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66
0265 토끼의 소화제
“수환아, 광고제의가 들어왔는데?”
“광고? 뭔데?”
소은이가 가져온 가정통신문을 대충 훑어보고 있으니, 누나가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그 화면에는 누나가 말한 것처럼 광고제의라는 문구로 시작한 메일 하나가 보이고 있었다.
“소화제?”
“응. 너도 잘 알 걸? 이거, 우리가 가끔 먹는 그거니까.”
누나의 말에, 메일을 조금 더 읽어 보니 익숙한 브랜드 명칭이 눈에 들어왔다.
내 초능력이 건강하게 해주긴 하지만 소화불량이나 체하지 않는 정도까지 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우리 가족이 보유한 상비약의 가장 큰 지분은 소화제였다.
그리고, 그 소화제 중에서도 우리 가족이 가장 선호하는 것이, 지금 광고제의가 들어온 소화제였다.
“광고는 우리 뮤튜브? 아니면 방송?”
“우리 뮤튜브 채널에 업로드해 달라고 되어 있어. 금액도 거기에 맞춰 있고.”
누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가 금액이 맞춰져 있다고 한다면, 다른 업체들이 제시하는 금액과 큰 차이가 없고, 어마어마한 구독자를 보유한 내 채널의 가치에 맞는 금액이라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기들이 시나리오도 써놨는데?”
“시나리오?”
“응. 여기.”
미리 출력을 해서 온 건지, 누나가 몇 장의 종이를 꺼냈다.
빠르게 그 종이를 훑어보니,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어떻게 보면 재밌을 것 같기도 했다.
“나쁘지 않은 거 같은데, 누난 어때?”
“나도 괜찮을 거 같아. 시나리오도 나쁘지 않아 보이고. 근데, 중요한 건 소은이가 하고 싶어 하냐는 거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누나가 어깨를 으쓱였다. 다름이 아니라, 소화제 제조사 측에서 원하는 시나리오의 주인공이 소은이였기 때문이다.
“뭐, 한 번 물어보면 되지. 싫다고 하면 안 하는 거고.”
나는 곧장 소은이를 불렀다. 집에 가방만 내려놓고 동물들과 놀러 간 상태였기에 전화로 부르니, 웅-! 하고 소리치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레서판다와 놀고 있었던 건지, 자그마한 체구의 레서판다 한 마리를 품에 대롱대롱 매달고 나타났다.
“압빠! 엄마!”
레서판다를 달고 나타난 소은이는 왜 불렀냐는 듯이 우리를 바라보았다.
“소은아, 영상 찍어 볼 생각 있어?”
누나는 그런 소은이에게, 소화제 제조사 측에서 가져온 시나리오를 읽어주었다.
마치 동화를 읽듯 이야기해 주는 누나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듣던 소은이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할래!”
“진짜?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거면 안 해도 돼.”
“할 거야!”
고개를 붕붕 휘저은 소은이는 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은 우리는 광고 영상의 촬영 준비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조연 같으면서도 주연 같은 배역을 받은 윤다인의 협조를 요청하는 것이었다. 영상의 설명란에 아웃스타의 주소를 기입해 주며 특근 수당을 주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그다음은 촬영의 주 무대가 될 아쿠아리움을 꾸며두는 것이었다. 배경이 될만한 것들을 미리 수중에 가라앉혀두고, 이물질들이 가라앉길 기다렸다.
그렇게 촬영의 준비가 모두 끝난 다음, 촬영이 진행되었다.
소은이와 윤다인을 제외하면 출연진 전원이 동물이었기에, 그렇게 어려운 일은 없었다. 대사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이, 적당한 시간에 맞춰 주둥이만 뻐끔거리면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찍은 영상에 대사를 내레이션으로 입히는 것으로, 제법 괜찮은 영상이 뚝딱 만들어졌다.
“소은이가 어떻게 찍었는지 한 번 볼까?”
“웅!”
그리고, 우리 가족은 거실에 사이좋게 모여 앉아, 소은이가 주연으로 촬영된 광고 영상의 최종 완성본의 시사회를 가졌다.
○ ◑ ● ◐ ○ ◑ ● ◐ ○
“끄으으응…….”
“아이고, 용왕님!”
평화로운 수중 세상의 용궁. 그곳에서 약간의 소란이 일어났다.
바로, 용궁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용왕의 상태가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어지러움을 호소하고, 식은땀을 흘리며 구토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넓은 용상에 드러누운 용왕, 윤다인이 끙끙 소리를 내고 있었다.
당연히 용궁의 주인인 용왕의 건강에 적신호가 떠오른 것에 용궁의 동물들이 난리가 나게 되었다.
“용왕이시여! 어서 쾌차하셔야 하옵니다!”
“저 먼바다에서 나온다고 하는 미역이옵니다! 이것으로 건강을 회복하시옵소서!”
