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68
0267 외전 – 고등학생 신소은(2)
집에서 멀지 않은 데다 학교에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던 초등학생 시절은 동물들이 쉴 공간을 마련해둘 필요가 없었다.
적당히 운동장 옆에 있는 화단에서 쉬도록 놔두거나, 그냥 집으로 돌려보낸 다음 시간에 맞춰서 오라고 하면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학교로 진학한 이후로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초등학교보다 조금 더 떨어진 중학교부터는 동물들이 집에 혼자 올라갈 수 있을 정도가 아니었다. 횡단보도를 몇 번이나 건너야 했고, 사람들도 무척 많았다. 그나마 소은이가 교통법규 같은 것들을 달달 외운 덕에 소은이의 탑승 하에 다닐 수 있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수업 중에는 집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되었으니, 소은이가 타고 간 동물들이 쉴 공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해결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수많은 구독자에서 나오는 수익을 이용해, 일종의 거래를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도서실이나 강당 같은 곳을 리모델링해 주고, 학교에서 구석진 곳의 일부를 3년간 임대받는 형식을 취한 것이었다.
지금 엔초가 있는 곳도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학교 후문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쓰지 않는 창고였던 건물을 개조하여 휴식 공간으로 만들어둔 곳이었다.
내부에는 편하게 쉴 수 있는 쿠션을 비롯해, 동물원에서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형태의 화장실 등이 구비되어 있었다. 자동으로 먹이나 물이 급여되는 것들도 있었으니, 소은이가 수업받는 동안 휴식을 취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어찌 되었든, 소은이는 엔초가 기다리고 있을 그곳을 향해 아주 경쾌한 걸음으로 움직였다.
“엔초, 엔초, 엔초오오오.”
학교 뒤편을 향해 경쾌한 스텝을 밟으며 뛰어간 소은이는 엔초의 이름을 흥얼거렸다.
어찌나 경쾌하게 뛰는 지, 교복 치마와 기다란 머리카락이 사이좋게 팔랑팔랑 흔들리고 있었다.
“으흐응, 흐응- 흥흥.”
콧노래까지 부르며 뛴 소은이는 엔초가 있는 곳을 향해 더 빠르게 움직였다.
선생님들의 차량이 주차된 곳을 지나, 후문이 눈에 들어오는 곳에 도착하니 엔초가 기다리고 있는 곳에 도착했다.
“엔초야!”
“공주님!”
“오래 기다렸지?”
“괜찮사옵니다. 이 엔초, 공주님을 기다리는 것이라면 천년이고 만년이고 기다릴 것이옵니다.”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는 엔초의 모습에 소은이가 꺄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솔직히 조금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이 들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은 건 좋은 것이었다.
“일단 가자. 오늘 은수도 데리고 갈 거야.”
“왕자님 말씀이시군요.”
“은수가 너랑 대화가 안 돼서 다행이야. 왕자님이라고 하면 부끄럽다면서 짜증낼 건데.”
“어찌 공주님의 남동생이 왕자님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너도 한 고집 한다니까.”
“감사하옵니다.”
소은이는 처음 만난 이후부터, 여전히 자신을 공주님이라 부르고 있는 엔초의 모습에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오길 기다리고 있을 은수를 데리러 가야 했다.
평소라면, 집에서 가까운 초등학교를 다니는 은수라 혼자서도 집에 갈 수 있었겠지만 오늘은 학교가 아니라 다른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걔도 차암. 희귀 식물 씨앗을 판다는 소리는 또 어디서 들어서…….”
소은이는 식물에 푹 빠져 있는 제 동생, 은수를 생각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마찬가지로 은수가 자신을 동물에 푹 빠진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일단 가자!”
잠시 고개를 내젓던 소은이는 그대로 폴짝 점프하여 엔초의 등에 올라탔다. 물론, 교복으로 치마를 입고 있는 탓에, 치마 아래로 체육복 바지를 슥- 올려 입고서 말이다.
그런데, 후문을 통해 나가려던 소은이는 엔초의 고삐를 잡아 당기며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다름이 아니라, 후문에 몇몇 학생들이 길을 막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오토바이까지 타고서!
