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40
0239 갈매기
“형님! 오랜만입니다!”
나는 동물들이 지하에 파두었던 굴을 확장하고 사람들이 관광하고 다닐 수 있는 아이템으로 만들기 위해 만났던 권설도를 다시 만났다. 설도는 나를 보더니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인사하고 있었다.
내가 그를 불러들인 것은 다름이 아니라, 소은이에게 약속한 대로 동물원 지하에 아쿠아리움을 짓기 위함이었다.
설도의 초능력이라면 지하에 아쿠아리움을 아주 튼튼하게 지을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간간히 연락을 주고받을 때 듣기로, 꽤 거대한 건설사에 스카우트되어 근무하고 있다고 했으니 규모적인 부분도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설도야. 너네 회사, 아쿠아리움도 지을 수 있나?”
“아쿠아리움요? 수족관?”
“응. 물고기나 상어 같은 녀석들, 펭귄 같은 녀석들도 볼 수 있는 그 아쿠아리움.”
내 말에 설도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못 하는 건 아니에요. 관련 장비도 있고, 자격도 다 있긴 하니까요.”
“오, 진짜?”
“네. 대규모 아쿠아리움은 아니지만, 소규모로 지어본 경험도 있긴 하고요. 그, 왜 해양박물관 이런 곳에 가면 작게 만들어둔 것들 있잖아요.”
경험이 있다는 설도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 잘 됐네. 그럼 우리 동물원 지하에 대형 아쿠아리움 좀 지어줄래? 상어 몇백 마리 정도는 넣을 수 있을 규모로.”
“……형님. 제가 잘 못 들은 거 같은데요. 상어 몇 마리요? 그리고, 지하요? 지상이 아니라?”
“몇 마리가 아니라, 몇백 마리. 지상이 아니라, 지하. 지하굴과 이어진 에스컬레이터를 스윽 타고 내려가면 초거대 아쿠아리움이 보이는 거지. 상어 같은 녀석들이 몇백 마리가 헤엄치는 아쿠아리움이.”
내 말에 설도 녀석이 입을 떡- 벌렸다.
“……혀, 형님. 그러면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날 텐데요? 아무리 제가 초능력을 이용해서 짓는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지상에 있는 것들을 유지하면서 지하에 무언가를 만드는 건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나는 요소예요.”
“괜찮아. 언젠간 다 회수되겠지.”
평범한 건물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관광지를 위해 만드는 것이었으니 언젠간 사용한 비용을 회수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내가 생각하는 대로만 지어진다면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국가를 쪼아서 투자하게 만들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한 마디로 돈은 걱정할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투자를 받게 된다면 약간의 이익을 공유하게 되긴 하겠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
어쨌거나, 아쿠아리움을 짓기로 확정 지은 나는, 설도에게 견적서를 요구했다.
“형님. 이 정도 규모는 견적서를 바로 뽑기 힘들어요. 저희도 사전 조사랑 자재 시세 같은 것들을 다 고려해 가면서 견적을 내야 하니…….”
“시간은 넉넉하니까, 한 번 생각해 봐.”
“그럼 일단……. 저도 상부에 좀 연락을 해보고 오겠습니다.”
스카우트되어 높은 직위에 있긴 해도, 이 정도로 큰 건은 혼자 처리할 수 없다며 어디론가 연락을 하러 갔다.
그리고, 그렇게 상부와 잠깐 이야기를 주고받은 설도는 사전 조사를 한 다음 확정 짓자는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이후 설도가 돌아온 것은, 뒤로 수십여 명의 사람들을 데리고 왔을 때였다.
“저희 회사 직원들입니다. 측량부터 시작해서 어떤 방식으로 할지 미리 견적을 내는 걸 도와줄 직원들이죠.”
설도가 데리고 온 직원들은 곧바로 동물원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초거대 아쿠아리움을 목표로 하고 있기에, 자연구역까지 돌아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그 정도로 넓기에, 사전 조사라는 것이 하루 만에 끝나지는 않았다. 며칠이 지났을 때에도 각종 장비를 이용해 땅바닥만 둘러보고 다니는 건설회사 직원들을 볼 수 있었다.
이후로도 며칠이 더 지날 때까지 땅바닥만 보고 다니던 직원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은 그다음 날. 설도가 다시 찾아왔다.
“형님. 일단 지하에 아쿠아리움을 만드는 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주변에 있는 나무들의 뿌리가 생각보다 튼튼하고 얼기설기 잘 엮여 있어서, 지하에 공동에 생겨도 지상의 무게를 나무들이 서로서로 잘 지탱해 줄 수 있거든요. 이것도 아마 형님의 초능력 덕분인 것 같긴 하지만요.”
