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3
0022 밤손님
사고뭉치……. 아니, 뭉치를 나무라듯이 얼굴 주변의 털을 움켜쥐며 가볍게 흔든 중년의 남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를 보더니 ‘커흠! 크허으음!’ 하며 헛기침을 과하게 했다.
잃어버렸던 반려견을 찾았다는 것에 기뻐하며 바닥을 나뒹군 것이 이제와서 부끄러운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부끄러움 보다는, 자신의 반려견을 되찾아준 것을 더 감사하게 여기기는 하는 것인지 우리에게 다가왔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녀석을 찾겠다고 그렇게 돌아다녔는데……. 덕분에 찾게 되었습니다.”
중년의 남성. 아저씨는 우리에게 허리를 90도 수준으로 숙이며 감사하다는 모습을 보였다. 비록, 그 모습들을 담고 있는 카메라를 의심쩍게 바라보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 아저씨의 모습에, 또 다른 아저씨라고 할 수 있는 피디님이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선생님. 저희는 애니멀 팜 제작진입니다. 선생님의 반려견인 뭉치에 대해서 영상을 제작중에 있는데, 가능하시다면 선생님께서 방송에 출연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일단 섭외 대상이라 보면 선생님이라 부르는 건진 몰라도, 피디님은 아저씨에게 다가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방송 출연을 제의했다.
잠시 고민하던 아저씨는 약간의 모자이크 등으로 신분을 감출 수 있다면 얼마든지 출연해주겠다며 조건을 내밀었다.
당연하지만 이번 촬영에서의 메인은 뭉치와, 동물과 대화를 할 수 있는 나였다. 그렇다는 것은 뭉치의 견주라고는 하지만 아저씨의 신분을 감추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수락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좋습니다!”
뭉치의 견주 아저씨가 방송에 출연하기로 결정되자, 촬영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상황을 재연하겠답시고 뭉치가 주인과 헤어진 곳에 가서 똑같은 일을 연기해내는 것이 첫 순서였다.
뭉치와 아저씨가 가볍게 산책을 시작하고, 헥헥거리며 기뻐하는 뭉치의 모습에 잠깐 목줄을 푸는 순간 뭉치가 튀어나가는 모습을 촬영하는 것이었다.
다만 하나 문제가 있다면, 뭉치가 또 실종견이 될 뻔 했다는 것이었다.
“사고뭉치 너 이 자식……. 앞으로 밖에서 목줄 절대 안 풀어줄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또 다시 튀어나갔다가 붙잡힌 뭉치는 견주 아저씨에게 붙잡혀 잔소리를 듣고 있었다. 비록, 나를 제외한 사람들의 말을 이해하는 건 아니지만 분위기 상 자신이 잘못했음을 눈치 챈 녀석은 꼬리를 말고서 불쌍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런 뭉치나 견주 아저씨와 다르게, 피디님은 무척 환한 모습을 보였다.
뭉치가 도망치고, 견주 아저씨가 진심으로 뛰는 것까지 찍어버렸으니 그림이 제대로 산다며 좋아했다.
이후, 추가로 몇몇 장면들을 카메라에 담은 우리는 슬슬 촬영을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다시 만난 기쁨을 표현하듯, 아저씨와 뭉치가 이리저리 뛰노는 것을 마지막으로 카메라의 녹화가 종료 되었다.
“피디님.”
“예. 궁금하신 거라도 있습니까?”
“마지막에 그거 넣으실 거죠?”
“그거……라뇨?”
“나레이션이요. 뭉치야, 앞으로는 주인님과 헤어지지 말고 행복하게 살렴!”
“…….”
피디님은 내 말에 정곡을 찔렸다는 듯이 고개를 슬그머니 돌리더니, 느긋하게 장비를 정리하고 있던 스태프들에게 빨리빨리 하라며 소리쳤다.
그 모습에 키득거리며 웃고 있자니, 뭉치의 견주 아저씨가 다가왔다.
“선생님 덕분에, 뭉치가 유기견 보호 센터 같은 곳이 아니라, 제게 연락될 수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 네. 아니에요. 그냥 가볍게 대화한 건데요 뭘.”
“아닙니다. 선생님이 아니셨다면, 애니멀 팜이든 뭐든, 결국에는 유기견 보호 센터로 갔을테니까요.”
아저씨는 내 손을 잡고 정말 고맙다며, 어떻게든 보답하겠다 말하더니 명함을 한 장 건넸다.
[고&라니 법률사무소] [변호사 고병진]“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얼마든지 도와드리겠습니다. 연락주세요.”
“와…….”
태어나서 처음으로 변호사 인맥을 가지게 됐다.
뭔가 든든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기에, 나는 곧바로 지갑에 아저씨의 명함을 끼워넣고서 내 명함을 건넸다.
이미 내 정체에 대해서 전해들었던 아저씨였기에 놀라지 않고, 명함을 조심스레 챙기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 출발하시죠.”
