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34
0233 평범하지 않은 동물들(1)
가족 모두 집에 없는 오전.
아침부터 친구 지연이와 놀겠다며 뛰쳐나간 소은이와, 엄마들의 성화를 이기지 못하고 은수를 보여주러 간 누나. 그렇게 평소라면 누구라도 있었을 집안에 인기척이 전혀 없었다.
물론, 사람이 없다 뿐이지 동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더 쓰다듬어 줘요!”
“오냐.”
오늘은 딱히 동물원에서 사람들이랑 부대낄 생각이 없다며 집안에 틀어박힌 술빵이를 품에 안고 쓰다듬었다.
비숑프리제라는 견종답게 동글동글하게 미용해 둔 털은 쓰다듬던 도중에 가볍게 찌그러트리면 그 모양 그대로 잠시 유지되는 것이 은근히 재미가 있었다.
“당신은 네모네모 빔을 맞았습니다.”
동글동글했던 얼굴을 반죽하듯 조물조물 만지며 네모가 되게 한다던가, 가끔 샤워하면서 샴푸 할 때 머리로 장난치듯 뿔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네모 비숑, 세모 비숑, 뿔 달린 비숑까지 여러 형태로 털을 만지는 게 즐거운 것도 잠시였다. 조용한 집안에서 술빵이와 단둘이 있으니 편안하긴 하지만, 조금 심심해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전히 품에서 꼼지락거리는 술빵이를 가볍게 쓰다듬고 있으니 평화롭다는 걸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앗! 저 갈게요!”
“어디가!”
다만, 녀석이 도중에 튀어나갔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창밖에서 날아다니는 나비 몇 마리를 우연히 발견한 건지, 녀석은 마당에서 잠깐 나비를 쫓아 폴짝거리며 뛰다가 담벼락을 넘어서 사라졌다.
“……와, 배신감 느껴지는데?”
나비에게 내가 밀린 것 같은 기분에 배신감이 들었다. 그렇지만 활발하고 호기심 많은 술빵이라면 무리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고서는 TV를 틀었다. 하지만 평일 오전에 볼만한 프로그램은 많지 않았다.
다시금 TV를 끈 나는 뭘 해야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을지 고민하다, 방송이나 하기로 결정했다. 최근 들어 방송을 자주 하지 않기도 했으니, 슬슬 방송을 다시 시작할 때가 되었다.
평일 오전이라는 시간이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내 방송을 찾아보는 이들이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월급루팡들이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 한국에서 방송을 챙겨볼 이들도 무척 많았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듯 방송을 켜자마자 시청자들이 몰려들어왔다.
[ㅅㅎ!] [羔 오랜만임;] [신수님 방송좀 자주 해줘요 ㅠㅠ] [Helloooooooooo!] [내 위로 다 출장갔는데 신수님 방송? 개꿀이고요]몰려들어온 시청자들은 곧장 수많은 채팅을 쏟아냈다. 여러 언어들로 이뤄지는 채팅중에 월급루팡들이 치는 채팅도 몇몇 보이기 시작했다.
“오랜만이죠? 올해 들어서는 처음인 것 같네요.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시청자들이 적당히 들어왔다 싶었기에,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물론, 그에 대한 대답이 돌아오기도 했지만, 그런 건 방송을 자주 하면서 새해 첫날 해달라는 요구도 많았다.
앞으로는 종종 방송을 해주기로 약속을 하고서, 카메라를 든 채 소파에 털썩- 걸터앉았다.
“그래서, 뭐 할까요?”
[?] [?????] [????] [??] [????] [?]소파에 걸터앉으며 말하니, 채팅창에 물음표가 무수하게 많이 나타났다.
[제발 방송을 할 때는 컨텐츠좀 갖고 오세요 ㅠㅠ]“그게……. 솔직히, 오늘은 심심해서 켰거든요.”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방송할 컨텐츠도 없이 심심하다는 이유로 방송을 켜는 것은 좀 그랬다. 나는 슬그머니 카메라의 렌즈에서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그 순간 후원 메시지가 도착했다.
[은거허접 님이 5만 원 후원!] [“라오스 영상 봤는데 마루가 정말 물 위에 달리나요?”]바로, 사올라들을 찾기 위해 갔던 라오스에서 찍은 영상에 관한 물음이었다. 더 정확히는, 라오스 블루라군에서 물 위를 빠르게 뛰어가는 마루에 대한 물음이었다.
