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6
0025 완전 새판이네
유부 녀석이 우리집에서 함께하게 된 이후로 변한 것은 딱히 없었다. 매일 초저녁에 한두 번씩 푸드득거리는 소리와 고양이가 무언가를 줘 패는 소리가 추가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내 뮤튜브 채널의 변화는 작지 않았다.
남캣과 유부의 전투 영상이 업로드 되는 것과 동시에 어마어마한 조회수가 상승한 것이었다.
피식자와 포식자가 분명한 관계인데, 그것을 정면으로 받아쳐 뒤집어버리는 영상이었으니 사람들이 몰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단순히 피식자와 포식자의 관계가 뒤집어진 것 뿐만 아니라, 나름대로의 박진감까지 영상에 담겨 있다보니 더더욱 사람들이 몰렸다.
3분 정도 되는 짧은 전투 영상이지만, 물 흐르듯이 공방을 주고 받는 그 모습은 동물계 액션영화나 다름 없었다.
“유부야. 사람들이 너 찐따 같다는데. 고양이한테 지는 수리부엉이가 어디있냐고.”
“크윽……! 내 이런 수모를 겪을 줄이야!”
댓글들의 내용을 종합해서 읽어주니, 유부 녀석은 분하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아, 그리고. 얼마 전에 봤던 그 아저씨 있지? 네 몸 여기저기 확인한 아저씨.”
“그 사내라면 기억하고 있소. 그런 인간은 태어나서 처음이었소…….”
“아무튼, 그 아저씨도 영상을 봤는지, 네가 따로 사냥할 필요가 없다네? 사냥할 시간에 운동이나 시키라더라. 어떻게 고양이 한테 지냐고.”
“……내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소! 단련이라도 해야겠소!”
유부는 날개로 땅을 치더니 화가 났다는 듯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야! 어디가!”
“잠시만 기다리시오! 수련을 하고 오겠소이다!”
유부 녀석은 수련을 하겠다는 말을 남기고서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이거…… 괜찮나?’
녀석의 사육 허가를 받자마자 탈주하는 건 아닌가- 싶어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녀석은 몇 시간 지났을 때 즈음 다시금 돌아왔다. 뒤에 수십 마리의 새떼를 이끌고.
못 가게 막았어야 하는 건데…….
“수환아, 오늘은 모처럼 치맥이나…… 꺄아아악!”
그리고, 녀석이 귀환하는 것에 맞추기라도 한 것인지, 누나가 마당으로 나와 나를 찾았다. 다만, 때가 좋지 못했다.
수십 마리의 새떼가 담벼락 위에 쪼로록 앉아 있는 것을 보며 화들작 놀란 누나가 엉덩방이를 찧을 정도였다.
나는 다급히 누나를 일으켜주고, 다친 곳은 없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누나는 다친 곳이 없어 보였다. 엉덩이에 먼지만 조금 묻은 정도였다.
“아무것도 없는 거 알거든? 먼지 터는 척 하면서 엉덩이 만지지 마.”
‘……뭐 어때? 내껀데.’
“흥.”
누나는 콧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렸다. 그렇다고 내 손을 치우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누나의 엉덩이가 아니었다.
여전히 담벼락에 주르륵 늘어져 있는 수십 마리의 새떼였다.
“쟤들은 뭐야? 갑자기 어디서 나온 거야?”
“나도 몰라. 유부 저 녀석이, 수련을 하고 오겠다고 하더니 이렇게 됐네. 그 때 막았어야 했는데…….”
누나는 어이 없다는 듯이 마당의 담벼락을 바라보았다.
담벼락에는 수십 마리의 까치와 까마귀들이 그득했다. 유부 녀석을 중심으로 해서 좌측으로는 까마귀가, 우측으로는 까치들이 일렬로 주르륵 늘어서 있었다.
“수환아…… 그럼 위험한 건 아니겠지?”
유부 녀석과는 제법 친해진 누나였지만, 수십 마리의 까치와 까마귀들은 제법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듯했다.
