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42
0241 원숭이의 실력
소은이가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이후로, 우리 가족의 일상이 조금 바뀌었다. 어떻게 보면 유치원에 다닐 때와 다시 비슷하게 된 것 같지만, 추가로 바뀐 것들이 있었다.
소은이가 학교에 등교해서 없는 오전이 조금 바뀌었고, 학교에 다녀온 직후인 오후의 일부가 바뀐 것이었다.
그렇게 바뀐 오전의 일상은 등교하는 것부터였다.
“얘 데리고 가도 돼?”
“음……. 그래, 페엥이는 데려가도 돼.”
아침에 동물들을 데려가겠다며 허락 맡는 것이 가장 큰 변화였다. 유치원을 다닐 때는 주로 토끼즈 같은 녀석들을 한두 마리 정도만 슥- 데려갔다면, 이제는 허락을 받고 여러 동물들을 데려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소은이를 배웅해 준 우리는 평소처럼 일과를 시작했다. 누나가 할 일이 있어 사무실로 향할 때는 내가 은수를 보고, 내가 할 일이 있으면 누나가 은수를 보며 오전 일과를 보냈다.
그리고, 오늘은 사무실에 일이 있어 찾아간 누나를 대신해, 내가 은수를 돌보고 있었다.
“은수야, 아빠랑 뭐 할까?”
은수를 안고 적당히 동물원을 순찰하듯 돌며 동물들의 상태를 확인한 나는, 은수가 원하는 것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조금씩 자라며 어느덧 자기의 의지를 표현하기 시작한 은수였기에, 웬만해서는 원하는 것들을 들어주려고 하는 중이었다.
“자여언!”
“자연? 자연구역 갈까?”
“조아!”
말도 많이 늘게 된 은수는 내 물음에 대답까지 했다. 그런 은수를 기특하게 바라보며 천천히 자연구역으로 향했다. 어차피 자연구역도 동물들의 활동범위에 속했기에, 순찰할 필요성도 있었다.
“은수가 좋아하는 산딸기도 많이 자랐네. 하나 줄까?”
“주세요!”
은수는 두 손을 곱게 포개어 나를 향해 내밀었다. 무언가 원할 때는 주세요- 하고 말하게 시켰더니, 아주 잘 따라 하고 있었다.
그런 은수의 모습에 흐뭇함을 느낀 나는, 잘 익어 있는 산딸기 두어 개를 따서 은수의 손에 놓아주었다.
손에 산딸기가 놓이니, 은수는 곧장 그것들 중 하나를 입에 넣고서 냠냠냠 소리를 내듯 맛있게 먹었다. 입술이 산딸기 즙에 살짝 물드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아쉽다는 듯이 혀가 튀어나와 입술을 물들이려던 과즙까지 훑고 들어갔다.
“히이.”
그래도 하나 더 남아 있는 산딸기에 행복하다는 미소를 지은 은수는 산딸기를 입에 털어 넣었다.
하지만 그 산딸기 역시 금세 사라졌다. 자그마한 입에 맞게 자그마한 산딸기는 빠르게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우우…….”
다시 아쉬움을 느낀 건지, 은수가 고민하다가 천천히 다리를 옮겼다. 바로, 산딸기를 향해서 말이다.
아장아장 걸어간 은수는 산딸기 하나를 야무지게 움켜쥐고서 뜯어냈다. 토독- 소리와 함께 산딸기를 뜯어낸 은수가 다시금 행복 가득한 모습을 보였다.
“삣!”
그리고, 그렇게 은수가 행복에 겨운 모습을 하고 있을 때, 은수의 발치에 무언가가 우르르 몰려왔다. 우르르 몰려다니는 주제에 보호색을 가지고 있다 보니 잘 발견되지 않는 메추리 녀석들이었다.
총 열 마리의 메추리가 있었는데, 소은이가 학교에 두 마리를 데려가서 지금 자리하고 있는 녀석들은 여덟 마리에 지나지 않았다.
