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190
0189 동물 구조대! (3)
되겠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할 수 없는 일도 아니고, 해서는 안 되는 일도 아니었으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더군다나 사람들을 살리는 일인데, 이걸 거절했다간 내게 좋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리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언제 어디로 가면 될까요?”
“저, 정말 도와주실 수 있으신 겁니까?”
“네.”
“감사합니다!”
거의 소리를 지르듯, 우렁차게 감사 인사를 하는 라숙규의 목소리에 피식 웃음 지었다.
그리고, 그렇게 소리친 라숙규가 곧장 이야기를 이어갔다.
“선생님께서 시간이 언제쯤 가능하시겠습니까?”
“최대한 빨리 가는 게 좋긴 하겠죠?”
“……맞습니다. 매몰사고 구조의 골든 타임은 72시간이니, 빠를수록 좋습니다.”
지진이 있던 어제부터 매몰되어 있다는 것은, 이제 거의 만 하루에 가까운 시간 동안 매몰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식량은 둘째 치더라도 물이 없을 상황에서의 구조는 더더욱 빠르게 이어져야 했다.
“그럼 일단 동물들 먹이부터 챙겨주고 바로 가도록 할게요.”
“저희가 모시러 가겠습니다.”
알겠다고 답한 뒤, 나는 동물들에게 빠르게 먹이를 챙겨주고 누나를 찾았다.
라숙규와의 대화 내용을 비롯해, 내가 다녀온다고 하니 누나가 꽤나 걱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아무래도 재난현장에 내가 직접 가게 되니 무슨 일이라도 터지는 건 아닌가 걱정하는 것 같았다.
“걱정 안 해도 돼. 동물들이랑 같이 갈 거니까. 게다가, 소은이랑 곧 태어날 둘째를 위해서도 다녀와야지. 아빠가 돈 잘 버는 초능력자인 것보다, 돈도 잘 버는데 사람도 구해주는 영웅 같은 아빠라고 해봐. 얼마나 좋겠어?”
“너어…….”
부드럽게 웃으며 말하니, 누나가 샐쭉하게 나를 노려보았다.
“하은아. 오빠 믿지? 멀쩡하게 돌아올 거야.”
“이게!”
“아아악!”
누나의 양손에 붙잡힌 볼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내 장난에 누나도 조금은 걱정이 누그러진 것 같았다.
가볍게 입술에 쪽- 소리가 나도록 뽀뽀해 주고서, 포옹까지 해주었다.
“진짜 멀쩡히 돌아올 거야. 무슨 일이 터져도, 동물들이랑 같이 있을 거니까 다치는 게 더 힘들지 않을까?”
“어휴……. 그래, 다녀와.”
고개를 내젓는 누나의 모습에 다시금 끌어안아준 나는, 데려갈 동물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감이 가장 민감한 청호나, 땅을 파낼 두더지, 토끼, 카피바라 몇 마리. 거기에 절삭기나 다름없는 비버, 소은이의 세 번째 손으로 활약하는 누렁이. 마지막으로 중장비의 역할을 대신해 줄 콩콩이를 데려가기로 했다.
그렇게 동물들과 모여 기다리고 있으니, 라숙규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지금 그쪽으로 가고 있으니 금방 도착할 것 같습니다.”
“어디에서 기다리고 있을까요?”
“동물원에 넓은 공터가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쪽에서 기다리시면 될 것 같습니다.”
“……공터요?”
공터에서 기다리면 된다는 말에 의아함을 느꼈으나, 이내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있었다. 하늘 저 멀리서부터 두 대의 헬리콥터가 두두두- 소리를 내며 날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중 한 대가 공터에 착륙하더니, 119 마크가 붙어 있는 복장을 입고 있는 남자가 내렸다.
“반갑습니다. 전화드렸던 라숙규입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악수를 청하는 라숙규의 모습에 가볍게 손을 맞잡고 흔들어주었다.
“일단 자세한 이야기는 이동하며 해드리겠습니다. 여기 있는 동물들을 모두 데려가실 생각이십니까?”
