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74
0273 드루이드는 드루이드를 연기한다(3)
“일단, 그것이 신수 님의 캐릭터가 기본적으로 갖게 될 스킨의 복장입니다.”
“……이 누더기 같은 옷이요?”
조금 강하게 움직이면 옷에 붙어 있는 깃털 장식들이 후두둑 떨어질 것 같이 생긴 옷이 기본 복장이라니. 심지어, 어깨에는 잔디가 얹어져 있었다. 장식이 아니라, 앞 마당에서 막 뽑아온 것 같이 싱싱한 잔디였다.
“아무래도 드루이드라는 것이 가지는 기본적인 이미지라는 것이 있지 않겠습니까. 자연 친화적이고 뭐 그런 것들 말입니다. 죽은 동물에게서 가죽과 깃털을 얻고, 자연에서 얻는 것들로 살아간다- 라는 느낌이랄까요?”
“하…….”
드루이드의 이미지가 그렇다고 하니 뭐라고 반박할 만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차라리 친환경 소재로 만든 양복 같은 건 어떨까-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미 촬영이 시작된 이후였기에 입 밖으로 내뱉을 수가 없었다.
“자, 이번에는 주변에서 걸리적거리는 걸 쳐낸다는 느낌으로 부탁드립니다.”
“걸리적거리는 거요?”
“캐릭터 설정에 식물들이 드루이드를 무척 좋아해서 들러붙는다는 설정이 있습니다. 쉬고 있으면 넝쿨이나 수풀 같은 것들이 붙어서 걸리적거린다는 거죠.”
“어우…….”
식물들이 들러붙으면서 귀찮게 한다니, 엄청 거슬릴 것 같았다. 정글을 지나갈 때마다 식물들이 들러붙는단 생각을 하니, 괜히 짜증 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감정을 담아, 어깨에 있는 잔디를 휙휙 튕겨내듯 손을 흔들었다. 그 외에도 무언가가 다리를 감은 것처럼 다리를 거칠게 털어내기도 했다.
“오! 좋습니다! 그 잔디들이 귀찮게 군다는 걸로 해도 되겠군요! 부쉬에 있을 때는 수풀이 다리를 감고 말입니다!”
감정을 실어서 움직였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감독이 정말 만족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번에는 대사도 담아서 한 번 해보겠습니다. 원하시는 대사로 한 번 해주십쇼!”
대사를 해달라는 감독의 요구에, 잠시 고민하던 나는 입에 달고 사는 수준은 아니더라도 자주 쓰는 말을 내뱉었다.
“아, 쫌.”
부산 사람이라면 100% 이해할 수 있는 억양으로 어깨를 털어냈다. 귀찮게 하지 말라는 감정을 가득 담아서 말이다. 글로벌한 게임이다 보니 이해하지 못할 사람들이 더 많겠지만, 귀찮게 하는 상황에서 내뱉을 대사로 떠오르는 말이 따로 없었다.
“이번에도 좋군요!”
그래도 감독은 만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기에, 가볍게 넘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여러 장면들을 촬영하고, 녹음했다. 메이킹필름이랍시고 인터뷰를 하기도 했고, 캐릭터가 게임에서 사용할 대사들을 직접 녹음하기도 한 것이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면 그 대사들이 하나같이 부끄럽다는 것이었다.
“가라, 남캣! 냥냥펀치!”
“고양이라고 얕보다간 큰 코 다칠 걸?”
“대자연이 곧 나의 힘이다!”
“아……. 엔초 데리고 오는 거였는데. 저기까지 언제 가?”
“응~ 나한테 죽었죠?”
“청호! 있는 힘껏 당겨!”
“너 딱 기다려. 청호 데리고 온다.”
“너네 빨리 가서 싸워!”
고성능 마이크에 대고 대사를 외칠 때마다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졌다. 대사 녹음을 모두 끝마쳤을 때, 저절로 바닥에 널브러질 정도였다.
“쥔님. 괜찮으심까?”
곁에 다가온 청호가 널브러진 나를 걱정했다. 녀석은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진심으로, 정말, 엄청나게 부끄러웠다. 내 입으로 대자연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하게 될 줄이야.
“하하하, 역시 좀 부끄러우시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문 성우들도 한 번씩 다 부끄러워하시는 거니까요.”
딱히 위로가 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위로해 주는 듯한 감독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부끄러워하든 말든, 근처에서 다른 제작진들에게 츄르를 얻어먹고 있는 남캣을 잠시 바라보다가, 청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너만 한 녀석이 없지.