녀석들은 은수의 곁으로 다가오더니, 은수에게 슬쩍 몸을 비벼댔다. 자기들도 산딸기가 먹고 싶으니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었다. 은수의 특기가 식물에 관한 초능력인 것이 분명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동물들이 은수를 일반인들과 똑같이 취급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보이는 행동이었다.
“쨔!”
은수는 그런 메추리들의 모습에 몇 개의 산딸기를 따서 내려놓았다. 은수는 자연구역에 널린 산딸기라는 것과, 열매들은 언제든지 다시 맺힐 것을 알기 때문에 인심이 넉넉한 편이었다.
열심히 산딸기를 쪼아 먹는 메추리들의 모습을 바라본 은수는 몇 개의 산딸기를 더 먹고 나서 내게 다시금 안겨들었다.
“히히.”
기분이 좋아졌다는 듯이 헤실헤실 웃음을 흘리는 은수였다.
헤실헤실 웃는 은수의 볼을 톡톡 건드리며 자연구역을 돌고 다시금 집 근처로 돌아오니, 일을 마친 듯한 누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수환아.”
“어, 누나. 일은 다 했어?”
“응. 할 게 많지는 않았거든.”
내게 다가온 누나는 가볍게 손을 흔들더니, 내가 안고 있는 은수에게 다가왔다. 엄마 보고 싶었지? 하고 웃음 지으며 가볍게 뽀뽀하는 누나의 모습에 은수를 넘겨주었다.
“누나가 은수 좀 봐줄래? 애들이랑 게임 한 판 하기로 했거든.”
“그래. 아빠는 친구들이랑 놀라고 하고, 은수는 엄마랑 놀자아!”
누나는 내 말에 어깨를 가볍게 으쓱이고선 은수를 데리고 카페로 향했다. 시즌권을 끊어서 매일 찾아오는 단골들과 친한 친구가 되어 있는 누나였기에, 적당히 수다도 떨면서 놀 생각이 분명했다.
나는 그런 누나를 뒤로하고 집으로 호다닥 뛰어 들어가, 컴퓨터를 켰다. 빠르게 부팅이 끝나자, 곧바로 음성채팅 프로그램과 게임을 시작했다. 휴가를 쓰고 있는 녀석들이 여럿 있었기에, 게임에는 이미 여럿이 접속 중이었다.
“나 왔다.”
“왜 이렇게 늦었냐? 너 안 와서 이미 한 겜 돌리는 중인데.”
“늦긴. 못 올 수도 있다고 했잖아. 은수 돌보고 있었다니까.”
“애 보는 거면 어쩔 수 없……. 야야야야야야!”
음성채팅 그룹에 들어가니 벌써부터 친구 녀석들의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그런 녀석들의 시끄러운 소리를 들으며 잠시 기다리니, 나를 기다리던 도중 미리 시작한 게임이 금세 끝났다. 게임에서 이기진 못했는지, 스피커 너머로 아쉬워하는 소리가 많이 들려왔다.
“근데 빈자리는 뭐야? 안 온 애들 있어?”
“어. 갑자기 일 생긴 놈 하나랑, 갑자기 애가 컴퓨터 전원을 꺼버린 놈 하나.”
새카맣게 칠해진 계정의 주인을 찾으니, 돌아오는 대답이 환상적이었다. 특히, 아이가 컴퓨터 전원을 꺼버렸다는 소리에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푸하하- 웃음을 터트린 나는 약간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예전에 한 번 소은이가 컴퓨터 전원 버튼을 꾹- 눌러서 꺼버린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글동글 반짝반짝 빛이 나는 버튼이다 보니, 소은이가 호기심에 눌러버렸지.
이제는 추억이 된 그 기억에, 흐뭇하게 웃고 있으니 음성채팅 그룹에 새로운 참가자 한 명이 들어왔다.
“와……. 핑-하고 꺼지는데 멘탈도 같이 꺼질 뻔. 애가 그런 거라 화도 못 내고.”
“아하하하학!”
“크흡!”
“푸흐흐흡.”
막 접속한 녀석의 푸념에, 나를 포함한 친구들이 그대로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잠시 동안 웃음을 터트린 우리는 가볍게 수다를 떨다가, 게임을 진행하기 위해 준비를 했다. 하지만 한 가지 난관에 부딪혔다.