“오, 드디어 나왔네. 야, 신소은. 우리랑 같이 놀러 가자. 좋은 거 알려줄게.”
“싫은데.”
소은이는 자신을 바라보고 히죽히죽 웃어대는 한 남학생을 바라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평소에도 행실이 불량하기로 유명한 놈이었는데, 그런 놈과는 상종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햐……. 유명하다고 뻗대냐?”
“너희랑 놀고 싶은 생각은 없거든. 너희랑 놀면 내 평판까지 안 좋아지잖아.”
“꼴에 유명하다고 이미지까지 신경 쓰네?”
소은이의 단호한 거절에, 그 남학생의 얼굴을 붉어졌다. 다른 친구들 앞에서 거절당한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자신의 제안을 거절했다는 것에서 분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뭐, 그런 걸로 생각하려면 그렇게 해. 난 지금 가야 하니까.”
물론, 소은이는 평소 행실이 불량하던 양아치의 심경 따윈 고려해줄 생각이 없었다. 엔초의 고삐를 다시 잡으며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양아치 녀석이 오토바이로 그 앞길을 재빨리 막아섰다.
“이대로 가면 재미 없을 건데? 너, 남동생 있잖아? 내가 아는 놈들 중에 거기 다니는 놈들도 있거든. 아마 중학교로 올라간다고 해도 같이 다니겠지?”
“…….”
소은이는 동생인 은수를 언급하며 기분 나쁘게 웃는 양아치를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이내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하아……. 아빠한테 착한 딸로 있어 주기로 했는데. 너 때문에 못 하게 됐잖아.”
양아치는 소은이가 자신의 요구를 따르려고 하는 것이라 착각한 건지, 더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소은이가 말한 것은 양아치가 생각한 것과 백만 광년 정도 떨어져 있었다.
소은이는 싸늘한 표정으로 양아치를 바라보며 마치 선고하듯 읊조렸다.
“넌 앞으로 모든 동물들에게 미움을 사게 될 거야. 새들이 네 머리와 옷을 더럽히고, 쥐들이 네가 아끼는 것들을 모조리 갉아내어 망가트릴 거고, 고양이들은 네 잠을 방해하게 되겠지.”
“무슨 그딴 소릴…….”
“뭐, 네가 믿지 않든 말든, 상관없어. 네가 쓸데 없는 말을 해준 덕분에, 내가 나쁜 짓을 했다는 게 중요하지. 아빠한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벌써부터 막막하잖아.”
소은이는 짜증이 났던 건지, 거칠게 머리를 헝클었다.
“푸르르릉!”
그리고, 그런 소은이의 짜증을 대변하듯, 소은이를 태우고 있는 엔초가 위협적으로 투레질을 하기 시작했다. 발굽이 딱딱한 아스팔트에 닿으며, 자그마한 아스팔트 조각들을 주변으로 흩뿌렸다.
하지만 소은이는 흥분한 듯한 엔초의 갈기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고선, 다시금 고삐를 붙잡았다.
“마음 고쳐 먹으면 말해. 끝까지 버텨도 상관 없고.”
소은이는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생각이 없다는 듯, 엔초의 고삐를 당겼다.
엔초가 힘차게 뛰어 오르며, 앞을 가로막는 오토바이를 넘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빠른 속도로 가속하며 뛰쳐나갔다.
“기다……!”
당연히 그 모습을 보며, 양아치가 소은이를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말도 제대로 끝맺지 못했다.
“이, 이게……?”
다름이 아니라, 어디서 날아온 건지 모를 새똥 하나가 양아치의 미간에 제대로 꽂혔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푸하하- 웃음을 터트려대는 모습에 부끄러움, 분노가 휘몰아쳤다. 그러나, 그 부끄러움과 분노를 해소하기도 전에 다른 일들이 벌어졌다.
학교의 담벼락 위를 지나가던 고양이 한 마리가 손가락 한 마디만 한 돌멩이를 머리 위로 떨어트렸고, 어디서 나온 건지 모를 쥐 한 마리가 오토바이 타이어를 열심히 갉아대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이미 그 자리를 벗어난 소은이는 그런 것들엔 조금도 관심을 주지 않고, 기다리고 있을 은수를 위해 열심히 엔초의 고삐를 움직였다.