“네. 가능할까요?”
“음……. 한 대로도 되겠군요.”
콩콩이의 덩치가 조금 문제였지만, 다른 동물들은 어렵지 않게 헬기에 올라탈 수 있었다.
머리 위에서 아주 빠르게 회전하는 헬리콥터 블레이드가 사뭇 위협적으로 다가왔지만, 타고나니 생각보다 아늑했다.
헬기가 부웅- 떠오르는 순간에는 조금 움찔하게 됐지만, 그래도 나쁘지는 않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동물원이 점점 작아지기 시작하자, 라숙규가 입을 열었다.
“일단, 현재 저희가 CCTV를 통해 확인한 매몰자의 수는 9명입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터널 자체가 토양액상화로 인해 내려앉는 형태로 가라앉았기에 매몰자의 사망은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다만, 액상화로 인한 매몰이라 산소 부족이 예상되고, 식수나 식량 모두 없거나 매우 부족한 상태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지반 낙하 당시 주행 중이던 차량들이라 충돌사고로 인한 부상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추가로, 지표면으로부터 약 12미터가량 매몰된 것으로 추정되며 매몰자들이 있는 곳은 터널 구조물이 쌓이며 일종의 공동을 형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쌓여서 공동이 된 거면…….”
“예. 구조를 위해 마구잡이로 굴착을 하게 되면 무너질 수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더 힘들다며 침울한 표정을 짓는 라숙규였다.
나는 그 소리에 잠시 고민하다가, 라숙규에게 몇 가지 물건들을 요구했다.
“일단, 철제 파이프를 넉넉하게 좀 구해주세요.”
“파이프 말씀이십니까? 두께나 내경은 어느 정도로……?”
라숙규의 말에, 나는 서로 엉겨 붙어 꿈틀대는 두더지 중 한 마리를 잡아올렸다.
“어……. 두께는 이 정도로 하면 될 것 같아요. 내경은 적당한 걸로 하면 될 것 같고요. 아, 간단하게 조립이 가능한 형태여야 해요.”
내 말을 들은 라숙규는 가타부타 말없이, 어디론가 연락하여 대량의 파이프를 가져오라는 연락을 했다.
아, 그러고 보니 차량 진입도 쉽지 않다고 했던가? 현장 소방관들이 고생하겠네. 괜히 미안해졌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조금 먼 곳에 위치한 재난현장이 보이고 있었다. 도로가 완벽하게 망가져 있었고, 푸른 나무가 가득할 자그마한 산이 폭삭 주저앉아 있었다.
그 위로 천막 같은 것들이 몇 개 쳐져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현장과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공터에 헬기가 부드럽게 착륙했다.
“헬기의 무게나 착륙 환경 때문에 현장까지는 도보로 이동해야 합니다.”
라숙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동물들을 이끌고 현장으로 도착했다.
현장에는 이미 기자들이 있던 건지, 나와 동물들을 발견하고 놀라더니 분주하게 사진을 찍고 노트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유명인으로 살며 조금 익숙해진 모습이었기에, 그들을 무시하고 라숙규와 함께 임시지휘본부라고 적힌 곳으로 다가갔다.
헬기에서 들었던 것보다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은 나는 곧바로 현장으로 이동했다.
“일단……. 내부에 산소가 부족할 수 있다고 하셨으니, 그 부분부터 해결하는 걸로 하죠.”
나는 청호의 등허리에 걸쳐둔 가방을 들어 올렸다.
“이곳은 어디오…….”
“너희들이 해줄 일이 있어. 이 아래로 쭉, 최대한 일자로 굴을 파 줘. 파다 보면 콘크리트가 나올 건데, 그 부분은 조심해서 파야 해. 아래로 공동이 있으니까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고.”
내 말에, 어딘지 모를 눈 위에 앞발을 착! 올린 두더지들이 일제히 땅을 파기 시작했다.
다섯 마리의 두더지들은 각자 몇 미터가량의 간격을 두고 순식간에 땅속으로 사라졌다. 남아 있는 것은 녀석들이 땅속으로 파고든 구멍이 전부였다.