그렇게 청호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으니, 감독이 슬쩍 찾아왔다.
“혹시, 남캣과 청호의 목소리도 조금 녹음을 할 수 있겠습니까? 스킬에도 등장하는 만큼, 약간의 대사 같은 느낌으로 녹음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만…….”
“뭐, 어렵진 않죠.”
나는 곧바로 남캣과 청호의 목소리를 녹음하도록 도와주었다.
당연히 인간의 언어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녹음이 되는 건 멍멍과 야옹이 전부였다. 그래도 녀석들이 의미를 담아 말한 것이다 보니, 평범하게 듣는 개나 고양이의 소리와는 차이가 느껴졌다.
녹음을 모두 마친 다음, 수고했다는 의미로 남캣과 청호에게 맛있는 간식을 내어주었다. 그리고,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감독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이제 다 끝난 건가요?”
“일단은 그렇습니다. 메이킹필름이나, 따로 CG를 입혀서 사용할 만한 영상도 잘 찍혔고, 대사 녹음도 다 끝났으니까요. 나머진 디자인팀과 개발팀에서 열심히 해주는 일만 남았지요.”
모든 일이 끝났다는 소리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 캐릭터가 생긴다는 것에 두근대던 기대감은 부끄러움으로 싹 다 바뀐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부끄러움은 사양이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모든 촬영이 끝났음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스튜디오에서 빠져나왔다. 물론, 그 이상한 복장이 아니라 원래의 옷으로 갈아입은 채로 말이다.
그런데 스튜디오에서 나오니, 라전두 팀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왜 기다리고 있던 건가- 싶어서 바라보니, 캐릭터 출시에 대한 일정 등을 알려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캐릭터에 대한 개발 자체는 이미 완성된 상태입니다. 이제 캐릭터에 스킨을 씌우는 일만 남았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 이후 비공개 테스트를 한 다음, 공개적인 테스트가 진행될 겁니다. 아마 공개 테스트까지 보름 보다 조금 더 필요할 거라고 봅니다.”
“오, 엄청 빨리 됐네요?”
“사실, 내부에서 신수 님의 캐릭터를 만들기로 결정됐을 때부터 개발 자체는 착수했었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계약이 불발 된다 해도, 만들어둔 건 어떻게든 재활용은 할 수 있으니 말이죠.”
이유야 어찌 되었든, 나를 본뜬 캐릭터가 곧 출시된다는 소식에 부끄러움을 비집고 기대감이 다시금 차올랐다. 물론, 그 캐릭터가 내 목소리로 대사를 읊을 걸 생각하면 또다시 부끄러움이 치솟았지만.
“그래서 말입니다만……. 비공개 테스트가 끝나고, 공개 테스트가 시작되기 직전에 신수님께서 방송을 한 번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캐릭터에 대한 리뷰로 말입니다. 물론, 홍보를 해주시는 것이니 관련 비용은 지불하도록 하겠습니다.”
“오, 저야 좋죠.”
단순히 내 방송을 보는 고정적인 시청자들뿐만 아니라, 게임을 좋아하는 이들까지 방송에 불러 모을 수 있는 일이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비용까지 지불한다니, 마다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라전두 팀장이 상자 하나를 내밀어, 내용물을 보여주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걸 입고 방송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이걸요?”
나는 조금 전, 촬영할 때 입었던 코스튬을 바라보며 떨떠름하게 물었다.
“안 되겠습니까?”
“방송까지 이걸 입고하는 건 좀…….”
“그럼 어쩔 수 없군요.”
라전두 팀장은 별로 아쉽지 않다는 듯이 코스튬이 담긴 상자를 덮었다.
촬영할 때 입었던 코스튬을 또 입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있으니, 라전두가 자리를 떠날 채비를 갖추고 입을 열었다.
“그럼 관련 일정은 따로 메일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서울로 일찍 올라가야 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갑자기 일이 생겨서 말입니다.”
“네, 들어가세요.”
가볍게 인사하며 돌아서는 라전두 팀장을 배웅해 주고서, 나도 남캣과 청호를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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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의 밸런스나 버그 등은 모두 잡아두었습니다. 편하게 리뷰 방송을 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촬영이 끝나고 열흘 정도가 지났을 때, 라전두 팀장이 말했던 것처럼 메일이 도착했다. 바로, 비공개 테스트는 모두 끝났으니, 리뷰를 해도 된다는 내용이 담긴 메일이었다.
