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63
0262 미스터 엔초(2)
“수환아.”
무하마드와 만난 다음 부산에 돌아오고 며칠 정도 지났을 때, 누나가 슬쩍 다가왔다.
손에는 종이 한 장을 가지고 말이다.
“응? 그건 뭐야?”
팔랑팔랑 흔드는 종이를 바라보며 물으니, 누나가 부드럽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무하마드 씨가 준비했다는 그거 같아.”
“무하마드가? 아.”
누나의 말에 무하마드가 뽀니를 데려가는 대신 무언가를 준비했다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비밀로 한다더니, 뭐 서류라도 보낸 거야?”
“무하마드 씨가 보낸 건 아니야. 비밀로 준비하긴 했는데, 관련 절차 때문에 비밀이 될 수 없었달까?”
마치 숨겨져 있던 것을 발견해 낸 사람처럼, 즐겁다는 듯이 미소 짓는 누나였다.
그 모습에 호기심이 동해, 곧바로 누나를 끌어안으며 종이를 가져왔다.
“뭐야, 동물 해외 기증?”
“응. 람라리에서 공문을 보냈더라? 자기들이 기증하고 싶다고, 관련 처리를 진행 중이라고.”
“람라리?”
나는 갑자기 슈퍼카 브랜드가 왜 나오나 싶었다. 소은이를 시무룩하게 만든 발칙한 꼬맹이를 골려주기 위해 람라리의 차량을 보유하고 있긴 한데, 그게 동물을 기증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지는 않았다.
차를 산다고 동물을 기증해 주는 자동차 제조사는 세계 그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그 이유는 누나의 입에서 밝혀졌다.
“알아보니까, 무하마드 씨가 람라리의 대주주 중에 한 명이더라? 너 알고 람라리로 산 거 아니었어?”
“……모, 몰랐는데.”
생각해 보니, 무하마드가 운영 중인 사업 중에는 투자사도 있었다. 전 세계 유수의 기업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는 회사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렇게 유명한 회사였으니, 람라리의 대주주라고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무하마드가 뽀니를 내게 보내면서 매달 10억 원씩 투척하는 자금의 근원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물론, 내 여유자금의 일부를 대신해서 불려주는 투자사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람라리에서 동물을 기증한다는 소리는 곧 무하마드가 대주주의 권한을 이용했든 아니든, 일단 개입했다고 유추할 수 있었다.
나는 곧바로 무하마드에게 전화를 걸었다. 해외에 있는 것도 아니고, 서울에 있으니 시차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무하마드! 람라리는 무슨 일이에요!”
“앗, 벌써 들켰다요?”
“뭐가 벌써예요. 람라리에서 공문이 왔는데.”
“공문? 아, 아아! 절차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예요.”
동물을 동물원에 기증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절차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며, 무하마드가 꽤나 놀란 모습을 보였다.
모든 일들을 꼼꼼하게 처리하던 무하마드가 처음 보인 빈틈에, 피식 웃으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아파서 이러고 있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이내 비명과 함께 ‘뽀니야 그러면 안 된다요-‘ 하고 소리치는 것이 들려와서, 걱정은 싹 사라졌다.
“으으, 드루이드. 뽀니를 너무 강하게 만들었다요.”
“뽀니가 뭘 했길래요?”
“창 밖을 보려고 했는데, 침대를 뜯어서 창가로 옮겼다예요.”
“……걘 병실에서 뭘 하는 거야.”
뽀니에게 병실에서 사고 치면 안 된다는 말을 하지 않았던 걸 후회했다.
“아무튼, 람라리에서 보내는 동물은 내 선물이다요. 람라리에서 주는 건……. 람라리 그 친구가 우겨서 그렇다입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람라리는 람라리를 무척 사랑하는 친구라서 그런 거라는 말이다요. 나쁜 의도를 가진 친구는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거다예요.”
무하마드는 이해하기 힘든 말을 하고서는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끊기기 직전에, ‘뽀니이이이!’하고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 괜찮겠지.”
서로 죽고 못 사는 사이인데, 큰일이야 있겠어?
나는 태평하게 휴대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누나를 여전히 끌어안고 있는 상태에서 종이를 세세하게 읽기 시작했다.