나무의 뿌리들이 흙을 아주 단단히 붙잡고 있어, 지하에 크게 짓는 것의 부담이 덜하다며 설도가 아쿠아리움 건설이 가능하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이게 견적서입니다. 아, 미리 말씀드릴 게 있는데, 이건 예상 견적입니다. 실제 공사가 진행되면서 더해지거나 빠질 수도 있어요.”
“오…….”
건설이 가능하고, 그 건설을 진행할 때 이 정도의 비용이 들 거다- 하면서 내어주는 종이를 바라본 나는 순간 눈앞이 핑- 돌았다.
견적대로 만들어진다면 세계 최대 규모의 아쿠아리움은 대륙의 기상으로 인해 불가능하지만, 세계 최대 규모의 ‘지하’ 아쿠아리움은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 금액 역시 어마어마하다고 할 수 있었다.
지상에 만든다고 해도 천억 원이 훌쩍 들어갈 규모였는데, 지하에 짓기로 한 상태다 보니 공사비용이 더더욱 커진 상태였다. 지금의 내 전재산을 탈탈 털어도 부족할 정도로 말이다. 물론, 대출을 조금 낀다면 가능할 것 같긴 했다.
“좋아. 하자!”
당연하게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증명된 순간. 나는 망설이지 않고 아쿠아리움의 제작을 확정 지었다. 어차피 공사 대금을 한 번에 지급하는 것도 아니니, 그 사이에 충분히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게다가 소은이랑 약속했다고. 꼭 아쿠아리움 지어주겠다고.
나는 새끼손가락까지 걸고 약속한 것을 반드시 지켜줄 것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통장이 텅-장이 되는 것과 동시에, 아쿠아리움 건설이 시작되었다. 비록 워낙 거대한 공사다 보니, 몇 달 정도는 걸릴 것이었지만 말이다.
공사판에도 로봇들이 드나들며 공사하는 상황이 되어 빌딩 하나를 몇 주 만에 짓는 시대임에도, 이 정도 공사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빠르게 완공되더라도 소은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처음 맞이하는 여름방학이 될 즈음에야 가능할 것 같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설도와 그가 근무하는 회사에서 해주는 것은 아쿠아리움이라는 것을 지어주는 것에서 끝이었기 때문이다. 내부를 어떻게 채우고, 어떻게 꾸밀 것인지는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소은이는 아쿠아리움에 뭐가 있었으면 좋겠어?”
“예전에 호두? 거기 갔을 때처럼, 돌고래랑 수영하고 싶어!”
“호두가 아니라, 호주.”
“웅웅, 거기!”
소은이는 지금보다 더 어릴 때였음에도, 호주에 갔을 때를 기억하고서 이야기했다. 당시 돌고래와 직접 교감하는 프로그램이 있어 참가했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었다.
내 초능력에 익숙해지고,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동물들의 모습을 보면 그런 것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최근 들어 호랑이들의 우리 내부에 들어가서 직접 교감하고 먹이를 주는 체험을 해보는 프로그램도 시행 중이었으니,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거 말고는?”
“바닷가!”
“아쿠아리움에 바닷가가 있으면 좋겠어?”
“웅!”
소은이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얕은 모래바닥을 조성해 두고, 열대어 같은 관상어들을 풀어놓으며 직접 구경할 수 있도록 만들어두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외에도 소은이는 아쿠아리움에서 보고 싶은 것들을 이야기했다.
페엥의 친구가 되어줄 수 있는 더 많은 펭귄들이나 물개나 물범 같은 녀석들도 보고 싶다고 했고, 나풀나풀 떠다니는 해마 같은 녀석들도 보고 싶다고 했다.
물론, 돌고래나 바닷가 다음으로 보고 싶다고 한 것은 하나였다. TV에서 본 건지, 뮤튜브에서 본 건지는 몰라도 아쿠아리움에서 진행하는 인어공주 쇼는 꼭 해야 한다며 방방 뛰어댔다.
“그러니까! 바닷가 놀러 가자!”
“추울 건데?”
“그래도 조아!”
추워도 상관없다며, 소은이는 바닷가를 가자며 나와 누나의 소매를 잡고 흔들어댔다.
딱히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소은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이렇게 시간을 즉흥적으로 내기 힘들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은수도 함께 데리고, 오랜만에 해운대 바닷가를 찾았다.
추운 겨울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겨울바다를 보기 위해 찾은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 녹아든 우리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모래사장에 은수를 내려주니, 은수가 푹푹 빠지는 모래 때문에 비틀거리면서도 아장아장 잘 걸었다.
“압빠, 이거 뜯어줘!”
은수를 바라보고 있으니, 소은이가 새우맛 과자 봉지를 들이밀었다. 한 구석에 몰려서 사람들이 주는 과자를 먹고 있는 갈매기들에게 뿌려줄 거라며 뜯어달라는 것이었다.
“……으아아아아앙!”
