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
0001 솜주먹의 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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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나 회사 때려쳤어.”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무슨 일이라도 있어?”
커피를 홀짝이다가 내던진 나의 갑작스런 폭탄선언에, 내 여자친구인 하은 누나의 얼굴에 걱정이 한 가득이 표정이 그려졌다.
하지만 나는 그런 누나의 모습에 오히려 씩- 미소를 지어보였다.
“……수환아. 혹시 미친 건 아니지?”
“아니, 누나. 너무한 거 아냐? 남자친구한테 미쳤냐니.”
“네가 내 남자친구이기 이전에, 회사를 그만뒀다고 웃어대는 녀석이 멀쩡한 정신일 수가 없잖아?”
누나의 말에 순간 그렇긴 한데-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지금은 누나의 말에 동의해줄 수 없었다.
“아무튼. 무슨 일이길래 갑자기 회사를 그만뒀다고 하는 거야?”
“아, 뭐. 무슨 일이 있긴 하지.”
“큰 일은 아니지? 누가 괴롭혔니? 아니면 싸웠어?”
“아니 누나. 매번 말하는데 나는 애가 아니라니까…….”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대답이나 해. 무슨 일인데?”
어서 이야기 하라는 듯이 단호한 모습을 보이는 누나의 모습에, 나는 다시 씩-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사실 며칠 전에 초능력을 개화했거든.”
“……초능력? 너 이미 하나 있지 않았어?”
“있긴 하지. 별 쓸모가 없는 능력이지만. 물 온도 잘 맞추는 게 무슨 초능력이야.”
내 말에 누나가 걱정을 지우고서 웃음을 띄웠다.
누나도 내 초능력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능력을 가장 애용하는 사람이 누나였으니 모를 수가 없지만 말이다.
“쓸모가 없다니. 내가 씻을 때 얼마나 좋은 줄 알아? 딱 따듯한 물에 몸을 담그면 피로가 싹 녹아내리는 느낌이거든.”
나는 누나의 말에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뭐해. 내가 사람들 목욕물 온도 맞춰주러 다닐 것도 아닌데.”
“왜에. 사람들 수저 세팅해주는 사람도 있는 판에, 목욕물 온도 맞추러 다니는게 대수야?”
“끙……. 그 정도는 아니니까 그렇지. 누나도 내가 물 온도 안 맞춰 준다고 아쉬워하진 않잖아.”
내 말에 누나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피로가 녹니 뭐니 하긴 하지만, 드라마틱한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렇게 아쉽지는 않은 그 수준이었다.
“그래서, 무슨 초능력을 새로 개화한 거야? 회사까지 관둘 정도면 엄청 대단한 능력 같은데.”
“말 돌리기야?”
“나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초능력이나 알려줘.”
누나의 말에 피식 웃음을 지은 나는 주머니에서 반듯하게 접어둔 종이 한 장을 꺼내어 누나에게 전해주었다.
“초능력 검증 신청서네? 보자…….”
새로운 초능력을 개화했을 때, 그 수준 등을 판별하기 위한 검증 신청서를 받은 누나는 곧바로 신청서를 읽었다.
단순히 내 인적 사항등은 누나도 잘 아는 부분이니 패스하고, 곧바로 중반부에 있는 초능력의 종류를 기입하는 부근을 읽는 것이었다.
“애니멀 커뮤니케이팅? 이거, 설마 그거 아니지?”
“후후후. 왜 아니겠어?”
조금씩 경악이 보이기 시작하는 누나의 얼굴에, 나는 한껏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였다.
다름이 아니라, 애니멀 커뮤니케이팅이라는 초능력이 많지는 않지만 보유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능력을 보유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유명하고, 부유했다.
“진짜? 진짜로? 진짜야?”
“그래. 진짜라니까? 그것도 최상급일 걸? 며칠 전에 진짜 깜짝 놀랐다니까.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에 누가 불러서 봤더니, 웬 길고양이가 나를 부르는 거 있지?”
“길고양이가? 뭐라고해?”
평소 동물들을 좋아해, 뮤튜브 등으로 동물 관련 영상을 즐겨 찾아보는 누나는 호기심이 가득한 모습을 보였다.
“뒤지게 쳐맞기 싫으면 먹을 걸 내놓으라던데?”