그리고 우리의 명함 교환이 끝나길 기다렸던 건지, 피디님이 다가와 가자며 재촉했다.
어서 퇴근하고 싶다는 열망이 그득한 모습에 가볍게 웃은 나는 아저씨와 뭉치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서 집으로 향했다.
○ ◑ ● ◐ ○ ◑ ● ◐ ○
“……그렇게 된 거지.”
“나는 삼 주 동안 같은 자리를 지켰다길래 유기견인 줄 알았는데……. 그냥 너무 활발해서 길을 잃은 아이였어?”
집으로 돌아온 나는 저녁을 먹으며, 누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시작은 누나가 인테리어에 관한 이야기였으나, 짧은 그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는 오늘 내가 겪었던 일에 대한 이야기였다.
누나는 피디님이나 뭉치를 만난 것을 시작으로, 뭉치의 견주 아저씨를 만난 것 까지 이야기 해주니 무척 즐거워했다.
특히, 상황을 재연한다고 촬영할 때, 뭉치가 또 다시금 탈주했다 알려주었을 때는 자지러질 정도로 웃어댔다.
걱정이 될 정도로 웃음을 심하게 터트렸다.
“그래도 다행이네. 주인을 찾아서. 안 그랬으면 유기견 보호 센터 같은 곳으로 갔을 거 아냐? 운 좋으면 새로운 주인을 만났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죽었을 수도 있잖아.”
“그렇지. 아저씨도 그렇게 말하더라. 내 덕분이라고.”
“우리 수환이 착하다.”
누나는 아이를 칭찬하듯, 내 머리를 슥슥 쓰다듬으며 베시시 웃어보였다.
안 되겠구만. 오늘도 내 안에 잠들어 있는 상남자를 일깨워서 누나에게 본때를 보여줘야지.
“꺅!”
“누나. 더 이상 애 취급을 하지 못하게 해줄게.”
누나를 공주님 안기로 휙- 안아들며 선언하듯이 말하자, 누나는 부드럽게 눈웃음 지어보였다.
“할 수 있을까? 누나한텐 수환이가 언제나 아이 같은 걸?”
“하, 진짜 내 무서움을 제대로 보여줘야겠구만? 저번처럼 잘못했다고 빌게 해줄게.”
“내가 그랬다고? 나는 그런 기억이 없는데.”
태연하게 발뺌하는 누나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우리집에서 유일하게 동물들의 출입이 제한 되어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부부라는 관계에 접어들지는 않은 관계로 부부침실이 아니라 커플침실인 곳으로 들어간 나는, 거대한 라지킹 사이즈의 침대에 누나를 냅다 던졌다.
가볍게 허공을 부유하고, 침대에 톡- 떨어졌지만 과학적인 매트리스 덕분에 누나는 놀라기 보다는 도발적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런다고 누나 생각은 바뀌지 않아요.”
알아서 매를 벌고 있는 누나의 모습에 웃으며, 천천히 다가갔다. 그제서야 누나도 살짝 긴장했는지, 몸을 움츠렸다.
그런데, 누나와 일기토를 벌이려는 그 순간.
톡- 톡톡- 톡-
방해가 들어왔다. 누군가가 커튼 뒤 창문을 두드리는 것이었다.
“……잠깐만. 여기 일 층 아니잖아.”
“힉!”
내 말에 이상함을 느낀 누나는 약간의 두려움이 서린 표정을 짓더니 내 뒤로 잽싸게 달려왔다.
애 취급 할 때는 언제고?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기에, 나는 침대 머리맡 근처에 놓아둔 전기 파리채를 강하게 움켜 쥐고는 커튼을 향해 다가갔다.
‘일단 존나게 패서 아래로 떨군 다음에 애들 다 모아서 다구리 치는 거야. 마침 그 아저씨가 변호사니까 과잉 대응이든 뭐든, 도움 좀 받으면 되겠지.’
나름대로 대처 계획을 짠 나는 곧바로 커튼을 확! 젖혔다.
“부우?”
그리고, 보이는 것은 고개를 90도로 꺾고 있는 부엉이였다. 내 두 손을 활짝 펼친 것 보다도 더 커다란 부엉이였다.
“……넌 또 뭐야?”
괜히 긴장감이 풀린 나는, 꽉 잡아쥐던 전기 파리채를 떨어트리며 마른 세수를 할 수밖에 없었다.
긴장한 내가 바보지.
톡- 톡톡-
그런데, 내가 긴장감이 풀리든 말든, 부엉이는 관심 없다는 듯이 창문을 두드렸다.
단단한 부리가 유리에 닿으며 날카로운 소리가 계속 들려오니, 나는 참지 못하고 창문을 열어주었다.
뒤에서 누나가 걱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으나, 나는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로 손을 휘휘 내저었다.
창문이 열리자, 부엉이는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다리를 성큼성큼 움직여 집 안으로 들어왔다.
“살려주시오!”
“……무슨 소리야? 살려달라니.”