“이것도 드셔 보시옵소서. 건강에 좋다고 하는 전복이옵니다.”
“기력이 허할 때는 이것을 드시어, 기력을 보충하시는 것이 좋을 것이라 아뢰옵니다.”
상괭이, 바다거북, 펭귄, 가오리 등등. 여러 동물들이 용왕, 윤다인을 향해 갖가지 식재료들을 들이밀었다. 어서 용왕이 건강을 회복하여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내놓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용왕은 그러한 것들을 하나도 받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밀어내고 있었다.
“보그르르륵.”
용왕의 입에서 공기방울들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 거품 속에 담긴 의미가 주변으로 울려 퍼졌다.
‘전부 치우거라. 식욕이 없구나.’
제게 내밀어지는 갖가지 진미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은 용왕은 결국 몸을 돌렸다.
그 모습에 동물들은 저들끼리 쑥덕이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용왕의 건강이 정말 나빠졌다, 먹는 것도 거부한다는 것은 정말 큰일이다,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같은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던 도중, 용궁에서 가장 똑똑하다고 하는 동글이가 나섰다. 몸을 C자 형으로 세운 채, 꼬리지느러미를 바닥에 댄 상태로 입을 연 것이었다.
“듣기로, 육지에서는 용왕님과 동일한 증세를 보이는 병을 급체라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더이다.”
“급체? 그러면 용왕께서 건강을 회복하실 수 있다는 것이오?”
“내 비록 육지에 오를 수 없는 자이기에, 자세한 것을 아는 것은 아니외다. 그저, 그런 질병이 있다 하는 것과, 그에 아주 효과적인 약을 토끼라는 생물이 가지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소이다.”
“그렇다면 당장 그 토끼라는 생물을 찾아가도록 해야겠구려!”
동물들은 곧장 자신들이 토끼라는 생물을 찾아 나서겠다며 다투었다. 심지어, 집게를 다닥다닥 움직이는 대게마저 나서고 있었다.
“육지에 오르지 못하는 이들은 나서지 말게나. 육지에서도 문제없이 움직일 수 있는 이들만 나서는 것으로 하게.”
그러던 도중, 가장 나이가 많은 바다거북, 바북이가 중재를 하고 나섰다. 육지에서는 숨도 못 쉬는 동물들마저 나서니 중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가면 되는 거양! 나는 오히려 물에서 숨을 못 쉬고 있쪄!”
“……나는 자네가 왜 용궁에 있는지 모르겠네만.”
그리고, 모두의 의문이 담긴 시선을 가득 받고 있는 펭귄, 페엥이 나섰다.
하지만 동물들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펭귄이라면 물속에서처럼 빠르게 움직이진 못해도, 육지에서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었으니 말이다.
“내가 토끼 데려 올 거니까, 기다리고 이쪄!”
페엥은 용왕을 치료해 줄 약을 가진 토끼를 데려오기로 약속하며, 곧바로 육지를 향해 헤엄쳤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육지로 올라온 페엥은 토끼를 찾아 여러 곳을 헤맸다. 육지 거북이 가득한 곳을 지나고, 코알라들이 잠자는 유칼립투스 나무 군락지를 지나, 크게 지어진 비버의 집까지 지난 것이었다.
정말 온갖 장소들을 헤매며 토끼를 찾아 나선 페엥의 노력에, 페엥은 결국 토끼를 찾을 수 있었다.
“토끼! 잠깐만 기다려 보라는 거양!”
“웅? 페엥이네?”
토끼 잠옷을 입고 걸어가던 소은이는, 자신을 불러 세우는 페엥을 보며 의아한 모습을 보였다. 왜 자신을 멈춰 세우냐는 것이었다.
“우리 용왕님이 아픈 거양! 네가 가진 약이 필요해서 왔쪄!”
“우웅, 그러쿠나!”
소은이가 페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무슨 약이 필요한 건지 물었다.
“똑똑한 동글이가 급체라는 거라고 했쪄!”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소은이는 기다리라는 말을 하더니,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하며 전화를 마친 소은이가 어디론가 호다닥 달려갔다.
그 모습에 페엥은 따라가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그 고민하는 사이, 이미 소은이는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설마 약을 주기 싫었던 건 아니게찌! 하고 놀라는 페엥이었다. 물론, 다행스럽게도 소은이는 도망친 것이 아니었다.
“우리 엄마가, 이거 먹으면 된다고 했어!”
다시금 나타난 소은이는 낱개로 포장되어 있는 약 하나를 페엥에게 내밀었다.
“이거 먹으면 되는 거양? 어떻게 먹는 거양?”
“껍데기를 벗기고 먹으면 돼.”
소은이는 친절하게 껍데기를 까는 방법까지 알려주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페엥이 그것을 따라 할 수가 없었다.
