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03
0202 진화의 섬(3)
“확실히, 여기저기 바뀌어 있긴 하네.”
사슴 녀석을 타고 섬을 둘러보니, 마지막으로 왔을 때에 비해서 섬의 곳곳에 변화가 생겨 있었다.
커다란 나무 몇 그루가 간당간당하게 붙어 있는 자그마한 절벽이 있었는데, 그 절벽은 어느덧 나무의 뿌리와 넝쿨 등으로 인해 절벽의 단면이 조금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과거에 한 번 산불이 작게 나서 텅텅 비어 있던 황무지 같던 곳에는 꽃과 풀들이 그득하게 자라나 있는 상태였다.
그 뒤로, 가지와 잎이 넓게 퍼지며 그늘이 다른 곳 보다 짙게 깔리는 곳에는 큼지막한 버섯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버섯에 대해 잘 모르긴 하지만, 간간이 고기를 구워 먹을 때 먹던 버섯들도 자라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버섯, 먹어도 되는 버섯이야?”
“네! 이거 엄청 맛있어요! 제가 지금 먹어도 될까요?”
등에 올라탄 내게로 힘겹게 고개를 낑낑거리며 돌린 사슴이 버섯을 향한 탐욕을 내비쳤다.
안 된다고 하면 서글퍼할 것 같은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순식간에 고개를 숙인 녀석이 은수의 주먹보다 크게 자라난 버섯을 한 입에 씹어삼켰다.
“으으으으음! 맛있네요!”
버섯을 삼킨 녀석은 그것이 무척 맛있다는 듯, 엉덩이를 씰룩였다. 녀석이 엉덩이를 흔드는 느낌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자, 이제 진정하고 다시 가자. 이제 선착장 반대편 해변으로 가.”
엉덩이를 흔드는 녀석을 제지한 나는, 녀석을 진정시키며 다시 이동했다.
이번에 향한 곳은 선착장이 있는 곳이 아니라, 섬의 반대편에 위치한 갯벌이 넓게 펼쳐지는 곳으로 향한 것이었다.
섬 전체를 한 번 둘러보는 사이 바닷물이 천천히 빠지며 멀리서 갯벌이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슴 녀석이 버섯을 먹고 더 힘을 내는 건지 빠르게 이동하여, 금세 갯벌의 바로 앞으로 도착할 수 있었다.
넓게, 수평선이 아니라 갯벌의 지평선이 보이는 듯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감탄이 터져 나왔다.
“와……. 진짜 여기만 오면, 왜 갯벌이 자연의 보고라고 하는 건지 알 수 있다니까.”
수많은 생명들이 드넓은 갯벌에 어마어마하게 펼쳐진 것은 감탄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사슴 녀석을 데리고 가려 했지만, 데리고 가봐야 갯벌에 푹푹 빠져서 빼낸다고 고생할 것이 뻔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의 등에서 내리며 기다리라고 말하고서 갯벌로 향했다.
평소라면 파도의 소리와 파도가 부딪히며 생기는 포말이 가득했을 해안가는 갯벌과 그 위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이 가득했다.
갯벌로 다가가니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자그마한 게였다. 수많은 게들이 갯벌을 가득 채운 채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끼요오오옷!”
그리고, 그런 수많은 게들 중 한 마리가 빠르게 날아든 갈매기에게 잡아먹혔다. 뒤이어 다른 몇몇 갈매기들이 날아와 다른 게들을 잡아먹었다.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갯벌을 가득 채우던 게들이 빠르게 흩어졌다.
“뭐……. 이것도 자연의 섭리라고 할 수 있겠지.”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조금 좋지 못한 광경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엄연히 자연의 섭리 그 자체였다.
게들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에 갈매기들이 아쉬워하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신발과 양말을 벗고 갯벌로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푸욱, 발이 갯벌 속으로 빠졌다. 하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고, 갯벌의 생물들이 개발해낸 갯벌은 보드랍기 그지없었다.
