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28
0227 메추리(1)
장을 본 것들을 모두 계산하고, 포장까지 해서 차에 싣고 난 다음, 곧바로 집을 향해 내달렸다.
“은수야, 그거 머그면 안대.”
뒤에서 브로콜리가 담긴 봉지를 베어 무는 은수를 막는 소은이의 모습을 룸미러로 보며 빠르게 차를 몰았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마트였기에, 집에는 금세 도착할 수 있었다.
“메추리이잇!”
“메추리알 부화하기 전에, 정리부터 해야겠지?”
“잉.”
차에서 내리는 것과 동시에 메추리알을 부화시키고 싶어 하는 소은이를 제지한 나는, 짐부터 정리하기로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은수가 제일 좋아하는 브로콜리를 깨끗하게 씻고 데쳐서 은수의 품에 안겨주었다.
아기들에게 유아용 애니메이션이 재생되는 휴대폰을 쥐여주는 것만큼이나, 은수를 얌전하게 만들기 부족함이 없는 것이었다.
얌전하게 앉아 자그마한 입으로 브로콜리를 베어 무는 은수를 확인하고서, 소은이와 함께 짐들을 정리했다.
커다란 박스에 몽땅 담아온 물건들을 소은이가 하나씩 가져오면, 내가 찬장이나 냉장고에 채워 넣는 것이었다.
“끝!”
“끄읏!”
정리를 끝낸 우리는 동시에 만세를 하며 은수가 앉아 있는 소파에 털썩 걸터앉았다.
“은수야 마시써?”
“우응무.”
“그게 왜 마시쓰까……?”
소은이는 은수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도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다는 것 정도는 아는 소은이는 금세 브로콜리에 관한 생각을 지웠다. 그리고, 그 자리에 메추리알에 대한 생각을 가득 채웠다.
“압빠! 메추리알!”
호다닥 뛰어가서 두 묶음의 메추리알을 가져온 소은이는 그것을 내게 들이밀었다. 어서 부화시켜 보자는 것이었다.
몸을 파닥파닥 흔드는 게 어지간히 기대가 되는 듯했다.
“그럼 일단 위층으로 올라갈까?”
“위에서 할 거야?”
“응. 딱 맞는 친구한테 부탁해야지.”
내 말에 소은이가 이해하지 못한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아무래도 좋다는 듯 나보다도 먼저 2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그런 소은이를 따라 올라가니, 어느 방으로 갈 건지는 모르기 때문에 복도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어디? 어디?”
“침실로 가자.”
침실 문을 열어주자 소은이가 쏙- 비집고 들어갔다.
“여기서 어떻게 해?”
“일단, 유정란이랑 무정란에 표시를 해보자. 그래야 유정란에서만 새끼들이 부화한다는 걸 알 수 있겠지?”
파란색과 빨간색의 펜을 들고 메추리알의 껍데기에 가볍게 칠을 해주었다. 과하지 않고, 가볍게 표시만 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자, 그럼 이제 베란다에 나가자.”
준비를 끝마친 나는 곧바로 소은이를 데리고 베란다로 향했다.
그곳으로 향한 이유는, 이 메추리알들을 부화시켜줄 녀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부 안녕!”
“으음? 이 시간에는 웬일로 찾아오셨소?”
베란다에는 유부가 살고 있었다. 베란다 난간 테두리 부근에, 화분을 걸어둘 수 있는 공간이 있었는데 유부가 그곳에 둥지를 틀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부야. 알 좀 품어라.”
“……뭔가 이상한 소리를 들은 것 같소이다. 알을 품으라니.”
“아니, 제대로 들었는데. 이걸 좀 품고 있어. 부화할 때까지만.”
“…….”
내 말에 유부 녀석이 날카로운 부리를 떡- 벌린 채로 화들짝 놀란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금세 정신을 차린 녀석이 날개를 퍼덕퍼덕 흔들며 항의하기 시작했다.
“나, 나는 수컷이란 말이오!”
“그래서?”
“우리 종족은 암컷이 포란하면, 수컷이 먹을 것들을 물어다 준단 말이오. 나는 알을 품을 줄 모르오!”
