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07
0206 조각상
“수환아, 동물원에서 행위예술 같은 걸 해도 되냐고 문의 메일이 좀 오는데?”
“행위예술?”
은수목이 더더욱 커짐에 따라, 그 주변 일대를 정리하고 있던 나는 갑자기 찾아와 행위예술이라는 말을 하는 누나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동물원에서 행위예술을 할만한 게 있던가 싶었다.
“그거, 좀 그런 거 아닌가? 예전에 왜, 환경보호를 위한 행위예술이고 퍼포먼스라면서 망나니짓하는 놈들 있었잖아. 동물보호랍시고 와서 헛짓거리 하는 거 아냐?”
“그런 거는 아닌 것 같아. 자기들이 하는 걸 찍어둔 게 있다면서 보내줬는데, 이런 거더라.”
누나는 내 말에 고개를 내저으며 휴대폰을 내밀었다.
그 휴대폰에는 하나의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는데, 꽤나 시선을 잡아끌고 있었다.
“동상? 아, 사람이구나.”
영상에는 동상이 하나 나왔는데, 그게 금세 움직였다. 정확히는 동상인 척, 분장까지 하고 있는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란 듯이 퍼덕이는 모습도 보였고, 이내 웃음을 터트리며 신기해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었다.
“그걸 여기서 하고 싶다고 하는 거야?”
“응. 정확히는 사람들의 반응도 반응이지만, 자기들의 분장 실력이 동물들에게도 통하는지 보고 싶다네. 어떻게 할래?”
누나의 말에, 나는 누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누나, 솔직히 누나가 직접 보고 싶은 거지?”
“헤헤…….”
내 말에 누나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이렇게 직접 찾아와서, 영상까지 보여주는 이유는 누나가 직접 보고 싶어서 그런다는 것이 여실히 느껴지고 있었다.
“뭐, 안 될 거 없지. 대신 관람객들한테 피해 주지 않는 선에서, 문제가 생기면 본인이 전적으로 책임지는 걸로 한다면 허락해 준다고 해.”
“알았어!”
신기한 것을 직접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때문인지, 누나가 조금 상기된 얼굴로 호다닥 뛰어갔다.
나는 피식 웃으면서, 진화의 섬에서 가져온 넝쿨 일부를 은수목에 척척 걸치기 시작했다.
섬에서 나올 때 은수가 넝쿨을 어찌나 애절하게 바라보는지, 내가 다 마음이 아플 정도였다. 그러니 이렇게라도 만들어주는 수밖에.
은수목 주변으로 넝쿨을 고정하고, 적당한 가지에 걸쳐놓으니 나름대로 장식도 되고 좋은 것 같았다.
며칠이 지나니, 넝쿨이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으며 은수목을 휘감으며 은수가 좋아하는 것을 만들어냈다. 바로, 넝쿨이 엮이며 넓게 펼쳐지는 해먹 같은 것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뺘우!”
넝쿨로 만들어진 해먹에 몸을 파묻은 은수가 팔다리를 파닥이면서 만족감을 나타내고 있었다.
섬에서 보인 것처럼 무척 좋아하는 모습에, 넝쿨을 가져오길 잘했다고 느꼈다.
은수를 넝쿨 해먹에 눕혀놓고, 살랑살랑 흔들어주고 있으니 누나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수환아.”
“어마!”
“은수도 잘 놀고 있니?”
내게 다가온 누나는 해먹 안에서 손을 파다닥 움직이는 은수를 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내가 해먹 위에서 폴짝폴짝 뛰어도 멀쩡한 것을 보여준 뒤로는 해먹의 안전성에 관한 걱정은 하지 않고 있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해먹에 누워 있는 은수와 손을 맞잡던 누나는 이내 내게 다가왔다.
“저번에 말했던 사람들 있잖아. 행위예술 한다는.”
“어, 기억나. 그 사람들이 온다고 해?”
“응. 내일 도착할 거라고 하더라.”