딱딱딱, 페엥의 부리가 약의 껍데기를 허무하게 두드리고 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가서 까줄게!”
“대따 고마운 거양!”
착한 어린이인 소은이는 약을 까지 못하는 페엥의 모습에, 착한 일을 하기로 결심하며 페엥을 따라나섰다.
비버의 집을 지나고, 유칼립투스 군락지를 지나고, 육지 거북들의 서식지까지 지난 페엥은 입수를 앞뒀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소은이는 물속에서 숨을 쉬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전설 속에 나오는 물건이 있쪄! 육지 생물도 물속에서 생활할 수 있게 해주는 물건이라고 했쪄.”
용왕을 위해, 페엥은 소은이를 데리고 전설 속에 나오는 잠수복이란 것을 찾으러 나섰다.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유혹하는 은빛 바가지를 들고 다니는 인간들을 피해, 보물 상자를 찾아낸 페엥은 잠수복을 꺼냈다. 소은이는 곧장 그 잠수복을 챙겨 입었다.
“가자!”
잠수복을 챙겨 입어, 물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 소은이는 곧바로 페엥을 따라 용궁이 있는 물속으로 빠져들었다.
하지만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잠수복은 챙겼지만 오리발은 챙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또카지!”
이대로라면 전설 속의 잠수복이라도 산소가 다 해서 버틸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으니, 무언가가 재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페엥이여. 정말 육지의 토끼를 데려왔구려!”
“잘와쪄! 토끼를 데리고 용궁으로 가야 하는 거양.”
“음, 그렇다면 나를 붙잡으시게.”
빠르게 다가온 것은 바다거북인 바북이였다. 바북이는 소은이에게 다가가, 자신의 등껍질을 내어주었다.
그 등껍질에 몸을 얹은 소은이는 등껍질을 꽈악 붙잡았다.
“놓치지 않도록 붙잡으시게나.”
소은이에게 꽉 붙잡으라는 말을 남긴 바북이는 빠른 속도로 용궁을 향해 나아갔다. 순식간에 주변 풍경이 바뀌며, 소은이가 물속 깊은 곳에 위치한 용궁에 도착했다.
여러 동물들이 모여 있는 것을 바라본 소은이는 신기하다는 듯한 모습으로 여기저기 구경을 하고 있었다.
꼬리지느러미로 바닥을 딛고 서있는 상괭이, 가오리를 망토처럼 두르고 있는 점박이물범 등등, 신기한 동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선을 사로잡는 동물들을 구경하며 나아가니, 어느덧 용왕이 기거하고 있는 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저기 있는 사람이 우리 용왕님이양!”
페엥이 가리키는 곳에는 윤다인이 이마를 짚으며 누워 있었다.
소은이는 그 모습을 보더니, 곧장 자신이 들고 온 약을 건네주었다. 하나같이 손이 없는 동물들인지라, 소은이가 직접 포장지를 벗겨내어 용왕의 입에 살며시 넣어주고 있었다.
“오오오……!”
그 모습에 주변에 있던 동물들이 기대감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기다리니 끙끙거리던 용왕이 조금씩 좋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어지럽다는 듯이 머리를 짚던 손이 내려갔고, 창백하게 보이던 얼굴이 혈색을 되찾고 있는 것이었다.
“보그르륵.”
‘정말 고맙구나, 육지의 토끼야. 네가 내어준 약 덕분에 살아날 수 있었단다. 귀한 약을 내어준 네게 보답하지 않을 수 없구나.’
점점 상태가 좋아진 용왕은 누워 있던 몸을 일으키며, 소은이의 잠수헬멧을 슥슥 쓰다듬어주었다.
이후, 근처에 있던 점박이물범에게 손짓하여 자그마한 상자를 가져오게 만들었다. 용궁의 보물이 담겨 있다는 상자를 받은 소은이는 용왕과 동물들에게 손을 붕붕 흔들고서 다시금 육지로 향했다.
용궁으로 올 때처럼 바북이를 타고 육지로 올라간 소은이는 그대로 상자를 열어젖혔다.
내부에 차 있던 물이 흘러넘치며, 내부에 있던 물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왕!”
상자에 있던 것은 큼지막한 유리구슬이었는데, 내부에는 용궁의 모습과 용궁의 동물들이 자그마한 인형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가볍게 흔들어 보니, 바닥의 모래가 흩날리듯 유리구슬 안에서 흩날리고 있었다.
“히히히. 이뿌다.”
유리구슬이 마음에 들었던 건지, 소은이는 유리구슬을 소중하게 품에 안으며 도도도도- 달려 나갔다.
그렇게 소은이가 화면 밖으로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화면이 어두워지며 소화제의 이미지와 제조사의 브랜드 마크가 화면을 장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