유부 녀석이 날개를 퍼덕이며 자신을 할 줄 모른다고 항변했다.
“너도 이참에 한 번 해봐.”
“차, 차라리 아라 여사에게 시키시오! 그 여사라면 알을 잘 품어 줄 것이오!”
심지어, 녀석은 아라를 대안으로 지목했다. 검독수리 암컷인 아라라면 자기보다 더 알을 잘 품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유부에겐 안타깝게도 아라에게 시킬 수는 없었다.
“네가 여기에 둥지를 틀었잖아. 걔는 은수목 꼭대기에 틀었고.”
“그, 그게 무슨 상관이오!”
“소은이가 알을 한 번씩 봐야 하거든. 그렇지?”
“웅!”
“그럴 수가…….”
유부 녀석이 내 말에 또다시 부리를 벌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소은이가 어릴 때 살아 있는 차양막이자 부채로 활약했던 녀석답게, 소은이가 초롱초롱하게 바라보는 눈빛을 이겨내지 못했다.
결국, 녀석은 메추리알의 부화를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잘 부탁해!”
배 아래에 여러 개의 메추리알을 놓게 된 유부는 어이가 없다는 듯한 모습으로 날개를 살짝 들어 올렸다.
소은이는 그런 유부의 모습에 해맑게 웃으며, 냉장고에 따로 보관하고 있는 유부 전용 간식을 조금 가져왔다. 소고기를 작게 잘라둔 것이었는데, 유부 녀석이 무척 좋아하는 간식이었다.
“마니 먹고, 알도 잘 보살펴줘!”
알을 품고 있는 유부는 소은이가 내미는 고기 조각들을 찹찹 맛있게 받아먹었다.
“소은아. 새들은 알을 품게 되면 다른 곳으로 갈 수가 없어. 잠깐이라도 알을 품지 않게 되면 차갑게 식으면서 새끼가 태어날 수 없거든. 그러니까, 소은이가 매일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유부한테 밥을 챙겨줘야 해. 할 수 있지?”
“응! 할 수 있어!”
주먹을 불끈 쥐며 말하는 소은이의 모습에 흐뭇한 웃음이 절로 지어졌다. 놀다가 잊는 건 아닐까 싶긴 해도, 동물들에 관해서는 약속을 잘 지키는 편이었기에 믿기로 했다. 정 안 되면 내가 도와주면 되는 거고.
“유부야 부탁할게.”
“끙……. 알았소이다…….”
여전히 유부는 자신이 알을 품어야 한다는 것이 이상한지, 어색한 모습을 보였지만 거부의 의사를 내비치지는 않았다.
녀석은 거진 엎드리듯, 메추리알들을 정성스레 품기 시작했다.
유정란과 무정란을 포함해서 약 40개의 알들이 있었지만, 유부도 나이를 먹어가며 종족의 한계를 뛰어넘은 것처럼 덩치가 커졌기에 품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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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평소라면 유치원에 가야 할 소은이를 깨운다고 분주한 시간이었을 시각.
그러나, 평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유치원이야 초등학교 입학을 위해 졸업을 한 상태라고 하지만, 가장 크게 바뀐 것은 그게 아니었다.
“메추리!”
바로, 이른 아침부터 소은이가 깨우지 않았음에도 눈을 번쩍 치켜뜨며 일어난 것이 가장 큰 변화였다.
그리고 그렇게 혼자 일어난 소은이는 벌떡 일어나 베란다를 향해 달려나갔다. 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찬 공기를 침실에 한가득 밀어 넣은 소은이는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유부에게 다가갔다.
“유부야, 알 부화해써?”
소은이가 유부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벌써부터 부화했냐고 묻고 있었다. 이제 유부가 포란한 지 24시간도 안 됐는데도 그러는 걸 보면, 내 딸이라도 성격이 좀 급해 보였다.
아무튼, 그런 소은이의 모습을 바라본 유부 녀석이 슬쩍 몸을 일으켰다.