사뭇 기대된다는 듯한 모습으로 이야기하는 누나였다.
“은수야, 내일 엄마랑 신기한 사람들 구경하자~ 은수도 엄청 신기할 거야.”
심지어 은수를 붙잡고 그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었으니,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 ◑ ● ◐ ○ ◑ ● ◐ ○
“반갑습니다! 저희는 하나같이 조각상처럼 생긴, 팀 조각상입니다!”
행위예술을 하고자 하니 허락해달라고 요청한 이들은 도착하자마자 우리 부부에게 인사를 했다.
마치 자신들이 잘 생겼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릴 법한 인사였지만, 그들의 말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정말 그들이 조각상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조각상같이 날카로운 턱 선을 자랑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그게 미적인 의미로 잘생겼다는 것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조각상’처럼 생겼다는 말이다.
특수 분장으로 인한 잿빛의 피부색과 굵직굵직한 선이, 그들을 살아있는 조각상처럼 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흐아아아앙!”
어찌나 조각상 같았는지, 조각상이 살아 움직인다고 착각한 은수가 우렁차게 울음을 터트릴 정도였다.
“미, 미안해! 우리가 무섭게 생겨서 미안해! 으아아, 우, 울지 말아 줘!”
다만 은수가 울고 있으니, 팀 조각상의 팀원들이 어디서 가져온 건지 모를 탬버린 같은 것들을 짤랑짤랑 흔들어대며 은수를 달랬다.
“으우우…….”
탬버린이 짤랑거리는 것이 꽤나 마음에 들었던 건지, 은수는 금세 울음을 그치고서 조각상들이 흔들어대는 탬버린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그런 은수처럼, 은수를 안고 있는 누나 역시 신기함을 가득 담아 팀 조각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침 흘리겠다.”
“야아…….”
엄청 신기하게 바라보는 그 모습에 살짝 지적하니, 누나가 부끄럽다는 듯이 내 팔뚝을 탁 때렸다.
나는 피식 웃으며, 팀 조각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분장 하나는 정말 확실하네요. 조금 전엔 진짜 조각상인 줄 알았어요.”
실제로, 팀 조각상들은 승합차를 타고 왔는데, 다른 이들이 그들을 짐짝처럼 들어서 내리던 모습을 보고 진짜 조각상인 줄 알았었다.
“그게 바로 저희 팀 조각상이 유명한 이유죠. 심지어, 조각상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옷 역시 단단한 재질의 옷을 입습니다. 바람에 펄럭이면 조각상이 아니잖습니까?”
팀 조각상의 리더는 내 말에 자부심 넘치게 대답했다.
그런 리더의 말에 그들의 옷을 자세히 바라보니, 정말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옴에도 전혀 움직이질 않고 있었다. 몸을 조금씩 움직이고 있음에도 주름이 변하지 않는 걸 보면 정말 단단한 재질인 것 같았다.
“그건 그렇네요. 아무튼, 잘 오셨어요. 모처럼 오신 만큼, 원하시는 수준의 결과물을 얻으시고, 관람객분들도 즐거운 경험을 하실 수 있게 부탁드릴게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늘 이곳을 찾은 관람객분들께 잊지 못할 추억을 드릴 거니까요!”
자신만만하게 외친 팀 조각상은 촬영할 카메라맨과 분장을 수시로 고쳐줄 분장팀 등등, 모든 인원들이 동물원으로 우르르 몰려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은 곧장 동물원 곳곳으로 퍼져나가, 자리를 잡았다.
당연하지만 모처럼 생긴 구경거리에 누나와 함께 데이트하듯, 가볍게 팔짱을 끼고 그런 조각상들을 따라다니기로 한 상태였다.
은수는 조각상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는 소은이에게 맡긴 덕분에 잠깐 정도는 오붓하게 데이트를 할 수 있었다.
“와, 저 자세로 버틴다는 거야?”
팀 조각상을 따라다니기로 한 우리는 곧장 놀란 모습을 보였다.