덕분에 움직이긴 힘들었지만 말이다.
“오, 짱뚱어네?”
끙끙거리며 몇 걸음을 걷다 보니, 갯벌 밖에서는 보지 못했던 동물들이 속속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게 물고기가 맞나 싶을 정도로 바닥을 짚고 다니는 짱뚱어를 비롯해, 미처 숨지 못한 조개, 바닷물에 쓸려나가지 못한 불가사리, 게처럼 보였지만 알고 보니 새우인 녀석, 쪼그라들고 있는 말미잘 등등. 여러 동물들이 보이고 있었다.
“확실히, 내 초능력의 범위가 넓다 보니 여기까지 효과가 닿긴 하나 보네.”
그리고, 그런 갯벌에 있는 생물들은 하나같이 그 크기가 커다랬다.
생긴 것이나, 갯벌에 사는 걸로 보아서는 낙지가 확실한데 그 크기는 어지간한 문어보다도 거대한 낙지가 있는 것이었다.
어지간한 동물들을 다 만질 수 있는 나라도, 그 낙지만큼은 만지기가 꺼려질 정도로 거대했다.
단순히 그 낙지 하나만 거대했다면 내 초능력 영향이 아니라, 그 녀석이 특별한 녀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주변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면 내 초능력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됐다.
보통 은수의 손가락 몇 개 만한 크기여야 하는 자그마한 게들이 소은이의 주먹만 한 녀석들도 있었고, 어느새 길쭉하게 솟아 있는 수십의 맛조개들은 그 길이가 꽤나 길었다.
“여기는 조난돼도 먹을 거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썰물 때만 맞춰 나오면 배부르게 먹을만한 식재료들을 먹을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심지어, 내가 섬 곳곳에 과일나무의 묘목이나 여러 작물들을 심어 놓은 상태였으니 더더욱 걱정할 것이 없었다.
“어우, 더 깊게 빠지기 전에 나가야지.”
하지만 마냥 주변의 동물들을 구경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어느새 정강이의 절반이 갯벌의 아래로 빠져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있는 힘껏 발을 빼내며 갯벌 밖으로 빠져나온 나는, 근처에 고여 있는 바닷물로 적당히 다리와 발을 씻어내고서 사슴을 타고 별장으로 돌아왔다.
“저는 가볼게요!”
별장까지 나를 태워준 사슴 녀석은 내게 코를 들이밀며 인사를 하더니, 그대로 호다닥 달려나갔다. 어째, 녀석이 달려가는 곳이 조금 전에 버섯을 발견했던 그곳 같았다.
하지만 씨를 말릴 정도로 먹을 녀석이 아님을 알기에, 녀석을 제지하지 않고 별장 내부로 들어왔다.
바닷물로 씻어내어 조금 찝찝하던 다리를 욕실에서 씻고 나오니, 마침 전화가 걸려왔다. 누나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는데, 평범한 음성통화가 아니라 영상통화였다.
영상 통화를 수락하니 휴대폰 화면에 곧바로 누나의 얼굴이 보였다.
“잘 도착했어? 이쯤이면 도착했을 거 같아서 지금 전화했는데.”
“응. 도착했지. 한 바퀴 돌면서 확인도 좀 하고.”
“다행이네.”
나와 누나는 잠시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 때문인지, 평소보다 더 수다스럽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소은이가 유치원에 다녀와서 아빠가 놀러 갔다며 따라가겠다고 방방 뛰었다는 이야기나, 은수가 밥을 먹으면서 파닥이다가 그릇을 엎을 뻔했다는 등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가 많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던 도중, 누나의 몸이 좌우로 크게 흔들렸다. 아니, 정확히는 누나가 쥐고 있던 휴대폰이 흔들린 것이었다.
“알았어. 수환아, 소은이 바꿔줄게.”
그 이유는 바로 소은이가 자기도 나를 보고 싶다며 누나를 흔들어댔기 때문이다.