아주 빠르게 땅을 파내는 녀석들답게, 구멍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니 새까만 어둠밖에 보이지 않았다.
사르륵, 사르륵. 구멍에서는 연신 구멍을 파내는 듯한 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조금 더 기다려봐야 알 것 같네요.”
어느새 다가온 라숙규가 관심 있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와 함께 잠시 조용히 기다리고 있으니, 구멍 안에서 사부작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한 마리의 두더지가 머리를 뿅 내밀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하오…….”
“다 팠으면 잠깐 쉬고 있어.”
밝은 걸 딱히 좋아하지 않는 두더지였기에, 녀석에게 묻은 흙을 털어내고 청호에게 묶인 가방에 넣어주었다.
“콩콩아, 누렁아!”
두더지를 가방에 넣은 나는 그대로 콩콩이와 누렁이를 불렀다.
“파이프는 준비됐나요?”
“예, 갖다 드릴까요?”
“부탁할게요.”
내 말에, 근처에 파이프가 수북하게 쌓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중 두 개를 가져와, 하나를 콩콩이에게 쥐여주었다.
“이거 떨어트리지 않게 잘 잡고 있어. 누렁아.”
콩콩이가 단단하게 잡고 있는 파이프 위에 또 다른 파이프를 올린 나는 누렁이를 불러, 파이프를 체결하기 시작했다.
파이프를 휘감고 올라간 녀석이 제 몸을 파라락, 움직이며 나사처럼 조이게 되어 있는 파이프를 체결한 것이었다. 약간 힘을 주어 봐도 더 돌지 않는 것으로 봐서, 튼튼하게 체결된 것 같았다.
“콩콩아, 조금 더 내려서……. 그렇지.”
그리고, 그 이후로 콩콩이가 파이프를 구멍으로 밀어 넣고, 나와 누렁이가 그것을 체결하는 것을 반복했다.
그것을 몇 번 반복하며 지하로 파이프를 밀어 넣고 있으니, 어느 순간 파이프의 끝이 단단한 것에 쓸리는 듯한 소리가 파이프를 타고 올라왔다.
“내시경 카메라 있어요?”
내가 하는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던 라숙규는 남들에게 시키는 시간도 아깝다는 듯, 자신이 직접 뛰어가 내시경 카메라를 가져왔다.
카메라에서 빛이 강하게 뿜어지는 내시경 카메라가 곧장 파이프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카메라와 연결된 화면에는 파이프 내부의 모습만 보였다. 하지만 밀어 넣고, 또 밀어 넣다 보니 화면이 바뀌었다.
“생존자다!”
내부로 들어간 카메라는 파이프 내부가 아닌, 지하에 터널 구조물로 인해 생긴 공동 내부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곳에는 9명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힘 없이 늘어져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러고 있다가 천장에서 내려오는 내시경 카메라의 불빛을 보며 살려달라며 소리치고 있었다.
“…………!”
그 소리가 파이프를 타고 약하게 들려올 정도였다.
“다행히 화면으로 보기에 크게 다치신 분은 없네요.”
“일단 다른 구멍도 다 파이프를 넣어놓죠. 지하까지 식수랑 식량을 보급해 줄 수 있는 깨끗한 호스 같은 것도 좀 부탁할게요.”
조금 전 보여주었던 방법 때문인지, 라숙규를 비롯한 소방관들이 이해했다는 듯 재빠르게 움직였다.
나는 그 사이 콩콩이, 누렁이와 함께 파이프를 조립해 지하로 밀어 넣었다. 이번에는 조금 더 힘을 주어 밀어 넣으니 파이프가 지하의 바닥까지 닿은 느낌이었다.
그런 파이프들에 기다란 호스를 넣어 식수를 공급해 주거나, 손가락 크기의 핑거푸드들을 떨어트려주었다.
그 외에도 통신을 위한 장치를 내려보낸다거나 산소를 공급하는 용도로 파이프를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