“…….”
“아, 아니 진짜라고!”
짜게 식은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 누나의 시선에, 나는 다급히 항변할 수밖에 없었다.
괜히 이대로 버티다가는 아플 정도로 여기저기 꼬집히던가, 삐진 누나를 달래야 할 상황에 놓였다.
“그때 퇴근하면서 좀 출출해가지고, 소시지 하나 사서 까먹고 있었거든. 그거 보면서 내놓으라고 한 거야. 그리고 안 주니까 나한테 진짜 냥냥펀치를 갈겼다니까?”
“으음……. 믿기 힘든데…….”
“와, 억울해. 아, 그래! 아니면 누나 부모님 집에 가자. 솜주먹이랑도 대화가 될 수도 있잖아.”
“……그럴까?”
누나는 내 말에 흥미가 생겼다는 모습을 보였다.
솜주먹은 누나의 부모님께서 키우는 말티즈의 이름이었다. 처음 데려온 새끼 때 몸통 크기가 아버님의 주먹만한 솜뭉치 같다고 솜주먹이란 이름을 가진 녀석이었다.
어쨌거나, 내 말에 흥미가 생긴 누나는 반쯤 남아 있던 커피를 쪽- 빨아 단숨에 마시고서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가자!”
“오……. 박력 넘치는데.”
“시끄러워! 영지야! 나 잠깐 나갔다 올게!”
누나는 호기심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는지, 곧바로 내 손을 잡아 끌고 카페를 나섰다.
‘나 아직 다 안 마셨는데……. 내 커피…….’
나는 멀어지는 커피를 아련하게 바라보았다.
○ ◑ ● ◐ ○ ◑ ● ◐ ○
“아이구, 우리 신 서방 왔어? 그래, 오늘은 결혼 허락 받으러 온 겨? 나는 신 서방이면 허락할 거니께, 바깥양반 헌티 허락 받어.”
“아하하항…….”
올 때 마다 편하게 반겨주시는 어머님의 환대는 무척이나 감사하지만, 매번 하는 저 말씀은 도저히 적응이 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 엄마!”
“왜 이 년아! 너도 내일 모레면 서른이야 이것아! 너도 결혼해야 할 거 아녀!”
“아직 스물 아홉이거든! 그리고 명절도 아닌데 결혼 얘기는 그만해!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남자가 없는 것도 아니면서 뭘 자꾸 빼고 그려 이것아! 십 년 동안 사귀면서 할 거 다 했으면 식이나 올려! 애미 뒤지고 나서 손주 보여 줄겨?”
“아아아아!”
누나는 더 이상 어머님의 말을 듣지 않겠다는 듯이 소리치며 귀를 틀어막았다.
어머님의 한숨소리가 들려왔으나, 거기서 무슨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어느쪽 편을 들던간에 내게 좋은 결과는 없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내게는 말을 돌려야 할 필요가 있었다.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어머님. 솜주먹 있나요?”
“으잉? 우리 똥개는 와 찾는겨?”
“그게…….”
나는 어머님께 간단한 설명을 해드렸다.
동물과 대화할 수 있는 초능력을 개화하게 되었다고 말씀드리니, 어머님 역시 호기심이 가득한 모습을 보였다.
‘누나의 그 모습은 유전이었네.’
누나가 보인 모습과 완전 똑같은 그 모습에 살며시 웃은 나는 어서 오라며 앞장서시는 어머님을 따라 거실로 들어갔다.
타다다다닥!
“헥헥헥헥!”
현관을 지나, 거실로 들어가니 반기는 것은 미친듯이 달려와 꼬리를 흔들어대는 말티즈 한 마리였다.
“딸 년이나 개시키나 아무리 키워봐야 소용 없다더니…….”
“쟤는 왜 갑자기 저래? 수환이를 처음 보는 것도 아니고, 지금까진 무시했으면서.”
그것도, 내게 달려와 무릎 부근에 앞 발을 올린 채로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말티즈였다.
매일 보며 밥을 챙겨주는 어머님이나, 간간히 찾아와 놀아주는 누나가 아니라 내게 온 것이었다.
서운해 하시는 어머님과,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는 누나의 모습에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볼을 긁적였다.
