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16
0215 일단은 관광부터(1)
“이제 진짜 다 챙겼지?”
“…….”
내 말에 누나가 또 입을 다물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니, 됐어. 그냥 필요한 게 있으면 거기서 사는 걸로.”
부족한 거나, 챙기는 걸 잊은 물건이 있어도 현지에서 조달하기로 했다.
사올라를 찾기 위해 밀림 같은 곳으로 들어갈 계획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라오스 체류 내내 그런 곳만 뒤지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유명한 휴양지 같은 관광명소도 여럿 찾아갈 생각이었다. 시내에서 머무를 생각도 있었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때 사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 다 챙긴 거 같아.”
현지 조달로 필요한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하니, 그제야 누나가 다 챙겼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는 곧장 소은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도 업써!”
내 시선을 받은 소은이는 전적이 있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캐리어를 활짝 열어 보였다.
본인은 정리했다지만 내가 보기엔 정리가 하나도 안 되어 있는 어린이 특유의 난장판 수납법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는 캐리어였다.
여러 벌의 옷들이 대충 돌돌 말아서 캐리어에 가득하게 담겨 있었다. 심지어, 속옷을 고정대처럼 쓰고 있었다. 다리가 들어가야 할 부분에는 돌돌 말린 티셔츠 2개가 자리하고 있었다.
“……엄마가 정리해 줄게.”
그 모습을 보고 얼굴을 쓸어내린 누나가 소은이의 캐리어를 뒤엎었다. 소은이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저건 진짜 처음부터 싹 정리해야 할 수준이었다.
“나두 할 수 있는데!”
“소은이도 할 수 있지만, 엄마가 해주고 싶어서 그래. 소은이는 그 사이에 아빠랑 어떤 동물들 데려갈 건지 고민해 보는 게 어떨까?”
“동물!”
자신이 정리하지 못하는 것에 아쉬워하던 것도 잠시, 소은이는 데려갈 동물들을 고르라는 말에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보나 마나 싹 다 끌어모아 데려가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다 데려갈 수는 없어. 알지?”
“힝. 다 같이 가고 싶었는데에!”
“그럼 동물들 보고 싶어서 동물원까지 놀러 온 사람들이 아무도 못 보잖아. 그러면 안 되겠지?”
“웅. 동물들 못 보면 아쉬워!”
아쉬움에 시무룩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소은이는 누굴 데려가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일단, 청호랑 유부, 아라는 데려갈 거야. 따로 더 데려가고 싶은 동물들을 골라.”
나는 청호와 유부, 아라는 기본적으로 데려갈 생각이었다.
청호야 우리 경호팀의 최강 전력이었으니 놓고 갈 수가 없었다. 단순히 전투력만 따지면, 우리 경호팀에서 1:1로 청호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을 정도니, 데려가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그리고, 유부와 아라는 사올라를 찾는 것에 도움을 받기 위함이었다. 하늘 높은 곳에서 자그마한 쥐를 사냥할 정도로 시력이 좋으니, 사올라를 찾는 것에도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이었다.
“콩콩이랑 뽀니랑 마루랑 토끼즈랑 누렁이랑 하늘이랑 오구리랑 또오…….”
다만, 소은이는 최근에 자기와 자주 놀았던 동물들을 나열하고 있었다.
“……소은아. 다 데려갈 수는 없어.”
“그러엄…….”
다 데려가지 못한다는 소리에 잠깐 아쉬워하긴 했지만, 소은이는 다시금 고르고 골라 몇 마리의 동물들을 간추렸다.
“콩콩이, 뽀니, 마루, 일기토, 누렁이! 이렇게 데려갈래!”
더 이상은 자신도 양보할 수 없다는 듯이, 입술을 앙 다물고 있는 소은이의 모습에 웃음이 터질 뻔했다.
하지만 애써 웃음을 참아내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 동물들은 데려갈 수 있었다.