종이에는 람라리에서 어떤 동물을 언제 보낼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아할 테케? 이거 엄청 유명한 말 아닌가?”
그리고, 그 종이에 적혀 있는 동물의 종을 확인한 나는 무척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다름이 아니라, ‘아할 테케’라는 종의 ‘말’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로 손꼽히는 종이었기 때문이다.
그 특성 때문인지, 아할 테케라는 말의 서식지라고 할 수 있는 ‘투르크메니스탄’에서는 중국이 판다로 외교 하듯 아할 테케로 외교를 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워낙 아름다우며, 말의 능력 자체도 무척 뛰어난 편이라 많이 번식되고 있는 종류의 말이었다.
“어떻게, 받을 거야 말 거야?”
“……무하마드가 준비했다는 건데, 안 받을 수는 없잖아.”
“그럼 받는 걸로 처리할게. 며칠 걸릴 거야.”
누나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끌어안고 있는 걸 풀라며 내 가슴팍을 살며시 밀어냈다. 물론, 그냥 놔줄 수는 없었다. 팔에 힘을 주고 누나를 풀어주지 않았다.
“왜 이래?”
“맨입으로 그냥 풀어줄 수는 없잖아?”
“정말…….”
누나는 나를 살짝 흘겨 보고서는 쪽- 소리가 들릴까 말까 한 수준으로 입술을 맞추었다.
“조금 아쉽지만, 이번은 봐줄게.”
“흥.”
끌어안고 있던 팔을 풀어주니, 몸을 팩 돌리며 사무실로 향했다.
그리고, 덕분에 누나의 머리카락이 채찍처럼 휘둘러지며 내 얼굴을 휩쓸었다. 머리카락 끝이 얼굴에 닿으니, 제법 따끔한 느낌이 들었다.
조금 따끔한 얼굴을 한 번 쓸어내렸다. 생각보다 보드라운 머리카락인데도, 생각보다 따끔했다.
얼굴을 가볍게 쓸어내린 다음, 내가 해야 할 것들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새롭게 동물원에 합류하게 되는 동물인 만큼,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만들어주어야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여러모로 준비를 하고 있으니, 어느덧 람라리에서 보낸다는 아할 테케가 도착하는 날이 되었다.
소은이도 오늘 아할 테케가 도착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학교 갈 준비를 다 한 상태로 기대감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압빠. 새 친구 언제 와?”
“오늘 올 거야. 소은이가 학교 다녀오면 도착해 있을 수도 있어. 그러니까, 얼른 학교 다녀와야겠지?”
“아라써!”
아할 테케를 보지 못하고 학교를 가야 한다는 게 아쉬웠던 건지, 소은이는 루돌프 녀석을 타고 학교로 가면서도 자꾸 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소은이가 계속 뒤를 바라보면서 학교로 향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소은이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러고 있던 나는, 오전 일과를 이어갔다.
“은수야, 당근 먹을 거야?”
“다아-앙그은!”
아할 테케라는 말이 오는 만큼 첫 만남을 장식해 주기 위해 맛있는 당근을 수북하게 쌓아뒀더니, 은수가 당근을 탐하고 있었다.
수북하게 쌓은 당근을 향해 열심히 아장아장 걸어간 은수가, 당근 위로 엎어졌다.
흙이 좀 묻어 있는 당근이다 보니, 은수의 옷이 흙으로 더러워졌지만 은수는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당근을 양손에 쥐고 웃고 있었다.
“당근은 집에 들어가서 씻은 걸로 줄게. 이건 내려놓자.”
바로 먹을 수 있는 당근을 준다고 하니 은수가 손에 쥐고 있던 당근들을 내려놓았다.
그렇게 은수의 옷에 묻은 흙을 털어낸 다음, 집으로 들어가 당근을 조금씩 먹여주었다. 기뻐하고 있는 은수를 보며 적당히 오전 일과를 보내고 있으니 어느덧 소은이가 집으로 돌아왔다.
원래라면 친구들과 분식집도 가고 뛰어놀았겠지만, 아할 테케가 워낙 기대됐는지 곧장 집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압빠! 말 왔어?”
“조금 있다가 도착한다고 연락 왔어. 그럼 새 친구 만날 준비 할까?”