누나의 말대로 솜주먹을 본 것이 처음은 아닌데,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진 개무시 해놓고, 이제와서 미친듯이 좋아하네?’
간식을 쥐고 흔드는 것이 아니라면 가까이 오지도 않던 놈이 가까이 와서 꼬리를 흔들어대는 모습은 꽤나 신기한 모습이었다.
“애니멀 커뮤니케이팅 초능력에 동물이 좋아하는 능력도 붙어 있던가? 솜주먹이 진짜 왜 저러지?”
“글쎄. 애니멀 커뮤니케이팅 능력을 가진 사람은 전 세계에서도 한 손에 꼽힐 정도니까.”
누나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솜주먹의 머리를 부드럽게 매만졌다.
강아지 특유의, 얇은 가죽 너머로 뼈가 만져지며 묘한 느낌이 들었다.
“더, 더 만져 줘! 좋아! 더!”
그리고, 솜주먹의 머리를 만지는 순간 솜주먹의 입에서 사람의 언어가 튀어나왔다.
아니, 사람의 언어라기 보다는 낑낑거리는 강아지의 울음소리가 내게 사람의 언어처럼 들려오는 것이었다.
평소라면 놀랄 일이었지만 며칠 전, 길고양이에게서 들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놀라지 않고 차분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그래, 그래. 더 만져줄게.”
좋아하는 솜주먹의 모습에, 나는 아주 바닥에 털썩 앉아 솜주먹의 온 몸을 부드럽게 매만졌다.
“뭐야, 뭐야? 솜주먹이 지금 더 만져달라고 한 거야?”
“응.”
“와아…….”
별 말 하지 않았음에도 누나는 제법 신기하다는 듯이 나와 솜주먹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나 어머님은 누나와 조금 다른 모습을 보였다.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것은 같았지만,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어머님? 뭐 따로 궁금하신 거라도 있으세요?”
“그……. 며칠 전에 솜주먹이가 갑자기 소파를 다 찢어놨단 말여. 와 그랬는지 한 번 물어봐 주겠는겨? 지금까지 안 그라던 아가 그라니까 신경 쓰여서 말이제.”
어머님의 말씀에 나는 반사적으로 거실의 한 켠에 있는 소파에 시선이 갔다.
“와.”
그리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소파의 우측 팔걸이 아랫부분이 말 그대로 너덜너덜했기 때문이다. 가죽이 이리저리 찢겨져 속에 있는 나무 같은 내부가 훤히 보이고 있었다.
“어휴, 저거만 보면 한숨이 터진다니께?”
“하, 하하……. 제가 한 번 물어볼게요.”
잔소리에 소리지르던 누나를 볼 때 보다도 더 크게 한숨을 푹 내쉬는 어머님의 모습에 어색한 웃음을 지은 나는 여전히 나를 보고 있는 솜주먹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얌마. 너 저거 왜 저랬어? 소파를 아주 걸레로 만들어 놓으면 어떡해.”
“주인님이 잘못 했다! 애교 부리면 간식 준다고 해놓고, 끝까지 안 줬다. 애교란 애교는 다 부렸는데 간식도 안 줬다!”
“…….”
솜주먹의 말에, 나는 살짝 어머님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솜주먹이 뭐라는겨?”
“그게 말이죠…….”
호기심이 가득한 어머님의 모습에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속여서 좋을 것도 없다는 생각에 사실을 털어 놓았다.
“오메! 그랬었네! 아이고, 우리 솜주먹이 한테 미안해서 우짤꼬!”
“엄마, 왜 그랬어? 요즘 건망증 생겼어?”
“이 년아, 넌 애미를 보는 눈빛이 그게 뭐여! 치매 환자로 의심허냐! 간식 챙겨주려다가 느그 이모헌티 전화와서 그랬다 와!”
솜주먹에게 미안하다며 머리를 쓰다듬던 어머님은 누나의 눈빛을 보고서 잔소리 폭격을 시작하셨다.
어릴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로 시작하여, 키워봐야 소용 없다는 것으로 끝나는 잔소리 폭격은 옆에서 듣는 것만으로도 누나의 고통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잔소리 폭격에 얻어 맞는 누나에게서 슬그머니 시선을 돌리며, 참지 않는 말티즈 주제에 잘 참고 있는 솜주먹에게로 시선을 고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