살려달라는 말에 의문을 드러내니, 부엉이의 답이 금세 돌아왔다.
그런데 그 답은 나를 황당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아니, 차고 넘쳤다.
“배가 고파서 노란 고양이 하나를 공격했더니, 죽을 뻔 했소! 뭔 놈의 고양이가 그리 강한 건지……. 내, 배가 고파서 안 되겠소. 녀석에게 설욕하기 전에 배를 채워야겠으니, 먹을만한 걸 조금 나눠주시구려! 백 배 보답하리다!”
먹을 거 맡겨 놨냐? 아니, 그 전에 말투가…… 무슨 조선 시대에서 왔어?
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튀어나오려 했다.
‘아니 잠깐만……. 노란 고양이?’
부엉이 녀석이 한 말이 꽤 신경 쓰였다. 노란 고양이라면 우리집에 한 마리 있기 때문이다.
치킨이 녀석은 샛노랄 것 같은 이름과 다르게 노란색과 회색이 섞여 있어 노랗다고 하기엔 애매하지만, 흔히들 치즈 태비라고도 부르는 크림색의 털을 가진 남캣은 노랗다고 할 수 있었다.
“그 노란 고양이라는 게, 여기 마당 안에 있던 녀석이야?”
“오! 그렇소. 어떻게 그리 잘 알고 있는 거요?”
“하…….”
부엉이 녀석의 말에, 나는 남캣이 걱정되어 곧바로 창 밖을 내다보았다.
‘다행이네.’
다친 곳은 없는지, 남캣 녀석은 마당 중앙에서 그루밍을 하며 느긋하게 털이나 고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안도한 나는 곧바로, 녀석에게 남캣과 싸워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녀석이 내 고양이라는 것부터 시작해서 내 집 안에서는 절대 살생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걸 알려준 것이다.
당연히 야생에서 살아가던 녀석에게 들어먹힐 내용이 아니었다. 녀석은 무척 반발이 심했다. 그냥 배를 채우고 다시 싸워 이기면 된다는 마인드였다.
나는 정이 든 남캣을 이대로 잃을 수는 없었기에, 녀석을 회유할 수밖에 없었다. 부엉이는 맹금류로, 고양이도 사냥하는 것들이었다.
“대신, 내가 먹이를 챙겨줄게. 어때?”
“……당신이 말이오? 얼마나 줄 거요?”
“배고프지 않을 정도로.”
“좋소! 내 그 노란 괴물 같은 고양이는 잊도록 하겠소!”
단순한 놈.
부엉이는 먹을 것 하나에 넘어갔다. 나는 녀석에게 우리집 안에서는 물론, 주변에서도 절대 살생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당연히 살생 뿐만 아니라, 이 집 주변의 인간이나 동물들에게 공격하지 않겠다는 약속 역시 받았다.
“당신과의 약조, 무조건 지키겠소. 그러니 내게 먹을 것을 좀 주시오. 그렇지 않아도 배가 고픈데, 그 괴물같은 녀석과 싸우느라 더 배가 고파졌소.”
약속을 했으니 먹을 것을 달라는 부엉이의 말에, 나는 지금 당장 녀석에게 먹일만한 것들을 누나에게 부탁했다.
부엉이의 등장에 놀란 것도 잠시, 어느덧 나와 대화하는 모습을 보며 눈을 빛내던 누나는 순식간에 생 닭가슴살을 가져왔다.
우리집 녀석들에게 종종 익혀서 주는 닭가슴살이었는데, 육식을 하는 부엉이에게 줄만한 것이 지금은 이것 뿐이었다.
“내가 줘도 될까?”
“그래. 인간이든 동물이든 공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니까.”
내 말에 약간의 걱정마저 없앤 누나는, 길죽하게 잘라진 생 닭가슴살을 내밀었다.
“앗!”
부엉이는 발을 내밀어, 누나가 들고 있던 닭가슴살을 낚아채더니 단단한 부리로 뜯어먹기 시작했다.
딱- 딱- 소리가 날 정도로 부리가 부딪히며 닭가슴살이 찢겨져 나갔다.
그렇게 닭가슴살 한 덩이를 순식간에 해치운 녀석은, 그제서야 배가 부르다는 듯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후우……. 나름 먹을만 했소. 고맙소이다. 내, 그대와 한 약조는 지킬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배가 불렀기 때문인지, 녀석은 여전히 열린 창문을 향해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갔다.
갑자기 몰아친 태풍마냥 일을 벌이고 사라진 녀석에, 작게 한숨을 내쉰 나는 흩뿌려진 깃털을 정리하고서 누나와 침대에 올랐다.
난데없는 부엉이의 침입이라는 일이 있긴 했지만, 그것 가지고는 애 취급을 당한 내 타오르는 분노를 잠재울 순 없었다. 그 분노는 누나의 입에서 잘못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나서야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그 때 까지는 나도 예상하지 못했다.
태풍같던 부엉이 녀석이 다시 등장하기 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