“마루요? 네. 그건 따로 조작 없는 진짜 영상이니까요.”
한때 조작 논란이 있었을 정도로, 사람들은 마루가 물 위를 뛰어다니는 것을 신기해했다. 하긴, 나도 마루를 매일같이 보아왔던 것이 아니면 믿기 힘들었을 모습이라고는 생각됐다.
[등평도수의 마루 ㄷㄷㄷ] [괴력의 콩콩이, 등평도수의 마루, 퐁퐁의 구박이, 불도저 한무, 약탈과 소매의 요정 포동이들, 만렙의 토끼즈!] [중간에 스파이가 있는데?] [ㄹㅇ 드루이드가 기르니까 다들 괴물이 되어감.]마루가 물 위를 뛰어다니는 영상을 본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인지, 관련된 채팅이 제법 많이 보였다.
[근데 다른 애들도 개쩔지 않음? 콩콩이가 경차로 데드치는 거 보고 기겁했는데;;] [진짜 대부분 쩔긴 함. 동물원 가서 뿌우뿌우 보는데 개놀랬자늠.] [까마귀들도 레전드긴 함 ㅇㅇ] [소매요정들 어찌나 잘 숨기는지, 집에서 옷 갈아입는데 빤쓰 안에서 나오더라.] [그건 님이 더 신기한데여?]채팅들을 바라보니 대부분 우리 동물원의 동물들이 평범함의 범주는 벗어난 것 같다는 내용이 많았다.
“에이, 전부 다 그런 거는 아니에요. 평범한 애들도 있어요. 구박이 봐요. 매일 구박받는 걸 빼면 평범한 여우랑 다를 거 없어요.”
[그건… 그렇네?]내 말에 반박하려던 사람들이 제대로 반박하질 못했다.
다른 녀석들은 몰라도, 구박이는 평범함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조금 사람들에게 친화적이라는 점을 빼면, 하는 행동이나 보여주는 능력 같은 것들이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걔는 스트레스를 견디는 게 초능력자 급임 ㄹㅇ] [그게 있네 ㅋㅋㅋㅋㅋ] [맨날 구박받으면서도 미호한테 들러붙는 거 보면 멘탈이 짱짱함.]물론, 조금 있으니 반박이 터져 나왔지만 말이다. 나도 대답하지 못할 반박이었다.
미호한테 당하는 것만 보면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할 것 같은데도, 정작 검사를 해보면 멀쩡하기 그지없는 녀석이었다.
그리고, 내가 구박이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으니, 하나의 후원 메시지가 들려왔다.
[보여줘 님이 10만 원 후원!] [“동물들 대부분 개쩌는 거 같은데 한 마리씩 자세히 보여주면 안 돼요?”]“한 마리씩 보여달라고요?”
[보여줘! 보여줘!] [보여줘라! 보여줘!] [보여줘! 보여줘!]후원 메시지가 터지자, 그 메시지에 동조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여주는 거야 어렵지 않죠. 대신, 다 보여주진 않을 거예요. 우리 동물원에 와서 직접 보는 재미도 있어야 할 거 아니겠어요?”
일단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는 듯한 채팅들이 넘쳐났다.
그 모습에 나는 오랜만에 동물들과 방송을 진행하기로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누구부터 보러 갈까요?”
[마루! 등평도수 “해줘!”] [파충류 보여줘요 ㅠㅠㅠㅠ] [유부랑 택배드론 배송 대결해줘요.] [사올라!]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온갖 동물들을 보여달라며 채팅이 난무했다. 그 중에서 어떤 동물을 골라야 할까 고민했지만, 고민은 의외로 금방 끝났다.
[보여줘 님이 50만 원 후원!] [“뿌우뿌우.”]“네, 많은 분들이 원하는 뿌우뿌우부터 보러 가도록 하겠습니다!”
[?] [?] [?]후원 메시지에 곧장 따르는 내 모습에 물음표가 또다시 난무했다. 하지만 딱히 신경쓰지 않고서, 곧장 집을 나서 뿌우뿌우에게로 향했다.
[뭐고스브 님이 3만 원 후원!] [“저거 뭔데.”]그리고, 뿌우뿌우에게 향하는 것과 동시에, 글자를 읽어주는 TTS기능을 통해서도 황당함이 가득 담겨 있음이 느껴지는 후원 메시지가 들려왔다.