짜리몽땅한 다리를 보유했을 것 같은 외형과 달리, 무척이나 기다란 다리를 뻗으며 몸을 쑥- 올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둥지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에엥.”
당연하게도 포란한 지 24시간도 되지 않은 알들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살짝 만져보면 유부의 체온으로 조금 따듯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중간중간 유부 녀석이 센스 좋게 알들을 뒤집어 주었는지 위치가 바뀌어 있긴 했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정말 변화라곤 없었다.
“소은아. 유부 밥부터 챙겨줘야지.”
“앗!”
유부가 품던 메추리알들을 잠시 바라보던 소은이가 내 외침에 다시금 호다닥 달려갔다. 주방까지 달려가, 고기 조각들을 가져온 소은이는 유부에게 고기를 먹였다.
알들을 품는다고 밤중에 아무것도 먹지 못한 유부는 그 고기들을 찹찹 소리를 내어가며 빠르게 해치웠다.
넉넉하게 가져온 고기의 대부분을 먹어치운 유부는 그제야 만족했다는 듯이 날개를 펄럭이고서, 다시금 알 위에 엎드렸다.
“나중에 또 올게!”
유부가 다시 알을 품는 모습을 바라본 소은이는 다시금 침실로 돌아왔다.
“추어!”
한겨울의 날씨에 내복 차림으로 나갔던 터라 꽤나 추웠는지 이불로 쏙- 들어온 소은이는 이불 속에서 꿈틀거렸다. 이불 속에서 따듯해- 하고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이불 속에서 꿈틀거리다가도, 수시로 유부의 상태와 메추리알들의 상태를 체크하고 있었다.
유부가 배고픈지, 알에는 이상이 있는지. 정말 꼼꼼히 체크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침 유치원을 졸업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유치원에 있다가도 달려왔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 정도로 열심히 유부와 알을 체크하던 소은이의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며칠 정도가 지났을 때 소은이를 불렀다.
“유정란이랑 무정란이랑 슬슬 차이가 생겼을 거야. 아빠랑 같이 확인해 볼까?”
“진짜? 조아!”
소은이를 데리고 유부가 있는 베란다로 향했다. 녀석에게 고기를 먹여주며, 녀석의 아래에서 알을 하나 꺼냈다.
이후, 휴대폰도 꺼내들고 휴대폰에 달린 LED 플래시를 켰다.
“자, 여기 플래시에 알을 올리면 알 안에서 메추리가 자라나고 있는지 알 수 있어. 검란이라고 하는 거야.”
“검란? 신기해! 얼른 보여줘!”
소은이가 신기하다며 나를 재촉했다.
그런 소은이의 모습에 웃으며 플래시 위에 메추리알을 올려놓았다. 파란색으로 체크되어 있는, 무정란이었다.
플래시 위에 알을 놓으니, 조명 빛으로 인해 알 내부가 비쳤다. 하지만 딱히 내부에 뭔가 보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단순히 알의 모양으로 무드등을 만든 것처럼 빛이 나고 있을 뿐이었다.
“무정란은 새끼가 되는 씨앗이 없다고 했었잖아? 그래서 이렇게 비추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여.”
“그럼 유정란은 달라?”
“아빠가 설명해 주는 것보다 한 번 직접 보는 게 좋겠지?”
나는 유부의 둥지에 손을 쑥- 넣어서 빨간색으로 체크해둔 알 하나를 꺼내, 플래시 위에 얹었다.
조금 전처럼 내부가 비쳤는데, 이번에는 빛이 비추고 있는 알의 모습이 살짝 달랐다.
내부에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덩어리진 것이 보였다. 그 주변으로 거미줄 같은 것들이 생겨 있는 것도 보였다.
“여기 보이는 덩어리 같은 게 메추리가 되고 있는 거야. 아주 작아서 잘 안 보이긴 하는데……. 조금씩 움직이고 있지? 이게 심장이 쿵쿵 뛰는 거야.”
“우오아아아!”
소은이는 신기하다는 듯이 메추리알을 빤-히 바라보았다. 물론, 플래시의 빛 때문에 눈이 부신지 금세 눈을 감으며 고개를 돌렸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