내 말에 소은이가 집으로 호다닥 뛰어가, 손을 씻고 다시 뛰쳐나왔다. 그 잠깐 사이에 아할 테케가 도착할까- 걱정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손을 씻고 나온 소은이는 동물원의 후문 입구를 기웃거리며 언제 도착하는지 묻기 시작했다.
“언제와?”
“금방 올 거야.”
“이제는 얼마나 남았어?”
“삼십 분?”
“압빠, 얼마나 더 있어야 해?”
“이십 분?”
“압빠. 얼마나?”
“십오 분?”
“압빠?”
“십 분?”
“압?”
“오 분.”
아주 주기적으로 언제 도착하는지 물어보며, 시간이 점점 다가올수록 기대감을 가득 드러내며 주변을 뛰어다녔다.
밑에까지 왔는지 확인하겠다며 루돌프 녀석을 타고 호다닥 내려갔다 오기도 하는 등, 열심히 뛰어다닌 것이었다.
그리고, 조금 아래까지 내려갔던 소은이가 다시금 뛰어 올라왔다.
“와써! 와써어!”
“뭐가 왔어?”
“새 친구!”
소은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커다란 차량 한 대가 언덕길을 올라오고 있었다.
차를 탈 때마다 보이는, 람라리 특유의 말이 그려진 마크가 크게 장식된 차량이 부드럽게 내 앞으로 멈춰 섰다.
그 차량이 멈추는 것과 동시에, 서양인 한 명과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 한 명이 차에서 내렸다.
“반갑습니다. 저는 람라리님의 통역을 맡은 박화고 입니다. 여기 계신 분이, 람라리의 회장이십니다.”
나는 씩- 웃으며 손을 내미는 람라리 회장과 가볍게 악수를 나눴다.
람라리 회장이 이탈리아어로 추정되는 말을 빠르게 내뱉으니, 곁에 있던 박화고가 재빨리 통역을 해주었다.
“유명한 드루이드를 직접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뮤튜브 채널도 구독도 하고 매일매일 챙겨보고 있죠. 그런 의미에서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사인을 하나 받을 수 있겠습니까?”
“대단한 분이 구독자라니, 신기하네요.”
나는 람라리 회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물론, 싸인을 요청한 람라리 회장의 요구대로 사인을 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압빠아아.”
그런데, 그 모습을 잠자코 바라보던 소은이가 내 옷깃을 잡고 살며시 흔들었다. 새 친구가 왔는데, 인사를 한다고 보여주지 않고 있었기에 심통이 난 듯한 모습이었다.
“공주님이 얼른 선물을 보고 싶으신가 봅니다.”
내 옷깃을 잡고 흔드는 소은이의 모습에 부드럽게 웃어 보인 람라리 회장은 곧바로, 근처에 있던 다른 사람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람라리 마크가 그려져 있는 차량의 문이 철컹- 소리와 함께 열리더니, 따그닥따그닥 소리를 내며 커다란 말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와아아아!”
소은이는 그렇게 나오는 말, 아할 테케를 바라보고 환호성을 내질렀다.
덩치가 무척 커다란 녀석이었지만 그것이 체감되지 않을 정도로 다리가 길쭉하며 튼튼하게 보였다. 그리고, 온몸에 울퉁불퉁한 근육들이 그득했다. 강력한 힘을 가진 녀석임이 여실히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게 만드는 외형적인 특징이 하나 있었다.
바로, 백금처럼 하얀 것 같으면서도 금색의 털이 반짝반짝 빛을 반사하며 아름다움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온몸이 윤기 나는 백금색의 털로 가득했다. 마치 백금으로 만든 조각상이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소은이도 아할 테케의 모습을 본 감상이 나와 같았는지, 입을 떡- 벌린 채로 감탄사만 흘리고 있었다.
“저 말의 이름은 엔초. 저희 람라리의 창시자 이름이자, 저희 람라리에서 출시했던 하이퍼카의 이름입니다.”
나와 소은이가 입을 벌린 채 놀란 모습을 보이는 것에, 람라리의 회장이 씩- 미소 지어 보였다.
그리고, 엔초라는 이름을 가진 아할 테케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발굽 소리를 내며 천천히 다가오는 모습에, 소은이가 정신을 차리고서 엔초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