그 메일을 확인한 나는 곧장 방송할 때 쓰는 방으로 향했다. 물론, 은수의 밥을 챙겨주고 누나에게 안겨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무튼, 그렇게 모든 준비를 끝낸 나는 곧바로 방송을 시작했다.
[신규 캐릭터 최초 공개!]캐릭터 최초 공개라는 제목으로, 카테고리까지 게임으로 지정해서 방송을 시작했다. 그렇게 방송을 시작하니, 평소보다 더 많은 수의 시청자들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ㅅㅎ!] [신규 캐릭? 뭐임?] [뭐지? 아직 테스트 이야기는 없던데.] [신수님도 이제 제목으로 낚시하네;]방송에 들어온 사람들은 곧바로 채팅을 치며 채팅창을 가득 채워갔다.
“자, 진정하시고요. 일단 오늘 할 방송의 내용은 제목처럼 신규 캐릭터의 리뷰입니다. 게다가, 최초 공개라는 거죠. 이번 주에 테스트 서버가 열리면 여러분들도 체험해 보실 수 있을 거예요.”
[10킬서폿 님이 5만 원 후원!] [“근데 그걸 왜 신수님이 리뷰해요? 신수님은 리뷰랑 좀 안 맞지 않나?”]“제가 뭐 어때서요.”
[10킬서폿 님이 5만 원 후원!] [“님 스킬 설명 안 읽잖아요.”]“이번에 읽죠 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당당하게 나갔다.
“아무튼, 이 캐릭터를 제가 최초로 리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유가 뭐냐고요? 보시면 알아요.”
씩- 미소를 지어 보인 다음, 곧장 게임을 실행했다. 평소에 실행하던 것과 다르게, 비공개 테스트를 위해 제작된 클라이언트였다. 그것을 실행하니 평소와 비슷하면서도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는 화면이 보였다.
[ㄹㅇ 테스트 클라네?] [잠만 저거 비공개 테스트임 ㅋㅋㅋ 관계자들만 쓰는 걸로 아는데 ㅋㅋㅋ] [뭐지? 신수님 파이엇 주식이라도 대규모 매집했나?]시작 화면에서 보이는 차이에 사람들이 의아해하는 것을 바라보며 재빠르게 마우스를 움직였다.
여러 메뉴들을 지나 곧장 게임을 시작한 나는, 화면의 한곳을 가리켰다.
“자, 신규 캐릭터! 드루이드를 소개합니다!”
코스튬을 입고 있던 내 모습을 일러스트처럼 그려낸 모습이 보였다. 풀떼기, 깃털, 가죽 같은 것으로 만든 복장을 걸치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뒤편으로 남캣과 청호가 함께 보이고 있었다.
[이게 왜 진짜냐;] [어디서 짝퉁 클라 만들어온 거 아니죠?] [살다가 신수님이 캐릭터로 나올 줄은 몰랐네 ㅋㅋㅋ] [캐릭 성능 원본 따라가나요?] [원본 따라가면 절대 안 함 ㅅㄱ]“아니, 제가 뭐 어때서요.”
[몽둥이 님이 3만 원 후원!] [“그걸 몰라서 물어요?”]나는 슬그머니 카메라에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그 순간, 게임이 시작되며 내가 녹음했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에는 자연의 기운이 가득하네. 너희도 좋지?”]내 목소리와 함께, 남캣과 청호의 야옹야옹 멍멍 하는 소리가 뒤이어 들려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주인장 부끄러워한다!] [대사 뭐임 ㅋㅋㅋ]녹음된 내 목소리에 부끄러워하고 있으니, 채팅으로 나를 놀리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 모습에 고개를 내저으며 달아오른 얼굴을 식혔다.
“아무튼, 이번에 파이엇게임즈에서 저를 캐릭터로 만들었습니다. 실존하는 초능력자를 모티브로 하여 만드는 계획이었다는데, 거기에 제가 가장 적합하다고 선택됐네요.”
나는 내가 캐릭터의 모티브가 된 이유를 설명해 주고서는, 곧바로 조작 메뉴를 불러왔다. 리뷰를 위한 클라이언트답게, 캐릭터의 레벨을 조정하는 등의 기능이 기본 탑재 되어 있었다.
곧바로 최대 레벨로 올린 다음, 스킬들을 설명해 주기로 했다.