그러나,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와아아아! 코끼리 차력쇼!”
다름이 아니라, 뿌우뿌우 녀석이 우리에서 차력쇼를 펼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동물원의 최강 관심종자답게, 녀석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고 있었다.
[저거 트랙터에 들어가는 타이어라서 한 200키로 하지 않나?]그런 녀석이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은, 예전부터 체력단련용품겸 장난감으로 사용하라고 넣어두었던 대형 타이어를 코에 끼운 채로 빙글빙글 돌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도 힘겹게 돌리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손가락에 팔찌를 끼우고 돌리는 것처럼 아주 손쉽게 돌리고 있었다.
“가끔 사람들이 별로 없으면 관심 끈다고 저러는데, 오늘은 운이 좋네요.”
당연하지만 내게는 그 모습이 익숙했다. 비가 온다거나 추워지는 등 동물원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었을 때면 보이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녀석답게, 사람들이 신기해 할만한 행동들을 잘 알고 있었다.
“잠깐 차력쇼 구경을 할까요.”
[개쩐다 진심.] [경차용 타이어도 졸 무거운데 저걸 어떻게 흔드냐;;;]“참고로, 차력쇼는 타이어 흔드는 게 끝이 아니에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뿌우뿌우가 잘 흔들던 타이어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기다란 코를 바닥에 늘어트리더니, 천천히 앞발을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마치 사람들이 한 손으로 푸쉬업을 하는 듯한 모습을 취하는 것이었다. 아니, 푸쉬업을 하고 있었다.
두꺼운 뒷발로 몸을 지탱하며, 바닥에 대고 있던 코를 천천히 굽히며 몸을 숙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렇게 코를 접으며 몸을 깊게 숙인 녀석은 바닥에 있던 사과 하나를 주워먹었다. 와그작 소리가 주변으로 울려퍼지자, 그 모습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신기하다며 환호성을 터트렸다.
하지만 푸쉬업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끄우우웅!”
열심히 힘을 주는 건지, 뿌우뿌우 녀석이 기합을 내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바닥에 닿을 정도로 숙여졌던 몸이 천천히 들어올려졌고, 네 발로 서있을 때와 동일한 수준으로 몸을 일으켰다.
[와 쟤가 나보다 나은데? 난 두 팔로도 못하는데 ㅋㅋㅋ] [살다 보니 방구석에서 휴대폰으로 코끼리 푸시업하는 것도 보고 세상 좋아졌다.] [정보) 뿌우뿌우는 아시아 코끼리로 수컷은 평균 5톤 정도의 무게를 가진다.] [몸무게 5톤이 코로 푸시업 하는 거라고? ㅋㅋㅋㅋ 미쳤네]뿌우뿌우가 몸을 일으키자, 채팅창에서 대단하다는 말이 계속 터져 나왔다.
하지만 뿌우뿌우는 그것으로 끝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번에는 뒷다리 중 한쪽 다리를 들어 올리더니, 다시금 코로 몸을 지탱하며 푸시업을 하기 시작했다. 한 코와, 한 다리로 푸시업을 하는 것이었다.
녀석도 중심을 잡기 위해 코를 반대편으로 조금 움직인 상태로 몸을 숙였고, 들고 있는 앞발과 한쪽 뒷다리를 열심히 움찔거리고 있었다.
“이야, 저건 실패를 좀 하는 편이라 잘 안 보여주는데, 오늘 보여주네요.”
한 코, 한 다리로 푸시업을 해내는 뿌우뿌우 녀석의 모습을 보며 나도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남들 몰래 연습이라도 했던 건지, 종종 실패하는 것을 아주 완벽하게 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감탄할 정도였으니, 그것을 보는 사람들이 감탄을 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채팅은 물론 후원 메시지들이 터져 나오며 신기하다는 말이 계속 이어졌다.
[물리는 잘 모르겠고 저 정도면 코로 2.5톤을 버틴다는 거지?] [진짜 지상 최강의 생물이다 ㄷㄷ] [지상 최강의 생물(청호한테 1패)] [그렇게 들으니까 이상한데…? 신수의 둥지는 어떻게 돼먹은 동물원이야.] [난 드루이드가 더 신기한 듯?]비록 뿌우뿌우가 신기하다는 것에서 우리 동물원과, 더 나아가 내가 신기하다는 이야기로 바뀌어갔지만 말이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다른 동물들을 찾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