“엔초야, 조금만 더 빨리 가자. 늦겠다.”
소은이는 조금 지체된 시간에, 엔초의 고삐를 더더욱 바짝 잡았다.
더욱 힘차게 다리를 움직이며 가속하는 엔초는 어마어마한 속력으로 도심을 질주했다. 당연히, 도로교통법은 칼같이 지켰다. 신호에 맞춰 멈추고 출발하며, 속도제한까지 잘 준수하며 달린 것이었다.
한 마리의 말이 아니라, 하나의 차량이나 다름없는 수준으로 질주한 덕분인지, 소은이는 금세 은수가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 원예용품 일체를 취급하는 가게 앞에는 휴대폰을 보고 있는 은수가 있었다.
“……맛있니?”
“어, 왔어?”
가게 앞에 서 있는 은수는, 검은 비닐봉지에서 무언가를 자꾸 하나씩 꺼내며 맛있게 먹어 치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본 소은이는 황당함과 이해할 수 없다는 감정이 뒤섞인 표정으로 은수를 바라보았다. 은수가 맛있게 먹고 있는 것이, 소은이가 좋아하지 않는 당근이었기 때문이다.
은수는 소은이를 기다리며, 익히지도 않은 생당근을 아삭아삭 씹어 삼키는 중이었다.
“은수야. 너, 요즘 좀 얼굴이 노래진 거 같아. 그거 계속 먹어서 그런 거 아냐?”
“……진짜?”
소은이의 말에 은수가 손에 들고 있던 당근을 쥐고 망설였다. 바로 입에 넣으려던 것이었는데, 소은이의 말을 들으니 입에 넣기 망설여지는 것이었다.
“진짠가…….”
휴대폰을 셀카 모드로 바꿔 얼굴을 확인하니, 정말 조금 노랗게 변한 건가- 싶은 은수였다. 결국 은수는 먹으려던 당근을 봉지에 다시 담았다.
대신, 다른 것을 꺼내들었다.
“누나도 하나 먹을래?”
“……오이도 안 먹어. 너 많이 먹어.”
소은이는 오이를 아삭아삭 씹어대는 은수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일단 집에 가자. 타.”
“응.”
은수는 소은이가 내밀어 주는 손을 붙잡고, 입에는 잘라둔 오이를 문 채 엔초의 위로 올라탔다.
은수가 자리를 잡고 앉아, 오이를 아삭아삭 씹어대는 소리를 들은 소은이가 고개를 돌렸다.
“산다고 한 거는 다 산 거야?”
“응. 인터넷 보다가 우연히 발견한 건데, 여기서 희귀 식물 씨앗을 팔더라고. 그거 싹 쓸어왔어.”
은수는 자신이 메고 있던 가방을 가리켰다.
밋밋한 검은색의 가방을 가리키며 말하는 모습에 소은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나마나 책이 아니라, 각종 식물들의 씨앗과 영양제가 가득할 것이 분명했다.
“그럼 출발한다? 꽉 잡아.”
제 동생이지만 이애하기 힘든 부분이 참 많다고 느낀 소은이는 다시금 엔초의 고삐를 붙잡으며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이후 며칠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소은이는 제 앞을 막았던 양아치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내, 내가 잘못했어! 다신 나쁜 마음 먹지 않고 착하게 살아갈게! 한 번만 용서해줘!”
“그래, 앞으로 착하게 좀 살아. 안 그러면 똑같은 경험을 하게 될 거니까.”
소은이는 제 앞에서 엎드린 양아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멀끔했던 교복은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 있었고, 다크서클이 광대까지 내려온 듯한 모습을 보면 충분히 반성을 할 시간이 되었으리라 판단한 것이었다.
앞으로 착하게 살라는 말을 남긴 소은이는 제 곁에 있던 지연이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양아치를 신경쓸 시간에 노래방에 도착해서 한 곡이라도 더 부르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