“근데 우리 넷이서 할 거야? 다섯 명 아니라?”
“어떡해. 한 놈이 일이 있다고 불참인데.”
“누구 한 명 급하게 못 구하나?”
5인이서 진행하는 팀 게임이다 보니, 1명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잠깐 어떻게 사람을 구해보자며 이야기가 나왔지만, 평일 오전에 하는 게임이다 보니 사람이 구해지지 않았다.
그러던 도중, 나는 한 녀석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지금 데려 올 테니까 잠깐만.”
나는 곧바로 어디론가 연락해서 잠시 기다렸다. 친구들이 도대체 누굴 부른 거냐는 물음이 나왔지만, 가볍게 무시하며 기대하라는 소리만 남겼다.
그리고, 이내 내가 있는 곳으로 도착한 주인공을 바라보며, 녀석의 머리에 미리 준비해 둔 헤드셋을 씌워주었다.
“자, 인사해. 오늘 같이 게임할 내 친구들이야.”
“오, 드디어 정체가 밝혀지나? 근데 너랑 같이 있는 거야? 그럼 제수씨?”
같이 게임할 주인공이 등장했다고 알리니, 친구들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나는 씩- 웃으며, 내가 신호를 주길 기다리는 듯한 녀석에게 손짓했다.
“끼기기긱! 끼익!”
“……이거 무슨 소리야?”
“원……숭이 소리 아니었냐?”
주인공의 목소리를 들은 친구들은 자신들이 들은 목소리가 무엇인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그래도 정체를 금세 눈치챘다.
“맞아. 원숭이야.”
내가 데려온 녀석은 원숭이였다. 그것도 우리 동물원에서 어린아이들에게 제법 인기가 좋은, 풍선아트 마스터인 원숭이였다. 기다란 풍선 하나로 날개 달린 페가수스도 만들어낼 정도의 실력을 가진 녀석이었다.
“……미친놈아. 게임하자는데 왜 원숭이를 데려와?”
“네가 기르는 원숭이가 개쩌는 건 알겠는데, 걔가 글자도 읽어? 스킬 설명은 어떻게 볼 건데!”
당당하게 외치는 내 말에 친구들이 황당함을 가득 담아 소리쳤다.
그러나, 나는 그런 녀석들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 마. 얘가 나보단 잘하니까. 아니, 너희보다 잘할걸?”
“너는 몰라도 우리까지? 헛소리하지 마.”
언제나 나보단 게임을 잘한다며 으스대던 친구 녀석 하나가 소리쳤다. 아무리 내가 게임을 못 한다고 하지만 이런 취급은 좀 그렇지 않나- 싶다가도, 나는 한 번 실전으로 겪게 해 주기로 결정했다.
친구 녀석과 원숭이의 1:1 게임을 진행한 것이었다. 원숭이의 실력을 직접 체험한다면, 원숭이보다 잘한다는 소리는 두 번 다시 못할 것이었다.
“숭아. 전에 알려준 대로 하면 돼. 기억하고 있지?”
“맡겨주라 끽!”
원숭이가 내 물음에 자신만만하게 끽끽 웃음을 터트리고선, 키보드와 마우스에 손을 얹었다. 사람보다 조금 더 기다란 듯한 손가락이 키보드와 마우스를 움켜쥐니, 곧이어 게임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나는 곧바로 원숭이의 마우스를 가져와 조작했다. 다른 건 몰라도, 원숭이가 아직까지 캐릭터를 고르는 것이나 설명을 읽는 것을 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적당히 원숭이 녀석과 닮은, 원숭이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를 선택해 주고 다시금 마우스를 넘겨주었다.
“끽끽!”
다시 마우스를 잡은 원숭이는 곧바로 캐릭터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빠르게 움직여 하수인들을 처리하며 캐릭터를 성장시키기 시작한 것이었다.
“죽어라!”
