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11
0210 유부남들의 여행(4)
여행의 첫날밤이 고기와 술에 찌든 상태로 지나고, 그다음 날.
숙소에는 때아닌 좀비가 출몰하고 있었다.
“그어어어…….”
“무우우우울…….”
“머리이…….”
나를 제외한 세 마리 좀비는 거실에서 흐느적거리며 움찔거렸다. 저녁으로 워낙 많은 양의 식사는 물론, 술까지 마셔댔기 때문이다.
적당히 조절하기도 하고, 신체가 좋아지는 만큼 주량도 강해진 나만이 멀쩡하게 서있을 수 있었다.
눈을 뜨니 거실에서 좀비가 기어 다니길래 세상이 망한 줄 착각했을 정도였다.
어쨌거나, 그렇게 거실에 출몰한 좀비들이 정신을 차릴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라면까지 먹고 속을 풀고 나니, 정신을 차리는 것이었다.
“벌써 점심시간이 지났네. 한 게 뭐 있다고?”
“뭘 물어? 숙취에 쩔은 좀비놀이했잖아.”
할 말이 없는지, 세 녀석이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아무튼. 오늘은 뭐 할 건데?”
“시간이 조금 애매하긴 하네. 어디 나가기도 그렇고, 안 하기도 그렇고.”
모처럼 놀러 와서 숙소에만 틀어박혀 있는 것도 어울리지 않았으니, 우리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꽤 좋은 숙소를 임대해두었기 때문에 자리하고 있는 당구대에서 게임 한 판을 즐기며 고민을 하고 있었다.
딱, 따악! 흰 공이 두 개의 붉은 공을 연달아 치는 것이 전부임에도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개뽀록 진짜 에바야.”
“응, 뽀록은 니 실력이 뽀록난 거고요.”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반장을 도발해 주며, 다시금 공을 치기 위해 각을 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반장이 입을 열었다.
“그냥 낚시나 갈래? 저녁에 잡은 걸로 회랑 매운탕 해서 해장술 하자.”
“오……. 회랑 매운탕은 누가 하고?”
“내가 하지 뭐. 너희도 알잖아, 내가 낚시 좋아하는 거. 겸사겸사 회 뜨는 거랑 매운탕 하는 것 정도는 배웠다고.”
회를 뜨는 것과 매운탕을 끓이는 것이 가능하다는 반장의 말에, 우리는 반장을 새롭게 바라보았다.
“너도 할 줄 아는 게 있구나?”
“……나를 뭘로 보는 거야.”
“영원한 반장?”
“호구?”
“고소공포증 환자?”
“너희를 믿은 내가 머저리지.”
잠깐의 만담이 있었지만, 우리는 화기애애하게 낚시를 준비했다. 마침 근처에 낚싯대를 비롯한 낚시 용품을 빌려주는 곳이 있었다.
치던 당구를 고스란히 놔두고서, 곧바로 낚시용품점으로 갔다.
그곳에서 용품을 빌린 우리는 물고기가 잘 잡힌다는 근처 강으로 가, 낚싯대를 펼쳐 낚시를 시작했다.
날카로운 바늘에 미끼를 달고 휙 던지니 먼 거리까지 잘 날아갔다.
낚싯대를 가볍게 흔들기도 하고, 톡톡 치기도 하며 물고기를 낚기 위해 온 신경을 손에 집중했다.
하지만 그 흔한 입질 한 번 오지 않았다.
오직 내게만.
“조아쓰! 큰 놈 하나!”
낚시를 좋아한다는 것이 거짓말은 아닌지, 낚시를 시작하자마자 반장이 꽤 큼지막한 물고기 하나를 낚았다.
식탁에서 흔히 보는 그런 물고기 보다 더 큰 크기를 자랑하는 물고기였다.
“봤냐? 봤냐고!”
커다란 물고기를 잡았다는 것에 기뻐하는 반장이 물고기를 들고 방방 뛰어댔다.
그 모습에 오기가 생긴 우리는 다시금 채비를 하며 낚싯대를 휘둘렀다.
그리고, 반장의 뒤를 이어 물고기를 낚은 것은 성휘였다. 반장만큼 커다란 물고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싱싱함을 증명하듯 열심히 파닥거리는 물고기였다.