마치 걷던 자세 그대로 시간이 멈춘 듯, 한 팀원이 몸을 굳혔기 때문이다. 단순히 걷는다는 자세 자체는 힘들지 않지만, 걷는 도중에 멈춘 듯한 그 자세는 딱 봐도 힘겨워 보였다.
“저러면 정강이 쪽이 엄청 당길 텐데…….”
“그러니까. 근데, 진짜 조각상 같기는 해.”
“나중에 사진 한 번 찍어달라고 하자.”
“주변에 아직 사람 없으니까 지금 찍어달라고 하면 되지.”
나와 누나는 곧바로 자세를 멈춘 조각상 팀원에게 다가가, 셀카를 찍기 위해 포즈를 취했다.
“꺄악! 아하하하!”
그리고, 곧바로 누나는 화들짝 놀라며 움찔거렸다. 사진을 찍기 위해 휴대폰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뒤에 있던 조각상 팀원이 갑자기 움직였기 때문이다.
분명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화들짝 놀란 것이 부끄러우면서도 웃긴지, 누나는 한참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도 다른 관광객들이 많이 몰리기 전에, 멀쩡하게 사진 몇 번을 찍을 수 있었다. 조각상처럼 서있는 모습, 움직이는 모습, 함께 포즈를 취하는 모습 등등. 덕분에 꽤나 만족할 수 있었다.
만족스러운 셀카를 확보한 우리는, 다시금 팔짱을 끼고 동물원 곳곳을 돌아다녔다. 벌써 관람객들이 들어와서, 팀 조각상들과 마주치며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꺄아아악!”
“와오씨! 사, 사람이야?”
“나 저 사람들 뮤튜브에서 봤어!”
“으오아라아아아악?!”
무척 놀라는 사람들도 있고,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도 어떻게든 셀카를 찍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 변화가 있었다.
바로, 동물들을 풀어놓는 동물원답게, 동물들이 팀 조각상의 팀원들에게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건 못 보던 거샤!”
“인간 아니샤?”
“안 움직이는 거샤! 그럼 인간이 아닌 거샤!”
“그냥 안 움직이는 거 아니샤?”
토끼즈는 조각상들을 바라보며 인간인지 아닌지, 진지하게 토론하고 있었다.
“와따, 임마 이거 맘에 드네!”
“행님아. 그거 장식품 아이가?”
“몰라. 일단 느라.”
포동이들은 인간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또 다른 팀원의 몸을 타고 올라가 주머니에 굿즈 교환권을 쑤셔 넣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해당 팀원이 웃음을 참는다고 부들대는 것이 보였다.
나와 누나는 그 모습을 보며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팀 조각상과 동물들의 만남은 이제 시작이었다.
“아아악! 따가워!”
“후끼약! 이, 인간? 스크래쳐 아니었어?”
단단한 옷가지를 스크래쳐라고 착각한 치킨이가, 날카로운 발톱에 긁혀 통증을 호소하는 팀원의 반응에 화들짝 놀라 도망갔다.
“큰 돌……! 건축 재료!”
“놔, 놔. 끌지 마.”
“재료가…… 아니었어?”
단단한 돌조각상처럼 분장을 하고 있던 한 팀원은, 건축 재료를 탐내는 비버에게 끌려갈 뻔했다.
“악! 따가워!”
“마, 맞을꼬야?!”
하늘다람쥐인 하늘이가, 실제 조각상인 줄 알고 팀원의 옷깃 사이로 도토리를 찔러 넣었다.
뾰족한 끝부분이 살갗을 찌르며 팀원이 화들짝 놀란 모습이 보였다. 끝이 조금 뾰족하다 보니, 약간 통증이 있는 듯이 찔린 부위를 문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의지의 하늘이는 그런 모습에도 포기하지 않고, 기어코 팀원의 옷 사이로 도토리를 찔러 넣고 도망가는 것에 성공했다.
“아오, 따갑잖아. 뭐야, 도토리? 어우…….”
