겠소!”
유부는 소은이의 것을 탐낸 자가 있다는 소리에 격분하며, 부리로 딱딱 소리를 내었다. 날카로운 부리로 그러고 있으니, 꽤나 위협적이었다.
“일단, 사람은 건들지 말고 자전거만 찾아봐.”
“쩝……. 알겠소이다. 찾게 되면 알려드리겠소.”
고개를 끄덕인 유부는 날개를 퍼드득 움직이며 날아올랐다.
하늘로 날아오른 유부의 소식을 듣는 건, 그날 지역 뉴스에 속보로 뜬 기사를 통해서였다.
[부산 시내, 새들의 갑작스러운 등장.] [주택가를 비롯한 시내 곳곳을 누비는 새떼.] [갑작스레 나타난 새들의 우두머리는 드루이드의 부엉이!] [드루이드는 왜 새들을 풀었는가.]“……애 자전거 좀 찾으려고 한 게 좀 커졌네?”
“으이구!”
“아악!”
함께 속보를 본 누나의 등짝 스매쉬에 눈물을 찔끔 흘리는 것도 잠시, 나는 어느새 다가온 유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오! 찾았어?”
“부하들을 이끌고, 부하의 부하들과 그 부하의 부하들까지 모두 동원했더니 금세 찾을 수 있었소이다.”
한 마디로 물량전을 하니 금세 찾았다는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내해. 엄복도……. 아니, 자전거가 있는 곳으로.”
“음? 그거라면 가져왔소이다.”
유부는 몸을 살짝 틀어, 자기 뒤편을 보여주었다. 언제 가져온 건지, 그곳에는 소은이의 자전거가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어떻게 들고 왔냐?”
“부하들을 동원하니, 쉽게 들 수 있었소. 그, 유리라는 투명한 것이 가로막고 있긴 했지만……. 뭐, 그것 정도야 깨면 그만 아니겠소이까?”
유부의 말에 잠깐 황당했다. 도둑이 훔쳐 가서 자기 집이든 어디든, 일단 유리창이 있는 곳을 뚫고 강제 침입해서 가져왔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비싼 값을 주고 주문 제작한 이 세발자전거가 2대나 있을 이유도 없었으니, 도둑놈이 어떻게 되든 알 바가 아니었다.
“소은아! 자전거 찾았다!”
“와앙!”
소은이가 기뻐하면 되는 일이었다.
아, 그래도 경찰한테는 연락해야지. 찾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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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아, 자전거 요즘에 안 타네?”
자전거 도난 사건 이후 며칠이 지났을 때, 자전거 안장에 먼지가 가볍게 내려앉은 모습을 보고 물었다.
자전거를 도난당했던 것이 원인인지, 아니면 다른 것이 원인인지는 몰라도 최근들어 자전거 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웅. 재미엄써.”
“왜?”
“뽀니가 더 재미써!”
내 물음에 소은이는 뽀니를 타는 것이 더 재미있다며, 더 이상 자전거에 관심이 없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나는 금세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소은이가 자전거로 드리프트를 해대는 것을 유심히 보던 뽀니 녀석이 드리프트를 배웠던 것이다.
드리프트가 가능한 뽀니가 있으니 자전거에 관심이 갈 리가 없었다.
“……나중에 둘째나 한 번 태워보자.”
“……그래.”
나와 누나는 괜히 비싼 돈 주고 주문 제작했다고 한숨을 내쉬며, 자전거를 창고에 집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