벌써 두 녀석이 물고기를 낚아올렸다는 것에, 나와 치광이가 조금 조급해졌다.
“예에쓰으으으!”
나와 치광이 두 명이 조급하게 낚싯대를 드리웠으나, 먼저 결과를 만들어낸 것은 치광이였다.
손바닥만 한 물고기였지만, 그래도 잡긴 잡았다며 방방 뛰는 치광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배가 아파오는 것 같았다.
누군 아직 입질조차 한 번 없었는데!
지금이라도 빨리 입질이 오길 바라며 찌를 바라보았지만, 오라는 입질은 오지 않고 친구 놈들의 조롱이 먼저 왔다.
“이야~ 드루이드가 낚시는 좀 약한가 봐?”
“볼링이랑 당구 좀 치는 게 대수냐? 그거 잘 한다고 배불러? 낚시는 배부르게 해줄 수도 있는데 말이야.”
“뭐? 아직도 못 낚은 놈이 있다고?”
내가 한 마리도 낚지 못했다는 것에, 친구들이 나를 놀려댔다. 지금까지 나를 놀릴만한 것이 전혀 없고, 오히려 놀려지기만 했었으니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놀려대는 것이었다.
낚시를 잘 하는 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친구 놈들에게 놀려지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쥐고 있던 낚싯대를 대충 걷고서, 근처에서 멍하니 있던 독수리를 불러들였다.
“제일 큰 놈으로 하나 좀 잡아와라! 부탁한다!”
그리고, 그대로 녀석이 날아오르도록 집어던졌다.
내 힘으로 인해 허공에 던져지자, 독수리가 퍼드득- 날개를 강하게 펄럭이며 날아올랐다. 녀석은 강 위에서 잠깐 날아다니다가, 수면을 향해 빠르게 하강했다.
내리꽂히듯 하강한 녀석은 수면 근처에서 급격히 자세를 바꾸어 발을 내뻗으며, 무언가를 잡아챘다.
“아니, 이건 반칙이지!”
“어쩌겠냐, 이게 내 능력인데.”
독수리가 무언가를 잡아채며 다시금 날아오르자, 녀석이 무엇을 잡았는지 훤히 보였다. 그것을 보며 친구들이 방방 뛰며 억울해 했다.
나는 친구들의 모습엔 신경도 쓰지 않고서 독수리가 잡아다가 내 앞에 내려놓은, 팔뚝과 비교할 필요도 없이 더 커다란 물고기를 바라보며 흡족하게 웃었다. 이 정도라면 반장이 잡은 것보다 더 커다란 물고기였다.
“와, 이걸 이렇게 진다고?”
독수리가 잡아온 물고기에, 자신이 잡아온 물고기를 가져다 비교하는 반장이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승부야 어찌 되었든, 결과적으로 물고기를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낚시를 끝냈다.
그리고, 그 낚시에서 잡아낸 물고기로 만들어낸 회와 매운탕은…….
“그럭저럭 먹을만하네.”
“난 우리 와이프가 해준 게 더 맛있는 듯?”
“나도.”
그럭저럭 먹을만했다.
“그럼 너희 와이프한테 해달라고 해!”
“여기 없잖아. 있으면 해달라고 했지.”
“맞아.”
“이이이이익!”
맞는 말이라 어떻게 할 방법이 없기 때문인지, 분노에 부들부들 떠는 반장을 놀리며 즐겁게 둘째 날을 마무리했다.
그 이후 이어진 셋째 날이나 집으로 돌아가는 넷째 날은 특별한 일정 없이, 주변 관광지를 돌아다니거나 즉석에서 하고 싶은 것들을 하는 등의 평범한 여행 일정을 보냈다.
특별한 것이 있다면, 원반던지기를 했다는 것 정도가 있을 것 같았다. 근처에 있는 넓은 공원에서 구박이와 독수리에게 원반을 던지고 잡아오게 시키는 등, 간단하게 산책을 하는 정도였다.