누나는 휴대폰을 돌려, 소은이가 화면에 보이도록 만들었다.
“압빠아아아!”
“소은아!”
“나두 데려가아아아아!”
“아하하하.”
휴대폰 화면 가득하게 보이는 소은이의 얼굴에 피식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내가 몇몇 동물들을 섬에서 키우고 싶다고 했기 때문에 섬에 와보고 싶어 하던 소은이었는데, 유치원에 간 사이 말도 없이 여기에 와버렸으니 소은이가 무척 아쉬워하고 있었다.
“소은이는 다음에 같이 오자. 아빠가 혼자서 해야 할 게 있거든. 할 일만 다 하면 소은이 데리고 와서 마음껏 놀게 해줄 거야.”
“꼭이야! 꼭! 약속! 다음엔 나두!”
휴대폰 화면에 새끼손가락을 들이미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 약속.”
휴대폰 카메라를 향해 손가락을 내미니, 소은이가 해맑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이내 누나가 휴대폰을 다른 방향으로 돌렸는지, 소은이의 얼굴 대신 은수의 얼굴이 화면에 보였다.
“아부아! 아브? 부부붑!”
소은이가 선물로 주었던, 자그마한 나무 인형을 품에 안은 은수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파닥파닥 움직였다.
귀여운 아들의 모습에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은수야, 오늘 엄마 말 잘 듣고, 밥도 잘 먹고 있어야 해. 아빠 내일 갈 거야.”
“으부! 아우으.”
은수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팔을 붕붕 흔들었다. 손에 쥐어진 나무 인형이 크게 흔들렸다.
그 모습에 웃고 있으니, 잠시 후 화면에 보이던 은수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다시금 누나가 차지했다.
“나 조금 있다가 나가야 할 것 같아서, 준비해야 할 거 같아. 영지랑 쇼핑 가기로 했거든. 애들은 엄마랑 어머님이 맡아 주신댔어.”
“그래, 오늘 편하게 놀고, 내일 봐.”
“응. 너도 편하게 쉬어. 초능력 확인도 좋지만 위험한 행동은 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고 편하게 놀아. 그리고, 거기 뒤에 영지 손 흔드는 거 잘 보이니까 그만 흔들어도 된다고 전해줄래?”
내 말에 누나가 뒤를 돌아보았다. 휴대폰 카메라에 보이도록 손을 흔드는 영지를 발견한 누나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튼, 편하게 쉬어. 이만 끊을게?”
“응. 내일 봐.”
시끌벅적했던 누나와의 전화가 끊기니 잠깐 적막함이 내려앉았다.
약간의 아쉬움이 몰려왔지만, 나는 이내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초능력이 섬 전체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 정도는 확인했으니, 이제는 그 한계를 확인할 차례였다.
초능력자들은 초능력을 본능적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그 사용에 있어 의지를 섞으며 약간의 차이를 둘 수 있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나 초능력 있는 힘껏 쓸 거야!’하는 느낌으로 초능력을 사용하고자 한다면 초능력의 최대치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아이들의 목욕이나 분유를 탈 때 물 온도 조절 능력을 이렇게 사용해왔다. 예를 들자면, 은수의 목욕에 알맞은 온도를 맞추고 싶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면서 온도 조절 레버를 돌려댄 것이었다.
하지만 드루이드 초능력의 경우에는 크게 의식해서 쓰기보다는, 반쯤 본능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딱히 초능력의 한계를 보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본능적으로 사용하던 드루이드 초능력을 의식해가며 섬 전체에 영향을 끼칠 생각이었다.
“…….”
나는 거실 바닥에 편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 머릿속을 비우며 단 한 가지 생각만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섬에 있는 동식물들이 더 건강해지고, 더 커지고, 더 강해져라.’
가슴께가 간질거리는 듯한 느낌이 들며, 창문 밖으로 보이는 나무들이 바람에 거칠게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