그리고, 그렇게 천천히 성장을 하고 있는 순간, 친구 놈의 캐릭터가 원숭이의 모니터에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은 화면에 원숭이가 보이자마자 그대로 스킬을 사용했다.
하지만 그 스킬이 원숭이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친구 녀석이 사용한 스킬이 백발백중의 타겟팅 스킬이 아니라, 논타겟팅 스킬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을 가볍게 상회하는 반응속도를 가진 원숭이 녀석이 스킬을 보고서 가볍게 피해낸 것이었다.
“어쭈, 피해?”
물론, 그 사실을 아직까지 깨닫지 못한 친구 녀석은 쿨타임이 될 때마다 스킬을 사용했다. 익, 엑, 으익! 같이 괴상한 소리를 내면서 말이다.
“아아아악! 제발 좀 맞아라!”
원숭이는 마치 농락이라도 하듯, 아주 약간의 간격만을 남기고 스킬들을 피해냈다. 오히려 반격도 한 번 하지 않고, 하수인들만 맛있게 처리하며 스킬들을 모조리 피해낸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레벨의 격차가 벌어졌다 판단하고 나서야 원숭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안 돼!”
한 번도 맞지 않고 하수인만 쏙쏙 골라먹고 있는 원숭이의 행태에 열받았던 친구 녀석은 갑자기 공격태세로 돌입한 원숭이를 보며 당황했다.
차분히 진정하고 있어도 반응속도에서 상대가 되지 않을 건데, 당황까지 하고 있으니 친구 녀석은 말 그대로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HP가 뭉텅이로 빠져나가더니, 0이 되며 그대로 캐릭터가 죽어버린 것이었다.
이후 다시 리스폰이 된 친구는 또다시 농락당하듯, 원숭이의 장난감이 되었다. 죽일 수 있는데도 일부러 도망치게 놔둔다거나, 딱 1대만 때리면 될 상태에서 한 대도 맞지 않으며 약을 올린 것이었다.
“어때. 우리 원숭이 실력이.”
“끼기긱! 끼킷!”
“…….”
원숭이에게 패배하다 못해 장난감이 되었다는 사실에, 친구 녀석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친구 덕분에 원숭이가 최소한 나보다는 더 잘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다른 녀석들은 더 이상 토를 달지 않고 게임을 진행했다.
“조심! 빠져야 한다끽!”
“빠지란다!”
게임이 시작되자, 나는 옆에 있는 원숭이의 말을 적당히 통역해 주며 열심히 게임에 집중했다.
원숭이 녀석은 게임에서 첫 킬 스코어를 올리며 빠르게 게임을 휘어잡기 시작했다.
[호찐빵(이스라엘) : 게임 ㅈ같이 하네;;] [핵무새다이거야(튀모) : 손오공 빼박 헬퍼 ㅇㅇ] [문어아몬드(찹스틱) : 뭔데 논타겟팅 다 피함?]원숭이의 활약에 적팀이 성질을 부려댔지만, 우리는 그저 즐거울 뿐이었다.
“야, 너네 원숭이 진짜 잘한다. 이참에 우리 모임 이름을 ‘짐승만도 못한 놈들’로 바꾸지 않을래?”
“내가 말했잖아. 우리보다 실력 좋을 거라고.”
“근데 넌 왜 그 모양이냐?”
“…….”
나는 친구의 물음을 가볍게 무시하며 마우스 버튼을 타닥- 눌렀다.
“끼이익! 거길 왜 가나 끽!”
팽. 팽. 팽.
옆에 있던 원숭이 녀석이, 어디서 가져온 건지 모를 기다란 풍선으로 검 모양을 만들더니 나를 향해 휘둘렀다. 팔뚝 부근에 녀석이 휘두른 풍선이 맞으며 팽팽 소리를 냈다. 그래도 풍선이라, 아프진 않았다.
세 번 휘둘러진 풍선을 맞고 나니, 역시 이 게임은 하면 안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숭이 성질까지 더럽히고 있네.
나는 최종적으로 [승리]라는 문구가 떠오른 모니터를 보며 원숭이를 돌려보냈다. 계속하게 놔두면 원숭이의 성질이 완전히 더러워질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