고릴라인 콩콩이나, 두 손으로도 몸통을 다 감싸지 못하는 수준으로 자라난 버마비단뱀인 누렁이가 문제의 소지가 있긴 했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여행을 목적으로 한 개인적인 방문도 아니고, 사올라라는 동물을 찾아 보호해달라는 정부의 요청으로 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콩콩이나 누렁이의 동행이 조금 문제가 될 소지는 있어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문제가 되는 것도, 녀석들이 혼자 있을 때 누군가와 마주해서 놀라게 하는 정도에 불과할 것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소은이가 데려가고 싶은 동물들까지 정하고 나서야, 출국을 위한 준비가 끝났다.
남은 것은 소은이에게 간택 받은 동물들과, 짐을 챙겨 공항으로 떠나는 것이었다.
“그럼 출발할까?”
“출발! 꼬!”
폴짝 뛰어오르며 외치는 소은이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린 나와 누나는 짐을 챙겨 집을 나섰다.
○ ◑ ● ◐ ○ ◑ ● ◐ ○
공항에 도착해서 짐을 붙인 우리는 곧바로 비행기에 탑승했다.
라오스에서 전용기는 아니더라도, 전세기를 따로 내어준 상황이라 곧바로 움직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덕분에 동물들 역시 화물칸이 아닌 승객이 탑승하는 곳에서 함께 갈 수 있었다.
“후히힝, 간지러!”
품에 안은 일기토가 꼼지락거리며 배를 간지럽히고, 소은이가 웃음을 터트리는 것도 가능한 것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웃고 있으니, 기장의 안내방송이 나오고 천천히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와 누나는 예전에 겪었던 일을 또다시 겪게 되었다.
“으아아아앙!”
항공기가 이륙하며 생기는 기압 차이 같은 것으로 인한 귀 통증에, 은수가 울음을 터트린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소은이에게서 겪었던 일인 만큼, 그렇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은수야, 흥!”
“흐응!”
은수를 안고 있는 누나는 곧바로 은수의 코를 풀어주었다. 아기가 스스로 기압 차이를 해소할 수 없으니, 코를 푸는 것으로 해결하는 것이었다.
과거 갈라파고스에서 한국으로 귀국할 때 탑승했던 비행기의 승무원이 알려준 꿀팁이었다.
“압빠, 은수 왜 울어써? 아파?”
“아프……기는 했을 거야. 갑자기 비행기가 휘잉, 날아오르면 귀가 멍멍해지잖아? 아기는 약해서 그런 것도 아프게 느끼는 거야.”
“그러쿠나!”
“소은이도 그랬는데? 예전에 비행기에서 엄청 크게 울어서 얼마나 놀랬는지 모르지?”
“나는 그런 적 업써!”
자기한테는 기억이 없다는 듯, 소은이가 발뺌했다.
“페엥이 만났을 때 기억 안나?”
“기억나!”
“그때 그랬어.”
“우웅…….”
동물원에서 귀여움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페엥이를 언급해 주니, 소은이는 기억이 날듯- 말듯- 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금보다 더 어릴 때니 기억하기 힘든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띵-!
그리고, 그렇게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어느덧 비행기가 정상궤도에 올랐는지 안전벨트 착용 표시등이 꺼졌다.
“풀어두 돼?”
“그래. 그러면 소은이가 가서 동물들 달래줄까? 혹시라도 놀랐을 수 있잖아.”
동물들을 언급하니, 소은이가 곧바로 달려나갔다. 소은이의 목적지는 이코노미 좌석의 일부를 철거하고 쿠션을 깔아, 동물들이 쉴 수 있도록 해둔 곳이었다.
“갠차나?”
동물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간 소은이는 그대로 동물들 사이로 다이빙하듯 뛰어들었다.
녀석들과 이리저리 부대끼며 웃음을 터트리며 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라오스까지 가는 비행시간 동안 지루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수환아. 도착하면 뭐부터 할 거야?”
“음……. 먼저 숙소에 짐만 빠르게 내려놓고 관광이나 할까? 도착하면 점심 정도 될 건데.”
“그래, 그러자.”
나와 누나는 동물들과 노는 소은이의 모습을 보고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했다. 도착하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부터 라오스라는 나라에 대한 것들까지 말이다.
그러던 도중, 승무원이 스윽- 다가왔다. 카트에 온갖 음식들을 담아서 말이다.
“기내식 서비스를 이용하시겠습니까?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어……. 저는 닭고기로요. 누난?”