옷깃을 털어내니 도토리가 나오는 것에, 팀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기에, 다시금 자세를 잡고 조각상인 척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악! 따갑다고!”
“맞을꼬야?!”
“도토리 좀 그만 찔러!”
그리고, 잠시 후에 또 찾아온 하늘이에 의해, 도토리에 다시 찔리게 되었다.
우리는 그 모습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푸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근처에 있던 또 다른 한 팀원에게서 애처로운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슬르즈스으…….”
“……누렁아, 이리 온.”
조각상처럼 위장한 팀원이 마음에 들었는지, 어느덧 초대형 뱀이 되어 있는 누렁이가 팀원의 몸을 휘감고 있었다.
거대 뱀은 꽤 무서웠는지, 벌벌 떠는 그 팀원을 누렁이에게서 구출해 주었다.
아쉬워하는 누렁이를 달래준 나는 다시금 누나와 동물원을 돌았다.
그리고, 팀 조각상의 팀원들 중에서 가장 조각상 같던 리더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오, 높이 딱 좋고! 위치 딱 좋고! 일조량 딱 좋고!”
“응? 너 여기에 둥지 지을 거야?”
“딱이지 않아? 인간들이 좀 많이 지나다니긴 하는데, 오히려 인간들은 먹을 걸 많이 주잖아.”
“오……. 그러네? 그럼 난 여기 지을래!”
리더는 어찌나 움직임을 최소화했는지, 몇몇 까치들이 그의 머리와 어깨 위에 둥지를 틀 정도였다.
어디서 계속 나뭇가지를 물어와, 평평한 모자 위에 둥지를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그 탓에 리더는 더더욱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깨와 머리 위에 남의 집이 지어지고 있는 와중에도 그저 곤란해 할 뿐이었다.
하지만 정작 움직이지 못하는 당사자는 무척 마음에 드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동물들이 자신을 정말 조각상으로 착각하는 듯한 그 상황이 좋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진짜 조각상이나 몇 개 들일까? 동물들이 제법 좋아하는데.”
“그러자.”
나와 누나는 조각상을 들일 생각을 하며, 팀 조각상들의 활약에 감탄하며 그들이 하는 것들을 감상했다.
물론, 나와 누나가 감탄하는 것처럼 여러 사람들도 감탄하고 있었다. 예민한 동물들의 감각마저 속이고 조각상인 척을 해내는 팀 조각상의 실력에 감탄하는 것이었다.
덕분에 하루 동안 동물원에서 온갖 동물들과 부대끼며 행위예술을 이어간 그들은, 그대로 유명해지게 되었다.
둥지 인간, 건축재료, 도토리 모판 같은 별명을 얻기는 했지만 그와 동시에 어마어마한 인지도 역시 얻게 된 것이었다.
“정말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여러 동물들과 교류도 할 수 있었고, 저희의 실력이 동물들에게도 충분히 통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니까요.”
“저희도 좋았어요. 관람객분들도 충분히 만족하시는 것 같았고요. 여러분들이라면 앞으로 얼마든지 찾아오셔도 됩니다.”
나는 오늘 하루 고생해 준 팀 조각상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그들과 작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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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조각상들이 떠나고 며칠이 지났을 때, 여전히 일정한 주기마다 찾아와 동물들과의 훈련을 하고 있는 원정국이 색다른 훈련을 시작했다.
“……저 요원들이 뭘 하는 거죠?”
“잠입 쪽으로 특화하여 교육하려는 요원들입니다. 얼마 전에 팀 조각상이던가요? 그들이 하는 걸 봤습니다. 동물들도 착각할 정도라니, 대단하더군요. 그들을 보면서 든 생각입니다만, 분장 없이 동물들의 예민한 감각마저 속일 수 있다면 어디든지 잠입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 예…….”
하필이면 동물들의 화장실 근처에 숨었다가 영역 표시를 당하고 있는 한 요원을 바라보며,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