그리고, 그 봉지를 촤악- 뜯는 것과 동시에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소은이가 내민 과자 봉지를 뜯어주는 것에 잠깐 한눈 판 사이, 파도에 쓸려 왔던 다시마를 한 입 베어문 은수가 울음을 터트린 것이었다. 짠맛, 쓴맛, 신맛 등등. 온갖 이상한 맛이 뒤섞여 있었으니 아직 어린 은수에겐 충격적인 맛이었다.
“그래그래. 맛없지? 물로 입 헹구자.”
잠깐 방심한 사이에 벌어진 일에, 나는 급하게 물을 꺼내 은수의 입에 흘려 넣어주었다. 입안에 감도는 그 이상한 맛들이 씻겨나가자, 그제야 은수가 울음을 그쳤다.
하지만 여전히 손에는 그 다시마를 꼬옥 쥐고 있었다. 세세한 종을 따지자면 식물은 아니지만, 균류인 버섯처럼 은수의 마음에 드는 듯했다.
“이거 머거!”
그리고, 은수가 다시마를 잘못 맛봤다가 고생하는 모습에, 소은이는 자기가 들고 있던 과자를 한 움큼 쥐어 은수에게 내어주었다. 이상한 걸 맛봤을 때는 역시 맛있는 걸 먹어야 한다며 주는 것이었다.
그 모습에 나와 누나는 웃음을 터트리며, 은수의 입에 새우맛 과자 하나를 물려주었다.
아까보다 훨씬 편해진 듯한 은수의 얼굴에, 소은이는 안심한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많은 갈매기들이 몰려 있는 곳을 향해서 달려 나간 것이었다.
“갈매기야아! 과자 머거!”
갈매기들에게 호다닥 달려가는 소은이는 과자 봉지에 손을 넣어 한 움큼 꺼내더니, 그대로 하늘을 향해 흩뿌렸다.
“밥!”
“내꺼야!”
“과악과악!”
갈매기들은 그 모습을 보며, 일제히 날아올라 소은이에게로 몰려들었다. 날이 추워 사람들이 그리 많이 찾지 않다 보니, 경쟁이 심해진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본 소은이도 살짝 놀란 듯이 도도도도- 달려가다가 모래사장에 자국을 남길 정도로 빠르게 멈춰 섰다.
“어, 어?”
한두 마리도 아니고, 거진 수십 마리의 갈매기들이 자신에게로 몰려들기 시작한 모습에 소은이가 살짝 당황했다. 까치나 까마귀들이 몰려들어도 당황하지 않던 소은이였지만, 새우맛 과자에 눈이 돌아간 듯한 갈매기들의 모습은 이상하게 느끼는 것 같았다.
“아, 압빠아아아!”
결국 소은이는 제게 몰려오는 갈매기들을 보다가, 내가 있는 곳으로 다시금 달려왔다. 뒤에 수십 마리의 갈매기들을 달고서.
“수환아!”
소은이가 조금 질색하는 듯한 모습을 보며, 누나도 조금 놀랐는지 곁에서 나를 재촉했다.
머릿속으로는 소은이가 갈매기들에게 다칠 일이 없다는 걸 충분히 알면서도, 두 눈을 동그랗게 치켜뜨고 달려오는 소은이의 모습을 보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소은이의 뒤에 있는 수십 마리의 갈매기들을 바라보며 크게 소리쳤다.
“멈춰!”
“꾸악?!”
내 외침이 울려 퍼지는 것과 동시에, 수십 마리의 갈매기들이 파바박- 소리를 내며 모래사장에 꽂혔다. 마치 수십여 개의 다트가 바닥에 내리 꽂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소은이에게 그 갈매기 녀석들이 닿는 일은 없었다. 갈매기들이 한 녀석도 빠짐없이 기다란 부리를 모래사장에 처박고 있었기 때문이다.
“놀래써어……!”
“쟤들이 갑자기 달려들어서 놀랬지?”
“웅. 까치랑 까마귀들은 안 그랬는데! 얘들은 막 날아와써!”
정말 놀랬다는 듯이 두 눈을 크게 뜨고 있는 소은이의 모습에 미소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갈라파고스 갔을 때. 갈매가 한 마리가 소은이 과자를 채갔었지?”
“맞네. 그때 분명……. 다른 동물들한테 집단으로 린치당 할 뻔했지?”
나와 누나는 갈라파고스에 갔을 때를 떠올리며, 소은이가 갈매기와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소은이도 자기와 갈매기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건지, 단호하게 외쳤다.
“아쿠아리움에는 갈매기 안대!”
우리는 그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갈매기들에게서 멀찍이 떨어지려는 소은이의 모습을 보며, 갈매기들이 다시 움직이도록 만들었다.
모래사장에 파묻혔던 녀석들이 퍼드득 움직이며 모래를 털어냈고, 나는 녀석들에게 사죄의 의미로 과자 한 봉지를 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