“저는 소고기로 주세요.”
나와 누나는 깊게 고민하지 않고 적당히 끌리는 것들을 선택했다. 그리고, 동물들과 놀고 있던 소은이도 불러서 기내식을 먹게 했다. 게다가 은수를 위해서도 따로 준비된 이유식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 가족에게 기내식을 내려주었음에도 승무원이 우물쭈물하며 곁을 떠나지 않았다.
의아함을 가득 담아 바라보니, 약간 난처하다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동행한 동물에게는 식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따로 닭고기가 담긴 캔 같은 걸 주면 될까요?”
동물들이 승객들이 탑승하는 곳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인지, 기내식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듯한 모습이었다.
“아! 양념된 거만 아니면 주셔도 됩니다. 아니면 적당한 과일 정도만 주셔도 되고요. 저기 누렁이……. 큰 뱀은 배부른 상태니까 따로 뭘 안 주셔도 되고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승무원이 돌아갔고, 이내 조금 소란스러워졌다.
다름이 아니라, 기내식 서비스가 동물들에게 직접 먹이를 먹여주는 피딩 체험을 하는 것으로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다.
승무원들이 바나나나 사과, 닭고기 같은 것들을 조금씩 들고서 동물들에게 먹여주고 있는 것이었다.
“히약! 머, 먹었어!”
손에 쥐고 있던 바나나를 콩콩이에게 빼앗긴 승무원이 놀라면서도 즐거워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내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해 주고 있다는 것에 마음속으로 감사의 인사를 한 나는 내 앞에 제공된 기내식을 먹었다. 조금 짜긴 했지만, 그래도 꽤나 먹을만했다.
기내식을 싹 해치우니 배도 부르고 비행하는 동안 할 것도 없던 나는, 어느새 색색거리며 잠든 은수를 안아들고 함께 잠에 빠져들었다.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5시간 조금 넘는 비행시간이 금세 지나갔고, 우리는 차디찬 겨울이 아닌 후덥지근한 라오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부에서 초대해서 온 만큼,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덥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정장까지는 아니지만 골프웨어 같은 차림으로 깔끔하게 있는 몇몇 사람들이 있는 것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라오스에 체류하시는 동안 통역을 맡은 깜나입니다.”
가장 먼저 다가온 사람은 깜나라는 이름이 통역사였다. 그는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더니, 곧장 통역을 시작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외교부와 환경부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나온 이들과 가볍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라오스에서 부디 좋은 기억만 남기를 기원한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사올라를 꼭 찾아서 번식에 성공하길 바라며, 라오스에서 또 하나의 종이 사라지지 않게 도와달라고도 하십니다.”
체류하는 동안 모든 편의를 봐주겠다 말하는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편의를 봐준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지.
어쨌거나, 그렇게 정부에서 나왔다는 이들과 간단하게 인사를 주고받은 다음, 나는 가족과 함께 동물들을 데리고 입국심사대로 향했다.
“나 먼저!”
입국심사대가 보이니, 소은이가 도도도- 달려나갔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미리 알려준 탓이었다. 자기 혼자 한 번 해보겠다며, 여권을 꼬옥 쥐고서 달려나간 것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에 딱히 걱정되지는 않았다. 편의를 봐주겠다는 것에는 입국심사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폴짝 뛰며 직원에게 여권을 주니, 형식적으로 여권의 사진을 확인만 하고 도장을 쾅! 찍어준 것이었다.
“히히, 도장이야!”
소은이는 제 품에 안고 있는 일기토에게 도장을 보여주며 기뻐했다. 뭐, 기뻐하면 됐지.
나는 피식 웃으며 소은이를 쫓아 입국심사대를 통과했다.
누나와 은수, 동물들도 문제없이 입국심사대를 통과했고, 공항까지 마중 나온 수많은 팬들을 볼 수 있었다.
우리를 보며 환호해주는 팬들에게 적당히 손을 흔들어주며, 미리 준비된 차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보니, 안전상의 이유로도 그들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가 없었다.
“안녀어어엉!”
준비된 차량에 올라타 창문에 얼굴을 찰싹 붙이고 손을 흔드는 소은이를 보며 웃고 있으니, 차량이 부드럽게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