수십 마리의 까치와 까마귀들이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으니 위협적으로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살짝 긴장한 듯한 누나를 감싸주며, 이 문제의 원흉이라 할 수 있는 유부를 불렀다.
손가락을 까딱이자, 녀석은 내 앞으로 포르륵 날아와 바닥에 착지했다.
나는 곧바로 녀석의 귀뿔깃이라 부르는, 부엉이 얼굴을 ‘ㅂ’ 형태로 만들어주는 깃털을 붙잡았다.
“으억! 왜, 왜 이러시오!”
“왜 이러시오? 왜 이러시오오오? 지금 몰라서 물어?”
귀뿔깃을 붙잡힌 녀석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으로 끙끙거렸다. 일전에 했던 협박이 아주 효과적이었는지, 녀석은 진짜 귀뿔깃이 뽑힐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저 녀석들은 다 뭐야? 까치랑 까마귀는 도대체 왜 이렇게 끌고 온 거야.”
“이, 일단 이것 좀 놔주시오!”
놓으면 말을 하겠다는 녀석의 모습에, 나는 귀뿔깃을 놓아주었다. 녀석은 슬그머니 뒤로 빼내더니,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들은, 나의 부하요. 조금 전, 수련을 하며 하나하나 굴복시킨 것들이오.”
“부하라고?”
“그렇소!”
유부는 제 뒷편의 까치와 까마귀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까치와 까마귀들이 날개를 펄럭이며 호응했다.
“하……. 그래, 부하라고 치자. 근데, 저 녀석들은 왜 다 데리고 온 건데?”
“부하들이 따라온 것이오. 내가 가는 곳을 자기들도 따라가겠다고 하더구려. 대장을 보필하는 건 자신들의 몫이라는 거요. 이거 참……. 흐뭇하지 않소?”
“흐뭇같은 소리하고 있네. 당장 쟤들 내보내. 우리집에서 저 정도로 많은 녀석들을 케어할 수는 없다고. 게다가, 한 녀석이라도 사고치면 나만 피곤해지잖아.”
까마귀나 까치나 지능이 제법 높은 동물들이었다. 자기보다 강한 동물을 상대할 때, 집단 린치를 가하는 동물로도 알려져 있을 정도로.
괜히 여러마리가 몰려서 다른 녀석들을 다치게 만드는 꼴은 볼 수 없었다.
“걱정 마시오. 내, 그대와 한 약조를 잊지 않고 있으니. 부하들 역시, 나와 그대가 한 약조를 이행할 것이오! 절대! 부하들이 누군가를 다치게 하는 일은 없으리라 장담하오!”
“그래? 그건 다행이긴 한데……. 그래도 저 녀석들은 다른 곳으로 보내. 매일 저기서 저러고 있을 건 아니잖아? 위생도 문제라고. 깃털도 떨어질 거고, 똥 싸는 것도 한두 마리냐?”
“아…….”
유부 녀석은 위생 문제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인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어쩔 수 없구려. 내, 부하들을 돌려 보내겠소. 그래도 나를 생각하는 녀석들이오니 가끔 찾아오는 것 정도는 괜찮겠소?”
“가끔 오는 정도는 괜찮아. 그렇다고 한 번에 다 찾아오지는 말고.”
조건부 허락이 떨어지니, 유부는 반색하며 까치와 까마귀들에게 날아갔다.
까르룩, 까룩, 소리를 내며 저들기리 수근댄 녀석들은 금세 만족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몇 마리의 까치와 까마귀들을 남기고서 대부분이 날아갔다.
“휴우…….”
까치는 몰라도 까마귀는 꽤나 큰 덩치를 자랑하는 녀석들이었기에, 그 녀석들이 날아가자 누나가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멀리서 본다면 귀엽다고도 할 수 있는 녀석들이긴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꽤나 무섭게 생겼기 때문이다. 특히나 길쭉하게 내밀어진 부리는 묘한 위압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아무튼, 그렇게 대부분의 까치와 까마귀가 떠나간 것을 확인한 누나는 잠시 고민하더니, 집 안에서 무언가를 가져왔다.