아무리 강하고, 빠르게 던져도 그 이상으로 빠른 속도로 움직여 원반을 캐치하는 독수리 덕에 꽤나 즐겁게 던져댈 수 있었다. 구박이 녀석도 독수리처럼 빠르게 잡는 것은 아니더라도, 폴짝폴짝 뛰어오르는 것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렇게 충분히 만족스러운 시간들을 보낸 우리는 다시금 부산으로 돌아왔다.
“다음에 또 한 번 같이 가는 것도 좋을 것 같네.”
“그래. 나중에 한 번 시간 맞춰 보자고.”
부산으로 돌아온 우리는 피곤함이 가득하면서도 얼굴에 즐거움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렇게 즐거움이 가득한 얼굴로 헤어진 나는, 나를 기다리고 있는 가족과 재회했다.
“압빠아아앙!”
집으로 돌아가니, 역시 가장 먼저 소은이가 나를 반겨주었다. 도도도도- 달려와서 냅다 안겨드는 소은이를 안아서 한 바퀴 돌려주니 즐겁다며 꺅꺅 웃어댔다.
“우아! 새 칭구!”
그런데, 그런 반가움이 내 뒤편에 있던 독수리에게로 옮겨갔다. 소은이는 여전히 나와 한 손을 붙잡고 있으면서, 뒤에 있던 독수리에게로 손을 내밀고 있었다.
독수리를 소은이에게 안겨주니, 소은이는 독수리가 마음에 드는 듯 열심히 쓰다듬어댔다. 물론, 독수리 역시 소은이가 마음에 든다는 것처럼 은근슬쩍 머리를 들이밀었고 말이다.
그 모습에 피식 웃고 있으니, 누나가 다가왔다. 며칠 만에 만나는 누나의 모습에, 곧바로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잘 다녀왔어?”
“응. 누나도 별일 없었지?”
“어, 어? 어, 응…….”
뭔가 이상한 누나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일단 짐이 있으니 그것부터 내려놓고 그 이유를 물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짐을 내려놓기도 전에, 나는 집이 평소와 다른 것을 알 수 있었다. 원래 있던 커다란 벽걸이 TV가, 다른 제품으로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는 테두리가 검은색 제품이었는데, 흰색으로 바뀌고 조금 더 커져 있었다.
“저거 뭐야?”
“…….”
내 물음에 누나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내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어떻게 된 건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곁에서 독수리를 쓰다듬고 있던 소은이가 사건의 전말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칭구들이랑 놀다가 뻥! 뿌셔써!”
“꺅! 소은아! 말하면 어떡해!”
누나가 소은이의 외침에 화들짝 놀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누나 대신, 소은이에게 시선을 주며 다시 물었다.
“엄마가 친구랑 놀다가 부쉈다고?”
“웅! 커다란 탱탱볼로 놀다가, 탱탱 튀어서 티비를 때렸어!”
나는 보다 자세한 설명을 해달라는 눈빛으로 누나를 바라보았다.
내 시선을 버티지 못한 누나가, 계속 시선을 회피하며 입을 열었다.
“……모처럼 나도 친구들 불러서 놀다가, 요가볼을 잘못 던져서 티비를 깼어. 아니, 혜윤이가 요가볼로 신기한 자세를 하잖아. 나도 따라 하려고 했다가 미끄러져서 실수했어.”
“허이구?”
“저거는, 원래 있던 거랑 똑같은 모델로 하려고 했는데 그게 이제는 안 나온다고 해서…….”
“얼씨구.”
누나가 내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힐끔힐끔 눈치를 보는 그 모습에,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입을 열었다.
“다친 곳은 없고?”
“……응. 다치지는 않았어.”
“그래, 그럼 됐어. 뭐, 안 다치는 게 제일 중요하지.”
나는 계속 눈치를 보는 누나를 다시 한번 안아주었다.
나도 놀러 갔었으니 누나도 친구들을 불러서 놀 수 있는 것이었고, 그 과정에서 TV를 한 번 박살 낼 수도 있는 것이었다.
딱히 신경쓰지 않는 내 모습에 안도하는 누나를 뒤로하고, ‘아부아부부부!’ 옹알이하는 은수에게 다가갔다.
“은수도 잘 있었어?”
다시 만나니 좋다는 듯,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팔다리를 휘적거리는 은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