집에서 간간히 먹으려고 사둔 딸기 같은 자그마한 과일이나, 쌀 같은 곡식 들을 가져온 것이었다.
“주려고?”
“응. 네가 말하는 거 들어보니까, 유부 부하들이라며? 조금 정도는 챙겨줘야지.”
그렇게 말한 누나는 마당의 구석에 먹이로 줄 것이 담긴 쟁반을 통채로 바닥에 내려놓았다.
자신들에게 주는 것임을 눈치챈 까치와 까마귀들은, 누나가 살짝 거리를 벌려주니 바닥으로 내려와 먹이를 쪼아먹기 시작했다.
딸기가 가장 먼저 조각나며 사라졌고, 그 뒤를 이어 쌀과 같은 곡식들이 사라졌다.
“고맙구려, 부인. 이리도 부하들을 챙겨 주시다니. 이, 유부. 감격했소!”
유부 녀석은 부하들을 챙겨준 것이 고맙다는 듯, 누나에게 다가가 다리에 얼굴을 부볐다.
누나는 그 모습에 기쁜 모습을 감추지 못하고 녀석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처음에는 날카로운 부리 때문에 조금 무서워하긴 했지만, 이제는 그런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완전히 우리 집에 녹아든 녀석이었다.
“이건 또 뭐야……. 무슨 새대가리들이 이렇게 모여 있어? 저리 꺼져. 여긴 내 자리야.”
다만, 그 모습이 고까운 것인지는 몰라도 어디서 나타난 건지 모를 남캣 녀석이 삐딱하게 굴었다.
“큭! 이 괴물 같은 놈이!”
남캣 녀석은 유부를 팍, 걷어차더니 누나의 다리 옆을 차지했다. 보드랍게 쓰다듬어 주는 누나의 손길을 좋아하는 녀석이었기에, 누나의 곁에 유부가 있는 것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얌마. 누나는 내 여자야. 탐내지 말라고.”
나는 남캣이를 들어 마당으로 휙- 내던졌다.
하지만 녀석은 아무런 타격도 없이, 허공에서 몸을 돌리며 바닥에 착지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던지면 어떡해!”
“악!”
누나는 남캣을 던진 내 등짝을 후드려팼다. 손자국이 진하게 남았을 것 같은, 진한 고통에 끙끙거릴 수밖에 없었다.
“풉.”
“너 이자식…….”
남캣이 순간 비웃음을 흘렸지만, 옆에 있는 건 나라고. 결국 승자는 나란 말이지.
누나가 옆에서 못 말린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마당 구석에서 먹이를 먹던 까치와 까마귀들이 천천히 남캣에게 다가갔다.
“뭐 하는 짓이냐, 고양이. 감히 대장님을 건들여?”
“하. 어이가 없다, 어이가 없어. 고양이 놈이 감히 대장님께 덤빈다고?”
까치와 까마귀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하며 남캣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마, 말려야 하는 거 아냐?”
“괜찮을 걸? 애초에 까마귀랑 까치가 모여도 부엉이 하나 제대로 못 이기거든.”
누나는 내 말에 곧바로 수긍하며, 약간 가지고 있던 걱정을 털어냈다. 까치와 까마귀가 모여도 부엉이를 못 이긴다면, 남캣을 이길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을 누나도 아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와 누나의 예상대로 남캣에게는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
“끄, 끄에에엑…….”
남아 있던 까치와 까마귀들은 남캣에게 한 대씩 얻어맞고서, 마당을 나뒹굴고 있었다.
“부하들의 원수를 갚겠다!”
뒤 이어 남캣에게 덤빈 유부 역시, 지금까지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제 부하들과 사이좋게 마당에 널부러진 유부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나는, 누나와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어느덧 유부가 남캣에게 맞고 마당을 나뒹구는 모습은 우리에게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것이었다. 녀석이 바닥을 뒹굴고 있다면, 남캣에게 맞았겠거니- 하고 태평하게 넘길 수 있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